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67화 (167/312)

〈 167화 〉 남부로!­2

* * *

남부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말 타고 직선으로 가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을 지도 몰랐겠지만 짐을 잔뜩 실은 마차를 타고 마을들을 들려가며 물건을 사고 파는 시간까지 추가로 소비되니 남부로 향하는 길이 더더욱 멀게 느껴졌다.

미네타의 합류로 속도가 늘어서 다행이지 미네타 마저 없었다면 이보다 1.5배는 더 걸릴 뻔했다.

'그래도 겨우 도착하긴 했네.'

남부의 끝 지점인 마티나 해안에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서부와 남부를 이루는 성까지는 올 수 있었다.

"드디어 남부에 도착했네요. 오늘 하루는 회식한 번 시원하게 하고 푹 쉴 겁니다."

우리가 에이슈 성, 그러니까 서부와 남부의 경계에 있는 성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였다.

변경백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미테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무려 5서클에 다다른 마법사를 마차속도나 올리는 데 쓰는 건 그녀를 무시하는 것 처럼 보일 지도 모르는 방법이었지만 성격 좋은 미네타가 먼저 제안해 줬기 때문에 고급인력을 사용한 속도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

'역시 미네타.. 갓갓. 칭송합니다.'

"그러면 저녁까지 각자 개인 시간을 가진 다음에 저녁에 만나서 회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용병분들은 제발 사고 치지 마세요."

"우리가 무슨 사고 뭉치들인줄 아슈? 다들 생각이 있는 아 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슈."

용병의 구수한 사투리에 웃음이 방하고 터졌다.

큰 여관에 방을 열개 넘개 빌려서 적당히 개인짐을 풀고 마차를 보관시킨 후 밖으로 나왔다.

다른 도시에 온 거라면 지금 시간에도 물건을 판매했겠지만 이곳은 동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곳인 만큼 메이저한 상단이 너무 많았다.

상단과 상단의 거래가 아닌 노점상 형식으로 운영했다간 다른 상단들에게 단단히 찍힐지 몰랐다.

'아직 다른 상단이랑 비빌 정도는 아니지...'

상단의 자금은 안나의 뛰어난 수완 덕에 도시를 거칠 때 마다 올라가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에이스와 통화 수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굵찍한 계약들도 많이 따 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가 옮긴 물건들은 전부 평민들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귀족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만한 물건을 구매해서 성주나 지방의 귀족들에게 팔아넘긴 경우도 상당히 많았었다.

'아예 새로운 상단체계를 잡는 다고 했었나?'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안나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니 만큼 실패하더라도 잘 실패하겠지.

회수할 수 있는 돈이 아예 없을 정도로 폭삭 망하지는 않을 거다.

"여기서 할 게 있으시다고 했죠?"

"어. 내가 혼자해야 하는 일이야."

"누누히 말하지만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너도 네 위치가 있으니까 최소한 라이넬은 데려가."

시에린이 엄근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라이넬은 없어도 돼. 섀도스탭이 있잖아."

"아... 걔가 있었구나?"

애가 존재감이 많이 없긴 하지. 모습을 보이는 게 신기한 일일 정도로 밖으로 나서지 않으니까.

"섀도스탭이라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거야. 그치?"

섀도스탭은 재능이 대단한 아이다.

라이넬 처럼 익스퍼드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97이라는 높은 무력 한계치에 걸맞게 벌써 무력이 30을 돌파했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암살자라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내 목숨을 구해줄 수 있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흐음... 알았어. 허락해 줄게. 갔다 와."

"오냐."

애들에게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고 에이슈 성의 구석을 향해서 이동했다.

에이슈 성은 상당히 규모가 있는 성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싶이 동부와 서부를 이어주는 교두보의 역할도 하고 있었기에 유동인구가 많아졌고 성의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중앙에만 집중이 되어 있었는데 도시에 방문한 사람이 굳이 가지 않는 구석쪽은 상당히 치안이 안좋았다.

수많은 카르텔들이 에이슈 성의 음지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에이슈 성의 성주에게도 매년 막대한 양의 재물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에 성주도 굳이 카르텔들을 없애지 않았다.

가면을 고쳐쓰고 로브를 꾹 눌러쓴 뒤 음지로 들어섰다.

본모습 그대로 들어왔다면 아무리 로브를 쓰고 있어도 겉으로 조금씩 들어나는 체형탓에 끈적한 시선을 받았겠지만 두툼한 로브에다가 체형을 숨길 수 있는 마법까지 걸어놨기 때문에 그냥 이상한 놈이 음지로 들어왔구나 하는 정도의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내가 에이슈 성에 들어오자마자 음지로 들어선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늘 그렇지만 인재를 모으기 위해서... 는 아니고 나중에 쓸 패나 하나 얻으려고 찾아왔다.

카르텔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이에게 복속될 수 있는 애들이 아니니까 내 밑에 들일 수는 없지만 나중에 에이슈 성이 멸망하고 카르텔이 작은 세력으로 발돋움 한 이후에 지금 쌓아놓을 것을 업보로 삼아서 좋게 사용할 수 있다.

'어디를 찾아가 봐야 하나...'

에이슈 성의 음지엔 상당히 많은 수의 카르텔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이라 불리는 두 개의 카르텔이 있었다.

한쪽은 베가스라는 남자가 지배하고 있는 카르텔이었고 한쪽은 레베나 라는 여자가 지배하고 있는 카르텔이었다.

난세라는 게임 특성상 둘 중 하나의 카르텔만 패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두 세력모두 일장 일단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상황에 맞춰서 어떤 카르텔을 건드릴 것인지 미리 생각해 놔야 했다.

베가스 카르텔은 전체적인 무력이 높다.

돈 보다는 힘을 쓰는 쪽이며 특히 베가스가 상대 카르텔의 수장인 레베나 보다 무력이 3 정도 높아서 음지에서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릴 때 더 수월하게 움직이는 감이 있었다.

반면 레베나 카르텔은 금력이 높았다.

음지는 베가스와 2등분해서 가지고 있지만 양지에 관여하고 있는 사업이 상당히 많았는데 덕분에 양지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레베나 쪽이 훨씬 유리했다.

'근데 당연히 레베나 카르텔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이곳이 난세의 세계였다면 고민을 좀 더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남녀역전이 된 세상이다.

베가스의 무력은 레베나에 비해 뒤쳐질 것이다.

각 카르텔에서 가장 강한 사람의 무력이 딸리는 순간부터 베가스 카르텔의 장점이었던 무력이 상당부분 약화된다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남녀역전이라는 건 남자들한테만 불리하단 말이지?'

망할 개발사가 남녀역전 모드라고 남자들은 매력을 상향시키고 무력을 컷 해버리고 여자들은 무력을 올려놨으니 이전에 비슷한 수준의 인재였다면 모조리 여자가 나은 수준에 도달해 버렸다.

매력 수치가 높다고 안 좋을 건 없지만 매력 수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건 군주 본인이었으니까.

수하가 매력이 높으면? 그것도 남녀역전 세계의 남자가 매력이 높으면?

글쎄? 다른 세력에 가서 몸팔고 오라는 명령정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을까?

가장 잘 사용해 봤자 에이스 처럼 얼굴마담으로 내 세워서 다른 세력과의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생각해 볼 이유가 없는 사안이지.'

베가스한테 높아진 매력을 통해서 뭔가를 기대할 건 아니잖아? 당연히 레베나 한테 가야지.

로브를 다시 눌러쓰고 음지를 천천히 걸었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십중십 전부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골목이었지만 게임속에서 수도 없이 지나가본 나는 대략적인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긴가?'

레베나 카르텔의 중심 건물 바로 앞으로 다가가니 두 명의 여성이 문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나 같이 연약한 남자가 들어가려고 해봤자 바로 제지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는 아주 멀쩡하게 걸어들어갔다.

"돌아가쇼. 여긴..."

'어디보자... 오늘 날짜가...'

"하늘은 높이 울며 땅은 낮게 진동하매 바람에 스치던 빗물은 밝은 광명을 불러오리라."

"들어오쇼."

여자들이 문에서 몸을 비켰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매일 바뀌는 레베나 카르텔의 암호였다.

적어도 20글자 이상으로 이루어진 암호들은 3일에 한 번씩 그 암호가바뀌는 데 내가 이 암호를 알고 있던 이유는 그렇게 대한한 건 아니지만 엄청난 것이었다.

'랜덤 시드에 의해 결정나는 게 아니라 늘 똑같은 흐름으로 암호를 채용하고 있어서 그냥 날짜 별로 외우면 되거든.'

내 머릿속엔 수백개에 달하는 20글자 짜리 문장들이 날짜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인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짓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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