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개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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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나 썸을 타는 관계에서 밀당이라는 건 아주 필수적인 요소다.
늘 당기기만 해서는 상대에게 호구 잡히기 십상이고 늘 밀어내기만 해서는 상대방이 떠나가 버릴테니까.
그 동안 내가 프레스티아에게 했던 방식은 애매하게 나마 꾸준히 당기기 라고 볼 수 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의 명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을 숨기지 않고 들어냈으며 오랜만에 만나면 진짜 만나고 싶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줬다.
내가 그녀를 꾸준하게 당기기만 했던 이유는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스티아는 나를 단지 흥미롭고 잘생긴 남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근데 어제부로 확인이 됐지.'
프레스티아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어디에서 기원한건지는 알 수 없다. 순수하게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내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걸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꾸준하게 프레스티아를 좋아하는 티를 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그녀가 나를 신경쓴 다는 것이었다.
그 감정이 확실하게 좋아한다. 로 표출이 되지는 않았지만, 밀당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갈 수준은 되고도 남았다.
'기존에 짜놨던 전략을 조금 수정해야 겠네.'
원래는 프레스티아의 밑으로 들어가고, 먼 거리에 떨어져서 천천히 세력을 기르다가, 차츰차츰 말을 듣지 않다가 한 번에 프레스티아의 세력을 먹어치우고 내 앞에 무릎을 꿇릴려고 했는데, 아예 지금부터 황실로 간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질투심을 유발하는 작전을 쓰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지금까지는 이런 작전을 못 짰다. 질투심 유발하다가 괜히 프레스티아의 심기를 거슬러서 사망하면 어떡해?
아니면 괜히 악감정을 쌓아서 최후에 프레스티아의 세력을 무너뜨려도 내 밑으로 안 들어오면 어떡해?
'하지만 프레스티아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
이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내가 제국에 너무 충성하는 사람이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서라도 황실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아카데미를 다니면 된다.
헬링 파벌에 들어가지 않아도 일단 같은 아카데미에 있고, 아직 황실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프레스티아가 폭주할 걱정도 적다.
졸업하면? 미안하지만 졸업하기 전에 황실에서 영지 하사받고 내 땅 키울 거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동맹을 맺으면서 사상적으로는 적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너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계속해주면 되지.
그리고 세력을 키워서 제국을 내 손아귀에 넣은 날 고백하는 거다.
정말 완벽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마음도 있는 김에 지금 고백해서 그냥 잘 살면 안되냐고?
'당연히 안되지, 그럼 내가 밑으로 들어가잖아.'
군주 프레스티아의 남편 같은 호칭은 싫단 말이야.
그리고 그건 내가 프레스티아를 정복한 게 아니라 프레스티아가 나를 정복한 꼴이 되어버리니까.
이런 대 전략을 정리해서 시에린에게 말해줬다.
프레스티아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에 따라 황실과 프레스티아 사이를 줄타기 하면서 프레스티아를 자극 하는 게 어떨까? 하고 말하니 시에린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너도 참 인생 어렵게 사는 구나."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열심히 살아야지."
"썸녀랑 밀당하겠다고 우리 파벌 전체를 뒤 흔드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시에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물론 우리는 너라는 사람이 좋아서 따라다니고 있는 건 맞아, 그래도 너랑 헬링의 관계 때문에 대 전략 자체가 바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
"응? 밀당하느라 파벌을 흔들다니?"
"네가 한 얘기를 정리해 보면 이런거 아니야? 나는 헬링을 좋아한다, 헬링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근데 그냥 사귀기는 싫고 밀당을 할 건데 정치적으로 엮인게 많으니 정치적으로 밀당을 하겠다."
"아냐, 그건 원대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지."
그러고 보니 시에린한테 내 목표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없던 것 같네.
"너한테 내 목적을 말해 준 적 없었지?"
"그치, 늘 제국에 충성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우리한테 말하는 걸 해석해 보면 제국에 엄청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이 제국을 집어 삼키고 싶어."
시에린이 나를 바라보던 표정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뭐? 뭘 삼키고 싶다고?"
"제국."
"아니 진짜로? 그냥 적당히 사는 게 아니라 제국을 먹고 싶다고?"
"내가 말 안했었나? 군주가 되고 싶다는 말 까지는 했던 것 같은데."
"군주도 수준이 있지 않냐, 제국을 집어 삼킨다는 건 결국 이 제국땅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가 된다는 뜻인데 그게 말이 쉽지 되겠냐고."
"난 진심인데."
"그래 네 얼굴 보니까 진심인 것 같더라."
시에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계획은 있어?"
"일던 헬링님과 밀당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다 뜯어낼 거라는 계획은 있지."
"그거 말고."
"이곳저곳에 숨겨진 인재들도 찾았고, 돈 벌려고 상단도 운영 중이다. 재능이 기똥찬 녀석들이어서 벌써 수익률이 3배야."
"그걸로 될것 같아?"
"당장은 안되지."
씩 하고 웃었다.
"이 제국땅 전체를 먹으려고 하고 있는 거란 말이야.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야. 제국을 먹을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 어딨어. 그런게 있었으면 누구든 제국을 지배했겠지. 최대한 좋은 전략을 짜고 최선을 다해서 움직이면서도 결국 하늘에 내 운명을 맡기는 거지."
"진인사 대천명이냐?"
"그치."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우리 주군이 정말 정말 큰 꿈을 꾸고 있었네? 네가 제국을 먹는 다는 건, 결국 황제가 된다는 의미인데, 당연히 나한테는 공작 자리 정도는 주는 거지? 마디안이라는 성 뒤에 공작가라는 단어가 붙는 꼴을 볼 수 있는 거지?"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못해도 백작 정도는 줘야한다? 나름 창립세력이니까."
시에린이 씩 하고 웃었다.
'쟤도 참 미친년이야.'
자기 친구가 제국을 먹는다는 데 포기하란 말은 안하고 같이 동조할 생각이나 하고 있잖아?
"근데 친구야, 정말 중요한 사실이 있다."
"뭔데?"
"일단 현 황제가 물러날거란 보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건데? 일단 제국이 한 번 망해야 네가 제국을 차지할 거 아니야. 설마 반란으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는 다는 건 아니잖아? 한번 무너지고 분열된 제국을 네가 재통일 하려는 거지."
"맞아."
"황제가 물러나고 제국이 분열할거란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나한테 설명해 줘야 할 거야."
"일단 흑마법사, 요즘따라 더 기승을 부리지?"
"어, 제도에 직접적으로 침공하지는 않는데 주변도시에서 아주 난리야. 심지어 흑마법사들의 꽴에 넘어가서 제도에 반기를 든 마을도 나오고 있다니까?"
"그리고 북부, 요즘 야만인들 때문에 시끄럽다며?"
시에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저깨 왔다고 하지 않았냐? 정보가 왤캐 빨라?"
"상단 운영한다고 했잖아. 걔네한테 들었어."
"그래, 야만인이 시끄럽긴한데, 고작 그정도도 못 막을 만큼 약화되진 않았거든? 오히려 중앙에서 공을 세울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하던데?"
"그래, 바로 그게 문제야."
"뭐가 문제라는 건데?"
"공을 중앙파 귀족이 세운다는 게 문제지."
정작 힘은 북부가 쓰는데.
"그게 하루 이틀 일이야? 북부가 자기들 공을 뺏기면 뭐할 건데? 어차피 땅도 척박하고 구심점도 없는 동네잖아."
"곧 구심점이 나타날 거거든."
아이작,
무력 100의 사나이, 난세의 여포, 사실상 그가 처리한 것과 다름 없는 야만족들을 중앙파가 모든 공을 먹어버리면서 끝날 텐데, 불같은 성격을 지닌 그 인간이 참을리가 없다.
아마 당장은 별일 없어도 곧 세력을 모아서 남하하겠지.
"북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는 말이지?"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지."
아마 일어날 거다.
그게 난세의 정사니까.
'그 성격이 남녀역전 같은 걸로 뒤집어 질리도 없고 말이야.'
이세계의 남자처럼 온순한 아이작?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북부의 특성상 제대로 반란이 나면 수복이 한참 걸리겠네, 늘어지는 전쟁 동안 이득 볼 놈들은 쭉 이득을 볼 테고 그 힘들이 결국 제국의 분열을 야기한다는 거지?"
"그 외에도 제국의 힘을 분열시킬 것들은 많잖아."
흑마법사들도 있고, 동부 왕국도 있고.
"결국 황제는 어떻게 죽는데?"
'병으로 죽지.'
출저를 밝힐 수 없는 정보라서 알려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죽겠지."
"그게 뭐야..."
"안죽어도 상관없어. 내가 죽여버리면 되니까. 어차피 제국이 분열됐는데 황실이라고 멀쩡하겠니?"
"무서운 놈..."
시에린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말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
"다른 곳에선 제국에 충성한다느니, 황실에 들어가고 싶다느니 말하는 놈이 갑자기 황제를 죽여버린다는 소리를 하는데 안 무섭겠냐?"
안 무서운 것 같은데? 무서운 척이라도 좀 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말했잖아. 난 군주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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