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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07화 (107/312)

〈 107화 〉 파자마파티­2

* * *

"이거 어때?"

라이트 형이 가르킨 잠옷은 귀여움이 엄청나게 강조된 동물 잠옷이었다.

도대체 중세 시대에 동물 잠옷이 어떻게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했지만, 여기가 고급 백화점이라고 생각하니 얼추 이해가 됐다.

높으신 분들에게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선 이런 디자인의 옷이 있을 수도 있는거지, 값싸게 생산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너무 비싸지 않아?"

나 이 옷 싫어, 를 최대한 돌려서 표현해 봤다.

"몇 번을 말해야 하냐, 형 부자라니까? 이 정도 소비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돈은 너무 걱정하지마."

"너무 튀지 않을까? 그냥 무난한 잠옷을 입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도 동물 잠옷 입는 데 뭘."

아, 형 취향이었구나?

왠지 아까부터 굉장히 열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더라.

"나는 네가 이 옷 입으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 네가 한 미모 하잖아? 이런 옷까지 입으면 진짜 끝장나게 귀여울 거야."

형님, 죄송하지만 제 진짜 외모 모르시잖아요. 매일 가면 쓰고 만났는데 하관만 보고 내가 잘생겼는지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매력97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있는데.'

라이트 정도의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 내 미모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하아, 알았어. 이거 입을게."

"오케이!"

반대쪽 여성 의류 매장을 보니 리하트가 쿨리온을 데리고 잠옷을 사고 있었다.

쿨리온의 멋쩍은 표정과 리하트의 밝은 표정을 보니 저쪽도 이쪽이랑 비슷한 상황인 듯 보였다.

"잠옷만 사면 되는 건가?"

"어, 다른 건 다 준비됐거든, 세면도구도 다 있고, 수건도 있어. 그냥 몸만 오면 돼."

"그런데 어디 방을 잡아 놓은 거야?"

"이 도시에 별장이 있는 애가 한 명 있거든, 걔 별장 빌려서 하는 거지."

와, 스케일 한 번 크네.

쿨리온도 잠옷을 샀는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이제 가볼까?"

카밀레 경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찾아가서 부득이 하게 내일 출발하게 됐다고 전달한 뒤 바로 라이트가 말한 별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도 더 크네.'

창문을 통해 확인 해 본 결과 3층까지 있었다.

3층은 다락방인듯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1,2층이 워낙 넓다보니 애초에 3층까지 쓸일도 그렇게 많진 않겠지.

아마 쓴다고 하더라도 창고 정도로 이용되고 있지 않을까?

"나왔다."

라이트를 따라서 별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안 쪽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라이트 형! 필렌 누나가 불내려 그래!"

"누가 불을 낸다고 그래? 나 요리하는 거거든?"

주방을 벗어나 빠르게 우리에게 달려온 남자아이를 내 또래의 여자애가 나타나서 낙아채 버렸다.

"아직도 밥 안 먹었어?"

"아니... 그게..."

라이트 형이 주방으로 이동했다.

주방의 모습은 굉장히 엉망이었다.

이곳저곳 음식으로 얼룩 져 있고, 불을 내는 마법진이 폭주한듯 엄청난 크기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여자 둘은 서로 싸우다가 굳은 자세로 라이트를 보고 있었고, 다른 여성 하나는 식탁에 업어져서 자고 있었다.

"얘들아?"

"네, 라이트 오라버니, 무슨일이신지요."

"내가 너희끼리 못 해 먹을 것 같으면 나가서 먹으라고 한 것 같은데?"

라이트 목소리에 은은한 분노가 깃들었다.

"야! 일어나."

"우으, 밥 다됐어?"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자고 있는 여성까지 깨워서 일렬로 섰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저희끼리 밥을 만들어 먹으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냥 나가서 사 먹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라이트 형이 자기 수하들에게 화를 내는 동안 나는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했다.

생각보다 주저리 주저리 길게 읇는 것 같았기에 재료들을 손질하고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어 갔다.

"사용인이 없어서 못 했다? 그러면 밖에서 나가서 먹었으면 됐을... 응?"

슬슬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했는지 라이트 형이 내 쪽을 돌아봤다.

"형, 너무 화내지 마, 한 번쯤 잘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가지고 왜 그렇게 화를 내?"

"얘네가 한 두번 잘 못했을 것 같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 하자."

내가 저녁을 만드는 동안 쿨리온과 리하트가 열심히 주방을 치웠기 때문에 어느새 주방은 다시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제 음식솜씨가 엄청 미천해서 말이죠. 여러분 입맛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수프와 닭죽을 식탁 위에 깔았다.

음식점 급의 퀄리티는 못내지만, 방학때 할 게 없어서 늘 내가 요리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 않고 라이트 형의 눈치를 보자 형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그래, 먹어라. 너희도 내 잔소리를 계속 듣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라이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흡입했다.

"맛있어요!"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

늘 고급음식만 드시는 귀족 분들이라서 내 요리 솜씨 정도로는 절대 만족 못 시킬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한 모양이다.

"먹으면서 들어라. 이쪽은 플레아 아이데스, 너희도 들어본 적 있겠지만, 제도에서 꼬마영웅이라고 불리는 위인이지."

"뭐야? 친하다는 거 진짜였어? 아까 가서 대차게 까이는 거 보고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가장 덩치가 큰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싸우고 있던 두 여성 중 한 명이다.

"내가 너희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딨어? 진짜 친하다니까? 저녁도 같이 먹고 왔잖아."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 저녁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오는 걸 수도있지. 저녁 같이 먹으면 친한사이야?"

"저랑 라이트 형, 진짜로 친해요."

다소 딱딱했던 분위기가 쉽게 풀려갔다.

"이쪽은 샤티렌 쿨리온, 플레아가 쿨리온 산하에 있는 아이데스 마을 출신이라, 쿨리온이 플레아를 이곳까지 같이 데려왔다. 그래서 같이 초대했는데 이의 없지?"

"쿨리온이라고 했지? 너 대박 귀엽다."

필렌이라 불렸던 여자가 쿨리온을 빤히 쳐다봤다.

"샤...샤티렌 쿨리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쿨리온이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 우리쪽도 소개를 해야겠지?"

"안녕, 나는 필렌 마이테스라고 해. 나이는 17살! 편하게 필렌 언니라고 부르렴."

"나는 슈카렛 세일런이야. 나이는 19살, 여기선 라이트와 함께 제일 연장자지."

저 쪽도 기사인가? 덩치가 장난아니네.

"연장자면 뭐해, 정신연령이 애나 다름 없는데."

"피차 마찬가지면서."

"아무튼 나는 바텀 필리엣이야, 나이는 17살,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고, 언니나 누나라고 해도 좋아."

'얘는 거물인데?'

난세에서도 소드마스터 정도는 찍는 인물이다.

보통 리하트와 묶여서 리쿠르트의 두 검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나아는 에리얼 히네스야."

히네스라고 하면, 오래전에 하이네스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 아닌가?

가진 것 하나 없이 출두해서 특유의 마법적 재능만 가지고 그럭저럭 세를 펼치고 있는 가문이지.

'이쪽은 법사인가 보네.'

"저는 피르엘 마이테스에요. 필렌 누나 동생이고, 15살! 편하게 불러줘요."

15살이면 아직 애구만, 그냥 마이테스를 따라 온 건가? 아니면 달리 쓸대가 있나?

"근데 파자마파티인데 너는 왜 가면을 썼어어?"

히네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혹시 얼굴에 상처라도 있어어? 아니며 지명수배자?"

"그런 건 아닌데요."

"이참에 얼굴 한 번 까보는 건 어때? 나도 네 얼굴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흐음, 괜찮겠지? 여기있는 사람들은 전부 라이트의 수하들이니까, 내 미모에 홀린다고 해도, 나를 납치한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알았어요."

가면을 벗자 모든 사람이 단순간에 굳어 버렸다.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라도 본 듯 충격 받은 표정으로 굳어있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가면을 썼다.

"아."

마이테스의 탄식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그... 그래서 쓰고 다녔구나아."

"와... 존나 예쁘다..."

"슈카렛언니, 말 좀 가려해, 손님 앞이잖아."

"진짜 존나 이쁜데 어떡 하냐 그러면."

그래, 나도 나 이쁜 거 알아. 칭찬 고맙다.

"큼... 미안하다, 이런일이 생길줄은 물랐어."

"괜찮아. 앞으로는 계속 쓰고 다니면 되지 뭐,"

마이테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으, 벗어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들로 우중충 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화사해지는 거 같아서요. 역시 실내에는 조명이 필요하잖아요?"

쟤는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는 알까?

긴장과 충격에 정신이 반쯤 나간 거 같은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냥 제 얼굴이 보고 싶으시다는거죠?"

마이테스의 얼굴이 새빨게 졌다.

"푸하 필렌 누나 얼굴 새빨게 졌어? 그렇게 부끄러워?"

"시끄러!"

"꾸엑!"

마이테스가 자신의 동생의 머리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묵직하고 강한 위력에 몸을 움찔하며, 팔로 내 머리를 가리는 모션을 취했다.

"아, 아뇨, 아이데스씨는 안때려요. 애초에 그렇게 세게 때린 것도 아닌걸요. 그렇지 피르엘?"

"아파아!"

"안아프잖아? 그렇지?"

마이테스가 자기 동생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참 재밌는 남매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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