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파자마파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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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화장실을 갔던 마이테스와 필리엣은 금세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갔다왔어요!"
편안하게 말하는 필리엣과는 다르게 마이테스의 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라이트를 슬쩍 바라보니, 우리쪽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어서 나도 부드럽게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국 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요?"
"그냥... 아카데미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마이테스 씨랑 필리엣 씨는 어디서 검을 배우시나요?"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저희가 검을 배웠다고 말을 했었나요?"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딱 봐도 알아요. 제가 아무리 무예에 뚯이 없다고 해도, 검술을 배우신 분인지 아니신지는 알 수 있답니다."
"하긴, 딱봐도 기사 지망생 처럼 보이긴 하죠."
다행이 잘 넘긴 것 같다.
"저희는 각자의 스승님 밑에서 배워요. 아마 제국 아카데미의 기사반 학생들 보다 강할 걸요? 스승님이 저에게 온전히 집중하실 수 있으시니까요."
"맞아요!"
글쎄? 너희 아직 익스퍼드 못 찍은 것 같은데? 심지어 나보다 한 살 많은 데도 말이야.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기사반 학생들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기사반의 평균이라는 의미라면 여러분의 말이 맞아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강하시고, 아마 제국 기사반에 들어가도 꽤 상위권에 있으시겠죠."
내 말에 숨겨진 속 뜻을 파악한 마이테스와 필리엣이 표정을 굳혔다.
"그런데 절대로 기사반에서 1등을 차지할 순 없으실 거에요. 저희 학년에만 익스퍼드가 3명이나 있거든요."
"익스...퍼드요? 고작 16살에 익스퍼드에 다다른 학생이 3명이나 있다고요?"
그것도 기사반에 한정 했을 때만 말이지.
"네."
충격 좀 덜 받으라고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봐 줬지만 충격이 쉬이 가시지 않는데 마이테스와 필리엣 둘 모두 동공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이게 더 넓은 세계라는 것이다. 개구리 들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간절함도 없고, 경쟁심도 없는 상황에서 성장한 게 충분 할 것 같아? 너희가 최고라고 생각했어?
"승부욕이 불타 오르네요."
아직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마이테스와는 다르게 필리엣은 진짜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익스퍼드가 세 명이란 말이죠? 그것도 16살이라는 어린애들이 말이죠."
필리엣의 눈이 점점 뜨거워졌다.
"무조건 따라 잡고 싶어지는 데요? 올해 안에 무조건 익스퍼드의 경지 안에 들고, 벽까지 도전할 겁니다."
확신에 가득찬 한 마디에 마이테스도 기운을 얻었는지 씩씩하게 말했다.
"누가 먼저 도달하는 지 내기할래?"
"당연히 내가 먼저지 어딜 덤벼."
'괜히 상대 세력 인재한테 동기를 불어넣은 건 아닐까 걱정이네.'
지금 안 건드렸으면 성장이 한참은 둔화 됐을 텐데 말야.
"그러면 둘 다 화이팅 하세요."
""네!""
두 사람의 어투에는 이제 나에 대한 떨림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이테스의 눈에는 아직 미묘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긴 한데 정작 이야기 할 때는 평범하게 잘 이야기 했다.
'당장 시에린만 하더라도 처음 봤을 땐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지만 지금은 아주 왈가닥이니까.'
"이제 슬슬 올라가서 배게싸움이라도 하는 건 어때? 삼등분해서 각자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자기들이 먼저 우리를 배척해 놓고서는..."
"누가 배척했어!"
라이트형을 따라 2층의 여자방으로 향했다.
넓찍한 방에는 바닥에 이불들이 깔려 있었다.
"침대도 좋지만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말이야. 바닥에 깔린 이불위에서 노는 것 만큼 재밌는 게 또 없지."
바로 배게싸움이 시작됐다.
인정사정 안 봐주고 마구 배게를 휘두르다보니 괜히 어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놀다보니 슬슬 몸이 힘들어져서 구석 자리에 가서 누웠다.
"힘드냐?"
"어, 힘들어. 형은 안 힘들어?"
"나야 자주 했으니까, 그리 힘들지는 않지."
라이트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마이테스씨랑 필리엣씨 걱정 많이 하더니, 지금은 멀쩡해진 것 같은데?"
"네 앞에서 평범한 척을 하는 것 뿐이지 아직 마음을 접진 못했을 거야. 네가 돌아간 이후가 돼서야 진짜로 마음을 접어갈 수가 있겠지."
글쎄, 접을 수 있을까?
괜히 열병만 생기는 거 아냐?
"근데 감사인사 안해?"
"무슨 감사 인사를 해, 네가 뭘 잘했다고."
"나태해져 있던 마이테스씨랑 필리엣씨를 자극 시켜줬잖아."
"나태지긴 무슨."
라이트 형이 가볍게 코를 찼다.
"걔네들은 원래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 애초에 처음 부터 나태했었다고, 그런데 마치 최근들어 나태해진 것 처럼 말하지 말아줄래?"
"결국 나 덕분에 그 나태에서 해방된 거잖아."
"그건 맞아, 쟤들의 적수라고 해봤자 리하트랑 세일런 정도 밖에 없었는데 둘 다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애초에 이길 수 없다는 걸 어릴 때 부터 너무 주입 받아서, 그 둘을 뛰어넘으려는 생각도 잘 안 하거든."
"그러니까 감사인사를 하라 이말이야."
"그래 고맙다."
라이트 형이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감사인사 듣는김에 충고 하나 해줄게."
"무슨 충고?"
라이트가 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필리엣씨 잘 챙겨. 갑자기 어디로 떠날지 모르니까."
라이트가 경계를 담은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그거, 네가 데려간다는 소리야?"
"설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데려갈 수도 있다는 의미지, 필리엣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생기면, 그걸 줄 수 있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
"알았어. 일단 주의할게."
'괜히 오지랖 부린 건가?'
난세에서 필리엣은 리하트와 함께 리쿠르트의 2검으로 불리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당장 난세의 정사를 따라가 보면 동부 왕국과의 전쟁을 벌일 때는 다른 세력에 들어가 있다가 라이트가 진짜 고생고생해서 겨우 뻬오니까.
긴 시간과 노력이 들긴 하지만 결국 리쿠르트의 손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하긴 하는데, 아예 처음 부터 빼앗기지 않는 것이 더 좋겠지.
"누워있으니까 졸리네."
"그러면 앉아 있어."
"그냥 자면 안돼?"
"졸리면 자도 돼. 남자 방으로 옮겨 줄까?"
잠시 고민했다. 굳이 갈 필요가 있나?
"형이랑 피르엘은 여기서 잘거지?"
"그럴 확률이 높지."
"그러면 그냥 여기서 잘게."
"그래, 잘 자라."
라이트가 내 몸위로 이불을 올려줬다.
뻥!
"더워, 이불 덥지 마."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마석으로 된 랜턴이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나는 움직이는 마차속에서도 잠에 들 수 있는 사람이다.
고작 이 정도로 내 잠을 방해할 수는 없다.
눈을 감고 어둠을 즐기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잠을 잘 자는 건 게임처럼 시간을 스킵하기 위한 기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깔끔하게 잘 잤다.
일찍 자서 그런지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남자들은 다 자고 있었지만, 여자 중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쿨리온과 히네스 밖에 없었다.
'기사들은 새벽훈련하러 나갔나?'
빠르게 일어나서 거실로 내려가 마당쪽을 보니, 둘둘이 짝지어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창문을 가볍게 여니 여자들의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들려왔다.
"평소엔 귀찮다고 아침훈련은 미루더니 무슨 일이냐 너희들?"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깨달았거든."
"우리 세력에 도움이 되려면 열심히 해야지!"
'성실 하구만.'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여자들이 내가 나온 걸 눈치 챘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셨어요?"
"네, 어제는 일찍 자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피곤하시면 일찍 주무실 수도 있죠."
그렇게 거실에 앉아서 아름다운 여자들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어느새 라이트가 내려왔다.
"하아암. 뭐야 플레아, 너 일찍 일어났네?"
"그럼 일찍 일어났지. 어제 그만큼 일찍 잤으니까 말이야."
라이트는 거실 창문을 열고 여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정리하고 씻어, 밥 차려 놓을 테니까."
"넵!"
다들 우르르 들어와서 샤워실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이 씻는 동안 나와 라이트는 아침을 만들었고, 쿨리온과 히네스도 깨워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면 마니또를 발표하겠습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마니또가 누군지 밝혔다.
"저는 리하트 언니의 마니또였습니다!"
"알고 있었어, 어제 배게싸움할 때 나는 절대 안때리더라."
내 마니또는 의외로 라이트 형이었다.
'어제 형이 나한테 해준게 있나?'
없던 것 같지만 장소를 제공해준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자.
"벌써 갈 거야?"
"일찍 가야지. 어머니도 걱정하실 테도 쿨리온 남작님도 걱정하실 테니까."
"놀러오고 싶으면 언제든 리쿠르트로 찾아와. 늘 기다리고 있을게."
"편지나 자주하셔."
"안녕히 가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인사도 모두 마치고 마차에 올라탔다.
"재밌게 노셨나요?"
"네! 진짜 재밌었어요!"
쿨리온은 진짜로 재밌었나 보다. 목소리에 활기참이 가득하네.
"저도 재밌었어요."
재미는 있었지.
"그러면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뒤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내일 가면 이제 과제해야지.'
슬슬 방학도 끝나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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