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69화 (169/312)

〈 169화 〉 레베나 카르텔­2

* * *

레베나의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묵직한 담배향기가 쑥하고 밀려들어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담배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정작 이 정도로 독한 냄새는 전생에서도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담배계열의 향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사실상 처음 맡는 냄새라고 봐도 무방했다.

"콜록... 콜록..."

이럴 때 한 번 기침을 해줘야 포인트가 올라가기 때문에 가볍게 기침을 한 채 앞을 바라봤다.

집무실에 한 가운데 있는 탁자에 앉아있는 여자가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검은색 머리에 노란 눈빛을 하고 있는 여자였는데 그 눈빛이 뱀과같이 나에게 얽혀 들어왔다.

"담배 냄새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지? 겨우 이 정도 냄새로 기침하면 쓰나."

레나가 빈정되는 톤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원한건 레베나님과의 독대야. 제 3자는 꺼지시지?"

"뭣이..."

레나가 나를 때리려는 듯 손을 높게 들자마자 레베나가 한 쪽손을 가볍게 들었다.

기품있으면서도 위압감이 넘치는 모습에 레나는 덜커가고 굳었으며 레베나가 그 상태에서 손을 휘휘 젖자 레나가 바로 레베나에게 인사를 박은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후우우우."

그녀가 입안에 있는 담배 연기를 한 번 뱉어 내자 방 안에 차 있던 담배냄새가 더 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간접적으로 맡아도 이렇게 독하게 느껴지는 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다시 한번 곰방대를 자신의 입에 대고 쭉 빨아들였다.

"너는 누구지? 너 같은 인물을 우리 세력에 들인 기억은 없는데 말이야."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실이다.

실제로 레베나가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있을리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카르텔에 속해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카르텔에 속해 있는 부하들이 자기들이 영입한 인재들을 일일히 레베나에게 보고하지는 않으니까.

그녀가 모르는 카르텔원이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님 카르텔 원이에요. 라고 하면 안되지.'

거래의 시작은 서로 대등한 관계 이상에 올라서서 부터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녀의 카르텔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 접근해 버리면 그녀가 나를 제대로 대우해 줄리가 없었다.

"제도에서 온 영웅이라고 하면 믿겠어?"

"제도의 영웅이라..."

레베나가 낮은 눈초리를 나를 바라봤다.

"후드 좀 벗어보시지. 설마 정체를 가리고 나랑 이야기 할 건 아니잖아?"

그녀를 상대로는 어차피 정체를 까발릴 생각이었기때문에 후드를 벗었다.

가면까지 벗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얼굴을 본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후드를 까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

카라 근처에 박혀있는 은빛 청십자가 훈장이었다.

"이게 누구야. 예전에 꼬마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제도에서 유명하셨던 분 아니야."

나를 보고 실실 쪼개던 레베나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었다.

"그런 인간이 여기엔 도대체 무슨 일이지?"

"거래를 하러 왔어."

"거래?"

레베나의 표정이 기가차다는 듯 변했다.

그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나는 제국 단위에서 보면 아주 작은 세력에 불과하고 레베나 카르텔은 그래도 중견이라는 이름을 붙을 정도는 되는 세력이었으니까.

하꼬가 먼저와서 기성 세력에게 거래를 하자고 하니 기가 찬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무슨 거래인데? 네 몸이라도 팔게? 보수는 두둑히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내 몸을 왜 팔아. 당신이 잘 모르나 본대 내 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려면 레베나 카르텔 전부를 바쳐도 안될걸?"

무려 매력 98을 찍은 외모의 몸이란 말이야.

심지어 동정이라는 걸 감안하면 내 몸의 가치는 레베나 카르텔 전체보다 높았다.

우리 세력이 레베나 카르텔보다 낮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내 몸 하나가 우리 세력 하나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고.

"천하제일미라고 띄워주니 우리가 아주 우습나 보군?"

레베나가 내 쪽으로 담배연기를 내 뱉었다.

고의성이 다분히 느껴졌지만 이번엔 기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는 귀엽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레베나를 내려다 봤다.

키는 내가 더 작지만 그녀는 앉아있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내려다 보는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아무튼, 당신이랑은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야. 아주 건전한 거래를 제안하러 왔지."

"건전한 제안?"

"그래, 어린이들 끼리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주 건전한 거래 말이야."

"무슨 이야기인지 일단 들어나 보지. 앞에 앉아봐."

자리를 옮겨서 그녀가 가르킨 소파위에 앉았다.

서 있을 땐 내가 더 컸는 데 같이 앉은 상태가 되니 시선의 높이 차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제안을 하려고 우리 꼬마 영웅님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을까?"

"너희에게 제안을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야. 그냥 지나가던 길에 너희 카르텔이 있길래 찾아온 것 뿐이지."

"그래 그렇다고 치고, 결국 무슨 제안을 하러 온 거지?"

레베나가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같은 바지사장과는 다르게 레베나는 카르텔의 실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아주 간단한 거래야. 우리가 너희한테 도움을 한 번 주고, 너희가 우리한테 한 번 도움을 주면 되는 거래야."

중요한 내용을 모조리 빼고 말하는 나의 화법에 레베나가 짜증이 난듯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애들이나 할 것 같은 거래군. 네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것이며, 그 대가로 우리는 너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지?"

"조금 있으면 난세가 찾아올 거야. 그 정도는 아무리 지방의 카르텔이라고 해도 쉽게 알 수 있겠지?"

제국은 망한다.

이것은 절대 틀리지 않을 사실이다.

이미 온 제국이 삐걱거리고 있다.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국이 산산조각 날 것 같다는 불안감은 제국에 세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난세가 찾아온 이후 분열된 제국 속에서 너희 카르텔이 제대로된 세력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뭐?"

"너희 카르텔이 아무리 대단해도 결국 에리슈 성의 음지에 존재하는 한낯 카르텔일 뿐이잖아? 너희 세력을 제대로 된 세력의 이름을 걸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너무 꿈 같은 이야기군. 제국에 난세가 찾아온 다고 해도 에리슈 성이 몰락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너희가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너의 말을 어떻게 믿고 대가를 지불하라는 거지?"

"너희한테 먼저 대가를 지불하라고 한 적 없어. 대가는 너희가 제대로된 세력을 이룩한 다음에 받아갈거야."

"뭐?"

레베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너희한테 먼저 대가를 지불해 준다니까? 내 입장에선 선불이고, 너희 입장에선 후불이라고."

"그러니까 네 말은 일단 난세가 벌어지고 우리 세력을 도와준 다음에 그 다음에야 우리에게 대가를 받겠다는 거지?"

"맞아. 잘 해석했네."

"도대체 왜?"

"망할 게 분명한 제국을 황실의 이름아래에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패가 필요하거든."

아직 황실에 대한 충성이라는 좋은 효과를 버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황실의 이름아래 다시 제국을 세우겠다는 말을 덧 붙였다.

"아니, 우리의 뭘 믿고 먼저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는거지?"

'수많은 난세 경험 덕분이지.'

레베나가 원체 의리가 있는 존재라서 한 번 약속한 상황을 쉽게 져버리지 않는다.

나중에 레베나가 다른 카르텔과 싸울 때 끼어들어서 그녀를 도와주기만 하면 보상이 꽁으로 들어오는 데 이왕 온김에 안할 필요는 없잖아?

참고로 레베나가 다른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미리 계약을 맺어두지 않는다면 아주 적은 보상만 획득할 수 있었다.

굳이 시간을 들여서 레베나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지

"글쎄? 양심?"

어차피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레베나를 바라보니 레베나가 허... 하는 표정으로 굳었다.

"... 알았다. 일단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다만 우리가 치룰 대가는 네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서 달리 지급하겠다. 다 이긴 전쟁에서 숟가락만 올려놓은 것 가지고 제대로된 보상을 지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그건 너희의 양심에 맡길게."

나는 레베나의 양심을 믿는다.

아무리 남녀역전이 일어났어도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을 거잖아?

"그러면 네가 할 말은 끝났나?"

"어, 끝났는데?"

"그러면 너와 내가 독대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도록 하지."

레베나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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