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25화 (125/312)

〈 125화 〉 황실 연회­5

* * *

황녀의 작업은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다.

솔직히 성희롱을 당할 것 까지 걱정하고 왔었는데 황녀는 정말 숙녀 답게 이야기를 주도했다.

"디저트를 먹는 것이 취미라니, 참으로 귀여운 취미로군."

"디저트 외에도, 간간히 체스를 둡니다."

"체스라, 재밌는 취미를 즐기는 군, 자네와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취미야."

황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서로의 취미나 관심사 같은 개인적인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슬슬 꼬리 좀 쳐볼까?'

당신 때문에 다른 세력들한테는 가지도 못하고 하루라는 시간을 낭비했는데 내가 가져가야 하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마침 지금 하는 이야기가 요즘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 였기 때문에 단어 선정에 주의해 가며 입을 열었다.

"꼬마영웅으로서 이름이 높은 데 근래에는 무엇을 하고 있나? 공부만 하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상단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단이라... 그래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자네의 이름을 걸고 만든 상단이었지?"

"네, 제가 돈이 많아야 제국에 더 큰 지원을 할 수 있으니까요."

좋아, 이 정도면 대화 흐름 충분히 괜찮아.

"무엇을 파는가?"

"지금까지는 잡다한 것들을 팔아왔는데, 앞으론 지방에 있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꿀을 팔아볼까 합니다."

"꿀을?"

황녀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귀족들을 상대로 꿀을 판다라... 하이네스가의 꿀 정도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만?"

나에대한 조사를 하나도 안했구나?

하긴, 이전엔 나에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가, 오늘 막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연회 끝나자마자 바로 부른 건데 조사를 할 시간이 있었을리가 없지.

"하이네스가의 꿀이 맞습니다. 저희 세력에 하이네스와 연관이 깊은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그 사람이 하이네스 백작가의 차녀인 미네타 하이네스라는 걸 밝히면 괜히 귀찮아 질 것 같아서 적당히 뭉뚱그리고 넘어갔다.

"호오?"

"그런데 문제는 저희가 지방의 귀족들과는 연이 없어서..."

"내가 연결해 주도록 하지. 매년 꿀을 얻기 위해서 제도나 하이네스 백작가로 이동하는 이들을 안다. 그들에게 가면 적당한 가격을 받고 꿀을 판매할 수 있을거야. 내 추천장도 써주겠다."

'감사합니다 황녀님.'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웃으니 더 예쁜 것 같군."

황녀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이거 완전 호구인데?'

하지만 더 뜯어낼 순 없다.

뒤에서 황녀의 최측근이 나를 보고 있으니까.

꿀을 판매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야 황녀의 호의정도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더 큰 걸 원할 경우 저 사람이 나와 황녀의 만남을 막을 거다.

세력을 돌리는 참모 입장에서 한 번 만나면 자기 군주가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할리 없으니까.

'황녀랑 저 인간의 유대가 조금만 더 약했어도, 작정하고 뒤흔드는 건데...'

안타깝게도 저 남자는 아주 어릴 적 부터 황녀를 모셔왔던 시종임과 동시에 아주 유능한 인재였다.

내가 혀를 놀려서 저 남자를 황녀의 곁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황녀 세력은 누가 운영해?

한번에 많이 빼먹으려고 하면 오래 못쓴다 오래오래 천천히 빼먹는 은행이자 느낌으로 나둬야지.

"저녁은 먹고 왔나?"

'먹을 시간도 안주고 바로 불렀는데 어떻게 밥을 먹냐.'

"안먹었습니다. 황녀님."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말했다.

"식사를 준비하도록, 오늘은 플레아와 함께 먹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남자가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음식을 내오게 했다.

"한동안은 혼자서만 음식을 먹었는데, 오늘은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 기쁘구나, 간혹 너를 불러서 같이 밥을 먹어도 되겠나?"

아직 밥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에프터 신청이야? 진도가 너무 빠르잖아.

"황녀님이 괜한 소문에 휩싸이실까봐 걱정이 됩니다."

"괜한 소문이라니. "

황녀가 엄한 말투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무섭진 않았지만 약한 남자 코스프레를 위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다만 저같은 외간 남자를 자주 부르시는 건 그렇게 좋지 않..."

"닥치거라."

­쿵!!

황녀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니 테이블이 한방에 박살 나 버렸다.

'어우, 화끈하시네.'

"그래서, 나랑 같이 밥을 먹는 게 싫다는 건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입에 황녀님이 오르내리는 게 마음에 걸렸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자주 먹자는 것도 아니고 가끔 먹자는 건데, 그것도 허가해주지 못하나?"

"알겠습니다. 황녀님이 원하실 땐 언제든 불러주세요."

환녀가 씩씩 대면서 의자에 기대 누웠고, 사용인들이 잔해를 치우고 새 테이블을 가져왔다.

나름 폭력 비슷한 걸 휘두른 상태고 황녀가 흥분한 상태인 만큼 위험한 상황이라 느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황녀 이 사람, 보기 보다 되게 순한 사람이거든.

테이블이 다시 오고 음식이 하나 둘 씩 테이블 위에 올라오자 황녀가 진정된듯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본녀가 많이 흥분했구나. 그대가 나를 피한다고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주 고개를 숙였다.

평민 입장에서 황녀님이 고괘를 숙이신 것이니 바닥에 납짝 업드려도 부족할지 몰랐지만 내가 그 정도의 예를 차리기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밥만 먹고 돌아가거라, 그대도 자기 앞에서 테이블을 깨버린 년과 더 있고 싶지 않겠지."

"진짜 괜찮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입니다. 저는 오히려 황녀님이 실수를 인정하시고 사과를 하신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가?"

내 거짓말에 황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저녁을 먹은 이후엔 돌아가라, 너무 오래 있으면 그대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으니..."

황녀한테 몸 팔아서 이득 얻는 창남... 뭐 그런거?

'진짜 판 것도 아닌데 창남이라는 소리를 들을 순 없지.'

잔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황녀가 먹는 식사라서 그런지 모든 재료들이 고급스러웠고 가장 완벽한 조리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에 맞나?"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습니다."

내가 오늘 말한 말 중 몇 안되는 진심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아마 요리사들도 고마워 할 거다."

황녀가 음식을 먹는 나를 보고 헤실헤실 웃었다.

'내 생각보다 더 단단히 빠진 것 같은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봤다.

나는 중앙파를 몰아내고 어떻게든 황권을 잡으려고 하는 황자다. 그런데 내 쪽에 충성하는 애중에서 초선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미인이 나타났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황실을 향해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듯 보인다.

'확실히 안 빠지긴 힘든 상황이긴 해.'

나한테 빠진 황녀를 어떻게 이용해 먹는가는 이제 내 몫이겠지.

'황녀가 나에게 빠진 만큼 앞으로 미인계를 쓰는 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지.'

애초에 나는 지금까지 다 한 번도 미인계를 쓴 적이 없다.

마이테스랑 필리엣이 내 생얼을 보고 멋 대로 미인계에 걸려버리긴 했는데 내 의도는 아니다.

"이제 그만 먹을 건가?"

내가 식기를 내려놓자, 황녀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따.

"죄송합니다, 제가 배가 그렇게 크지 않은지라..."

테이블엔 아직 많은 음식이 남아있었다.

"그래... 알았다. 내일 연회가 끝난 뒤에 다시 한 번 그대를 초대하고자 하는데, 올 수 있겠나?"

"네, 황녀님이 불러주신다면, 당연히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내가 황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제야 안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배웅해주지 못 해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편히 쉬시죠."

황녀에게 꾸벅 인사하고 아까처럼 붕대로 얼굴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이리저리 돈 뒤에 눈을 떠보니 내가 예약했던 숙소 바로 앞이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시길."

황녀의 경호원 둘이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자리로 사라졌다.

"이제야 쉬는 구나..."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자애들이 잠옷을 입은 채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할 건 다하고 노는겨?"

"아, 플레아 왔어? 너 와야 할 수 있는 일들만 남아서 우리끼리 놀고 있었지. 이제 너 왔으니까 정리하면 되겠네."

"시에린, 질 것 같으니까 빼는 거야?"

"할 일은 하고 놀아야 하지 않겠어?"

재밌게들 노네.

"어차피 씻고 와야 하니까 하던 건 다 끝내."

"플레아 정도면 굳이 안 씻어도 향기로울 것 같은데."

"우엑, 시에린 너 진짜 변태 같아."

억지 헛구역질 한 번 해 준 후 숙소에 두 개 있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기숙사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황실에 있는 손님용 숙소라서 그런지 시설 자체는 아카데미보다 좋았다.

"으아아, 나른하다..."

가만히 앉아 있던 시간이 많아서 피곤하진 않았지만 몸이 굉장히 나른했다.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었나?'

미안 황녀님, 내일 못 만나.

연회장에 테러가 벌어지거든

내가 잘 못 한거 아니니까 용서해 줄거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