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청 십자가 연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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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파 귀족들의 만행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증거만 적었을 뿐이지 오늘 발표된 사태보다 더 심각한 사건도 많았고, 더 큰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제도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이유는 '누가' 이 일에 참여했는지 시민들도 다 알 정도로 크게 발표 됐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가해자를 추정했는데, 가해자쪽이 힘이 훨씬 강하다 보니 아니라고 잡아때면 그만이었다.
대부분의 사건이 현장을 덮친 게 아니라 나중에야 사건이 알려진 거라서 아무도 제대로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고발한 쪽도 일반 신문사라는 게 컸지.'
평민이 귀족들의 만행을 알아낸다고 할 수 있는 게 뭔데?
아무것도 없잖아. 귀족들이 가만히 냅두겠어? 언론 탄압 당할게 분명하니까 기사도 작게 내고 가해자도 불명이라고 적어냈겠지.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평민 남성 17명을 납치하고 고문하던 중앙파 귀족 5명이 현장에서 청기사단에 의해 습격당했다.
청기사단은 제국에 충성하는 기사단 중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예기사단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상대가 귀족들이어도 힘싸움이 됐다.
심지어 현장에서 발견하고 바로 구속했기 때문에 시간을 끌거나 다른 조치를 취할 시간도 없었다는 점이 컸다.
'상대가 그렇게 높은 귀족이 아니었다는 점도 크고.'
아무튼 청기사단이 중앙파 귀족 5명을 기소하면서 일이 커졌다.
중앙파 귀족들은 평민들이 먼저 자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벌을 내린 거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내새우고 있다.
'평소라면 통했겠지.'
증거도 얼마 없었고, 상대가 청기사단이 아니었다면 그 말도 안되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로 풀려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모든 증거를 마나 수정구에 담아 놨고 하필 상대가 청기사단이었기에 다른 중앙파 귀족들 조차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청기사단은 아직 쟁쟁한 무력 기구였고, 시민들도 모든 진상이 전부 밝혀지자 단단히 화가 나서, 일단 당장의 민심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거든.
'이 사건으로 청기사단의 수명이 조금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네.'
천천히 힘이 쇠락 하다가 중앙파 귀족들에 의해 갈갈이 찢어지는 데 이번에 중앙파 귀족들의 만행을 밝히면서 시민들 사이의 인지도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과장 조금 보태면, 내가 꼬마 영웅이라고 한참 불릴 때의 일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명예를 얻었으면 당분간은 어떤 중앙파 귀족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겠지.
이런 시점에서 청기사단을 건드렸다간 분노한 시민들과 다른 정적들의 합작에 의해 사라져 버릴 테니까.
'그런데 리트레이트 이 양반, 너무 과격한 거 아니야? 내가 준 정보가 거짓정보면 어떻게 하려고 청기사단을 직접 보냈데?'
청기사단이 현장을 급습했는데 아무도 없다?
그리고 몰래 숨어있던 중앙파의 끄나풀이 이상한 기사라도 냈다? 그러면 청기사단의 세력이 크게 깎일 것이 분명했다.
청기사단은 근본적으로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기사단이고, 단장인 크리스틴 또한 청 십자가 연맹의 일원이었기에 청기사단의 세력이 약해지는 건 리트레이트 입장에서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어쩌면 크리스틴의 독단일 수도 있겠는데?'
리트레이트는 정보만 넘겨 줬는데, 크리스틴이 나를 믿고 확실하게 병력을 투입한 거지.
크리스틴이 나에게 보였던 근거 없는 믿음을 생각해 보면 이쪽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다.
'어떻게 됐든 결과는 좋아.'
이 한방으로 중앙파 귀족이 잠시 주춤할 태고 중앙파귀족에 반대되는 세력인 청기사단의 크기도 커졌으니까.
이런 저런 정보를 종합하며 동아리 방으로 들어서니 시에린이 먼저와서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왔어?"
"어, 왔다."
"얘기 들었지? 이번에 청기사단이 일 하나 벌인거."
"들었지, 그거 때문에 온 제도가 난리잖아."
"시민들도 분노하고 제대로 덜미가 잡힌 상태라서 아마 이번에 잡힌 5명의 중앙파 귀족들은 확실하게 처벌 받을 거야. 애초에 그렇게 높으신 분들이 아니니까 중앙파 입장에서도 잘려나가도 그렇게 아프지 않은 꼬리겠지."
"청기사단은 다시 어깨를 필테고 말이야."
"그거 때문에 머리가 아파, 작전을 다시 세워야 하거든."
작전? 무슨 작전? 청기사단 관련해서 작전을 세우던게 있었나?
"무슨 작전을 말하는 건데?"
"청기사단을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작전을 세우고 있었어, 요즘 세력이 천천히 약해지고 있어서 잘만 하면 어떻게 집어삼킬 수 있었을 것 같거든,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날개가 달렸으니, 아마 한동안은 엄두도 못낼거야. 어쩌면 평생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르지."
시에린도 참, 꿈도 크네.
"그래도 네가 제국에 충성을 다짐한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던 건데 이렇게 되니 답이 없어. 그래서 일단 포기하고 경과를 지켜보면서 새 전략을 채우려고."
"네가 고생이 많다."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지."
시에린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내 케이크를 꺼내고 홍차를 타니 다른 애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늘 같이 다니는 4명 뿐만 아니라 티르와 드레이크도 있었기 때문에 말 하는 데에 조금의 조심성이 추가됐다.
'얘네들도 결국 완전히 내 세력으로 들이긴 해야해.'
근데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3주 이상의 시간을 들여가면서 나에게 감화 시켜야지,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달리 한 이야기는 없다. 공부는 잘되냐 앞으로 어떻게 지낼거냐 이번에 발생한 중앙파귀족의 만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냐 등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내일정도면 연락이 오려나?'
이 정도로 큰 도움을 줬으면 당장 내일 청 십자가 연맹에 가입됐다고 연락을 줘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씻은 뒤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누구세요?"
"메이드입니다."
메이드? 요즘엔 일찍일어나고 방청소도 내가 다 해서 메이드의 노크를 받아 본적이 없었는데 왠일로 찾아온거지?
"네."
문을 열고 나가니 커다란 살덩어리가 보였다.
이쪽 메이드 복은 가슴이 부각돼서 좋단 말이지.
"오늘 10시에 오시랍니다."
메이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한 후 문을 닫고 나갔다.
'너무 간결하게 줄인 거 아니야?'
아무리 정보가 빠져나갈 걸 염두에 뒀어도 그렇지...
게다가 지금이 9시 반이라고, 10시 까지 오라는 건 지금 당장 출발하라는 소리잖아.
'그나저나 기숙사 메이드 중에서 리트레이트의 수하가 있었다니, 그건 몰랐는데?'
메이드로 꾸미고 온 건 아니다. 지나다니면서 몇 번 본 적 있는 메이드 였으니까.
한달에도 3명 이상이 물갈이 되는 메이드들이었는데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들키지 않는 실력은 뛰어난 모양이다.
'일단 몸을 단단히 숨기고 가야지.'
근래들어 잘 쓰지 않았던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 쓴 뒤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땅에 부딪히기 직전에 큐브에 저장되어 있던 마법을 사용하니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어디로 오라는 말이 없었으니 당연히 저번에 만난 장소겠지?'
어두운 밤길을 조심히 걸어서 리트레이트의 저택에 도착했다.
경비가 한 명 서 있긴 했는데 나를 신경도 안 쓰는 눈치라서 그냥 스쳐 지나갔다.
낮이었다면 사용인이 있었겠지만 밤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집안을 조금의 빛에 의존하여 걷다보니 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발견했다.
끼이이익
"저 왔습니다."
"생각 보다 빨리 왔군."
"전달 받은 시점이 9시 반이어서 말이에요. 그냥 바로 출발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게."
어제 앉았던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너무 늦은 시간에 부르신거라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러면 어떡하나, 낮에 부르는 건 보는 눈이 많은데 말이야. 어제도 부르고 오늘도 또 부르는 건 자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게다가 나는 중앙파귀족들로 부터 완벽하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데 괜히 자네와 두 번 만나면서 내가 범인일거라는 정보를 넘겨주기 싫었네."
"네, 네 알겠습니다. 왜 부르셨어요?"
내가 당돌하게 물어보자 리트레이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네가 준 정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이미 잘 알 거라고 생각하네."
"제도 전체가 난리가 났죠. 청기사단은 영웅이 됐고요."
"이정도면 자네가 중앙파에서 보내온 첩자라는 생각은 사라져 버릴 것 같네, 아무리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중앙파 귀족 5명을 날려가면서 자네를 청 십자가 연맹에 첩자로 보내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앙파 귀족들이 내가 청십자가 연맹에 속해 있다는 걸 알리가 없다. 일단 틀림없이 청 십자가 연맹의 누군가가 추천을 해줘서 온것이겠지."
'빙고, 그래서 할머니를 찾아왔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입안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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