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사모아랑 친해져야 한다고요?4
* * *
"주군,"
"알아, 닥쳐."
벨리아가 무슨말을 할 지 예상이 갔다.
아마 오늘 아침부터 플레아가 계속 사모아한테 앵겨 붙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겠지.
나도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모를 수가 있나? 지금 아카데미의 어디를 가도 플레아와 사모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둘이서 사귄다더라, 플레아가 나한테 차이고 사모아한테 갔다더라 하는 소문까지는 들어줄만 했다. 워낙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이다 보니, 그런 이상한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근데뭐?
'원래 사모아를 좋아했는데 위장으로 나를 좋아하는 척했다고?'
플레아가 입학식때 사모아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기억을 못하는 건가?
제국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는 건가?
무슨 사고 회로를 거치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마치 사실인 것 마냥 말을 하고 다닐 수가 있는 거지?
내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말해도 예민한 내 귀에는 다 들렸기 때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때문에 괜히 수하한테 화풀이나 하는 못된 주군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도록 하자.
"죄송합니다."
"후우... 죄송할 거 없어. 나는 전혀 화나지 않았으니까."
그래 나는 화나지 않았다.
어쩌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상황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눈빛을 수도 없이 날려댄 플레아가 사모아에게 들러 붙은 거니까, 평범하게 보면 화낼만 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가 아는 플레아는 절대로 사모아 따위한테 들어가거나 반할 놈이 아니야.'
조금 떨어졌다고 나에대한 애정이 식을만한 놈도 아니었다.
플레아 때문에 만할 황녀한테 괜히 여지만 준, 연회에서도 나를 향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혹시나 나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쳐도 사모아한테 반할 정도로 어리석은 놈은 아니었다.
차라리 황녀한테 반했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다 기울어 가는 황가고 중앙파 귀족들 탓에 황제가 되기는 요원해 보이지만 그래도 1황녀였으니까.
'그런데 사모아를 좋아해? 말도 안 되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가짜 소문들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나는 그 정도에 속지 않았다.
플레아가 사모아를 좋아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이번에 황녀랑도 친해지고, 제대로 황실파 노선을 타다보니까 중앙파의 견제가 무서웠나보지?'
가뜩이나 사모아와 사이가 좋지 않던 플레아였다. 거친 제도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앙파 귀족 중 누구 하나와는 끈을 잡아야 했을 텐데, 당장 주변에 있는 사모아 만큼 적합한 상대가 없었을 것이다.
플레아가 사모아에게 다가간 건 철저하게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사모아한테 관심이 생겼다거나, 진짜로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거다.
'그런데 말이야.'
첫 시작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얽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진자 친한 관계로 성장할 수도 있는거잖아?
사모아와 플레아가 친구를 맺는다?
까득
치아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한 번 밟힌 전적이 있는 사모아가 플레아와 친구가 된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치솟아 올랐다.
'누구는 자기 마음을 알아차려 놓고도 완벽하게 굴복 시키기 위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진정하자, 플레아가 사모아한테 아무리 다가가도 사모아가 플레아한테 마음을 열 일은 없다.
입학때부터 사이가 엄청 나빴던 게 둘인데 사모아는 성격이 안 좋아서 한 번 사이가 나빠진 사람이랑 다시 친해지는 건 불가능한 년이니까.
'아무리 플레아가 매력 터지고 잘생기고 귀여운 놈이라고 해도 사모아 까지 함락시킬 순 없어... 그럴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창 밖에서 사모아와 플레아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나?'
무슨 조치를 취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플레아한테 가서 사모아랑 만나지 말라고 하면 너무 구질구질 하고 사모아한테 가서 플레아한테 마음 갖지 말라고 해봤자, 플레아 쪽에서 다가오는 것인 만큼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사모아 저년은 평소처럼 인성 쓰레기로 있으면 되지 왜 갑자기 개관천선하는데!'
자기를 한 번 무시한 평민이잖아, 지금은 위상이 높아졌으니까 달라졌다 이거야?
수업 내내 내용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플레아와 사모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후우...'
마음 좀 진정시키려고 교실 밖으로 나오니 누군가가 다다닥 뛰어서 반대쪽 복도로 달려가는 걸 보았다.
'뭐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따라가 코너를 도니 아무도 없었다.
'기분탓은 아니야... 그러면 누군가가 나를 지켜 봤거나 급한일이 있어서 그냥 뛰어간건데...'
내 감이 그 대상이 플레아 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감을 펼쳐서 주변을 훑어보니 밑층에서 벽에 기대고 있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그 키가 아주 작고 귀여워서 플레아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나올 것 같으니까 도망간건가?'
마음이 한결 놓인 느낌이다.
내 반응을 구경하러 온 것 같은데 사모아에게 다가가면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해서 찾아온 듯 보였다.
'그래, 그 놈은 나를 좋아해.'
사모아랑 친해지는 게 무슨 상관인가.
사마오가 플레아를 좋아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플레아가 나를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이상 내가 질투할 이유는 아예 없었다.
'돌아가자.'
마음을 완전히 풀고 내 반으로 돌아갔다.
***
'좆 될 뻔했네.'
한가롭게 프레스티아를 구경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교실 밖으로 나오는 프레스티아의 모습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
그냥 자연 스럽게 지나가다가 만난 척 했으면 된 것을 괜히 도망 쳐서 여지를 준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끙끙 거리는 귀여운 모습으로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왔으니까.
사전 동작이 있었으면 그걸 보고 대충 파악을 했을 텐데 너무 뜬금없이 나와서 프레스티아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근데 프레스티아 엄청 귀엽다.'
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만 봐서 그럴까 모처럼 귀여운 모습을 봐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키는 나랑 비교하기가 힘들정도로 크고 몸도 상당히 좋은 프레스티아였지만 역시 귀여울 때는 진짜 귀엽구나 싶었다.
내가 사모아한테 다가가면서 각종 소문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인데 증오에 찬 표정도 짓고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프레스티아는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볼 수 있었짐나 귀여운 프레스티아는 정말로 휘소한 자원이기 때문에 머리속에 확실히 박아두기로 했다.
'왜 이세계에는 스크린 샷 기능이 없는 걸까.'
게임 원작 세계관이면 상태창 말고 다른 부가 효과도 있으면 좋았잖아! 하고 속으로 외쳤다.
'근데 이제 저 모습은 보기 힘들겠지.'
아마 도망친 대상이 나라는 사실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거다.
도망 치는 내 뒷모습 정도는 봤을 테니까.
내가 굳이 프레스티아를 구경하러 이곳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프레스티아에게는 상당한 위안이 될 것이고 정신력이 강한 프레스티아는 사모아의 일 따위는 금세 잊고 평소의 프레스티아로 돌아갈 것이다.
'프레스티아가 조금만 더 약했으면 좋겠어.'
강한 프레스티아도 좋지만 저건 너무 철혈여제잖아. 먹히는 공격이 없다.
밀당을 시도했더니 역으로 같이 밀당을 하지 않나, 심리적으로 심란한 상태에서 잠깐의 안식을 얻었다고 바로 멀쩡해 지지 않나, 몸처럼 멘탈도 아주 강했다.
강하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이제 황녀쪽만 해결하면 되나?'
아카데미에 사람을 심어둔건지, 아니면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타고타고 올라가면 항녀가 있는 건지 기가막히게 사모아와 친해지려는 나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나를 불렀다.
초대장에 '요즘 그대의 행태에 대해 할말이 있으니 00월00일 6시에 황궁으로 오라.' 고 적혀 있었으니 내가 사모아랑 붙어다닌다는 걸 못 알아차리진 않았겠지.
'여자로서의 경쟁심도 있겠지만 아마 정치적인 이유겠지?'
사모아는 중앙파 귀족중 가장 큰 세력인 사모아 공작가의 장녀니, 질투심 이전에 그런 여자랑 친해지는 걸 보면 설마 이놈이 중앙파로 마음이 변질 됐는지 의심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변명거리는 충분히 생각해 놨으니까 괜찮아.'
문제는 우리 적극적이신 황녀님의 성격상 이번에 가면 진도가 어디까지 빠질지 예상도 안 간다는 거지.
혹시 내 동정까지 때 가실까봐 제국에 대한 충성과 연관된 구구절절한 스토리까지 준비 해놓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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