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마디안 남작가1
* * *
"끄아아아악!! 기말고사 끝났다!!"
기괴한 비명소리가 내 입에서 뛰쳐나왔다.
얼마나 고생했는가 얼마나 신경썼는가 괜한 사건들 때문에 시간을 한참 날려버리고 매일 새벽 3시까지 공부해 오지 않았는가, 그 오랜 노력의 결실이 드디어 맺어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역사가 너무 어렵게 나와서 한 문제 틀리긴 했지만 다른 애들도 많이 틀렸으니까 3등은 할 거야.'
"플레아 기말고사 잘봤어?"
해방감에 책상에 업드려서 꺼이꺼이 울고 있을 때 시에린이 껄렁거리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이 년 또 올백인가 보구만?'
"하나 틀렸어."
"어머, 너무 아쉽다. 나는 다 맞았는데."
한 대칠까?
남녀역전 세계라서 전력으로 때려도 무죄일텐데.
"풉, 꼬우면 너도 다 맞았어야지."
"시에린 뺨 좀 가져다 대줄래?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싫은데!"
그리고 바로 우리 반 밖으로 도망갔다.
따라가려고 했지만 담당교수님이 들어오셔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종례 끝나고 봐.'
종례를 다 끝낸 후 약속했던 장소로 가니 시에린이 라이넬한테 붙잡혀서 켁켁 대고 있었다.
'그 새에 기만질을 했나보네.'
"플레아! 나 좀 도와줘! 라이넬이 내가 올백 맞은 걸 질투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어."
"라이넬."
"왜?"
"더 세게 조여 버려."
"오케이."
"꺄아아아아아아악!"
시에린의 비명이 멀찍히 울려퍼졌다.
"후우... 얘는 시험 때 마다 이 지랄이냐."
"너 공부 잘 하는 건 알겠는데 기만은 하지 마라."
"커흑..."
시에린이 바닥에 드러누워서 목을 잡고 켁켁 댔다.
"미네타는 시험 잘 봤어?"
라이넬이 미네타에게 묻자 미네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미네타?"
"어... 잘 봤어. 나름 잘 봤어."
'그냥 잘 본 게 아니라 마법반 1등이겠지.'
서클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높고 마법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니 아마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먹었을 것이다.
'마법반은 행정반이랑 다르게 상대평가니까 우리처럼 공동 1위인 것도 아니겠지.'
방금 전에 시에린이 라이넬의 손에 탈탈 털린 걸 보고 자신이 1등이라는 걸 밝히기 무서워 진 모양이다.
불쌍한 미네타를 위해 주제를 바꿔주도록 하자.
"라이넬, 너는 잘 봤어?"
"아니, 벨리아랑 루나라한테 막혀서 3등했어."
"3등이면 잘 한거지."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니야."
"너도 기만질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시에린이 벌떡 일어나서 부활했다.
"기만질이라니? 나는 진심으로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건데? 올백은 잘못한게 하나도 없는 거니까 자책하면 무조건 기만질이지만 3등은 완벽하지 않잖아."
"아무튼 기만질임!"
시에린이 분개해서 라이넬에게 달려들었다가 역으로 헤드록을 당하고 침묵해 버렸다.
"아무튼 다들 잘 본 것 같네."
"너도 잘 봤어?"
"역사가 너무 어렵게 나와서 하나 틀리긴 했는데 나름 잘 봤어. 이번 시험은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어려워서 하나 틀려도 3등은 될 거야."
"잘 봤네."
"너랑 같은 등순데 왜 너는 잘 본 게 아니고 플레아는 잘 본 거... 케흑! 폭력 쓰지마 이년아!"
재밌게들 노네.
"놀러갈거야?"
"놀러가야지, 기말고사가 끝났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종업식이 끝나면 또 한 동안 못 만나겠지?"
미네타가 애틋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이번 방학때는 상단 따라다니면서 다른 지역들 좀 구경다니려고 해서 라이넬을 호위로 계속 같이 다니기로 했는데?"
"맞아. 그래서 나랑 플레아는 안 떨어질거야."
"나도 따라갈 거임. 같이 데려가."
미네타가 멍 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렇게 보지 말고 미네타 너도 같이 다니자."
"나는 어머니한테 배울 게 많아서..."
미네타가 아쉬움이 팍팍 느껴지는 분위기로 말했다.
"아깝네... 미네타도 같이 갔으면 친구끼리 여행하는 분위기 확 났을 텐데."
"미안 배울 거 다 배우고 나중에 합류할 수 있으면 합류해도 괜찮을까?"
"당연하지 미네타는 언제 오든 환영이야."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내미니 미네타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 놀러가자!"
시에린의 화이팅 넘치는 한 마디에 다들 기분이 업 돼서 1학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파티를 했다.
***
"지금까지 수고 많았고 2학년 때도 학업에 충실하는 멋진 아카데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장님의 마지막 말과 함께 종업식이 끝났다.
"우리가 2학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처음 이 세계에 빙의 됐을 때는 내가 나이를 먹을 거라고 상상도 안했었는데...
'이제 2학년이구나.'
물론 몇개월 더 있어야 제대로 된 2학년이 되겠지만 일단 1학년은 아니게 됐다.
"내일은 졸업식이지? 너희 나올거야?"
"아니, 아는 선배 없어."
한 명 있긴 한데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잠깐 친해졌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대화 한 마디 안했으니까 졸업식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우리 스승님 산하의 선배가 있어서 졸업식 갈 것 같아."
"그러면 졸업식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다음 상행을 떠날 때 까지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까?"
"나는 오늘 집에 가는데..."
미네타의 얼굴에 우중충함이 한 스푼 정도 뿌려져 있었다.
"보고 싶을 거야 미네타..."
미네타를 꼬옥 안아 주니 미네타도 나를 껴안았다.
"무사히 잘 돌아가고, 편지도 자주해. 알겠지?"
"너희가 어딨을 줄 알고 편지해?"
"우리가 파는 게 네 꿀아니냐. 언제 어디로 가서 팔지 일일이 다 적어놨으니까 네가 편지가 전송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보내, 5서클 마법사님이신데 그 정도 계산도 못하는 건 아니지?"
"내가 안하고 사용인들 시키겠지."
"하긴 미네타 처럼 고귀하신 분이 직접 머리를 쓸 필요가 없... 꾸엑!"
시에린이 미네타를 놀리다가 라이넬이게 한대 맞았다.
'익숙한 광경이군.'
"마중나가 줄까?"
"아냐, 여기서 헤어지자. 헤어짐은 시간을 끌 수록 슬픈 거라고 하니까."
미네타가 뒤를 돌아 우리에게 등을 보였다.
"그러면 방학 끝나고 보자."
"그래, 방학 끝나고 봐."
미네타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미네타도 같이 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러게 말이야."
친구들끼리 함께하는 여행느낌도 나고 엄청 좋았을 거다.
"중간에 합류하겠지."
"그렇겠지? 미네타니까."
아마 자기 어머니한테 배우기로 한 내용을 금세 배우고 우리를 따라 올거다.
"우리는 일단 내일은 자유 시간이지? 라이넬은 졸업식 참여하고 플레아랑 나는 각자 쉬면서 다음 상행까지 우리끼리 뭘 할 지 생각하고."
"어, 그러면 돼."
잭스펠 남매가 돌아올 때까지 아직 4일 정도 되는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다른 유력가문에 가서 친분을 쌓아도 되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쉬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 우리도 이만 헤어질까? 늦어도 내일 모래엔 만날 거니까 슬퍼하지 말고 활기차게 헤어지자구."
"그래, 다들 잘 가라."
각자 손을 흔들고 자신이 갈 곳을 향해 이동했다.
느긋하게 걸어서 남자기숙사로 갔는데 입구에 하얀색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뭐지?'
이번 주 수요일 부터 남자기숙사에 대규모 공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남자 기숙사를 이용하시는 남학생 분들은 화요일까지 짐을 빼고 퇴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신이 멍 해졌다.
'왜 이렇게 갑자기?'
오늘이 월요일인데 당장 내일 짐을 빼라는 거 아니야. 미리 말을 해줄 법도 하지 않았나?
물론 종업식이 끝난 오늘 기숙사를 퇴소하는 게 원칙이긴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서 일주일 정도는 기간을 주기 때문에 맘 편하게 있었는데 당장 내일까지 짐을 빼라고?
'어떡하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짐을 싸는 것 까지는 어렵지 않은 데 저 많은 짐을 어디다가 보관하지? 그리고 나는 어디서 자야하지?
당연히 일주일의 유예기간을 줄 거라고 생각했던 상태에서 이런 공문을 받게 되니 진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단 기숙사로 들어가자.'
멍한 상태에서 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일단 짐 정리부터했다.
내일 퇴소한다고 내일 방정리를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까다로울 확률이 높아서 일단 방부터 정리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관에서 자야하나?'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내가 내 짐들을 전부 들고 여관까지 이동해야 하고 여관은 기본적으로 낮에는 짐을 빼야 한다는 걸 제외하면 아주 좋은 선택지였다.
'그걸 빼면 안되지 짐을 어디다가 보관해...'
원래는 기숙사에서 펑펑 놀다가 잭스펠 애들이 돌아오면 걔네들한테 짐옮기는 것도 도움 받고 상단 창고에 내 짐을 좀 맡겨 두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답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시계에서 알림이 와서 확인해 보니 라이넬이 남자 기숙사에 공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라이넬: 플레아 어떡하냐 ㅠㅠ
시에린: 그러게 말이야... 딱히 잘만한 데도 없을 텐데.
나: 괜찮아. 일단 여관잡아서 자면 되지
시에린: 여관은 낮에는 짐 빼야하잖아,
시에린: 그냥 우리집에서 지낼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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