〈 191화 〉 게릴라전2
* * *
말을 탄 무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나 빠르고 오래 달렸는지 말들이 지쳐서 헉헉 대고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단 기간에 갈 수 없을 만큼 먼 거리를 가는 만큼 말들의 피로를 생각할 법도 했지만 그들은 절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달려간 말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을 때 프레스티아의 무리들은 방향을 꺾어 작은 성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명령을 받아 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나온 영웅들이다. 당장 말을 내놓지 않으면 너희 모두 반란군으로 지정하고 처형하도록 하겠다."
성주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장한 인원이 들이 닥치더니 흉흉한 표정으로 말을 내 놓으라고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 노점상을 털어서 식료품과 물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지만 성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더 행패를 부리기 전에 성에 있는 말을 꺼내주니 그들이 타고온 말을 두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성주가 준 말이 그리 대단한 말도 아닌데다가 지쳤다고 해도 충분히 휴식만 시켜주면 다시 쓸 수 있을 말을 두고 가니 성주의 입장에서도 아주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다.
프레스티아는 같은 방식으로 빠르게 북쪽으로 올라갔다.
말이 지칠 때 마다 근처의 성에서 말을 바꿨으며 보급도 성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미친 속도로 위를 향해 올라가자 300km에 달하는 거리를 단 하루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애초에 말을 갈아타면서 달려오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프레스티아가 장만한 군용 말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북부 반란군 중에서도 말을 쓰는 기사들이 있을 터, 그 기사들의 말을 빼앗으면 되니 기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가든의 말 처럼 조금 늦게 출발했어도 괜찮겠군."
새벽 일찍 출발했기에 북부 반란군의 진로에 자리를 잡게 된 지금도 아직 해가 지지 않을 만큼 이른 시간이었다.
어차피 밤에 공격을 감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지금 도착하나 밤에 도착하나 큰 차이가 없을텐데 괜히 다른 이들에게 들킬 여지를 주는 것 보다는 가든의 말처럼 좀 늦게 출발하더라도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그래도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 않습니까. 미리 지형을 파악하고 함정을 설치해 두면 위험을 감수한 것 만큼의 성과를 더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 하도록 하지. 우리 참모의 말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행동했는데 당연히 전공으로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스티아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북부 반란군이 새벽 1시 경에 이 근처에 지어진 가도를 지난다고 했다.
새벽까지 행군을 시킬 정도로 빡 세게 병사들을 굴리고 있다는 소리였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북부 반란군이 워낙 강군이어서기도 했지만 병사들에게도 명황한 목적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인인 아이작이 망신을 당하고 그로 인해 북부 전체가 무시 당한다는 인상을 받자 그 복수를 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공격해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행군할 수 있었다.
물론 밤을 새서 행군 하는 만큼 병사의 피로도도 커지긴했지만 중간중간 몇십분씩 쉬면서 쪽잠을 자고 제대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 무리하는 느낌이 있더라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도 근처에 매복한 뒤 행군하는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처음 받은 정보보다 약 30분 정도 빠른 시점에 적들이 나타났다.
행군의 가장 앞에는 아이작의 심복으로 보이는 여자가 앞장 서고 있었으며 그녀의 뒤로 열을 맞춰서 진군하고 있는 여성들이 보였다.
무장은 아이작이 점령해 놓은 성들에게서 뺏어서 입을 생각인지 아니면 마차에 실어 놓고 움직이고 있는지 갑옷은 커녕 방패도 제대로 들고 있지 않았는데 이는 아이작이 다른 지방의 적들과 싸워본 적이 없어서 발생한 문제였다.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싸워줬던 북부의 세력들이 상대라면 이렇게 행군 도중에 공격을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아주 기본적인 무장만 한 채 움직이는 이들은 프레스티아의 입장에서는 맛난 먹잇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프레스티아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병사들을 허리를 끊을 수 있을 때 까지 철저하게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렇게 5천 명 째의 병사가 지나가는 순간, 프레스티아가 숨어있던 풀 밖으로 뛰쳐나왔다.
스윽
익스퍼드의 경지에 오른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병사 한 명이 그대로 반으로 토막 났다.
북부의 병사가 다른 지역의 병사들에 비해서 강병으로 평가 받고 있긴 하지만 이는 같은 병사들끼리의 전투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병사와 기사들간의 전투에서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습격이다!"
가장 가까이 있던 병사가 소리치니 그 병사의 목도 베어 버렸다.
프레스티아를 따라 다른 기사들도 앞으로 나와 병사들을 베고 있으니 병사들 중간중간에 배치된 아이작의 기사들이 프레스티아가 있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병사들 또한 훈련이 잘 되었는지 빠르게 진영을 정돈하고 프레스티아 쪽으로 창을 내밀었다.
병사들만 있었다면 프레스티아와 기사들만 있어도 시간을 들여 모두 정리 할 수 있었겠지만 적에게는 거의 동수의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기사단의 지원을 받으면 매우 강력해 지는 것 처럼 기사 또한 병사의 지원을 받으면 강해졌다.
"네년은 누군인가? 정체를 밝혀라!"
가장 직급이 높아보이는 여성이 앞으로 나와 프레스티아 에게 검을 겨눴다.
"황제폐하의 명으로 너희를 제압하러 나온 프레스티아 헬링이다. 감히 황제폐하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 죄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우리는 황제폐하에게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다! 황제폐하를 둘러싸고 제국을 좀 먹는 중앙파 귀족을 몰아 내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다!"
"네 년들 사정은 알 것 없다."
프레스티아가 씩 웃었다.
"앞으로 자주 보도록 하지."
프레스티아가 숲속으로 사라지려 하자 병사들이 추격하려 몸을 움직였는 데 그들의 위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떨어졌다.
쾅!!
다행히 아이작이 만 명단위의 군단 별로 마법사 5명을 배치해 뒀기 때문에 공중에서 폭발 시키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프레스티아가 한 번 습격하고 물러난 것 만으로 죽은 병사의 수만 80명이 넘었다.
"비겁한 놈들."
아이작의 군단을 지휘하는 군단장 아나샤는 이를 까득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숲속으로 들어간 기사들을 추격해서 잡는 건 불가능했다.
"한시라도 빠르게 가도를 돌파하고 평지로 나간다. 놈들도 평지에서 우리를 공격하진 못하겠지."
***
프레스티아는 아주 지능적으로 아나샤를 괴롭혔다.
혼자서 튀어나와서 병사 한 두명만 깨작깨작 죽이며 아나샤의 화를 돋구기도 했고 아예 아나샤의 정면에서 튀어나와 그녀를 무시하고 병사들만 죽인채 도망가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레스티아에게 하이네스라는 고위급 마법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북부에는 서클 마법이 연구되지 않았기에 대부분 마나를 직접 움직이는 주술형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경지에 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강력한 마법사인 하이네스를 견재할 수 없었다.
하이네스의 지원으로 늘 안전하게 빠져나가며 아나샤의 군대가 숲을 벗어날 때 까지 무려 800명의 병사를 죽일 수 있었다.
아나샤가 이끌던 군대가 만명에 달한다는 것을 생각해도 800명이라는 수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아군이 죽었다는 충격보다 복수심이 더 강한 병사들이기에 사기가 크게 저하되진 않았지만 시체를 옮기기 위해서추가로 인력을 써야 했고 기본적인 행군 전략을 모두 수정해야 했다.
일반적인 전쟁에서 기사들끼리만 게릴라 전을 하는 건 아주 예의가 없는 일이고 같은 편한테 까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전장에서 군주를 지키고 적 기사를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술을 일반 병사한테 사용하는 것은 기사도에 어긋난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반란군이었다.
황제폐하에게 반기를 든 그들을 상대로는 무슨 짓을 해도 비난 받지 않았다.
프레스티아가 뛰어난 수하들만대담하게 적진으로 파고 들어서 적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도 상대가 반란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