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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45화 (145/312)

〈 145화 〉 황녀님의 음습한 시선을 피하자­1

* * *

아카데미 일정이 모두 끝난 금요일의 저녁 나는 청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왕 부를 거면 낮에 부르지 왜 저녁에 불러서 불안하게 만드냐.'

그리고 왜 하필 금요일에 부른 거고,

내가 사모아한테 앵기기 시작하고 황녀가 나한테 편지를 보내온 게 화요일이었는데 그냥 당일날 바로 오라고 하거나 수요일에 오라고 했으면 이렇게 까지 불안하진 않았을 거다.

왜냐면 다음날 아카데미에 가야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외박이 불가능해지니까.

'가서 잘 대처하자.'

절대로 동정 뺏기지 말고, 진도도 빼지 말자.

강하게 다짐하고 옷 매무새를 완벽하게 다듬은 뒤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아카데미의 입구쪽을 보고 있으니 기사 한 명이 서 있었다.

"아이데스님이십니까?"

"네, 제가 아이데스 입니다."

"황녀님의 명으로 아이데스님을 호위할 기사입니다."

"네."

아무 말 없이 걸으면서 선물을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황녀의 위치를 생각해도 그렇고 예의를 생각해도 그렇고, 가벼운 선물을 사가는 건 당연히 맞는 일이지만 뭘 살지가 고민이었다.

'아예 사가지 말까?'

나에 대한 황녀의 호감도를 조금 떨어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아예 안 사가는 것 보다 어중간한 선물을 사가는 것이 황녀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을테지만 그 경우에는 괜히 황녀에게 분노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가뜨이나 사모아 때문에 기분도 안 좋은 상태에서 선물도 이상한 걸 사가봐, 황녀를 적으로 만들 수도있다.

그 세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황녀의 성격상 나를 끝까지 괴롭힐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상당히 무서웠다.

'그냥 사가지 말자.'

대형 연회에 초대 받을 때도 아니고, 단 둘이서 만나기 위해서 초대를 한 건데 굳이 선물을 사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물을 사가면 화가 풀린 이후에 호감도가 급격하게 올라갈 확률이 너무 높았다.

사랑은 바위와 같아서 한번 기울어 지면 정말 손쉽게 끝부분까지 굴러갔다.

콩깍지라는 건 정말 무서운 현상이었다.

내가 뭘 하든 상대의 눈에는 미화 돼서 보일테니까.

그렇게 기사를 따라 걸어가다가 다시 안대를 쓰고 이리저리 걸은 뒤 건물 안으로 도착했다.

눈이 가려져 있어도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었던 만큼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것도 페이크일 수도 있어.'

단순히 신발만 갈아 신기고 밖을 더 돈 다음에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었으니까.

건물 안인지, 밖인지도 모를 곳에서 한참 동안 이리저리 돌아 본 다음에야 황녀의 집무실 앞에서 안대를 풀 수 있었다.

­­똑똑

"아이데스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알았다. 들라하라."

기사가 문을 열어주자 내가 사뿐한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일 하는 중이니 잠시 손님석에 앉아있도록."

시계를 슬쩍 바라보니 5시 50분이었다.

약속 시간인 6시 보다는 빨리 오긴 했지만 손님을 맞이할 준비도 안하고 있었다기에는 상당히 어색한 시간대였다.

'단단히 삐진 모양이구만?'

진짜로 일이 바빠서 기다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나에게 간접적으로 들어낸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황녀가 펜을 움직이는 소리만 계속 울려퍼졌고 나는 무려 30분 동안이나 손님용 소파에 앉아있었다.

"미안하군, 그대를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다."

"괜찮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괜찮았다.

이 정도의 정치적 행동정도는 나한텐 아주 귀여운 것에 불과했으니까. 대 놓고 면박주고 압박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30분 정도 기다린 정도로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내가 그대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알고 있나?"

황녀가 상석에 앉으면서 말했다.

"제가 요즘 사모아 공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많아서 부르신 것 아닙니까?"

황녀 같은 사람이랑 말할 때는 굳이 말을 돌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담담하게 자기가 뭘 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진솔하게 풀어나가면 충분히 이해해줄 확률이 높았다.

"잘 알고 있군, 그대를 총애하는 입장에서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하다. 나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싫지만 그 대상이 사모아공녀라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년은 중앙파 귀족의 수장인 사모아의 장녀 아닌가, 사모아 공작가를 통째로 불려받을 그녀와 친해지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니 나는 그대의 충성조차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황녀님의 심기를 건 드린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그대의 눈에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살펴볼 수 없는 걸 보아하니, 죄책감도 없는 쓰레기거나 나름 이유가 있는 모양이군?"

"후자입니다 황녀님."

설마 내가 황녀의 눈앞에서 저 황녀님 배신했어요. 라고 말하고 죄책감이나 공포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강심장이겠어? 당연히 이유가 있어서 사모아에게 다가간거지.

"그대의 변명이 내 귀에 만족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면."

황녀가 자신의 혀를 살짝 핥았다.

"그대의 신변을 보장해 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상당히 수위가 강한 협박이었지만 황녀는 그런 협박을 해도 됐다.

나는 황실파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황녀를 통해서 득을 본 것도 있는데 그 이득에 보답하지는 못할 망정 배신을 때려버린 입장이니까.

사모아나 프레스티아 조차 나를 함부로 건들지는 못했지만, 황녀는 얘기가 달랐다.

내 이름값이 절정에 올랐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황녀의 영향력 만으로 충분히 없앨 수 있는 존재였다.

"황녀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제국에 충성하는 황실파입니다."

"글쎄? 황실파가 맞긴해? 중앙파로 넘어가려는 박쥐새끼가 아니고?"

우리 황녀님 단어가 많이 세시네.

'그렇게 화났나?'

아무리 화나도 나한테 이렇게 거친 용어를 사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남자한테 박쥐새끼가 뭐야.

"중앙파로 넘어가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뿐이죠."

생존이라는 강한 느낌의 단어를 사용했다 보니 황녀님이 멈칫하고 굳는 게 보였다.

"생존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저는 사모아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조사하시면 금방 나오는 내용이니만큼 이 부분은 의심없이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해보거라."

"이전에 제가 꼬마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릴 때는 사모아가 저를 건드리지 못했지만, 이제 이름값이 서서히 죽어가는 단계라서 사모아의 위협이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제국에 충성하는 황실파라고 해도 이용해 먹을 만한 중앙파 세력 하나를 만들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이득이 커 보였던게 사모아였을 뿐이군요."

"그렇군."

황녀는 아까와 거의 똑같은 얼굴로 손톱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화는 대충 풀린 것 같은데...'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벌을 받아야 하려나?

"그대가 왜 사모아에게 들러 붙었는지는 이해가 간다. 내 세력이 약한 탓이겠지, 내가 충분히 강했더라면 그대가 아무리 위협을 느낀다 한들,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친해지려고 애를 쓸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아닙니다. 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대가 부족한게 뭐가 있다고 그러나, 남자인데도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서는 뛰어난 인재인데 말이야."

황녀가 음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내 특별히 그대의 사정을 인정해서 더 이상 화를 내거나 이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왠 일로 이렇게 빨리 넘어가지?'

은연중에 나를 까내리는 말투를 사용하길래 제대로된 조리돌림이 시작되나 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용서 받아버렸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해.'

"이왕 온김에 같이 밥이나 한끼 먹고 가지 않겠나."

"황녀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황녀가 사용인들을 시켜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

집무실의 구석부분에 크게 만들어진 식탁에 가서 앉아서 밥을 먹었는 데 황녀는 첫 한술만 뜨고 나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 드십니까 황녀님?"

"참 맛있는 음식이지?"

황녀가 제대로된 동문서답을 보여줬다.

아니, 이 경우에는 답의 형식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니, 그냥 자기말만 하고 있는 걸까?

"네, 맛있습니다."

두서 없는 대화였지만 내가 명백한 을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황녀에게 맞췄다.

"매일 먹는 나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내오는 셰프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어떤 음식에 비해서 상당히 뒤쳐진 음식을 내왔더군, 아니지, 내눈에 비친 음식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워서 별로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말을 하면서도 황녀의 시선은 오롯이 내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결국 나랑 한번 자보고 싶다는 거지?'

이번으로 두 번째 만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진도가 빠른걸까.

마음속으로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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