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삼고초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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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을 진행하는 내내 내가 할만한 건 거의 없었다.
머리 쓰는 일은 안나나 시에린이 했고 힘 쓰는 일은 라이넬과 용병들이 했다.
연약한 남자인 나는 마차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었고 가끔 훈장을 내밀며 기다리고 있는 마차들을 무시하고 성으로 들어가거나 잠잘 곳이 없을 때 영주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역할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멍 때리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었지만 상행은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지난 3일간 5개의 마을과 4개의 도시를 들렸고 마을과 도시를 들를 때마다 물건들을 사고파는 행위를 반복했다.
대부분의경우 미리 계약되어 있는 물건들을 주고 받은 거지만 몇몇개의 물건은 안나의 즉흥적인 전략으로 구매했는데 그 물건이 바로 다음 구역에서 불티나듯 팔리는 걸 보니 안나의 재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아이데스님 슬슬 도착이에요."
"오냐."
반쯤 누워있던 자세를 일으켜 세웠다.
저 멀리 작은 마을 하나가 보였다.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고 딱히 특산물도 없는 마을이지만 아이데스 상단이 굳이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재야의 인재 한 명이 숨어있거든.'
그것도 아주 대단하신 분이 숨어있단 말이지.
여포를 모티브로 해서 아이작이라는 캐릭터가 생겼듯이 제갈량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 또한 있었다.
삼국지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들한테서는 저게 무슨 제갈량이냐며 욕을 엄청 먹었지만 나는 삼국지를 야예 모르기 때문에 그냥 제작사가 제갈량이 모티브라고 하니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끝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엔 왜 오자고 한 거야?"
"필요한 게 있거든."
"여기서만 파는 물건이라도 있어?"
"이서만 구할 수 있는 게 있지."
마차는 천천히 이동해서 결국 마을에 다다랐다.
상단이 마을에 찾아온 건 처음인 듯 주민들의 경계가 처음 다가왔지만 우리가 도적이 아니라 상단이라는 걸 잘 설명해 주고 생필품도 팔아주니 금세 긴장을 풀고 우리를 맡이 해줬다.
"안나 다음에 여기 다시 들릴거지?"
"네 아이데스님이 그렇게 동선을 짜라고 하셔서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여기를 지날 거에요."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여기에 남아있을게."
언질 한 번 안했다가 갑자기 선언을 해서 그런걸까? 안나의 눈이 똥그랗게 떠졌다.
"네? 왜요?"
"여기서 구해야 하는 게 있거든 근데 그게 하루이틀로 구해지는 물건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너 혼자 남는 건 위험하지 않겠어? 나도 같이 남을게."
"라이넬 넌 안돼 나랑 너 믿고 호위도 적게 데려왔는데 너까지 빠져버리면 호위의 공백이 너무 크단 말이야."
"그러면 내가 남을게."
"너도 안돼, 안나 일 도와줘야지."
처음엔 깍두기 취급받던 시에린이었지만 안나와 시에린이 친분을 쌓기 시작하면서 안나가 시에린에게 서스럼없이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나름 행정반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시에린인만큼 안나와의 협업도 잘 이루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에린이 없으면 업무효율이 뚝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한데..."
"나도 마법 쓸 줄 알거든? 이 시골에 나를 위협할 만한 사람이 어딨겠어.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다녀와."
라이넬과 시에린, 심지어 내 말이라면 뭐든 철썩같이 믿는 안나까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용병하나 정도는 네 호위로 삼아, 이게 최소 조건이야."
시에린의 눈빛이 너무 단호해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용병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작업할 때 안 데려가면 되니까.
작은 마을이었지만 숙박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안 쓰는 건물 두채를 얻어다가 용병과 내가 쓰기로 했고 사용료도 지불하기로 했다.
사실상 나를 이 마을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상단 전체는 한 시간 정도만 머문 후 떠나기로 했다.
시에린과 라이넬과 작별 인사를 나누자마자 느긋하게 걸어서 마을 구석진 곳에 있는 기와집을 향해서 걸어갔다.
'판타지 세계에 기와집이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닌 세계란 말이지.
느긋하게 걸어서 집까지 걸어가니 하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아무 말 없이 집 밖에서 안을 쳐다보고 있으니 하인이 나와서 물었다.
"집주인을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주인님은 밖에 나오시지 않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말이나 한 번 전달해 주세요."
귀여운 남자애가 간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니 하인도 마냥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한숨을 푹 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 만나주신답니다."
"안타까운 일이군."
하인이 들어간지 1분도 안돼서 바로 나왔다.
아마 생각도 안하고 즉답한 것 같은데 역시 쉽게 넘어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더 말을 붙히지 않고 바로 뒤 돌아서 집에서 떠났다.
'괜찮아 어차피 오늘은 간만 보려고 했던 거니까.'
용병을 대동한 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서 이동했다.
겨울인 만큼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지 분주히 움직인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응? 청년이 도와줄만한 일은 없어 힘 쓰는 도시에서 살아서 잘 모르겠지마는 이런 시골에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 힘쓰는 일이라 청년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 많을거야."
"힘을 아무리 많이 쓰는 일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을 걸요?"
"겉보기랑은 다르게 힘에 자신이 있나보지?"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가장 기가 세 보이는 할머니께 말을 걸었더니 금방 주변의 시선이 끌리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에 가든 그 집단의 머리만 제압하면 된다.
이 할머니가 촌장급은 아니더라도 이 마을에서 나름 직위가 있으신 분 같았기 때문에 이 할머니의 마음에만 들면 금방 마을에 긍정적인 여론이 흐르겠지.
'그리고 이런 걸 하나하나 쌓아야 저 집을 공략을 할 수 있겠지.'
"할머니, 아무리 힘이세도 남자는 남자에요. 괜히 험한 일 시킬 생각하지 마시고 적당히 소일거리나 던져줘요."
"됐다 이년아, 자기 입으로 힘에 자신이 있다잖냐.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놈한테 다른 일을 시키면 괜히 의욕만 떨어져. 어제 산에서 돌 굴러온 게 있다고 했지?"
"네, 밭을 누르고 있어서 치우긴 해야하는 데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꼼짝도 안한다니까요?"
"얘한테 시켜봐."
"할머니 마을 장정들이 다 달라붙어도 못 옮긴걸 남자가 어떻게 옮겨요."
할머니와 젊은 여성의 실랑이가 오래돼서 그럴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거의 다 모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제가 옮길 수 있어요."
"네? 아니, 저희 마을 여자들 대 여섯 명이 붙어도 꼼짝도 안했다니까요? 남자가 옮기기에는 턱없이 무거운 무게에요."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내나 해주세요."
"할 수 있다잖냐. 가서 구경이나 하자."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셔서 넓게 펼쳐진 밭을 향해 이동하시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서 이동했고 겨울이라 소일거리만 하고 있던 사람들도 흥미를 느꼈는지 금방 우리를 따라 왔다.
"힘들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셔도 돼요. 괜히 힘쓰다가 다치셔도 저희는 책임 안 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를 따라서 걸어오자 톤 단위 무게는 가볍게 나갈 것 같이 거대한 바위가 들어났는데 그크기가 얼마나 큰지 밭의 구석에 박혀있음에도 밭 전체가 바위로 가득찬 느낌마저 주었다.
"어디로 옮기면 돼요?"
"다시 산 위에 옮겨놓는게 제일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할테니 적당히 저기에 옮겨놓으면 돼."
할머니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밭 옆에 작게 공터가 파여져 있었다.
주변은 산길인데 저기만 평평한걸 보니 마을사람들끼리 돌을 옮기기 위해 작업을 해 놓은 것 처럼 보였다.
"바위 크기 보셔죠? 남자가 옮기는 건 불가능한 크기니까 포기하고 돌아가세요."
다른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절대 불가능할 거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이 정도 바위를 옮기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바위를 원형 그대로 옮길필요는 없죠? 부숴서 옮겨도 되죠?"
"이 커다란 바위를 어떻게 부숴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이제 그냥 돌아가요."
나를 향한 걱정을 무시하고 바위에 손을 댔다.
어느새 두 개가 된 심장의 서클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마나 스피어]
서클의 움직임은 마나로 이루어진 창을 유도했고 그 창이 바위에 살살 박히기 시작하니 바위에 쩌적 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하게 날려서 터지듯 강렬한 연출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부상자가 생기면 안되니 최대한 잔해가 퍼지지 않게 작업했다.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돌덩어리 들로 분해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됐죠?"
상큼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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