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사모아랑 친해져야 한다고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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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의 눈에는 진지함이라고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내가 을이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김에 내 정신이라도 흔들어 보려고 저런 망발을 지껄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몸을 대주라고? 어이가 없을 뿐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으니까.
"몸을 대 드리라니요?"
"정치적인 은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네가 나에게 몸을 한 번 내어주면, 앞으로 너를 지원할 거라고 약속하지. 네가 말했던 대로 처음 단추를 잘 못끼웠잖아? 네가 첫 단추를 잘 끼워서 내 손을 잡기만 했다면 지금쯤 내 아래에서 앙앙 거리고 있었을 텐데 그걸 단 한 번으로 없던 일로 만들어 주겠다는 데 너한테는 좋은 일 아니야?"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진짜 원하는 거나 말하세요."
"없다. 이미 황실파로 들어간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황실파에서 나를 위한 스파이가 돼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너는 나한테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저 남자로서의 매력만 있을 뿐, 나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일단 그 몸부터 내놓도록."
'하아...'
까다롭게 덤벼 드네.
'진짜 내 몸말고는 관심있는 게 없나?'
당장 나에게 요구할만한게 생각나지 않는 것 같은데, 막상 내가 준다고 하면 좋다고 받을 만한게 있지 않을까?
사모아 따위한테 몸을 대줄 순 없다.
그녀가 아무리 미녀고 가슴도 크고, 큰 세력의 후계자 이긴 하지만 내 동정은 무조건 프레스티아의 것이다.
일단 프레스티아에게 동정을 바친 이후에는 내 몸을 거래조건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프레스티아와 하기 전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면 꺼져라. 나는 너에게 원하는 것이 없으니."
"... 왜 그렇게 날 싫어해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껄렁이는 말투로 말하니 사모아의 눈썹이 삐죽거렸다.
"... 죽고 싶나?"
"못 죽이시잖아요."
"허어... 참나..."
내가 당당하게 나가자 사모아가 당황했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뻔뻔하게 나가자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 봅시다. 제가 왜 싫어요? 진짜로 에스코트 안 받아줬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죠? 학기초에 저를 괴롭혔던 건, 사모아 파벌에 거부하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일 뿐이지 진심으로 제가 싫어서 괴롭힌 게 아니잖아요."
맞을 수도 있는데 설마 이렇게 못 박아 뒀는데, '아니, 그것때문에 싫은 거 맞는데'라고 하겠어?
사모아 자기 체면이 있지.
그리고 처음 어떻게 사이가 나빠졌든 지금 우리가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내가 헬링파벌과 사모아 파벌을 싸움붙인 것도 있었으니까.
"쯧... 나는 네가 싫어서 너를 괴롭혔던 것이 아니다."
"그러면요?"
"네가 나에게 굴복하게 나에게 용서를 구했으면 했기에 너를 괴롭힌 것이지."
너도 혹시 첫눈에 반했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하는 것도 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었다.
일단 내 말도 안되는 매력 수치가 있었고,
'역시 이 미모가 문제야.'
사모아의 반응이 내 생각보다 훨씬 순한것도 있었다.
학기 초에는 그렇게 무섭게 보였던 사모아지만, 프레스티아가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사실 엄청 신사적으로 나를 대해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너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더라, 내 파벌의 괴롭힘을 버티면서도 열심히 세력을 키우고 프레스티아에게 아양을 부려가며 사는 모습을 보고 대단한 놈이라는 생각도 해봤지."
"... 그러면 애초에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는 나에게 반항하는 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나를 피해서 도망가는 놈들에겐 최후의 최후까지 고통을 안겨다 줄거야."
"그러니까 에스코트 하나 거절한 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거죠?"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렇게 되겠네."
'그 에스코트를 받았어야해?"
그건 그것대로 에바잖아.
"하지만 나라고 너를 계속 견제하고 괴롭힐 생각은 없어, 아까 말했지? 나에게 몸 한 번만 대주면 모든 일은 잊고 너와 제로부터 시작하도록 할게, 서로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야."
"죄송하지만 그건 안되겠네요."
"그러면 어쩔 수 없는거지. 협상은 결렬됐다. 꺼져."
사모아가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이런 눈빛에 쫄아 본 게 언제더라? 요즘엔 여자한테 째려봐 져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나름 압박감은 가해지는데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쟤가 화가 많이 났구나 싶을 뿐
"진짜 제가 몸을 대주는 게 아니면 친해질 생각이 없어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빨리 안 꺼져?"
"... 일단, 절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했죠?"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 사모아에게 붙었다.
"진짜 멍청하시네요."
"뭐?"
"저에게 처음 말 건 것도 잘생겨서 어떻게 해보려고 건드린거고, 그 이후로도 계속 어떻게 하려고 건드리다가 번번히 실패하고 자존심은 자존심 대로 상했는데 한번 이야기도 해보고 따먹어 보고도 싶고, 권력적으로 자기가 우위에 있으니까, 이를 빌미로 몸을 요구하고 겸사겸사 친해지고 싶기도 한 멍청한 인간이라고요."
사모아의 하얀 얼굴이 곧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거 아니거든?"
"아니긴요, 그게 아니면 왜 제 몸을 원하시는데요? 단순히 아름다워서? 여자의 성욕때문에?"
웃기는 소리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사모아가 탐낼 것들은 충분히 많다.
당장 미네타가 팔고 있는 꿀고 일단 내가 공수해 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순수하게 돈을 줄 수도 있으니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절대로 너랑 친해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까지의 반응이 석연치 않았다.
진짜 나랑 절대 친해질 생각이 없다고 엄포를 놓을 거면 넌 어차피 절대 몸을 대주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나왔을 확률이 높다.
"솔직히 말하세요. 저랑 친해지고 싶다고."
"..."
"애초에 저한테 먼저 다가온 건 당신이잖아요?"
자연스럽게 가면을 벗으니 사모아의 볼이 붉어지면서 내 시선을 피하는 게 보였다.
'매력 98 효과 확실하구만.'
"저한테 다가온 것도 관심이 있어서고 저를 공격한 것도 관심 때문이면... 그냥 어린애 같네요."
"후우...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너를 공격한 게 아니다. 진심으로 싫을 때도 있었지."
"지금은 안 싫다는 말씀이시네요?"
최대한 예쁜 미소를 짓고 사모아를 올려다 봤다.
"그러면 사모아님도, 저랑 친해지고 싶으신 걸로 알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딜..."
사모아가 내 팔을 낚아 채기 직전에 큐브를 사용해서 내 몸을 옆으로 가속시켰다.
"그러면 안녕히계세요."
가면을 쓰고 천천히 걸어갔다.
'생각보다 상황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사모아가 나를 공격해 온게 단순 지배욕과 헬링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라는 것이 대충 밝혀졌다.
저런 상대를 대할 때, 늘 통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나름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
'아예 순수하게 내가 먼저 다가가면 은근 쉽게 풀리거든.'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옆에서 이야기만 나눠도 열등감이고 지배욕이고 사르르 녹는다.
지배욕은 안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입학식 때랑 지금이랑 내 위치가 천양지차니 만큼 함부로 나에게 지배욕을 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모아가 나를 극도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없기는 했어.'
내가 사모아한테 진짜 큰 잘못을 저지른건 사모아 파벌과 헬링파벌의 싸움을 유도한 것 밖에 없다. 이 마저도 당시에는 사모아가 좋다고 프레스티아에게 덤벼 들었으니 100% 내 과실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결국 사모아가 나를 싫어 하는 이유는 첫날의 에스코트 거절 하나로 귀결되는 데 처음엔 잘난 건 얼굴 하나밖에 없는 평민이 자신의 에스코트를 거절했다는 모욕감에 진짜로 화났을 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위상이 올라가면서 모욕감이 열등감쪽으로 변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 입학식 때의 일로 나에게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면 오늘 나에게 훨씬 더 격한 반응을 보여줬을 테니까.
이렇게 온순하게 넘어갈리가 없다.
'한 동안은 사모아 근처에 알짱 거려 보지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다던데, 설마 이렇게 잘생긴 미소년이 먼저 다가가 주는데도 욕을박고 때리겠어?
다른사람들 보는 곳에서만 다가갈건 데 말이야.
친구들한테는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냥 사모아랑 친해지기 위해 자주 사모아에게 찾아갈 거라는 것만 말해뒀다.
'프레스티아한테 질투심 유발도 되고 아주 좋네.'
1황녀한테 들키지 않는다는 전재하에 1석 2조를 취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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