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세력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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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쓸 무기를 구한다니? 네가 개인 병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 데 말야."
라이트의 어투가 딱딱해졌다.
방금전까지 그렇게 친근하게 나를 맡아줬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된 말투였는데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편한 동생인 줄 알았던 내가 다짜고짜 무기를 팔라고 했으니 그만큼 경계하는 게 당연하지.
난세가 다가오는 지금 시점에서 병장기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도 제대로 된 병기가 없다면 잘 싸우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늘 새 무기를 보급해 주진 못해도 망가진 무기를 들고 싸우게 해서는 안된다.
군주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그래야 세력이 제대로 된 힘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세력을 이룰 생각이 없으면 굳이 나서서 구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기도 하지.'
사병이 없는 데 왜 병장기가 필요할까.
라이트와 리하트가 무기를 구하러 왔다는 나의 말에 나를 지킬 호위기사의 무기를 구하러 왔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 나는 황실에 충성하는 몸인데 그런 인간이 병장기를 찾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만약 내가 내 힘을 키워서 황실에게 도움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황실에 병장기를 요청하면 되지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병기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미리미리 구비해 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아."
"너는 황실에 충성하는 자가 아니었어? 황실에 충성하는 인간이 대체 왜 병사들이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충성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황실에 들어가서 사무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힘을 키워서 직접적으로 황녀님을 지원하는 게 훨씬 더 큰 힘이 돼."
라이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 변했구나?"
"세상을 깨달았거든."
반년전의 나는 라이트에게 말했다.
황실에 들어가서 썪어빠진 관료들을 갈아치우겠다고.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사회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아카데미생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못 들을 말 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반 년후, 나는 그 동안 이 세상이 얼마나 썪었는지 깨달은 척 하면서 외부에서 세력을 키우겠노라 말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인간의 본성과 목적은 바뀌지 않았지만 라이트가 보기엔 내가 성장해서 세력을 키울거라 다짐했다고 생각했겠지.
"그래, 잘 생각했어. 지금 시대에서 중요한 건 충성보다는 힘이지, 절대적인 충성보다는 강한 힘이 황실에 더 도움이 될 거야."
"맞아. 그래서 형한테 무기를 좀 구매하려고."
"우리한테 구매하는 것 보다 황실에서 받는 게 더 나을텐데? 네가 수만 단위의 병력을 이끌 것도 아니고 많아야 천명 단위일 텐데 황녀가 그 정도 지원을 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황실에서 지원받은 물건을 들고 공을 세우면 그걸 명분으로 내 공이 축소될테니까.'
중앙파 귀족들이 아드득 달려들어서 내 공을 깎아내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황실에 대한 내 충심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좋은 변명이 있었으니까.
"그럴 수는 없어. 아무리 황실이라도 지금 상황에서 천개에 달하는 병장기를 지급해주면 무리가 갈거야. 게다가 당장 달라고 하면 병사들이 없으니 안 준다고 할 게 뻔하고 나중에 병사들을 키웠을 때가 되면 지금보다 병장기의 가격이 훨씬 더 비싸져 있을 게 분명한데 그 정도면 황실에도 무리가 갈 가능성이 높아."
"충신 납셨구만."
그리 말하면서도 라이트가 상당히 풀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병사를 만드려는 이유가 결국 황실을 위해서라는 이유였기 때문에 안심한 것이겠지.
"그래서 정확히 몇개가 필요해?"
"기본적인 무장이 가능한 병장기 1000세트가 필요해."
"가격이 꽤 나갈텐데 괜찮겠어?"
"미안하지만 할부로 안될까?"
병사들한테착용시키는 병장기들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의 장비들은 아니다.
끽해야 가죽갑옷과 창, 그리고 단검 정도만 착용시키는 것 뿐이니까. 하지만 그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아무리 적어도 인당 40실버는 가볍게 넘어갈텐데 이는 400골드나 되는 큰 돈이다.
미네타의 꿀을 팔면서 자본이 생긴 아이데스 상단의 입장에서도 400골드 정도는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 큰 돈을 일시불로 지급하라고 하면 탄력이 붙기 시작하는 아이데스 상단의 돈줄이 팍하고 꺾이겠지.
"할부라..."
라이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풉 하고 웃었다.
"우리 사이에 할부는 무슨 할부야. 돈 같은 거 필요 없어."
라이트가 나를 씩 웃으며 쳐다봤다.
"돈을 안 받겠다고?"
"어, 그냥 네 마음에 나를 향한 빛하나 얹을 걸로도 충분해."
라이트는 아주 당당하게 웃었다.
변경백의 후계자인 그의 입장에서 400골드 정도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닐테니 저렇게 담담한 얼굴로 그냥 넘기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무슨 의도지?'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친분때문에 무기를 넘겨주겠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갈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도 나에게서 얻는 게 있다고 여기고 있을 테니 그만한 병장기를 지원해 주겠다고 한 것이겠지.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야지.'
여기서 괜히 돈을 주겠다고 하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갈 수가 있다. 현상황에선 라이트가 철저한 갑인 만큼 나중에 라이트가 이번에 공짜로 지급한 병장기들을 가지고 물고 넘어질 가능성을 남겨두더라도 지금은 받아야한다.
"고마워..."
벌떡 일어나서 라이트를 꼭 껴안았다.
남정네들끼리 껴안고 있는 모습이 썩좋진 않았지만 나도 라이트도 미소년에 가까운 인상이었으니 역겹지는 않았다.
"고마워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친구잖아."
라이트의 순수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 인간이 진짜 나를 친구라고 생해서 병장기를 지급해 준건지에 대해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다 들고갈 수는 있어? 너희 마차, 그렇게 커 보이진 않던데 말이야."
"괜찮아. 따로 챙겨갈만한 수단이 3일 정도 뒤면 도착할 거거든."
"그러면 그 동안은 계속 우리 영지에 머무른다는 뜻이지?"
"어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오랜만에 내 파벌애들 좀 불러볼까? 마이테스랑 필리엣이 널 많이 보고 싶어해."
"마음대로 해."
저번에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질게 분명했다.
내 세력의 완전체와 라이트 파벌의 완전체 끼리 만나는 자리였으니까.
세력과 세력간의 긴장감이 감돌겠지.
'그래도 라이트 형 세력이라 편해.'
프레스티아의 세력이랑 만날 때는 엄청 긴장하고 머리도 엄청 굴렸는데 리쿠르트 세력은 일단 우군이니까 훨씬 편한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겠지.
"근데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상단 운영한다면서 상단주가 여기있어도 멀쩡히 굴러가?"
"나는 바지 사장이거든, 실무 처리하는 애는 따로 있어."
"부럽네 내 휘하에는 상재가 있는애가 한 명도 없거든."
"없긴 뭘없어. 형이 못 찾는 거지. 설마 리쿠르트 백작력을 다 뒤져도 상재가 있는 사람 하나 안나오겠어?"
"그걸 찾기가 쉽냐..."
병장기를 무료로 제공해준 보답으로 정보나 좀 알려줄까?
"작은 마을위주로 찾아봐. 분명 있을 거야."
내가 아주 장담하는 어투로 말하자 라이트가 나를 지긋이 노려봤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 뭐, 한 번 정도는 대대적으로 조사를 하는 것도 좋겠네. 결국 영지를 운영하는 건 내정쪽 일이니까 지금처럼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안되겠지."
괜히 말했나. 그냥 내가 먹어도 괜찮았을 텐데...
'됐다 또 동선 손해 본다.'
어차피 저 형이 먹을 인재인데 줄건 주자고.
***
리쿠르트 백작령에서 장사를 한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마차의 3분의 2 정도 채울정도의 물품들은 거의 동나버렸고 애들도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띵가 띵가 놀고 있는 수준이 됐다.
원래는 이 정도상황이 되기 전에 물건을 사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만 이번엔 추가로 구입할 것들이있어서 남아있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편지로 연락 받길 오늘 안에 온다고 했는데 노을이 지도록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성문쪽에 멍하니 서서 길만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나가버릴 듯 아찔했다.
"안 오는 거 아니야?"
"오긴 오겠지."
호랑이도 제말 하면 온다는 말이 사실인 걸까?
저 멀리에서 인영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인영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속도를 높혔다.
"플레아!"
"미네타, 이게 얼마만이야."
나에게 다가오는 미네타를 꼭 껴안았다.
이로서 우리 세력의 중추가 전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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