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흑마법사의 습격6
* * *
흑마법사가 나에게 저주를 걸었다.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서 한 사람의 무력 잠재력을 절반이나 날려버리는 나약함의 저주를 내 몸에 걸었지만...
'난 무력 잠재력이 32인데?'
반토막이 나도 16인데, 내 현 수치보다 높다.
흑마법사가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저주를 걸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단순히 무력 잠재력만 사라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난 짜피 이 이상 무력을 올릴 생각이 없었으니까.
12정도면 민간인 보다는 잘 싸운다는 건데 이정도면 충분하지, 안그래?
"전 괜찮아요."
다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학장을 보고 슬쩍 웃었다.
억지로 웃는 내모습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학장의 얼굴이 더 찡그려 졌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흑마법사가 자기 목숨을 날려가며 건 저주야... 괜찮을리가 없잖아!"
제가 아니라 라이넬한테 맞았으면 진짜 큰일일 텐데 말인데요. 저는 진짜 괜찮거든요?
'끽해야 잔병치례 몇 번 더 하는 정도겠지.'
"진짜 괜찮아요. 몸도 이렇게 멀쩡하고 어디 안 움직이는 곳도 없어요."
팔을 이리저리 돌려도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어디 하나 삐걱거리는 곳도 없었고, 저주 때문에 숨이 더 차거나 하지도 않았다.
'진짜 딱 잠재력만 날려버리는 저주인가?'
하긴, 내가 아니었다면 잠재력을 날리는 정도면 어마어마한 저주지, 다른 부가 옵션을 넣을 만한 자리는 없었을 거다.
"멀쩡한 상태일리가 없어. 분명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을거야."
학장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멀쩡하다니까요?"
"그럴리가 없다니까?"
학장이 왼손에 마법을 발휘하고 내 몸을 쓱 스캔했다.
"이상한 점 없죠?"
"근골이...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그래도 성장 가능성이 약간은 있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으로서는 몸이 더 강해지지 않을거야."
"뭐에요, 별거 아니잖아요. 저는 어차피 육체파가 아니라니까요? 힘 조금 약해진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 없어요. 자기 목숨을 날려서 아무짝에 쓸모 없는 걸 날리다니, 흑마법사도 참 멍청하네요."
"...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억지로 괜찮은 척하고 있는거지? 그냥 슬퍼해도 돼. 울어도 돼... 그만큼 심각한 저주니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진짜 괜찮다니까 이 아줌마야!'
"진짜 괜찮다고요. 이 아줌마야."
"뭐? 아줌.. 뭐?"
학장의 머리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버벅 거렸다.
"안 괜찮으면 이런 장난을 치겠어요? 진짜 멀쩡하니까 걱정하지마요. 성장가능성이 낮아졌다고요? 어차피 그거 다 채울리도 없었어요. 저는 원래도 약골이어서 그 정도 약해진 건 티도 안나요. 그러니까 못 구해줬다고 자기 탓하지 마요."
"... 그래...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학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바닥만 내려다 봤다.
"흑마법사가 아카데미의 기숙사까지 침범하다니..."
학장이를 까득 하고 물었다.
"나한테 맡겨만 줘, 이 사건 공론화 해서, 무조건 흑마법사의 뿌리를 뽑아 버릴 태니까."
"야뇨, 이 사건은 그냥 여기서 묻어주세요."
"뭐?"
흑마법사가 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대체로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시민들이 나를 걱정해주는 건, 긍정인지 부정인지 따지기 힘들고 아카데미내에 내가 흑마법사에게 습격을 당한 게 퍼지면 역시 걱정 여론이 몰려올텐데 이건 부정적인 일이다. 내가 마음놓고 인재 영입을 못하게 되니까.
불쌍한건 불쌍한거고 자기도 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을 거 아니야.
그리고 1황녀가 나에게 과보호를 시전에 올게 뻔하다. 지금은 내가 뜻이 있는 사람이니 아카데미에 풀어주고 있지만 흑마법사한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억압을 가해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흑마법사 세력은 견제 당하면 안된다.
세력을 키우고 키워서 난세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돼야지 지금 시점에서 제도와 흑마법사가 싸우는 구도로 흘러가 버리면 오히려 제도의 힘이 뭉쳐질 수도 있다.
크게 3가지의 이유 중에서 내가 학장에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두번째 밖에 없다. 첫번째는 너무 속 보이는 이유고 세 번째는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말해선 안되는 이유니까.
"제가 흑마법사한테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이 퍼지면 1황녀님이 저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억압하시기 시작하실 거에요."
"... 네가 1황녀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은 들었어... 확실히 그 분의 성격이라면 너를 흑마법사 같은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어딘가에 가둬두는 것도 불사하실 분이지."
"저는 아직 배울 게 많고 할 게 많아요. 이번에 원한이 있던 흑마법사를 잡은 만큼 앞으로 흑마법사가 저를 노릴 일은 없을거에요. 다시 오지 않을 위험때문에 제 활동반경을 스스로 줄이고 싶진 않아요."
"... 하아... 알았다... 이 일은 일단 불문에 부치겠다."
학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기숙사실 바꿔줄까? 이미 소멸해 버리긴 했지만 흑마법사가 있었던 곳이잖아. 불편할텐데..."
"괜찮아요. 환기나 한 번 해주세요."
학장이 바람 마법을 일으켜 내 방안에 있던 공기와 외부의 공기를 스위칭 했다.
"혹시 무서우면, 바로 나를 불러."
"그럴 일 없으니까 가서 편하게 잠이나 주무세요."
학장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센척 안해도 돼."
"이니, 가라니까요? 아직도 제가 안 괜찮은걸로 보여요?"
내가 그렇게 유약한 인상인가? 왜 내가 충격을 크게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잘 때까지는 옆에서 지켜줄게."
"씻을건데요? 3~4일 정도 못 씻어서 엄청 찝찝하거든요? 여자 앞에서 목욕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나가 주세요."
그대로 축객령을 내렸다.
"... 알았어. 혹시 불편하면 이 큐브를..."
"나가요!"
절규에 가깝게 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학장이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편하게 쉬는 구나.'
바로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지난 몇일 간 들어오자마자 끌려가서 쳐맞고, 바로 침대에 들어누워서 쳐맞고 하다보니 제대로 씻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니 지금까지 뭉친 피로가 한번에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잠을 자는 것도 책상에 업드려서 자다보니 몸이 계속 결렸는데 물이 내 몸을 쓸고 나가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후우... 좋다."
그렇게 다 씻고 몸의 물기도 다 날리고 편한 잠옷으로 갈아 입은 후 입었던 제복은 한 쪽에 치워두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감각에 잠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운지 3초도 되지 않아 잠에 들었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일찍 등교해서 따스한 아침햇살을 느끼고 있을 때 시에린이 다크서클이 내려 앉은 표정으로 다가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일은 잘 풀렸나보다?"
"위험한 일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시에린 너, 왜 다크 서클이..."
"아, 누구누구 씨 걱정하느라 잠을 못잤어.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를 못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잠이 안오더라, 그래서 과제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과제도 손에 안잡혀서 밤바람 맞으면서 계속 걸었어."
시에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은 말해줄 수 있겠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누군가가 말했지.
허락을 맡는 것 보다는 용서를 받는 게 더 쉽다고.
용서 받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허락을 맡으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지난 며칠 동안 흑마법사한테 시달리고,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잤다 이거지?"
"어... 그렇지?"
"도망가지 않게 한번에 잡기 위해 학장이랑 손을 잡았고 말이야."
"웅..."
"우리가 걱정할까봐 지금까지 말 안하고 있다가 일이 해결되니까 그제서야 말했다.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시에린이 바닥을 살짝 찍었다.
"그래, 정말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었네, 네가 어제 말해줬으면 나는 오늘보다 더 큰 걱정을 하고 머릴 싸맸을 테니까."
시에린이 억양을 올리며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후우... 네 심정도 이해가 되니까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
"미안."
"미안할 거 없어. 너도 너대로 우리를 배려해 준거니까... 근데 개 빡치네. 감히 플레아를 노려?"
시에린의 눈에 이글이글 거리는 불꽃이 자리 잡았다.
'저주 걸렸다는 말까지 했으면 눈이 아예 타버렸겠는데?'
"어디 다친덴 없지? 몸에 이상도 없고."
"평소랑 똑같아."
잠재력 깍인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러면 됐어... 이따가 점심시간에 다같이 모였을 때 한 번 더 이야기 하자."
"그래..."
"그동안 고생많았어, 많이 무서웠지?"
무섭진 않았는데... 라고 하기엔 어제는 너무 피폐하긴 했어.
"많이는 아니고, 조금 정도?"
"오늘은 수업듣지말고 양호실 가서 누워있어. 학장도 한 패라면서, 아마 허가 해줄거야."
"됐어. 이제 슬슬 기말고사잖아. 공부해야지."
그리고, 달리 해야할 것도 있고 말이야.
며칠전에 학장이 나에게 해준 충고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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