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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87화 (187/312)

〈 187화 〉 발품팔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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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다닐 사람이 많았다.

제도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제도로 많이 올라와있었다.

방금전에 만난 데안느도 그랬고 황실파를 표방하거나 겉으로는 황실을 따르는 척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제도에 올라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앞으로 난세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었다면 이번에 제도로 찾아온 사람들은 기성세대에 더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난세가 시작되면 영웅들에게 밀려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경험도 있고 세력도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안면을 터놔서 나쁠 건 없었다.

'마냥 기성세대들만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머, 여기까지 손님이 찾아올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로 오신거죠?"

나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 사이에 팔을 끼우고 턱을 괴는 여자.

겉으로 보기에는 변태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야시시한 복장에 몸짓도 그렇게 정갈하지 못한 여자였다.

거대한 가슴을 겨우 지탱하는 천 쪼가리 하나랑 허벅지에 닿을락 말락하게 내려와 있는 짧은 바지만 입고 다니는 여자였으니 누가봐도 군주라고 생각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난세에선 나름 알아주는 군주지.'

서부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군주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그녀는 동부의 리쿠르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의 영지를 자신의 세력권에 두고 있었으니까.

지방파 귀족이라는 이름답게 제도 쪽에서는 영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국에서 모르는 이 없는 세력가였다.

그런 그녀가 여기 있는 이유는 늘 그녀와 티격태격 거리며 싸워 온 프리스티스와 그녀가 상당한 앙숙이기 때문이었다.

로비 경쟁에서 져서 총사령관 자리를 따내지 못한 그녀의 입장에서는 전장에 나서봤자 프리스티스의 격한 견재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굳이 전장에 나서지 않고 제도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높은 위치에 올라간 것은 그녀가 비단 자신의 부모를 잘 만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히스테리아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막내로 태어난 만큼 당연히 게승에서 멀찍히 물러 서 있었다.

헬링 가문은 딸 2명 아들 1명인데다가 딸들끼리도 고작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프레스티아가 열심히 세력을 키워서 자기 언니한타 대적할 수 있는 거지 히스테리아 가문엔 딸만 7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첫째와 둘 째는 그녀가 7살일 때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그녀가 세력을 차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어렸을 때 부터 비범한 인재였지...'

고작 10살의 나이에 그녀는 한 가지 꾀를 냈다.

10살짜리 소녀가 뭐가 그렇게 권력욕이 강했는지 자신이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 이다.

'자기가 한 살 위의 오빠를 죽여놓고 그걸 다른 언니들이 한 짓이라고 누명을 씌우지.'

컷 씬 에서는 밧줄로 오빠의 목을 겨우겨우 조르며 간신히 죽였지만 남녀역전이 일어난 만큼 아마 훨씬 수월하게 죽였으리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밧줄로 목을 조름으로서 누가 오빠를 죽였는지에 대한 증거를 최대한 숨겼으며 어린나이의 순수함을 최대한 이용해 자신의 둘째 언니에게 누명을 씌웠는데 이는 둘 째 언니와 첫째 언니가 유력한 후계자 였는데 그 중 상대적으로 불리한 둘째를 먼저 탈락 시킨 뒤 첫째를 몰락시킬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 대한 평판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할아버지, 아마 여기선 할머니겠지. 조상들의 묘지에 매일 같이 찾아가면서 관리하고 인사 드리며 자신의 가문에 얼마나 충직한 인재가 될 수 있는 지 보여줬다.

그녀가 처음 조상들의 묘 근처를 돌아다닐 땐 모두가 미련한 짓이라고, 그래봤자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다고 수군거렸지만 그 짓을 3년간 하면서 한 번 어머니의 눈에 든 것으로 가문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자신의 언니를 도와 가문을 읶는 인재 정도로만 삼을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녀의 유쾌한 반란이 실행됐다.

뱀의 혀, 라고 플레이어들이 이름 붙여준 그 간악한 혀를 가지고 첫째 근처의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말하게 했으며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으로 들였다.

그렇게 그녀가 14살의 나이에 모든 정적을 처리하고 후계자가 됐으며 지금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영주 대리인으로 일할 만큼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씀 편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히스토리아 백작 영애님."

"그래, 나 보다 한 살 아래인걸로 들었는데, 편하게 말할게. 너도 그냥 누나라고 불러도 돼."

"아닙니다. 어찌 저 같은게 백작 영애님께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 하겠습니까."

"싫으면 말고."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난세 본판에서는 미인계 느낌으로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섹시한 포즈를 많이 취했던 그녀였지만 이곳은 남녀역전 세계다.

이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한테 섹 어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냥 저 사람의 습관이 저렇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우리 꼬마영웅 동생은 왜 여기까지 찾아온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접점이 없는 데 말이야. 아니."

그녀가 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둘째 헬링이랑 친하다면서? 그러면 내 적이나 다름 없는데 여긴 왜 왔어? 프레스티아 년을 버리고 나한테 붙기 위해서 온 건 아닐테고 나한테 선전포고라도 하려고 찾아왔나?"

위대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력이 근본이 돼야 하는 난세의 특성상 그녀도 벌서 익스퍼드의 경지에 도달한 기사였다.

생긴거랑 평소 행실이 워낙 날라리 같아서 그렇지 카리스마도 뛰어난 이였기 때문에 그 눈빛은 프레스티아가 처음 나를 압박했을 때의 시선과 비교해도 그렇게 꿀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많이 성장했거든.'

일부러 상대를 쫄게 하려는 눈빛으로는 쫄지 않는다.

진심으로 화가 나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이라면 상대가 기사인데 아무리 나라도 덜덜 떨면서 주저 앉을 자신이 있었다.

맹수에게 걸린 사람이 눈물흘리는 것이 죄가 아닌 만큼 기사의 앞에서 덜덜 떤다고 해도 내가 잘못한 것은아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활동 같은 거니까.

"진정하세요 히스토리아 백작공녀님."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흥이 식었다는 듯 눈빛을 풀었다.

이곳은 난세였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으며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고작 자신의 적과 친하다는 이유로 세력 하나와 관계를 아예 맺지 않겠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뱀의 혀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이용할 줄 아는 그녀가 별것도 아닌 선입견 때문에 나를 쫓아낸 다는 것은 라이넬이 갑자기 문과로 전향해서 대륙 최고의 지략가가 되는 수준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남자치구는 깡이 세구나. 일반적인 남자들이었다면 당장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역시 난세는 난세인가. 여자들끼리만 싸워도 좁아터진 군주판에 너나 아이작같은 이들까지 끼어들고 있어... 아이작도 나름 잘 생긴 편이라 싸울 때 눈요기는 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네."

"남자의 몸으로 여자들과 싸워야 하는 저는 어떻겠습니까."

"거기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지. 내가 알고 싶은 건 네가 왜 여기에 찾아왔느냐야. 그냥 서부의 큼지막한 세력이 제도에 찾아왔으니까 인사나 한 번 하러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너, 분명 꿍꿍이가 있지?"

무슨 당연한 말씀을, 그러면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까지 찾아왔겠어?

전생 초기라면 게임 캐릭터의 실물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왔을 수도 있겠지만 이젠 아니다.

애초에 난세랑 여기랑은 차이가 많이 크기도 했고.

기본적인 외관은 비슷한데 키가 크고 몸이 좀 풍만한 편이고 체격도 크고 바스트나 힙도 좀 많이 올라갔으니까.

"꿍꿍이 없이 움직이는 군주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말 해봐, 나한테 이득이 될 것 같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지."

"별거 아닙니다. 제도에 큰일이 나면 헬링 가를 쳐 주십쇼."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의 흥미롭다는 듯 변했다.

"너, 프레스티아 헬링이랑 친한 사이 아니었어? 그런이의 본진을 치라니...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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