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몽환의 용2
* * *
"우리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자꾸나 아이야."
몽환의 용이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녀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몸이 나를 자극하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하고 떨렸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먹잇감이었다면 몸을 자극하는 부드러운 육체와 감미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겠지만 내가 누구냐.
나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맨정신으로 들어왔다 이말이야.
만약 내가 전생의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는데 난세에 들어오고 나서는 성욕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신을 잃고 상대를 덥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그래 즐거운 시간을 보내..."
몽환의 용이 말하다가 뚝! 하고 멈춰 섰다.
내 말투가 다른 먹잇감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너무나 멀쩡한 어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분명 취한 것 같았고 주변사람들도 취했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나를 불렀기 때문에 자신의 꿈속으로 상댈르 불러들이는 것 말고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몽환의 용이 내가 사실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아이야?"
"왜 불러. 몽환의 용대가리야?"
내가 실실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내 몸에서 손을 때고 물러갔다.
"왜 그래? 네가 부른 거잖아?"
"날 속였구나!"
"내가 언제 널 속였다고 그래? 나는 우리 수하들한테 장난을 치고 있던 것 뿐인걸."
몽환의 용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 정신이 아닌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처음 보는 용한테 자신의 몸을 넘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왜 날 속이고 이곳으로 들어왔지?"
"널 속인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뭐 ,그래도 이왕 들어온 김에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
"무엇이지?"
"우리, 거래를 하지 않을래?"
"거래?"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얼굴을 붉히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물어봤다.
어지간한 남성들도 전부 몽환의 용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을 테니 내가 자신에게 몸을 두고 거래라도 신청한 걸로 해석한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절대 그런게 아니였다.
물론 이곳에서 저년한테 몸을 팔아도 몸이 동정을 때는 건 아니지만 일단 심기체 이론에 따라서 동정이 아니게 된다.
나는 내 모든 동정을 프레스티아에게 넘길 거기 때문에 절대! 절대로 이곳에서 저 년한테 몸을 팔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거래를 할 것이냐.
"어려운 거래가 아니야. 그렇게 대단한 거래도 아니고."
"대단하지 않은 거래라면..."
몽환의 용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쩝쩝거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장에선 오랜만에 제 정신 박힌 남자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상황일 텐데 그 꿈이 갑자기 날아가 버렸으니 아쉬울 수 밖에 없겠지.
"그대가 치룰 대가도 작을 수 밖에 없겠군."
"대신 네가 내 놓을 대가도 작아질 거야."
"보물같은 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나는 그냥 남자의 몸을 취하고 싶을 뿐이야."
"그건 너무 대단한 거래잖아?"
피식 한 번 웃고는 소파를 만들어내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있는 곳에도 의자를 만들어주니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곳에 앉았다.
"그래서, 나와 무슨 거래를 하고 싶다는 거지?"
"네가 남자의 몸 다음으로 좋아하는 걸 줄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전설에 다 나온다 이말이야."
사실이다.
민가에 알려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항은 아니지만 신비한 환수 사전이라는 이름의 책을 읽어보면 몽환의 용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상세하게 적혀있다.
이는 인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위키같은 사이트에도 올라와 있기도 하고.
"너, 술이라면 아주 환장하잖아?"
"흐음, 내가 좋아하는 술은 상급의 술들이다. 질낮은 술을 다량 가져온다고 해서 너와 거래해줄 생각은 없어."
몽환의 용은 그 컨셉의 취하다에 맞춰져 있었다.
취한 이성을 데리고 오는 것도 그렇고 굳이 남자의 몸을 취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인 컨셉이 모두 취하다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술이었다.
그것도 도수가 아주아주 쎈,
물론 단순히 도수만 높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 풍미가 느껴져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그녀에게 줄 술을 가지고 왔다.
향이 안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술이긴 한데 아마 그녀라면 이것도 좋다고 받아 먹을 것이다.
"걱정마 아주 센 도수의 술로 준비했으니까. 충분히 마음에 들걸?"
"그래, 대가는 어떤 걸로 치르면 되지?"
"내가 원하는 사람의 꿈을 보여줘. 딱 세 번만."
그녀가 고심하듯 고개를 숙이더니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한가지 조건이 있다. 네가 가지고 온 술에 네 손가락 한 번만이라도 담가다오."
"알았어.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지."
계약이 성립됐다.
몽환의 용은 길들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유니콘에 비해서는 상당히 쓸모 있는 환수였다.
사람의 꿈을 훔쳐볼 수 있는데 꿈 속세계에서 조금만 조작을 가하면 내면세계의 이야기가 바로 흘러나오기 때문에 상대의 전략을 읽는데 매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술이 조금 아깝긴 해.'
이렇게 몽환의 용을 만날 줄 알았다면 도수는 좀 더 세고 가격은 더 약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술이라는 이름 값은 하는 애를 사놓을 걸 그랬는데 큰강을 지나가고 있던 것도 아니고 자연마법에 의해 기존 강이 커진 상태를 내가 예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네 술을 가져오겠다. 박스에 담겨있는 술들이지?"
"어. 맞아."
그녀가 잠시 사라지더니 술 20병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그 중 한 병은 깨져있었는 데 조금씩 흐르는 술도 없어진 것을 보아하니 깨진 병의 술이라고 먼저 다 마신 듯 보였다.
"크으, 맛이 좋은 술이군. 이 술에 아이의 손을 한 번씩 담궜다 가주도록."
"알았어."
어떻게든 내 몸을 취하고 싶다는거지?
내가 그녀 입장에선 쉬운 일에 불과한 꿈 탐방이 아니라 다른 보물들을 노렸다면 손이 아니라 내 몸에 술을 뿌리고 그 술을 타고 흐르는 술을 마시려고 했겠지만 다행이도 그녀에게 꿈 탐방은 매우 쉬운 일이라서 그렇게 값비싼 가치를 낼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19개의 술병에 손을 담궜다가 빼니 몽환의 용이 아쉬우면서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래, 필요할 때 부를 태니까 꼭 찾아와야 한다."
그녀가 만든 세계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의 모습은 점차 흐려졌고 내 몸은 천천히 없어졌다.
그렇게 내 몸이 완전히 사라진 뒤 눈을 떠 보니 내 수하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일어났어!"
"보물은 없는데... 설마..."
몽환의 용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남성을 백치로 만들어 돌려보낸다.
내가 백치가 된 건 아닐까 걱정하는 눈빛들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 상당히 볼만했다.
"헤에?"
멍청한 말투로 의문을 표해보니 애들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게 보였다.
특히 미네타와 시에린은 내가 이상한 말을 하자마자 바로 울기 시작했고 라이넬도 기사의 자존심으로 억지로 참고 있을 뿐이지 눈에서 눈물이 찔끔 찔끔흐르는 것이 다 보였다.
"차라리... 그냥 부탁을 들어주지... 왜..."
"다들 진정해 보지 않으실래요?"
다들 울음바다가 된 와중에 라일라만이 멀쩡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녀는 나와의 유대가 충분히 쌓여있지 않아서 내가 백치가 된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그럴리가 없지.'
"아이데스님.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세요."
이걸 들키네.
"이야. 어떻게 아셨어요?"
멍청한 표정을 지우고 벌떡일어서니 애들이 우는 자세 그대로 굳었다.
"제 주군이 고작 동정에 지성을 팔아버릴 위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보물없이 몸만 왔으니 아마 몽환의 용이 좋아하는 걸 주고 몸을 빼온 모양인데... 아까 가져온 술을 줬나요?"
"네, 술을 주고 한 가지 부탁을 했죠."
해맑은 표정으로 라일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른 가신들의 얼굴에 분노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렇게 착했던 안나의 얼굴에도 짜릿한 분노가 새겨지고 있었으니 그녀들이 나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마음에 와 닿았다.
"플레아!"
짝!!
시에린의 등짝스매시를 시작으로 내 몸에 수많은 손바닥들이 날아들었다.
내 몸이 약한 걸 고려햐여 충분히 힘 조절이 되어 있는 손바닥이었지만 그래도 벌을 겸해서 내려쳐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애들에게 용서를 빌면서도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마조히스트라서?
아니다. 그냥 애들한테 장난치는 게 재밌어서 그런거지 뭐.
그렇게 내 몸위로 쏟아지는 손바닥은 내가 웃다가 실신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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