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유니콘은 존재해!1
* * *
히히힝!!!
내가 일어났을 때는 사납게 몸부림 치는 유니콘을 막기 위해 용병단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플레아! 일어나!!"
그리고 명백하게 일어나 있는 내 얼굴 위로 시에린의 손이 날아들었는데 뺨을 톡하고 치는 감각에 잠이 더 깨긴 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유니콘 나타났어. 네가 막아봐."
만약 내가 1학기 때 유니콘을 여유롭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마 엄청 당황해서 덜덜 떨고 있을 것 같았지만 이미 한 번 무사히 유니콘을 막아냈다보니 엄청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에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떻게 아이데스씨가 유니콘을 막아?"
뒤쪽에서 당황에 가득찬 라일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빨리 안 막을거야? 이러다가 부상자 생기겠어."
"알았어. 빨리 갈게."
슬 일어나서 유니콘 쪽으로 걸어갔다.
길길이 날뛰며 나를 막으려던 라일라도 가만히 멈춰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 진정 좀 해봐라."
그래도 한 번 해봐서 익숙해 진걸까?
아니면 유니콘이 나를 찾아왔다는 확신이 생겨서 그런걸까.
저번에 유니콘을 만났을 때 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시선으로 유니콘을 대했다.
"너무 날뛰면 안 재워준다?"
히히잉...
유니콘은 내 말을 알아 들은 것 처럼 가만히 앉아서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옳지. 잘한다."
유니콘을 가볍게 만져주니 푸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누울 만한 곳을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내 무릎에 자신의 얼굴을 올리고 자고 싶은 마음이 역력하게 느껴졌지만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무료 봉사를 해줬던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일단 유니콘 스스로가 아쉬워서 나를 찾아온 거니 만큼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지.
"야 유니콘."
히히히힝
"너 돈 될만한 거 안 가지고 있냐?"
유니콘의 눈이 똥그랗게 뜨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라고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저번에는 그냥 얌전히 내 무릎을 내어줬지만 이번에도 그럴 순 없지.내 무릎을 쓰고 싶으면 합당한 대가를 내놓으라 이 말이야."
히히힝!!!
유니콘이 대가고 뭐고 한시라도 빨리 자고 싶다는 듯 크게 울었다.
"돈 되는 게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나중에 한 번 찾아와서 나 도와주기다콜?"
유니콘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좋아. 그럼 따라와."
나무에 기댄 뒤 자리에 앉으니 유니콘이 내 무릎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완벽히 잠든 듯 편안한 숨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내 수하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주변을 감쌌다.
정확히 말하면 라일라랑 안나는 빛의 속도에 준하는 속도로 내 앞으로 다가왔고 시에린과 미네타, 그리고 라이넬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내 앞에 섰다.
모르긴 몰라도 섀도스탭도 헐래벌떡 뛰어왔을 거다.
"저기... 이게 무슨 일이죠?"
고요한 정적속에서 처음 입을 연건 라일라였다.
그녀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멍한 표정에 처량함이 담기니 상당히 웃픈 얼굴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긴 유니콘 재워주고 있는 중이죠."
"아니, 유니콘이 대체 왜 아이데스씨 무릎에서 자고 있냐고요?"
"제 무릎이 마음에 들었나보죠."
"진짜 놀랐단말이에요..."
안나가 엉엉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
누구한테 빌기위해 꿇은 무릎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무릎이 접혀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걱정 안해도 돼 저번에도 유니콘을 재워준 적이 한 번 있었거든, 그 때도 멀쩡했으니까 지금도 멀쩡할거야."
내가 안전하다는 확답을 내리자 그제서야 둘의 표정이 안심으로 가득찼다.
"다른 분들은 아이데스씨가 안전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셔서 큰 반응을 안 보이셨던 거군요?"
"당연하지. 우리도 처음에 플레아가 겁없이 유니콘한테 다가갔을 땐 엄청 화냈다구?"
"맞아. 진짜 엄청 화냈었지."
얘네가 나한테 낸 화 중에서 거의 탑클래스에 들 정도로 심한 화였으니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얘네들도 할 때는 하는 애들이라는 걸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름 분위기가 풀려가고 있을 때 라일라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무슨 말?"
시에린이 천연덕 스럽게 라일라를 바라봤다.
"유니콘은 아름다운 동정에게만 자신의 머리를 맡긴다고..."
말을 흐리긴 했지만 그 말의 의도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이데스씨는..."
"그만! 더 말하지마! 넌 부끄럽지도 않냐?"
"부끄러운 거야? 아무리 성적인 이야기라지만 내가 외설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 읍! 읍읍!"
시에린이 라일라의 입을 콱 틀어 막아버렸다.
"날뛰는 군략가는 내가 처리할 게."
"우우우우웁!! 내... 내가 이상한 말했어? 그냥 궁금할 수도 있는 거잖아?"
시에린이 라일라를 꽉 잡으려 들긴 했지만 시에린 또한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었다.
"닥쳐! 라이넬! 얘 입 좀 틀어막아."
"나는 괜찮아."
이 세계에서는 남자가 동정인게 그렇게 흠이 되는 세계가 아니었다.
물론 어디가서 나 동정이에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닐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동정이라는 것이 놀림 거리가 되는 곳은 아니었다.
'심기체 모두가 동정인건 좀 짜증나긴 하지만...'
"부끄럽지 않아? 여자한테 동정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시에린이 나를 걱정해 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같은 데서 반장한테 너 처녀야? 라고 하는 금발 태닝 양아치를 떠올려 보자. 충분히 부끄러워할 것 같지?
시에린이 나를 걱정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진짜 괜찮다니까 왜 그래. 이제 이 이야기는 끝! 더 언급하지 마."
"... 알았어..."
내 동정이 수하들에게 공개됐다.
이는 뜻밖의 이득일 수도 있는 것이 내가 아직 다른 군주들한텡 몸을 파는 천박한 군주가 아니라는 인상을 제대로 심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대 여자 사이라서 못물어서 그렇지 시에린이 내가 황녀에게 동정을 빼앗긴 게 아닐지 의심하고 있는 게 어느 정도 눈에 들어왔으니까.
'황녀한테 동정 뺏겼으면 큰일 날 뻔했네.'
오랜만에 동정의 무릎을 배게삼아 자러 왔던 유니콘도 크게 화를 냈을 테고 시에린의 불편한 눈빛도 받아야 했을지 모르니까.
"근데 아이데스님은 더 이상 못 움직이시는거에요?"
어느정도 분위기가 진정되자 안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상단을 이끄는 주체다 보니 갑자기 유니콘에게 발목을 잡힌 점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인 것이겠지.
"못움직이지. 이런 놈을 들고 다닐 수도 없잖아."
"놈이 아니라 년일걸요?"
"어차피 인간도 아닌데 놈인지 년인지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떡하죠... 당장 움직여야 일정이 맞는데..."
안나가 초조한 듯 자기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가 곧바로 다시 땠다.
"일정을 좀 미뤄도 괜찮죠?"
"어. 괜찮아. 방학은 기니까."
이 세계엔 봄방학 따윈 없다.
애초에 종업식도 한 마당이니 2학년이 될 때까지는 아카데미에 갈 일이 없다.
따라서 일정 조금 미뤄지는 정도로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면 전 마차에 가서 일정 조율좀 하고 올게요,"
"가서 편하게 쉬어도 돼. 고생은 나만 하면 되는거고."
한 번 해 봤다고 요령이 붙었는지 이제는 무릎이덜 저리게 유니콘을 받치고 있을 수 있었다.
애들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고 싶진 않았는지 각자 자리에 돌아가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왕 멈춘김에 밥이라도 해 먹으려는 게 보였다.
유니콘을 깨우지 않기 위해 멀찍히서 식사를 하는 모습은 영 아니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유니콘 자는 데 방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애들이 돌아가면서 나한테 밥을 가져왔기 때문에 밥은 잘 먹을 수 있었다.
용병들도 유니콘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인지 이쪽을 계속 훑어보면서 지나갔는데 그런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언제쯤 일어날 것 같아요?"
"글쎄? 밤까지는 이러고 있을 것 같은데?"
주변소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편하게 자고 있는 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밤까지 안 깨어날것 같고 심하면 내일 새벽이나 오후까지 갈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밤이라... 안 불편하시겠어요?"
"어쩔 수 없잖아. 자연재해같은건데."
실제로 환수에 관련된 이벤트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자연재해 취급받는 게 보통이었다.
대처가 힘들고 발생률도 거의 랜덤이거든.
유니콘 정도는 전례가 있으니 완전 랜덤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고 언제 갈지도 모르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이대로 내일 아침까지 있어도 괜찮으니까.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푹 쉬어."
내가 그렇게 말해도 애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좋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