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너! 내 적이 되어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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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와서 제이어 제독이 있는 제이어 성에 도착했다.
난세가 시작되면 그의 계급보다는 제독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많이 불리기 때문에 까먹고 있었지만 그도 엄연히 자작이라는 신분이 있는 귀족이었다.
내가 이번에 제이어 성에서 할일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제이어 제독에게 최대한 싸가지가 없는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반감을 사는 것이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다 보니 황실에 대한 욕도 서슴치 않고 하는 그 였기 때문에 황실파를 표방하는 나로서는 그를 싫어할 명분도 충분했다.
두 번째는 그의 부하 중 한 명에게 이간계를 사용하는 것이다.
제이어의 성격은 매우 거칠다.
이는 바다 사람이라는 보너스를 얹어줘도 거친 편이었는데 때문에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거친 말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위대한 제독이라는 말에 걸맞게 그의 밑에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부하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는 제이어와 관계가 상당히 나쁘면서 재능은 또 엄청 뛰어난 이가 하나 있었다.
그와 제이어를 이간질 시키면 미래에 어지간하면 플레이어의 세력으로 온다.
늘 플레아로 시작하는 나의 특성상 바다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수군을 해상에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가 많이 발달한 편인 제국이지만 분명 물길을 통해 이동하는 게 더 편한 곳도 있고 뜬금 전략을 사용할 때에도 수상 전력은 큰 힘이 된다.
"이곳에서 장사하다가 갑자기 쫓겨날 확률이 있으니까 오늘은 장사하지 마."
"아무리 제이어 자작이 욕을 많이 먹는 인간이라지만 꼭 그와 척을 져야겠어?"
시에린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이어가 아무리 자작따리라고 해도 남부에서는 나름 이름이 있는 세력인 데다가 성격이 드러운 것으로 유명해서 한번 척을 지면 별의 별 지랄을 다한다는 걸 시에린도 알기 때문이었다.
"시에린, 너는 이쪽에서는 참 멍청하구나."
"뭐?"
참고로 방금 시에린 보고 멍청하다고 한 것은 내가 아니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우리 세력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뻐기고 있는 군략가 라일라씨께서 시에린을 보고 비웃으며 하신 말씀이시다.
"제이어는 기본적으로 가까이 하는 것 보다 멀리 하는 게 좋은 사람이야. 유능한 적보다는 무능한 아군이 더 위험다는 말 들어봤지? 제이어는 그것보다 더 심해, 무능한 게 아니라 능력적으로 동맹을 괴롭히고 착취할 줄 아는 인간이거든, 어차피 우리 세력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니 적으로 돌려도 부담이 없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모든 세력과 친해질 수 없어 시에린, 그건 네가 제일 잘 아는 사실이잖아."
"그렇지... 하아... 제이어 자작이랑 친해지면 해산물 좀 자주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제이어 자작은 동맹에게 자기 땅에서 나는 해산물을 선물로 줄만큼 착한 인간이 아니야. 꿈 깨렴."
살짝 무거워 졌던 분위기가 시에린의 농담덕분에 많이 희석됐다.
"그래서, 이번에도 바로 제이어한테 갈거야?"
"아니, 이번엔 그가 올때까지 기다릴거야."
내가 먼저 찾아가서 욕을 밖으면 평판이 얼마나 떨어지겠어.
은급 훈장을 지닌 영웅이 자기 영지에 찾아왔다는 생각에 간 좀 보기위해 우리에게 연락할 그의 말을 깡그리 씹어버리고 그가 화난 채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려야지.
'그리고 겸사겸사 인재도 챙기고.'
"그래서 오늘은 장사하지 말라고 했구나?"
"어, 우리가 찾아가는 경우는 그 분노가 바로 우리 상단의 피해로 연결되지 않겠지만 그가 찾아온 뒤에 화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때문에 우리 세력은 때 아닌 휴식을 맡이했다.
오후쯤에 제이어 성에 도착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관안에서만 조용히 있었는데 예상대로 제이어가 우리쪽에 먼저 병사를 보냈다.
병사를 보냈다고 해서 우리와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 만나보자는 의견을 건네려 온것이었기 때문에 서로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꺼져라. 불충한 인간과는 말 섞을 생각 없다."
내가 연락책의 역할로 우리가 지내고 있는 여관에 온 병사에게 욕을 하면서 쫓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인간이 또 아주 다혈질이거든.'
한 번 정도는 참고 다시 한 번 연락책을 보내겠지만 한 번 더 문전 박대 해버리면 자신이 직접 나설 확률이 높았다.
내가 어중이 떠중이였다면 자신의 병력을 사용해 음지에서 장난질을 쳤을 수도 있지만 나는 무려 은급 훈장을 가지고 있는 귀인이었으니까.
의도하지 않게 따서 참 잘 써 먹고 있는 은급 훈장이었다.
일은 내 예상과는 살짝 다르게 흘러갔다.
한 번 정도는 병사나 자신 휘하의 기사를 보내서 간을 볼 줄 알았던 제이어가 우리에게 직접 찾아온 것이다.
'당장 할 일이 없었나 본데?'
제이어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일단은 자작이다.
하나의 성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게 그인데 단순히 화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위치에 있는 이가 아니었다.
나에게 명백한 모욕을 받아야 일하던걸 멈추고 나에게 찾아올 명분이 생길텐데 제대로된 명분없이 찾아온 걸 보면 그가 지금은 꽤 여유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생김새는 전형적인 바다사나이였다.
나이가 아직 40살도 되지 않았는데 턱수염은 하얬고 머리도 듬성듬성 한걸 보면 더 늙어 보이기도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
초장부터 아주 띠거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와 친해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에 몸 전체에서 은은한 적의를 발산하며 그를 노려봤다.
"나를 불충한 인간이라 모욕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
가는 말이 곱다고 오는 말이 고운 건 아니지만 가는 말이 지랄 맞으면 오는 말은 같이 지랄을 맞게 되어 있었다.
그는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는데, 솔직히, 프레스티아의 평범한 시선이 훨씬 위압감 있었다.
프레스티아는 벌써 익스퍼드의 경지에 다다른 강자고 제이어는 위대한 제독이라 불릴 몸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전투인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시선의 살벌함이 훨씬 약한감이 있었다.
"내가 틀린 말 했소? 어찌 신하된 자로서 황실을 욕할 수가 있어."
"이미 기울어가는 황실이다. 내가 이리 욕을 해도 나를 건들지도 못하는 곳에게 왜 내가 충성을 다해야 하지?"
"당신 같은 인간 탓에 제국이 무너져 가는 것이다. 아무리 비틀거려도 황실은 황실,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에게 망발을 꺼내지 마."
그와 나는 서로 살벌한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서로 격한 말이 오가긴 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육체적으로 건들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여긴 그의 영지라서 내가 먼저 공격했다간 감옥에 갈 확률이 있었다.
그도 황녀의 총애를 받는 나를 건드렸다가는 무슨 이상한일이 발생할 지 몰랐다.
서로가 서로를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망설임 없이 욕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욕을 하고 있다보니 주변의 수하들이 나서서 말렸다.
"말리지 마라!"
그러던 와중 제이어가 자신의 부하 중 한 명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는데 방금 날아간 그가 내가 이간질 시킬 인물 중 하나였다.
"쓸모 없는 것들!"
제이어가 화풀이로 그를 한 번 밟고는 나를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고는 사라졌다.
제이어가 아무리 무력이 약한 편이라고 해도 밟힌이 또한 몸이 특출나게 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맞은 부분을 부여잡고 잘 일어나지 못했다.
'나이스 찬스.'
설마 이렇게 까지 깔끔하게 일이 흘러갈지는 몰랐다.
그에게 걸어가서 그를 일으켜 주려던 찰나에 그는 주변에 제이어가 있는 지 없는지 훑어보다니 맞은 부분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실 하나도 아프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아요. 저 인간이 이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요."
'내가 기억하던 목소리랑은 살짝 다른데?'
살짝 톤이 높은 걸 보아하니 남녀역전이 일어나면서 목소리 톤도 살짝 변한 듯 보였다.
"저런 인간 밑에서 일하시는 거,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죠... 성격이 워낙 더러운 인간이라."
"당신,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제아 입니다."
응? 제아?
'제안 아니었나?'
아무래도 내가 잘못 외우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자주 오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요. 제아씨 언제까지 저 놈 밑에 있을..."
음산하게 말하려던 나를 라일라가 잡아끌었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더니 제아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데 소근소근 거려서 잘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나보다 훨씬 뛰어난 말빨로 그와 제이어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온화했던 그의 표정이 어느새 악귀같은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라일라, 그녀는 신인가?'
모략쪽에도 재능이 있던걸로 기억하는 데 이렇게 까지 직접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게 될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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