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파자마파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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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를 따라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이고, 밖에 떡하니 예약 손님만 받는다고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는 아무런 제지를 바지 않았다.
"미리 예약했어? 나 까지는 예상했어도 쿨리온님까지는 예상 못했을 텐데?"
"아예 내 전용자리가 있다."
와, 자기 영지도 아니고 다른 영지에 있는 식당에 본인 전용 자리가 있다고? 도대체 리쿠르트 백작가의 영향력은 얼마나 대단한거지?
"저... 플레아씨."
"네? 왜 부르시죠?"
"저도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아, 자기보다 훨씬 높은 사람인 라이트 한테는 반말을 쓰고 자기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걸 보고 애가 탔나보지?
아직 어리니까 이런 거에 의미를 둘 나이긴 하다.
"그러면 쿨리온님도 저를 편하게 부르세요."
"알았어, 플레아... 오빠."
쿨리온이 부끄러운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애가 나이많은 남자를오빠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현실에선 남자가 여자한테 누나라고 하는 건 쉽게 나오는 말인데.
몰라 성격이 소심하면 그럴 수도 있지.
"먹고 싶은 거 있어? 말만해, 뭐든지 다 시켜 줄테니까."
"우리가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은 양을 시켜도 돼?"
"맘대로 해봐."
맛있어 보이는 메뉴들을 전부 다 말했다.
갯수가 7개 쯤되니 7인분 정도 되는 양이지.
"쿨리온은 먹고 싶은 거 없어?"
"그게..."
쿨리온이 라이트의 눈치를 봤다.
"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말해도 된다."
"요거랑 요거요."
쿨리온도 두개의 음식을 가리켰다.
"플레아 너는 진짜 이 정도 음식을 다 못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응? 여기 음식 조금 나와? 4명이 와서 9개 시키면 엄청 많이 시키는 거잖아."
"크흠."
리하트가 작게 기침했다.
'아! 기사가 있었구나!'
어쩐지, 갯수를 빠르게 늘려가도 아랑곳 않더라니.
'하긴, 당장 라이넬 한 명만 데려와도 지금 시킨 것들은 다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면 일단, 이렇게 시키겠다."
"저, 오라버니..."
리하트가 음식 세 개를 추가로 시켰다.
역시 기사는 유지비가 비싸다니까.
많이 움직이는 만큼 많이 먹는데다가 고급 병종이라 좋은 음식을 먹여줘야 했기 때문에 기사 한 명의 한 달 식비로 십수명의 병사를 고용할 수 있는 돈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군주가 가난하지 않는 이상, 기사 스스로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물론 이렇게까지 고급 음식으로 배를 가득채울 수 있는 건 리하트가 라이트의 호위기사이자 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만,
고급 음식접이다 보니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오늘 바로 돌아갈거야?"
"그럴 것 같아. 여기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서 말이야. 여름이라 해가 기니까 밥 먹고 바로 돌아가면, 아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걸?"
"아쉽게 됐네. 자고간다고 했으면 파자마 파티라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파자마 파티?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남자애들끼리 모여서 꺄르르 웃을 것 같은 이미지의 파티인데 그런 파티에 라이트가 간다고?
물론 라이트도 남자니까 그런데 가서 놀 순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파자마 파티가아니야. 너를 보려고 내 세력 밑에있는 이들도 모처럼 다 모였거든, 그래서 모인김에 방하나 잡아다가 다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놀기도 하려고 했어. 너도 왔으면 좋겠는데 참 아쉽게 됐어."
"형네 파벌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어차피 나는 못 가는 거 아니야?"
"소문을 신경쓰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건 비공식적인 파티니까. 그 누구도 네가 우리 파티에 참였다는 말은 하지 않을거야."
그러면 뭐해. 내가 형네 파벌이 빌리고있는 숙소에들어갔다는 정보가 알려지면 바로 형네 파자마 파티에 참여하게 된걸알게 될텐데.
하지만 그래도...
'구미가 당기네.'
어차피 비공식적인 파티다. 내가 그 파티에서 놀았다는 소문이 퍼져도 큰 문제 없다.
어차피 확실한 증거도 아닌데다가 사적으로 친한 사이라서 놀았다고하면 되니까.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같이 논것에 집중하면 모든 것을 다 논파할 수 있다.
왜 냐면 난 아직 16살짜리 꼬맹이니까. 친구끼리 놀고 싶을 수도 있지 뭐.
'나중에 동부 왕국과 전쟁이 펼쳐질 때 지원을 받으려면 인맥이 많이 필요해.'
라이트에게 눈도장을 찍어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리쿠르트 세력 휘하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어놔야 나중에 라이트에게 지원 받기가 더 쉬워지겠지.
세력이란건 그 세력의 대장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리고 라이트가 분명 자기 세력의 수하들과 나를 친해지게끔 분위기를 조성할 게 분명했다.
아주 완벽하게 차려진 만찬이라는의미지.
'안 간다고 생각하니까 개 아깝네.'
"쿨리온, 자네는 어떤가, 남작가에 돌아가는 걸 하루 늦추고, 파자마 파티에 참가하는 건 어떤지."
"할래요!"
쿨리온이 생각도 안하고 바로 답했다.
오늘 돌아가지 않으면 쿨리온 남작이 걱정하긴 하겠지만, 왜 오늘 돌아가지않았는 지에 대한 설명을들으면 아마 장하다고 칭찬세례를 퍼부어 줄 것이 분명했다.
리쿠르트의 세력만 들어갈 수 있는 파자마 파티에 초대돼서 갔다 온거니까.
가서 이상한 짓만 안하고 얌전히 놀다가만 와도 수많은 이들과 안면을 틀 수 있다.
그렇게 강성한 세력이 아닌 쿨리온 남작가의 입장에선 이만한 호재도 없겠지.
"마차의 주인이 내일 간다고 하는데 너는 어떡할거야?"
"방법있어? 당연히 자고 가야지."
라이트도 이렇게 보면 참 영악하단 말이야.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
'내 돈으로 마차를 사야지 이거원 참...'
물론 내 마차를 타고왔으면, 바로 라이트와 자고 간다고했겠지.
파자마 파티에참여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나한테있는 상황과다름이 없는 거니까.
"좋아, 그러면 둘 다 파자마 파티에 참여하는 걸로 알고있을게."
"오케이."
이런 저런이야기를 나누다 보니음식들이 나왔다.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식탁위를 가득채우자 배에서꼬르륵 하는 소리가들려왔다.
"이제 먹자."
"오케이!"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티가 안 날게 분명했기에 마구 퍼서 먹었다.
요즘 고급진 음식을 너무 자주 먹다보니 역치가 상당히 높아졌는데 높아진 내 입맛을 충분히 만족 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맛있는데? 역시 고급 음식점이라 그런가?"
일단 리쿠르트에서 먹었던 음식보다는 무조건 더 맛있었다.
바다가 근처에있는 곳이라 그런지 싱싱한 해산물도 있었고, 조리도 훨씬 잘 됐으니까.
'근데 미네타 집보다는 딸리는데?'
집에서 만드는 식사가 고급 음식점을아득히 능가하다니... 역시하이네스가.
"많이 먹어라. 어차피 네가 먹는 양은 리하트가 먹는 양에 비하면 턱없이 적을 테니까."
여기가 남녀역전 세계가아니면 리하트가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안타깝게도이 세상의 리하트는 자신이 많이 먹는 다는건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근데 쿨리온도 엄청 잘 먹네.'
성장기의 중학생이라는 걸까? 자기가 골랐던 두 개의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고 있는데 벌써부터 그릇의 바닥이 보였다.
"됐어, 슬슬 배불러."
"너도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라이트와 나는 0.5인분도 먹지 않고 식기를 내려 놨다.
쿨리온과 리하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파자마 파티라고 했지? 몇 명이 모이는거야?"
"그렇게 많진않아. 7명 정도? 나 포함해서남자가 두 명이고 여자가 5명이지."
"나랑 쿨리온이 들어가면 9명이 되겠네."
7명이라... 그 중 두명이 라이트와 리하트인 걸 감안하면, 5명의 새 인연을 쌓게되는 거겠지.
아마 초반엔 나에게 엄청난 질문이 몰려 올... 려나?
라이트를 빤히 바라봤다.
'이 형이 대략적인 건 다 설명해 줬을 것 같긴해.'
그리고 친해지기 전까지는 이상한 질문을 하지말라는 주의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형을 믿어!'
"왜 그렇게 봐?"
"아냐, 나는 형을 믿는 다고."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라이트가 표정을 굳혔다.
"날 뭘로 보는거야. 초대를 가장해서 함정을 파 놓을 정도로 긍지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애초에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려서 뭐해?"
이상한 쪽으로 착각을 하는데?
"그런게 아니라 형의 능력을 믿는다는 뜻이지."
화난 듯 나를 바라보는 라이트를 달래주다 보니 어느새 리하트와 쿨리온이 음식을 다 먹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다 먹었어? 그러면 이동하자, 지들끼리 먹으라고 말하고 오긴 했는데,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거든."
형을 따라서 내려오다보니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형, 근데 나 잠옷 안 가져왔어."
당일치기로 왔다 가려고 했는데 잠옷을 왜 챙겨와?
'와! 파자마 없는 파자마파티!'
물론 나는 꼭 잠옷을 입어야 잘 수 있는 인간은 아니라서 평상복 입어도 잠만 잘 잔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평상복이 아니라 정장이라서 문제지.
"뭘 그렇게 걱정해, 가서 하나 사자."
라이트 형이 뒤로 돌아서 방금 나왔던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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