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프레스티아와의 하룻밤1
* * *
프로트라인을 끝으로 기나긴 상행도 거의 마무리 됐다.
제도로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제도로 향한길은 그냥 지나가면서 상단으로서 거래나 조금 할 뿐 당장 친해져야 할 세력이나 침을 발라놔야 할 인재들은 없었다.
때문에 안나는 바쁠 수 있어도 나는 모든 일이 다 끝난 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야, 진짜 오래 돌아다녔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돌아다녔는데 벌써 방학도 막바지네..."
"아직 2주 남긴 했지만... 제도에 도착하면 진짜 막바지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겠지."
그래도 이번 방학은 굉장히 알차게 잘 보냈다.
만난 사람들도 많고 등용한 인재도 하나 있고 침발라 놓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 다시 아카데미 생활을 즐길때인가?'
물론 2학년의 아카데미 생활은 결코 1학년 때 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온건하게 지나갔던 지난 날들과는 다르게 아주 피터지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북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지 않았어?"
"한달전쯤에 소문이 확 퍼졌었는데 지금은 또 조용히 있나봐. 군량이랑 병사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그냥 협박용으로 근거없는 소문이 퍼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직 확실시 된 정보는 없어."
"폭풍 전야로군요."
라일라의 말이 맞았다.
지금 당장 북부에서 별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이작이 그만큼 관리를 잘하면서 제도를 공격할 날을 고대하고있는 거니까.
'아마 난세랑은 느낌이 좀 다르겠지.'
벌써부터 매력 잠재력 100짜리 참모가 추가되었으니 그 공세의 수준은 난세랑은 차원을 달리 할 것이다.
'어차피 싸우는 건 내가 아니야.'
우리 프레스티아님이 알아서 막아주실 테니 나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
제도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는 길에 있는 마을들에 들려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 보다는 제도에 조금이라도 더 먼저 도착해서 정산을 마치고 상단을 성장시키는 것이 더 이득일 거라는 안나의 주장때문이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제도에 빨리 도착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었기 때문에 거부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라일라 너는 제도에서 어떻게 살거냐? 집도 없잖아."
"주군이 알아서 집을 구해주지 않을까?"
"쟤도 자기 집 없어서 기숙사에 사는 데 네 집을 어떻게 구해주냐? 그냥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 거 어때?"
"어머 시에린, 너 제도에 별장도 있었어? 남작이라고 빼는 거 보고 동질감을 느꼈는데... 그렇게 부자였다니."
"별장이 아니라 집이거든! 나는 미네타랑은 다르게 중앙쪽에 살고 있는 귀족이라고!"
"근데 너희 집이 미네타 별장보다 작잖아."
라이넬의 팩폭에 시에린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가 바로 다시 일어났다.
"후우... 그건 어쩔 수 없잖아. 가문의 크기 자체가 다른데... 그리고 그러는 너는 플레아 처럼 제도에 집도 없어서 기숙사에서 살잖아."
"나는 평민이니까."
라이넬이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말하자 시에린이 달리 할말이 없었는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래서, 저는 어디서 자면 되는 겁니까?"
"우리집에서 자. 미네타 집이 살기 더 좋긴 할텐데 거긴 쟤네 언니가 같이 살거든."
"너희 집엔 아예 모든 가족들이 다 있을 거 아니야."
"쟤네 언니가 속해있는 세력이 우리세력이랑... 좀 관계가 이상하거든, 그래서 그래."
"흐음... 알았어. 그렇게 끌리진 않지만, 따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억지를 부릴 수도 없지."
그렇게 라일라는 시에린의 집에서 지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아이데스 상단 건물에 들려서 정산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가야 했는데 피차 집이 없는 건 라일라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아직 개학까지는 1주일이 넘게 남아있었으니까.
이번에야 말로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나 싶었다.
시에린의 집에 라일라가 들어가는 와중에 나까지 들어가면 분명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안나가 나한테 온 편지라면서 분홍색편지 봉투를 내밀었는데 나는 거기서 프레스티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진짜로 프레스티아의 냄새가 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시점에서 내 위치를 특정짓지 못하고 아이데스 상단에 편지를 꽃아 넣을 사람이 그녀 정도 밖에 없다는 것 또한 한 몫했다.
'그건 아닌가?'
청기사단의 단장도 상황에 따라서 나에게 편지를 보낼 법 했고 당장 황녀도 나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어서 편지 정도 남기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결국 누구짓인지는 모른다는 거네.'
그건 편지를 읽어보면 알게될 일, 바로 편지지를 개봉해서 조심히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Dear. 플레아 아이데스
로 시작하는 내용을 읽자마자 나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글씨체 부터 티가 났으니까.
'프레스티아님!!'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는 마음에 너무나도 기뻐서 속으로는 공중제비를 3바퀴 도는 수준이었지만 안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3단 공중제비를 돌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네가 전국으로 상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너는 아마 단지 상행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겠지만 네가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 전 제도를 돌아다니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대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별것이 아니다.
그냥... 오래 못보기도 했고 나름 가까운 관계였는데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편지를 읽었다면 내 저택에 한 번 들르는 것이 어떤가 싶어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중략)
프레스티아의 말투는 정말 귀여웠다.
흔히 츤데레라고 불리는 사상이 그녀의 편지안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 절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세력대 세력으로서이야기 할 것도 있고 너를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편지의 반 이상을 차지했는 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말을 빙빙 돌리고 있을 뿐이지 나, 너 보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안나야.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편지의 주인에게 다녀오시려는 건가요?"
"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한 번 만나자고 하는 데 굳이 피할 필요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안오는 것 같으면 그냥 편하게 자 내가 알아서 여관구해서 자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안나를 뒤로하고 프레스티아가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굳이 오늘 당장 찾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황녀의 눈길을 피할 가장 좋은 날이 오늘이었기 때문에 굳이 미룰 필요도 없었고 미뤘을 때의 효용도 낮았다.
'오늘은 우리가 막 도착한 날이니 정리할 것도 많고 해야할 것도 많았다는 이유로 알리바이를 설정할 수 있으니까."
프레스티아의 저택으로 가니 마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밤이 늦은 시간도 아니고 한적한 오후에 불과했기 때문에 프레스티아의 수하들이 그녀의 수련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프레스티아또한 수련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아직 나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아주 평안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떻게 나를 알리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벨리아가 나를 알아보고 뜨악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찰졌는지 나름 멀리 떨어져 있는 나한테 까지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더니 바로 움직여서 프레스티아에게로 갔는데 프레스티아또한 얼굴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나에게로 걸어왔다.
"오랜만입니다. 플레아님."
그녀의 정중한 말투에 뇌 정지가 왔지만 곧 주변에 그녀의 수하들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본 모습은 나와 그녀 단 둘이 있을 때나 들어내는 것이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로 들어내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곧 나와 그녀 둘만이 있는 자리를 만들 것이고 그 때 그녀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실망한 기색을 표출하지 않고 그녀와 이야기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헬링님."
"이런 모습으로 뵈어 정말 죄송하군요."
그녀의 몸에는 땀이 뚝뚝 흐르고 있었고 옷에는 흙먼지 들이 가득 묻어 있었다.
확실히 손님을 맡이하기엔 적당한 차림이 아니었지만 내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불평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
그녀의 말이 중간에 끊기고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뽀송해 지고 옷에 묻은 흙먼지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하이네스가 엄지를 척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큼큼... 따라오십시오."
내 생각대로 그녀는 나를 데리고 둘만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바로 가식을 풀고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이군. 편지를 읽고 바로 찾아왔나보지?"
"제가 잘 곳이 없어서 말이에요."
프레스티아의 표정에 드문 의문이 새겨졌다.
"재워주세요."
내가 그리 말하자놀랍게도 프레스티아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