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116화 (116/312)

〈 116화 〉 밀당

* * *

내가 새 파벌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온 아카데미에 쫙 퍼졌다.

하이네스 파벌이 아닌 아이데스 파벌이라는 것도 상당히 센세이션했는데 원래 파벌의 장은 그 파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국룰처럼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헬링 파벌에 들어갈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었고.'

유감! 밀당을 해야해서 헬링 파벌엔 못 들어가요.

'헬링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상당히 똥줄이 타고 있지 않을까?

분명 자기 거라고 생각했던 놈이 갑자기 자기 파벌을 세운다?

'초조해질 수 밖에 없지.'

밀당에서 가장 중요한건 내가 밀당을 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 위해 너를 미는 게 아니라 진짜 밀 수밖에 없어서 밀고 있다는 걸 명시시켜줘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했던 행동에 후회를 가지지.'

내가 파벌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나에게 호들갑을 떨던 반 애들 너머로 헬링파벌에 속한 여성 한 명이 나를 슥 보고 지나간 걸 발견했다.

프레스티아의 명령으로 나를 보러 왔다고 확신할 순 없겠지만, 헬링 파벌도 나와 프레스티아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

'어떻게 나올래?'

프레스티아의 해답은 점심시간에 바로 밝혀졌다.

평소에 밥을 같이 먹는 4명에 티르 까지 더해서 5명이 밥을 다 먹자 벨리아가 나를 찾아온것이다.

"프레스티아님이 플레아님을 모셔 오시 랍니다."

"혼자 가야 하나요?"

"되도록이면 혼자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친구들을 데려가는 게 좋을까?

제대로 밀고 싶으면 호위로 딱 라이넬 하나만 데려가서, 나는 이제 당신과 만날 때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나도 그녀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됐다.

"갔다올게 얘들아."

결국 혼자가는 걸 선택했다.

단 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벨리아를 따라서 이동했다.

"왔나?"

도착하니 보이는 프레스티아 단 한명이었다.

벨리아도 허리를 살짝 숙이고 떠나는 걸 보니 애초에 나와 독대하기 위해 나를 부른 모양이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떨렸다.

나를 좋아하는 프레스티아는 어떤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까?

그리고 천천히 멀어져 가는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할까?

"파벌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네."

처음부터 묵직한 기세가 나를 내리눌렀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반년간의 적응이 끝난 나는 고작 이 정도 기세로는 떨지 않았다.

"분명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하지 않았나?"

프레스티아는 굉장히 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저 말 속에서 애절함을 느낄 수있었다.

"제 파벌을 넘겨드리기로 했죠."

"그래 잘 기억하는 군."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프레스티아가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는 제국에 충성한다고, 말씀 드린 적 있었나요?"

"흑마법사의 일이 처음 벌어질 때 그리 말했었지."

"그 때의 저는 제가 황실에 들어가서 노력하면, 제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어차피 졸업하면 만나지 않는 파벌 정도는 헬링님께 넘겨드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다르다는 건가?"

"물론이죠."

물론 어느 하나 진실된 말이 아니었다.

황실에 들어가고자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제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제국을 바로 잡으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군."

"이전엔 그걸 몰랐죠."

"그래서, 이젠 스스로 힘을 기르기 위해 파벌을 선포했나?"

"맞습니다."

"내 밑에서 힘을 기르는 방법 도 있었을 텐데?"

좋아, 지금부터 본방이다.

"헬링님 밑에서 들어가면 제가 상처 받았을 것 같습니다."

"뭐?"

"헬링님을 향한 제 마음을, 헬링님은 완전히 무시하시고 저를 장기말로 쓰셨을 테니까요. 그 충격을 견뎌낼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절대 좋아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도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프레스티아에게 고백을 하는 건, 내가 그녀를 완벽히 정복한 이후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냥 혼자 성장하면서 헬링님께 소소하게 도움이 되면서 먼 발치에서 지켜보자고요. 저는 들에 피어난 꽃일 뿐이고, 헬링님은 저 하늘 위의 별이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프레스티아가 대꾸할 틈도 없이 뒤로 돌았다.

여기서 갑자기 프레스티아가 나도 너를 좋아했어! 라고 말해버리면 모든 일이 엉켜 버린다.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떠나갔다는 후회감만 남겨둔 채 떠나가는 게 좋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독대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프레스티아는 나를 잡지 않았다.

앞으로 세계를 호령할 영걸이 될 프레스티아는 연애에 관해서는 쑥맥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이걸로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지?'

아닐거다.

프레스티아에게 나 정도 인상을 심어준 다른 남성이 없을 테고 내가 잘못해서 프레스티아를 민 게 아니라 철저하게 프레스티아의 잘못을 이용해서 밀어낸 것이기 때문에 후회를 하면 후회를 했지, 내가 싫어질 일은 없다.

'미안 프레스티아,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너를 정복하지 못하는 데 어찌하겠니.'

프레스티아는 정말 높은 산이니까. 이렇게 딜을 넣어두지 않으면 절대로 정복하지 못한다.

***

왜 일까?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나를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내 마음을 산산히 짓밟는 것 같았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뛰어가도 금방 잡아챌 수 있는 거리였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대체 왜?'

저 놈은 그냥 오만 방자한 남자놈일 뿐이었다.

'뭐? 제국을 바로잡아? 스스로 힘을 키워?'

남자 주제에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진심으로?

애써 부정해 봤지만 이성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저 놈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제국에 퍼진 저놈의 소문을 생각하면 진짜 제국을 고쳐 놓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시민을 지킨 꼬마영웅, 위대한 기사 나마흐가 그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렸다는 소문.

이 소문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떠나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충분하고도 남는 인지도를 가져다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를 이렇게 쉽게 포기해?'

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아직 나를 사랑한다고, 미친듯이 좋아한다고,

처녀의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놈은 명확하게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당장 뒤돌아 보기 전만해도 엄청난 애정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쉽게 포기한 게 맞나?'

나에게 협박을 당하고 맞을 뻔했을 때도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기세에 점점 익숙해 져가며 편한 표정을 지어왔지.

'절대 쉽게 포기한 게 아닐거야.'

사상과 사랑 속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울기도 하고, 힘들게 힘들게 선택을 하고 나에게 통보를 한 것이 틀림이 없다.

어쩌면, 걸어가면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사랑이 아니라 사상을 선택했지?

심지어 그 사상이 쪼개진 제국을 다시 원상태로 붙여놓겠다는 말도 안되는 이상인데?

'내 사랑을 얻는 게 그것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 건가?'

심장이 먹먹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마음이 있었잖아! 다른 남자들이랑 차원이 다른 그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홀려버렸잖아.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를 때리려고 한 건 내 마음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을 때라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지? 가식이 아니라 내 진짜 모습을 들어내며 사과할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지?

내가 너를 총애한다고, 나도 너에게 끌린다고 말하지 않았지?

'이미 잡은 먹잇감인 줄 알았으니까.'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은 너무 나도 명확하고 열렬했다.

첫눈에 반한 거라고 치기엔 굉장히 깊은 사랑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막대했다.

이 정도 대우에 놈이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실제로 지금도 놈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그래,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가능성 없는 걸 던져 버리고 조금 더 가능성이 높다고 느껴지는 이상을 따라 떠난 거지.

제국을 다시 묶어 놓는 게 내 마음을 얻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느끼다니, 웃음도 안나왔다.

"제국을 바로잡겠다고?"

그 말은 이 프레스티아 헬링 또한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의미지?

네가 내 야욕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제국을 먹어버리면, 결국 너도 내 손으로 올 수 밖에 없을 테지."

그래, 그러면 된 거다.

이제 와서 플레아에게 가서 사과하고 관계를 개선한다?

그건 나답지 않은 일이다. 너무 구질구질 하잖아.

"미련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네 이상을 산산히 조각 내주마."

그리고 정복해주겠다.

그리 생각하니 모든 게 명확하게 보였다.

"각오해."

내가 너를 정복할 테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