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아이데스 상단1
* * *
"지금까지 재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앞으로도 잘 곳 없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돼요."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시에린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받으면서 마디안 남작가를 나왔다.
"저도 가요 엄마."
"그래 잘가라."
"이번에 가면 한 동안 못 볼텐데 너무 대충 인사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까지 너무 안 나가 버릇해서 오히려 걱정이었는데 나간다니 기분이 좋다."
"엄마!"
시에린과 마디안 남작의 장난스러운 인사와 서로 꼭 끌어 안는 진지한 인사까지 마친 후 내 짐과 시에린의 짐을 들고 잭스펠 애들이 있는 상단의 건물로 이동했다.
"지금 가면 있는 거 맞지?"
"어제 밤에 올 것 같다고 편지 받았으니까 지금 가면 있을 거야. 잠자고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오늘 아침 일찍 간다고 미리 써 보냈으니까 없지는 않을걸?"
"느긋하게 점심에 가면 되는 걸 굳이 아침에 나서서..."
"한동안 부모님 못 뵐 텐데 아침에 출근하실 때 인사하는 거 보다는 네가 나오면서 인사하는 게 낫잖아."
시에린의 집에서 잭스펠의 상단 건물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두 건물이 가까운 데에는 굉장히 슬픈 이유가 있는데 땅값이 비싼 제도의 중심부와 거리가 멀어서 건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짠내나는 이유가 있었다.
"오올 많이 바꼈는데? 저번에 왔을때랑은 분위기가 달라."
"바뀌긴 뭐가 바껴 마차 하나만 바뀌고 다른 건 그대로구만."
"에이 마차 하나 바뀐 거면 많이 바뀐 거지, 그리고 마차 모양만 바뀐 게 아니라 수도 늘었잖아."
상단 건물의 구석에 두 개의 마차가 있었는데 하나는 평범한 상행을 위해 사용하는 마차인 듯 다른 평범한 마차들과 생긴게 비슷했고 다른 마차 하나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고 적당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것이 작고 초라한 건물에 잘 어울리진 않았다.
"그러면 들어가 볼까."
시에린이 문으로 다가가서 노크를 하려고 할 때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오셨어요?"
"... 나 문에 손 댔어?"
"안 댄 것 같은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창문밖을 바라보면서 언제 오시나 계속 기다렸어요."
그건 좀 무서운데?
"에이스는 자고 있어?"
"네, 편하게 자고 있어요."
애가 상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가 왜 말에 뼈가 가득 담겨 있지?
피곤하면 잠 좀 잘 수 있는 거지 '감히 플레아님이 왔는데 편하게 잠만 쳐자고 있어어요.' 라는 기운을 가득 담아 말하니 괜스래 몸이 떨렸다.
"근데 너 키 진짜 많이 컸다."
"헤헤, 성장기니까요."
안나와 만나지 않은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개학 직후 미네타와 연결해준 뒤로는 한 번도 안 만나고 편지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는데 직접보니 느낌이 엄청 달랐다.
성장기가 찾아왔는지 키가 부쩍 자라서 이제는 나랑 비슷할 정도였고 어린애 같기만 했던 몸에도 선이라는 것이 천천히 그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반년도 안 됐는데 진짜 엄청 컸네.'
작고 귀여운 안나 와는 이제 바이 하자. 지난 1년동안 1cm도 안 큰 내 키를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키에서 멈춘 것 같으니 앞으로는 안나보다 키가 커진 상황을 누리진 못하겠지.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나의 안내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는데 저번에 둘러봤던 직원 휴게실과 응접실이 아닌 2층을 향해서 올라갔다.
"2층은 창고로 쓰고 있어요. 요즘엔 꿀을 파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서 자주 사용하는 곳은 아니지만요."
짧은 말로 2층의 설명을 마친 안나는 쿨하게 3층으로 향했다.
"여기부터는 저희 남매 개인 공간이에요. 이전 주인도 3층을 집으로 사용했던 모양이라 굳이 개조 비용을 들이지 않았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집안 공간이었다.
방금전까지 지내고 있던 시에린의 집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으니 높이가 높은 것만 뺀다면 아주 평범했다.
"오빠! 일어나!"
안나가 문 하나를 벌떡 열고 들어갔다.
잠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졸린 듯 눈을 비비는 에이스를 안나가 끌고 나왔다.
"안녕하해요."
얼마나 졸린지 말도 잘 못하는 에이스를 데리고 온 안나는 에이스를 잠에서 깨게 하기 위해 마구 흔들었ㄷ.
"정신 좀 차려봐 아이데스님 오셨어!"
"아우으으."
자기보다 더 큰 여동생이 마구 흔들어대자 어느정도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굼뻑꿈뻑 뜨며 버둥 거렸다.
"알았어! 정신 차렸으니까 더 흔들지 마!"
"정신 차렸으면 제대로 인사드려."
안나의 서슬퍼런 눈빛에 에이스가 똘망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다."
여동생이 훌쩍 큰 것 과는 다르게 에이스는 큰 변화가 없었다.
키가 조금 크긴 컸는지 나와의 차이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 외의 변화는 단순히 평소에 보던 일상 복이 아니라 잠옷 차림을 봐서 생기는 기분탓이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그 동안 잘 지냈어?"
"당연히 잘 지냈죠. 황실 주선으로 소개 받은 분들한테만 꿀을 팔아도 바빠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일이 잘 되는 건 언제나 좋은 거지 절대 나쁠 이유는 없죠."
"잘 됐네. 안나는 어때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안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하니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 시선을 슬 피하며 답했다.
"말도 마세요. 얘가 얼마나 달라졌는데요. 키도 엄청 커져서 저보다 더 커졌고 이제는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말을 잘한다니까요? 협상하는 능력이 썩 대단하진 않아서 중요 거래처에서는 제가 얼굴마담으로 활동해야 하지만 이미 협상이 된 곳에 물건을 전달하는 정도는 이제 직원 몇명 데리고 혼자 해도 잘만해요."
"그래서 마차를 하나 더 산 거구나?"
"네, 마차를 두 개 굴릴만한 행정력은 충분히 되는데 굳이 마차 하나로 운영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희가 마차를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저희라니, 아이데스님이라고 해야지!"
"아이데스님은 저희에 포함 안되는 거야? 같은 세력이잖아."
내가 언급 되자 안나의 눈빛이 순식간에 심각해 지는 걸 보니 그 동안 에이스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을 지 눈에 훤히 보였다.
"크흠, 그런 의미로 말한 거라면 상관없어."
"오빠 노려보는 버릇 좀 고쳐라.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네가 바라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거든? 가끔 진짜 얻어 맞는 건 아닐지 무서워 진단 말이야!"
"내가 화나는 것도 오빠한테 제어 당해야 해?"
안나 얘가 사춘기가 왔나.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꽤 조숙한 아이인 모양이다.
"안나야. 오빠도 오빠 나름대로 고충이 있어서 너한테 그런말을 한 거 아니겠니? 오빠도 충분히 힘들테니까 오빠 말 잘 들어."
"알겠습니다. 아이데스님."
에이스에게 하는 행동이 너무 완강해서 내 말도 씹고 넘겨 버릴 줄 알았는데 에이스가 말 했을 때와는 다르게 싸악 하고 바뀌는 태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기, 나는 깍두기야? 너희끼리만 이야기 하지 말아줄래?"
"시에린 너 정도면 깍두기 맞지 서로 얘기한 적도 거의 없잖아."
"가끔 하거든? 편지로만 이야기 하는 거고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인 이야기라서 존댓말로 이야기를 나눈 거긴 했지만 아예 이야기를 안 한 건 아니야!"
"그렇다는 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네, 마디안님... 친하죠."
에이스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면서 마디안의 눈치를 봤는데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 걸 보니 진짜로 불편한데 친하다고 억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장난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야! 그렇게 말하면 플레아가 착각하잖아!"
"네? 제가 이상한 말 했어요? 저는 분명 친하다고 했는데요?"
"겁에 단단히 질린 표정으로 친하다고 해봤자 그게 무슨의미가 있나!"
시에린과 에이스의 대화 덕분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졌다.
"아무튼, 나 왕따 시키지 말고 이야기에 끼워달라고, 아침일찍 일어나서 여기까지 온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푸대접 받아야 겠어?"
"그러면 일 얘기라도 할까요? 마디안님이랑 할 이야기는 일 얘기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러면 지금까지 수익이 얼마나 났는지 부터 정리해 줄래?"
"이번에 상행 끝나고 오면서 분명히 편지를 보낸 것 같은데요. 설마 그 짧은 사이에 다 잊어버리신건가요?"
시에린과 에이스 사이에 가시가 돋친듯 만듯한 장난스러운 대화가 계속 오갔다.
'팝콘 마렵네.'
"안나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명령만 내려주세요!"
"가서 팝콘 하나만 사가지고 와."
안나뿐만 아니라 시에린과 에이스의 귀에도 명확하게 들릴 크기로 이야기 하니 두 사람이 굉장히 벙찐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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