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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74화 (174/312)

〈 174화 〉 몽환의 용­1

* * *

해안선을 따라서 쭉 이동했다.

작은 마을에 들릴 때는 적당히 장사만 하면서 지나갔고 성을 지날 때는 그 곳의 지배자와 친분을 쌓았다.

제이어 같은 놈이 특이 케이스지 평범한 성주들은 일단 친해지면 나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지성으로 인사하고 선물을 돌렸다.

서로 얼굴만 트는 정도의 친분이었지만 나중에 가면 소소하게 힘이 될 거다.

'하지만 아예 확실히 친해져야 하는 곳도 있지.'

그곳이 지금 내가 찾아가는 곳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금 찾아갈 수 없다는 거지만.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이해 좀 해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강이 범람해서 12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발이 묶여있으면 너희라고 해도 정신 안 나갈 것 같아?

빨리 건너가야 뭐라도 되는 데 강이 잠잠해 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지나간다고 하는 말을 꾹 참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군주의 심정을 너희가 아냐고!

"흐어어어... 언제까지 여기 서 있어야해..."

강이 범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댐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사용한 게 아닌이상 대부분의 범람은 자연현상에 의해서 일어난다.

폭우라도 내렸냐고?

지금 겨울이다 이친구야. 폭우로는 강이 범람하지만 폭설로는 강의 쉽게 범람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지금 하늘은 아주 쨍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강이 범람했냐고?

왜긴 왜야. 자연 마법때문이지.

난세를 플레이 하다보면 가끔 한두번씩 나타나는 자연 마법이 하필 지금 타이밍에 발생했다.

물론 언젠가는 맞아야 하는 거 지금 일찍 맞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액땜같은 거 안하고 지금도 자연마법이 안 벌어지고 나중에도 자연마법이 안 벌어지면 얼마나 좋아.

아무튼 갑작스러운 자연때문에 우리는 계곡 바로 앞에서 더 가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태에 봉착했다.

"이 정도면 슬슬 야영 준비해야겠는데요? 지금 당장 물이 원 상태로 돌아온다고 쳐도 못 지나가요. 시간이 늦어서."

안나의 말에 나는 절망했다.

12시간 동안 멘탈이 탈탈 털리면서 기다렸는데... 결국 못 지나간다고?

"미네타아... 자연마법 멈춰줄 수 없어?"

"플레아, 너도 알다시피 자연마법은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마법이야. 내가 아니라 8서클 쯤 되는 사람이 와도 못 막아. 물론 그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 거대한 홍수속에서 우리가 지나갈 길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걸."

"흐아앙. 미네타 나빠..."

"얘가 대체 왜 이래?"

미네타가 걱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뭐? 나는 멀쩡한데?

"평소였으면 이정도 지체 되는 건 그냥 잠이나 자겠다면서 마차에서 누워 있을 앤데 괜히 홍수나는 거 언제 그치나 보러 오고... 기다리다 지쳤다고 멘탈 터지고... 플레아 답지가 않아..."

시에린이 얇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뭐! 나는 멘탈 터지면 안돼?"

"안되는 건 아닌데 원래 네 멘탈이라면 이 정도 문제정도로는 기스도 안나야 하거든, 완전 튼튼한 멘탈이 고작 이런 일하나로 망가져 버린 것 처럼 구니까 걱정하는 거 아니야. 미네타 혹시 얘한테 이상한 마법이 걸린 건 아니지?"

"어. 플레아의 몸에서만 특별히 따로 관측되는 마법은 없어."

"그런데 왜 그런데..."

뭐! 나는 멀쩡하거든! 알지도 못하는 게 말이야!

"... 잠깐... 설마..."

시에린의 눈이 번뜩였다.

"안나, 우리가 지금 옮기는 물품 중에서 도수가 엄청 센 술이 하나 있지 않았어?"

"네, 한 상자 통째로 사서 옮기는 중이었죠?"

"그 술, 냄새 안나는 걸로 들었는데 맞아?"

"네, 도수에 비해서 향이 안나서 젠틀맨 킬러로 유명... 설마!"

"뭐? 왜 그렇게 봐?"

안나가 바로 뛰어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대략 3분 정도 되는 긴장이 흐르고 안나가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술병하나가 깨져 있었어요... 언제부터 깨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조금씩 계속 밖으로 센 모양이에요."

"그거, 나중에 팔거라고 안쪽에 보관해 놨지?"

마차기준으로 안쪽이면 마부와 가까운 쪽이었다.

'이것들 봐라? 내가 지금 술에 취했다는 거야?'

"나 안 취했거든! 이것들이 나를 뭘로 보고!"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화내자 애들이 나를 보고 한숨을 푹 쉬는 게 느껴졌다.

'아니, 그래도 내가 너희 군주인데 취급이 너무 박한 거 아니냐...'

그래도 이 정도면 술 취한 연기는 충분히 했다.

애들을 속이기 위해서 진짜로 정신줄을 놨더니 아직도 정신이 어질어질 했다.

'역시 미친 연기는 제 정신으로 못한다니까?'

"이게 도대체 왜 깨진거지? 분명 포장 잘 해놨는데..."

깨지긴 왜 깨졌겠니, 내가 깨졌지.

이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

무슨 일이 벌어졌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술이 약하더라도 향기도 안나는 술에 노출 된 것 만으로 취하겠냐고.'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고작 그 정도로 술에 취할 정도로 나약한 인간은 아니다.

아까 말했듯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내가 내 수하들을 속이고 술에 취한 척 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이 부근에서 자연마법이 일어나면 발생하는 현상이 또 있거든.'

그걸 위해서라도 내 정신이 완벽히 나가있는 척을 해야 한다.

나만 연기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되도 않는 연기를 하면서 까지 내 수하들을 속였다.

모두가 연기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술에 취한 척 실실대고 있으니 강물이 갑자기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정 방향이었지만 부분부분 에서 강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됐는 데 이것들이 모이니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바다도 아니고 강에서 이렇게 큰 소용돌이가 발생하다니... 아무리 자연 마법이라고 쳐도 괴상한 현상이었지만 놀랍게도 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소용돌이로 만들어진 물보라가 어느 정도 걷혔을 때 물 속에서 분홍색의 용같이 생긴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들어냈다.

그,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이름은 몽환의 용.

지구의 전설을 각색해서 만든 환수가 아니라 난세의 오리지널을 살려서 만들어낸 용이었다.

전설속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몽환의 용은 아름다운 이성을 좋아하며 대륙의 모든 강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정신이 몽롱한 이성을 데려다가 자신의 꿈속으로 초대하고 어떤 한가지 부탁을 한 뒤 그 부탁을 들어주면 상당한 선물과 함께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다면 백치로 만들어서 깨운다는 상당히 위협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환수였다.

유니콘이 처녀를 좋아하는 설정에서 동정을 좋아하는 설정으로 바뀐 것처럼 몽환의 용 또한 성별이 바뀐 건 아닐지 추측하고 있었는데 다행이 내 예상이 맞은 듯 여성체였던 모양이다.

'미끼짓은 잘했구만.'

몽환의 용은 단순히 예쁜 남자가 있는 강가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규모도 커야 했고 그 남자가 몽환적인 감각에 빠져 있어야 했다.

꿈에 취하든 아니면 마약에 취하든 양변에 로그를 취하든 아무튼 어떤 것에 취한 듯 붕 뜬 느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여야만 몽환의 용이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자연마법에 의해 강이 불어났고, 진짜로 취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술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모습을 주변사람들이 증인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몽환의 용이 나타난 것이다.

왜 예쁜남자라는 조건은 빼냐고?

풉, 알잖아.

"몽환의 용인가? 왜 하필 이 때..."

"하필 지금 나타난 게 아니야. 이런 상황이니까 나타난거지."

그녀들은 모두 몽환의 용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유명하니까 오리지널 환수라는 명칭으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제 곳 그 용이 나를 자신의 꿈속 세계로 끌고 갈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이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할지 아주 적나라하게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어릴 때 부터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듣는 이야기였으니까.

정신이 진짜로 몽롱해지고 잠이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애들이 자지 말라고 내 뺨을 치고 때리고 지랄을 해도 몰려오는 수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분명 몽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의 꿈 속으로 들어왔다.

즉,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 어떤 인물보다 상황이 다르다.

"잘왔단다 아이야."

몽환의 용은 여성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서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폴리모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그녀의 꿈속이었으니까.

뭐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니까.

'상대가 어딘가에 취한 상태로 들어온 연약한 남자. 라면 말이지.'

근데 이걸 어쩌나? 난 완전 멀쩡한 상탠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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