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77화 (177/312)

〈 177화 〉 프로트라인­2

* * *

"스승님!"

그녀가 등장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한 번에 깨졌다.

프로트라인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스승을 반겼고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를 표했다.

그녀는 위대한 기사였으니까.

같은 황실에 충성하는 입장으로서 이 정도 예의는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었다.

"이 분들은..."

나마흐의 시선이 우리를 훑다가 내 앞에서 딱 멈춰섰다.

그녀와 나는 구면이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이 없어도 그녀는 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꼬마 영웅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위대한 기사님."

"덕분에 제자를 만나게 되어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아이데스님의 말씀이 없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제대로 된 제자를 찾기 위해서 제국을 떠돌아다녔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두 분은 만나게 되었을 겁니다. 그게 운명이니까요."

말장난 같은 운명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두 사람은 사제의 연을 맺게 되니까.

나는 이 과정에 손을 얹었을 뿐이고.

'하지만 생색은 또 제대로 낼 수 있지.'

"운명이라... 확실히 저 년이 제 마음에 쏙 드는 놈이긴 합니다. 무재도 뛰어나고 황실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해요. 주변에 제대로된 인재만 있다면 훨훨 날아오를 게 분명한데, 아직 제대로 된 인재를 구하지 못해 고민입니다."

그녀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당장 그녀의 휘하에 인재가 아무도 없다고 해도 황녀의 지원만 받으면 넓기만한 영지에서 그녀의 수하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몰려올 것이니 그들 중 뛰어난 자들을 골라서 배치하면 세력을 적당하게 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은 아직 사제의 연을 맺지 않으십니까? 외부에는 아직 사제의 연을 맺지 않았다고 그렇게 공표하시더니 두 분이끼리는 사실상 스승과 제자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말이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사제의 연으로 끈끈히 이어진 사인데 이 년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차일피일 미루지 뭡니까. 하나의 세력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좋은 타이밍을 잡고자 하는 제자년의 생각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질질 끄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아이데스님이 오시면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데스님이 저희 성에 방문하시면 공식적으로 저와 스승님의 관계를 공표하려고 했습니다."

왜 굳이?

딱히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해서 특별하게 이득 될 것도 없는데?

우리가 거대한 상단을 지니고 있었다면 상단내의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서 프로트라인과 나마흐가 사제관계가 됐다는 소식을 전국에 알릴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만큼 큰 상단도 아니었고 애초에 프로트라인이 나마흐의 정식적인 제자가 된다면 황녀에게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사실 시기를 재지 않고 그냥 바로 알리는 게 정치적으로 가장 옳은 행동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인재가 없는 모양인데?'

시에린 급이 아니라 미네타 정도의 행정력을 가진 인재만 있었어도 아마 진작에 둘의 사제 관계를 선포했을 텐데 그런 인재 하나 없어서 일이 이렇게 늦어진 듯 보였다.

어쩌면 우리와 준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내가 제국을 돌며 상행을 하다가 프로트라인을 들릴 것이라 하니 굳이 우리를 위해서 일을 미룬 걸 수도 있고.

"최대한 빨리 공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마 프로트라인님이 나마흐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제대로 퍼지게 되면 황녀님께서 많은 지원을 해 주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왜 이제까지 말씀하시지 않고 시간을 끄셨는지가 의문인 수준입니다."

"네?"

"내가 말했지 않느냐. 이런 일은 최대한 빨리 말하는 게 좋다고. 괜히 시간만 끌다가 손해만 본 셈이 되지 않았느냐."

"나마흐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이는 프로트라인님의 휘하에 행정인력이 적어서 생긴 문제이니 황녀님의 지원으로 이름값을 올리신 후 인재를 등용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 습니다."

시간을 끌고 있던 자신의 판단이 악수라는 현실을 마주해서 일까? 프로트라인이 축처진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제자야. 지금부터라도 잘 활동하면 이번에 본 손해 정도는 충분히 매꿀 수 있을 게다. 나 또한 열심히 도와줄테니 기운 좀 차려라. 손님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프로트라인이 다시 굳센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왕 결정한 거 빠르게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당장 성에 나가서 사람들을 모으거라 약식으로나마 우리가 사제의 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 소문은 금방 퍼지겠지."

"저희도 일단 발길 닿는 모든 곳에 나마흐님과 프로트라인님의 사제의 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다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데스님."

나마흐의 말대로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둘은 당장 저택밖으로 나가서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둘이서 사제의 관계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렸다.

저렇게 말해두면 주변에 있는 정보 길드나 상인들에 의해서 정보는 빠르게 퍼질 것임으로 황녀한테까지 이 소리가 들어갈 때까지 3일도 채 안 걸릴 것이 분명했다.

'떡상이 3일... 정확히는 황녀가 편지를 쓰고 보내는 데 까지 5일 정도... 그 쯤 뒤에 떡상하는 코인이라.'

나락 갈 일도 없는 코인이라면 마구 사두고 싶은 게 인지 상정 아니겠어?

문제는 딱히 살 방법이 없다는 거지.

이미 우리 둘의 관계는 충분히 좋으며 여기서 더 선물을 준다고 해도 프로트라인의 성격상 더 깊은 감사를 느끼진 않을 것이다.

아예 군사적이나 정치적인 도움을 주면 모를까 단순 선물 정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청십자가 연맹을 알려줄까?'

프로트라인은 중앙에 속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제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청십자가연맹의 모토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소개시켜주는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사상과도 잘 맞을 테고 하나의 집단과 정치적인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는건 프로트라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고마운 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빚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프로트라인님, 혹시 독대를 청해도 될까요?"

그녀가 나마흐와 함께 일을 마치고 우리쪽으로 오자마자 빠꾸없이 물었다.

내 진지한 눈빛에 프로트라인이 당황한 것이 느껴졌지만 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다른 수하들은 장사나 하라고 보낸 후 프로트라인과 단 둘이서 그녀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무슨 일 때문에 저와 독대를 요청하신 겁니까?"

"프로트라인님은 청십자가 연맹이라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청십자가 연맹이요? 그런곳 들어본 적 없습니다. 뭐하는 곳입니까?"

"황제폐하와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모인 연맹입니다. 그 안에 속한 연맹원들은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 제도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죠."

청십자가 같은 친 황제 연합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걸까? 그녀의 눈이 마치 토끼처럼 크게 떠졌다.

"역시..."

그녀가 갑자기 뜸을 들이더니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 처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손수건이라도 건네줘야 하나 당황하고 있을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역시 제국에 충성하는 이가 저만 있던 게 아니었군요... 위대한 제국의 부흥을 위해... 황제폐하를 위해.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들이 있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아니 그게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울만한 일까지 되나?

내가 황실에게 바치는 충성은 가짜 충성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공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정도 이해는 됐기 때문에 그녀의 장단에 맞춰 줄 수는 있었다.

"맞습니다. 저희 제국에는 아직 저희 같은 사람들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데스님이 저한테 그 연맹을 말하셨다는 건... 저를 그곳에 영입하기 위해서 인가요?"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더욱 많은 눈물을 흘리며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이게 진짜 충성인가?'

나 같은 가짜 충성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에 당황할 수 밖에없었다.

"감사합니다. 아이데스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아니... 굳이 은혜까지야..."

"저는 지금까지 제국에 충성한다고 말만 번지르르했지 막상 실행에 옮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세력을 키워서 황실을 지원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제 안일한 생각을 박살내시고 제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 알려주셨는데 이게 어찌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라? 약발이 생각보다 세다?'

이렇게까지 극적인 반응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이 은혜, 제 가슴속에 품고 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닌데..."

"역시 아이데스님은 겸손하시군요."

나도 모르겠다.

지가 고맙다는 데 더 거부할 필요도 없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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