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흑마법사의 습격3
* * *
너무 놀라서 바닥에 주저 앉았을 때 시에린의 시체가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전부 너 때문이야."
'아, 환각이구나.'
차라리 말을 안했다면 조금은 더 무서워했을 지도 몰랐는데 시체가 말을 하니까 흑마법사의 수작이라는 게 확실히 들어났다.
'상대가 흑마법사라는 걸 몰랐으면 고생 좀 했을 지도 몰랐는겠는데?'
애들이 나를 저주하는 꿈을 매일 같이 꾸고 시에린이 목매달고 죽어있는 환각을 볼 정도면 내 정신상태에 큰 이상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흑마법사가 환곽을 보여주는 지 모르고 순수히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맘 고생을 많이 했을 지도 몰랐다.
몸을 으슬으슬 떠는 척을 하면서 귀를 막았다.
"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나서지만 않았어도 나는!"
귀를 막았지만 환청 계열로 들려오는 소리라 전부 다 들렸다.
"맞아...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이번엔 피 투성이가 된 라이넬이 나를 향해서 기어오고 미네타가 위에서 뚝 떨어져 내 옆에 착지했다.
'아직 환각으로 나에게 촉감을 구현하진 못하나 본데?'
진짜 무섭게 하려고 했으면 미네타를 내 머리위로 떨어뜨렸겠지.
"다 꺼져!"
겁을 단단히 먹은 척을 하면서 소리쳐다.
단순한 환각인 친구들의 시체들은 내가 몇번 발버둥 치자 금세 사라졌다.
'악몽이 아니라 환각으로 괴롭힐 정도면...'
대충 4일 정도 지나면 최소한의 순간이동은 할 수 있게 되겠는데?
겁 먹은 척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환각을 무서워 한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너 때문이야."
흑마법사는 왜 병신 같이 너 때문이라는 말 밖에 못하는 걸까? 차라리 미안해, 나 때문에... 같은 말을 했었으면 훨씬 현실성 있고 가슴이 먹먹했을 텐데.
환상으로 구현되었다고 해도 겉으로 보기엔 실체랑 완전히 똑같아서 그렇게 말했다면 나도 죄책감이 밀려 들었을 수도 있다.
"꺄아아아악!!"
그래도 무서운 척은 해줘야지.바로 바닥에 주저 앉고 옷을 들고 밖으로 튀었다.
그리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바들바들 떨었다.
실제로 춥거나 무섭지 않은데 떠는 척을 하려다 보니 잘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흑마법사도 나의 모든 반응을 완벽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 연기면 충분했다.
침대에서 바들바들 떨다가 잠에 들었는데 이번에도 악몽을 꿨다.
친구들이 나를 탓하면서 나를 때리는 꿈이었는데 꿈이라서 고통은 명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내 친구들이 나를 때릴리는 죽어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무섭지 않았다.
"으으..."
그래도 제대로 된 잠이 아니라 흑마법사로 인해 변질 된 꿈을 꾸는 피로도는 충분히 있는 모양이었다.
잠을 하나도 못 잔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힘든 몸을 이끌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구석에서 내 친구들이 시체인 상태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어제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습격을 당했기 때문에 옷은 제복그대로인 상태였다.
반으로 들어가니 애들이 나를 보고 쑥덕거렸다.
"오늘 플레아님이 많이 피곤하신 가봐..."
"머리도 헝크러지고... 옷도..."
대부분 나를 걱정하는 말 들이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피곤한 얼굴이라서 오히려 퇴폐미가 넘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게 매력 98의 위엄인가.'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고 했지만 계속 잠이 쏟아져서 졸기 시작했다.
'아... 자면 안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니 그대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흑마법사가 주변에 없음에도 친구들의 시체를 본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애들이 죽는 꿈을 꿨다.
"플레아... 일어나!"
"헉!"
언제 잠든거지?
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보니 시에린이 보였다.
"시에린?"
"4교시에 잤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시에린을 만졌다.
다행이 잘 살아있었다.
"너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어?"
"별 거 아니야."
시에린과 함께 급식소로 이동하면서 유리를 통해 얼굴을 확인하니 피로도는 확실하게 사라져있었다.
머리가 헝크러 지고 옷이 제대로 정돈이 안됐지만, 이건 4교시에 졸아서 그런거라고 하면 되겠지.
"플레아 너 곧 시험이라고 너무 빡세게 공부하는 거 아니야?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수업시간에 자면 본말 전도니까 푹 자."
"어, 알았어."
다행이 애들의 의심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고 다시 12시가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
물론 학장이 나를 배웅해 줬고.
"앞으로 3일 정도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아요."
"알았다. 흑마법사를 불러 드릴 때 말해라."
기숙사로 돌아가서 내 방 앞에 섰다.
"후우..."
어제는 친구들이 시체로 변해서 내 정신을 갉아 먹었다.
'오늘은 환각통 정도는구현 될지도 몰라.'
환각으로 내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시점에서 이미 내 공포는 극한까지 치다를 수 있었다.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애들이 나를 만지는 감각이 그대로 구현 될테고 악몽 속에서 맞는 건 괜찮지만 현실에서 맞아서 고통이 느껴진다면 내 정신은 빠르게 피폐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함부로 문을 여는 게 무서워졌지만 지금 열지 않으면 한 평생 흑마법사에게 고통을 당할 걸 생각하고 바로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는데 무언가가 내 볼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들어와. 거기서 뭐해."
"꺼져 이 개새끼 들아!"
누군가의 환각을 향해 손을 휘둘러서 일시적으로 없앤 뒤 침대쪽으로 뛰어갔다.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벽에 살짝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미 반년이 넘게 왕복했던 길이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침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 잠이와?"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어."
퍽!!
환청과 함께 내 허리 부근에 환각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물리력을 가하지는 못하나 보네.'
허리가 아프긴 했지만 몸이 움직이진 않았다 단순히 아프기만 한 환각통이라면 이를 악물고 견뎌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방문을 나서는 내꼴은 정상이 아니었다.
몸은 파들파들 떨렸고 눈에는 다크 서클이 가득했다.
밤새 온몸을 때려대는 환각통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지금도 몇몇 부위가 욱신욱신 거리는 듯 했다.
겨우 1층으로 내려와서 걷는데 주변에 있던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이 나를 부축해줬다.
'그렇게 심각하게 보이나?'
반에 도착해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업드렸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느낌에 깨어났다.
"플레아? 너 괜찮아? 애들이 네 꼴이 말이 아니라는데?"
"어?"
아무래도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최대한 시에린을 보지 않기위해 고개를 돌리고 일어났는데 시에린이 내 앞으로 몸을 옮겼다.
나도 모르게 몸을 잠식한 공포에 몸이 살짝 떨렸다.
"어제 잠 못잤어?"
"아냐, 잘 잤어."
"거짓말 하지마. 누가봐도 잘 못 잔 것 같은데..."
시에린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미네타와 라이넬도 우리반에 도착했다.
'후우... 플레아, 진정하자. 어차피 다 환각이었잖아? 그냥 피곤해 하기만 하면 되지 애들한테 겁먹을 필요는 없어. 얘네들은 나를 원망하고 때릴 애들이 아니라고.'
그렇게 암시를 하고 애들을 바라보니 겁먹어서 몸이 떨리는 건 좀 나아졌다.
"너 진짜 왜그래? 이번 기말고사에 목숨 걸었어?"
'애들 걱정 안 시키려면, 그냥 기말고사에 목숨 건 걸로 치는게 나으려나?'
앞으로 이틀만 더 버티면 된다. 그 때까지만 속이자.
"미안... 빡세게 공부했네."
"하아..."
시에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말했잖아. 공부도 적당히 자면서 해야지 잘 되는 거란 말이야. 오늘은 꼭 제시간에 자! 알겠지?"
"알았어. 잘 잘게."
"내일도 이 상태여봐. 나 진짜 화낸다?"
"오늘은 일찍 잘게. 됐지? 수업 시작하겠다. 너희도 너희반으로 돌아가."
애들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도 결국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애들이 자기반으로 떠난 걸 확인하자마자 바닥에 엎어져서 잠을 청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애들이 나를 깨우러 왔는데 밥만 먹고 다시 잤다가 애들이 하교하는 하교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까지 못했던 공부를 오후에 몰아서 했다.
"안 갈거야?"
...
밤 12시 30분이 되자 학장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가야죠..."
미친듯이 두려웠다.
오늘이면 이제 물리력까지 행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의 물리력이 아니더라도 이불정도는 걷어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가야지...'
난세에서 흑마법사의 습격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흑마법사를 처치하지 못하면 평생 처리하지 못한다.
지독하게 숨어서 나를 공격해오고 게임이 끝날때까지 계속 정신력을 깍아먹는 이벤트가 계속 발생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끊어 버려야해...'
챙길 걸 다 챙기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옆에 학장이 있을 땐 든든했는데 기숙사안으로 들어오니 몸이 덜덜 떨렸다.
내 방문 앞에서 10분간 멍하니 서있다가, 조심히 방문을 열어봤다.
끼이익!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방문이 활짝 열리고 내 멱살이 잡아 끌리는 느낌과 함께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