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26화 (126/312)

〈 126화 〉 황실 연회­6

* * *

이틀차 연회가 시작됐다.

어제 입었던 제복을 마법으로 빨아서 다시 입고 온 나는 이번에도 구석에 방치돼서 음료수와 디저트만 먹는 신세가 될 줄 알았지만 이번엔 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는 친해지나 마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반드시 친해져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누구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응대했다.

누누히 말하지만 세력이 약할 때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아예 강한 인상을 잡고 세력을 끌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건 당장 강하게 세력을 키울 자신이 있거나 군주 자신이 소드마스터 정도는돼야 가능한거고 우리같은 약소 세력은 다른 세력에게 최대한 잘 보이기 위해 굽씬 거리는 게 맞다.

사실 남자인데다가 잘생겼고, 아무리 제도에서 영웅이라 불린다고 해도 지방파귀족들은 잘 모를게 분명했기 때문에 차별을 당하거나 대놓고 찝적대는 애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황녀님이 먼저 찝적거려주신 덕분에 나에게 다가온 모든 여성들이 나를 상냥하게 대해줬다.

특히 황실파에 가까운 이들은 내가 나마흐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시작했다.

'정작 나마흐의 제자로 유력한 프로트라인은 나름 경계하면서 다가간걸 보면 내가 제대로 된 세력이 없다는 게 크게 작용했겠지.'

험준하지만 나름 자신의 영지를 가지고 운용할 수 있는 프로트 라인과, 명성만 있고 그 외의 모든 것이 없는 우리 세력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른게 맞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연회장에서의 점심은 밖에 나가서 해결해도 되고, 연회장 내에서 해결해도 되는데 대부분은 연회장내에서 해결하는 편이었다.

그게 초대한 이에 대한 예의기도 하고, 주변 식당을 찾아가려면 아예 황궁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에 걸리는 시간도 있었으니까.

'연회 음식이 맛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먹는 것에만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 점심시간중에서는 세력간의 왕래를 막아 놓는 편이다.

규칙으로 막아놓은 건 아니고, 밥먹을 때는 가만히 앉아서 밥만 먹어야지 하는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다녀왔다."

"잘 다녀왔냐."

그렇다고 자신의 세력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점심시간은 지금까지 어느 세력과 무슨이야기를 나눴는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됐다.

"남부의 변경백이랑도 나름 친분을 나눴어. 동부랑 다르게 제국에대한 충성이 머리 끝까지 박혀 있던 여자더라고,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래.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데."

"그 도움이라는 게, 군벌이 아닌 중앙세력에 대한 도움이지?"

"당연하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영지를 얻고 세력을 키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 중앙에서 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지."

"근데 그렇게 명시하진 않았지?"

"어, 분명 도움을 준다. 고 했어."

남부에서 세력을 키울 확률이 상당히 높을 것 같은데, 각오하라고.

"꿀 판매 루트는 좀 찾아놨어?"

"황실파 사람들은 황녀님 소개로 빠르게 처리돼서 순수 지방파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좀 나눴어. 옆에 미네타를 데리고 말하니까 설득도 쉽더라고, 선 주문 받고 나중에 배달해 준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사람 많더라, 잭스펠애들이 들으면 좋아하겠어."

"그러게 좋아하겠네."

나도 좋고 말이야.

본격적으로 꿀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돈이 빠르게 모일 거다. 부피대비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하이네스 산 꿀을 무려 수수로 20%나 받아가면서 판매하는 거니까.

'한번 돈을 벌기 시작하면 확장하는것도 더 편하겠지.'

당장 파는 건 미네타의 꿀밖에 없고, 그 꿀마저 동나면 더 팔 것도 없겠지만, 잭스펠 애들이 그 전에 다른 물건들도 잘 판매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만들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돈을 벌면 일단 사병부터 만들자.'

당연한 말이지만 제도에서 사병을 훈련시키는 건 불법이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다 만들고 있단 말이지?

지역의 조폭으로 위장시키고 몰래 훈련을 시켜서 제도에서 일이 발생했을 때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병사들이다.

'당장 쓸 건 아니지만, 동부왕국과의 전쟁을 제대로 치루러면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정예병이 있어야 해.'

드레이크의 영입도 거의 끝났으니 훈련은 드레이크에게 맡기면 되겠지.

"너한테 찾아온 사람들은 뭐라고 했어?"

"대부분 내 얼굴한 번 보려고 온 사람들이고 영양가 있는 사람들은 별로 안 왔어. 끽해야 벨렌 후작가 정도?"

"벨렌 후작가? 거기는 큰 도움 안 될텐데? 완전 지방파잖아."

"후작가 정도 되면 그냥 개인적인 친분만 있어도 이득이야."

"그렇기는 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이동하려고 할 때 내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포착됐다.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둘러쌓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니 황실의 종업원을 한 세력이 붙잡아서 괴롭히는 듯 했다.

'그렇게 강한 세력도 아닌 것 같은데 좀 참견해 볼까?'

이런데서 사사로운 미담을 쌓아두면 좋겠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이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시에린이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시에린이 정말로 분노한 표정으로 남자를 괴롭히고 세력을 노려보고 있었다.

늘 웃고, 진지할때는 진지해도 진심으로 화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흉흉한 눈빛으로 여자들을 노려보고 있는모습을 보니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눈길이 갔다.

'왜 그러지?'

저 세력이랑 악감정이라도 있나?

단순 악감정을 가진 것만으로 이렇게 큰 분노를 낼리가 있나?

저쪽 세력을 자세히 살펴보니 괴롭힘 당하는 남자의 모습이 굉장히 낯이 익었다.

푸른 머리에 여린 몸...

시에린을 슬 쳐다봤다.

'가족인가 보구나. 오빠인가?'

황실에서 일하고 있다면 아카데미에 졸업한 이후의 나이일 확률이 높으니 아마 오빠겠지.

여자들을 바라보며 분노를 불태우던 시에린을 결국 자기 오라비를 외면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마 여기서 자기가 저들에게 항의하면 나에게 방해가 될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어차피 하려고 했던 일인데 시에린한테 점수도 딸 수 있겠네.'

천천히 걸어서 여자들과 시에린의 오빠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지금 뭐하고 계신건가요?"

"넌 누구..."

가장 가까이 있던 여자가 사납게 뒤돌아보다가 내 얼굴을 확인한 후 멈칫했다.

"이거 꼬마 영웅님이시잖아? 우리가 뭘한다고 당신이 참견하지?"

'하따마, 북부 사람들인가 보네.'

아무리 지방에 산다지만 내 이름값이 있는데 너무 거친거 아니야?

애초에 적으로 시작할 마음인게 아니면 외교의 시작은 부드럽게 들어가야 한다고.

"황녀 전하께서 여신 연회장에서 황녀님이 고용한 웨이터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서 참견하고 있는 겁니다만?"

철저하게 황녀의 이름을 빌려서 말했다.

이 사람들, 날 보고도 이렇게 거친 걸 보니까,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끝도 없어 보였다.

차라리 황녀님의 이름을 빌려서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게 낫지.

아무리 거친 북부의 인간들이라도 황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공격하니 당황한게 보였다.

"괴롭히다니, 우리는 적법한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 웨이터고 뭐고 일단 연회에 온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있는 거잖아? 그걸 우리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네가 참견하지?"

"저는 괜찮습니다!"

보다 못한 시에린의 오빠가 덜덜 떨며 크게 소리쳤다.

'사나이가 혀를 꺼냈으면 엿하나는 먹여줘야지."

"너희들 지금 뭐하나?"

뒤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내 앞에 있던 여자들이 바싹 굳어버렸다.

"미안하군, 내 부하들이 좀 많이 거칠어서 말이야. 몇 번이고 주의를 줬는데도 이지랄이군."

내 옆으로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미남이 지나갔다.

"내가 연회에선 닥치고 있으라고 했을텐데."

"죄송합니다 주군."

그에게서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에 여자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하아... 네들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남자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더니 시에린의 오빠한테 다가갔다.

"내 부하들이 자네에게 결례를 일으켰군 미안하네."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시에린의 오빠가 무섭다는 티를 팍팍내며 덜덜 떨었다.

"하아, 그래, 많이 무서웠겠군 나중에 배상금을 따로 보낼테니 지금은 이만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시에린의 오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꼬마 영웅이라 했었나?"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고 다가왔다.

"이름 값은 하는 군,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됐을 텐데 말이야."

'그야, 미담 남기려고 온거지.'

시에린의 오빠기도 하고.

"나는 아이작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아이작의 손을 잡으면서도 굉장히 떨떠름 했다.

왜냐면 난세에서 아이작은 여기 있으면 안 됐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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