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프레스티아와의 하룻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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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프레스티아가 고작 재워달라는 말 한마디에 눈을 떤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내 앞에 있는 프레스티아는 명백하게 눈을 떨고 있었다.
심지어 이 정도 떨고 있으면 스스로 눈치채고 표정을 정돈할 법도 한데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떨리는 동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프레스티아의 귀여운 모습에 속으로 '프레스티아 최고!' 를 7번쯤 외친 다음에야 떨리는 눈빛이 진정되었는데 이마저도 완전히 진정된 것이 아니고 누가봐도 억지로 진정한 것마냥 아직도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허... 재워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억지로 목소리를 깔고 말해도 당혹감은 숨겨지지 않았고 분노로 그 모습을 감추려고 해봐도 나한테는 다 보였다.
"제가 당장 잘 곳이 없어서요. 헬링님 저택에는 빈방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저 재워주세요. 저희가 남도 아니잖아요?"
프레스티아가 마른 기침을 내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남이 아니면 무슨 관계냐는 소리냐!"
아무래도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는 걸 염두해 두고 소리를 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걸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다.
"저를 영입하려고 시도하셨잖아요? 유망주와 군주라는 관계가 있는데 어떻게 남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내 영입을 네가 거절했다는 걸 생각한다면 확실히 평범한 남은 아니군. 원수까지는 안되더라도 사이가 나쁜 사이 정도는 될 수 있겠어."
괜히 혀를 늘인것일까?
대화가 길어지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프레스티아의 말이 점점 차분해져갔다.
귀여운 프레스티아의 모습을 더 보고싶긴 했지만 이미 제 정신을 차린 프레스티아를 다시 당황에 빠뜨리기 위해선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게분명했기 때문에 일단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밤은 기니까 말이야.'
"그래서, 재워줄거에요? 아니면 말거에요."
"아주 당돌하군."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주 당돌했다.
지금까지 그녀랑 대화할 때의 상당수는 아무리 똘기를 보여줘도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척 했지만 이번에는 말투만 존댓말이지 실제로는 거의 예의를 차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네가 우리집에서 잔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다. 세력대 세력으로서도 그렇고 남자와 여자사이로서도 그렇지. 그런데 왜 너는 우리 저택에서 자려고 하는 것이지."
잘 알면서 물어보시네.
"헬링님한테 위협을 당하는 거라면 상관 없어요."
"뭐?"
"물론 아무리 위협하셔도 세력 대 세력간의 싸움에선 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남자대 여자로 덤비시면..."
일부로 말을 흐르니 프레스티아의 얼굴이 아주 새빨게졌다.
선천적으로 남성을 깔보는 성격으로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적나라한 도발은 처음 받아 본 것이겠지.
"아무튼, 재워줄건지 말건지,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안된다고 하면 바로 돌아갈테니까요."
프레스티아가 굉장히 고민하듯 심각한 표정으로 보냈다.
누가보면 군주의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그녀가 사실 한 명의 여자로서 남자와 진도를 더 나갈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아마 그녀의 갭모에 탓에 어마어마한 귀여움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
당장 나 또한 실시간으로 그녀에 대한 귀여움 센서를 가동시키고 있는 중이고.
'아마 고민이 많이 될거야.'
저번에 밀당 한 번 하다가 프레스티아가 이상한쪽으로 각성을 했는지 나에게 말을 거의 걸어오지 않던 때가 있었다.
아직 사귀지도 않은 두 남녀가 밀당하다가 서로 밀게 되어서 발생한 사건이었는데 그 일이 다 끝나갈 무렵에 내가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제국을 돌아다니는 상행을 다녔으니 당연히 우리는 그 동안 만날 기회도 없었고 편지도 하나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나를 완벽히 지배하기 위해 나와의 만남을 피했던 프레스티아라고 해도 더 이상 참기는 힘든 상황일 것이다.
굳이 성적인 이야기로 가지 않더라도 나와의 대화 자체가 그리웠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제가 제도에 막 돌아온 날이에요. 어디에 제대로 기록될 일도 없고 누군가가 오늘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을 알 수도 없죠."
"네 수하들과 내 수하들은 다 알고 있을텐데?"
"수하들은 군주와 한 몸이죠. 그들은 남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까지 말하는 데도 고민 하는 기색이 보이자 한숨을 푹 쉬면서 프레스티아를 올려다 봤다.
남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여자가 그것도 못해줘? 라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효과는 대단했다.
프레스티아가 자신의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인것이다.
"알겠다. 오늘은 우리 저택에서 자고 가도록. 그래도 과거에 인연이 있던 자인데 제대로 된 침실도 구하지 못하고 밖에서 자게 하는 것도 영 좋은 꼴은 아니니까."
그렇게 짧은 신경전 끝에 프레스티아의 집에서 묶는 것이 허가되었다.
"수하들을 물릴 테니 너도 같이 나갔다가 따로 들어오도록."
"왜요 수하들한테 저랑 같이 잤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으세요?"
"쓸 데 없는 소문은 안 나는 것이 좋다."
그녀가 이미 한 번 배려해 줬으니 나도 한 번 배려해 주기로 했다.
어떤 관계든 그 관계가 오래 가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했으니까.
"알았어요."
"따라오거라."
그녀의 말에 따라 그녀들의 수하들과 함께 그녀의 저택을 나섰다가 20분 쯤 뒤에 다시 들어갔다.
오래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불안감에 차 있는 프레스티아를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프레스티아는 이미 샤워까지 마치고 아주 평안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왔나?"
"네, 왔어요."
목욕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오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1학년 때도 그리 작지 않았는데 2학년이 시작하기 직전이 된 지금시점에서는 작년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목욕가운 사이로 들어나는 그녀의 몸은 건강미가 가득했고 풍만하면서도 선이 명확한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샤워부터 하고 올 텐가?"
"네, 역시 샤워를 해야 본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직 네 몸을 탐할 생각이 없다."
"저도 미리 말씀해드리겠지만 아직 프레스티아님의 몸을 탐할 생각이없어요."
감히 남자가 여자, 심지어 프레스티아의 몸을 탐하고 말고를 논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는지 프레스티아가 허,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씻고 오겠습니다."
내 목욕은 정말 짧게 끝냈다.
사실상 샤워랑 다름이 없는 빠른 속도였는데 혹시나 냄새가 날 까봐 마법으로 냄새까지 완벽히 없앤 후 내 사이즈에 맞는 목욕가운이 없어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입고 왔던 옷을 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빨리 씻었군. 남자들은 목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프레스티아님이 기다리신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내 꿀발린 말에 프레스티아가 하아, 하고 한숨을 한 번 쉬고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하인들은 없나요?"
"오늘은 전부 집으로 보냈다. 어차피 저녁도 먹었고 청소도 완료되었으니 일찍 퇴근시킨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어. 누누히 말했지만 쓸데 없는 소문이 퍼질 여지는 최대한 남기지 않는 게 좋으니 말이야. 네가 황녀의 총애를 받지 않았다면 나도 좀 더 과감해 졌겠지만 너는 이미 황녀의 관심을 받는 몸 아닌가 쓸 데 없이 구설수에 오르긴 싫다."
"알았어요."
천천히 걸어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바쁘게 지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아서 조사하도록, 나는 네 정보력 이상의 정보를 너에게 알려줄 생각이 없어."
"제 정보력 정도는 이미 파악하시지 않으셨나요? 헬링님이라면 제 정보력이 허락하는 수준의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내가 왜 너를 위해 그런 수고를 보내야 하지?"
본 대화에 들어가기 전의 워밍업을 진행했다.
아무리 프레스티아라고 하더라도 시작부터 너무 공격적으로 들어가면 힘들어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해서 처음에는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한 건데 의외로 프레스티아가 나에게 먼저 공격을 걸어왔다.
"제도로 오자마자 나에게로 찾아온 걸 보면 어지간히 내가 보고 싶었나보군."
그녀의 말에는 네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라는 귀여운 감정이 묻어나는 듯 했다.
'조금 유치한 말싸움이긴 하지만 어울려 줄까?'
"그러는 헬링님이 저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편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면 돌아갈 텐가?"
그렇게 유치뽕짝한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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