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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05화 (105/312)

〈 105화 〉 사교파티­3

* * *

아이라 때문에 한 번 굳었던 분위기는 불리언 자작가가 잘 풀었다.

중앙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며, 굳었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풀어냈다.

'라이트 형, 엄청 삐졌나 본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는 내 쪽은 쳐다도 안 보고 있다.

'이따가 달래줘야 겠네.'

파티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가진 않을 테니까, 빨리 가서 달래주면 화를 풀겠지.

불리언 덕분에 분위기가 풀리자 내 근처는 다시 화합의 장이 됐다.

아까 왔었던 이들이 밀려나고 새로운 이들이 밀려왔는데, 정작 하는 얘기는 아까랑 똑같아서 내가 시간의 굴레에 갇혀 버린건가 싶기도 했다.

'쿨리온 이년은 그틈에 빠져나갔네?'

저 멀리서 친구들이랑 재잘대고 있었는데 다들 쿨리온만 보고 있는 걸 보면 내 얘기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근데 플레아씨 진짜 이쁘세요."

'드디어 끝났다!'

외모 칭찬이 나왔다는 건 정치적으로 할 이야기는 다 끝났다는 거겠지.

아예 황실에 들어간다고 못 박아서 그런걸까? 아까보다는 훨씬 빠르게 한 세트가 끝났다.

서로 의미 없는 칭찬만 하다가 다들 각자의 파벌로 돌아갔다.

'한 파벌당 한 명씩만 오라구요!'

왜 계속오는데? 너희가 무슨 몬스터야? 웨이브 단위로 와.

'인기인의 삶이란 이렇게 피곤합니다.'

파티가 시작되고 거의 2시간 동안 서서 비슷한 이야기만 계속하다보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세상의 모든 반복 작업은 기계를 만들어서 해결 할 수 있다고 했지'

자동응답기가 왜 있는지 알 것 같다.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니까 만들어진 거겠지.

'마법으로 자동응답기는 구현할 수 없는 걸까?'

내가 정신줄을 놓고 있어도 미리 입력된 질문에 대해서 저장해둔 대답을 출력하는 거지, 그러면 이렇게 피곤할 필요도 없을텐데.

"오늘 처음 온 손님인데 너무 힘들게 하지 말게."

2시간 째 파티 음식을 즐기지도 못하고 서서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던 내가 불쌍했는지 결국 라이트가 내 자리로 다가와서 사람들을 중재했다.

'형! 구해주러 왔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가 실행되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라이트도 상당히 귀염상의 미소년인데다가 동부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물러나 주시죠. 플레아님과 제 오라버니는 휴식이 필요하십니다."

결국 리하트가 와서 여자들을 때어나고 나서야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고마워 형."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니 라이트가 고개를 휙 돌렸다.

"왜? 아까처럼 존댓말 쓰지 그래?"

"형도 알잖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가 형한테 반말을 쓰면 상황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이렇게 사과할 테니까 한 번만 봐줘라."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하아... 그래 나도 알아. 네가 나랑 친한티 못 내는 상황인건 아는데, 그래도 좀 섭섭해."

"미안."

라이트가 어느새 테이블 위에 올려진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다 대고 푹 찍어 먹었다.

"오래 앉아있지도 못하잖아. 너 만나려고 이 파티에 온 건데, 친한티도 내지 말아야 하면, 이 케이크 다 먹자마자 가야 한단 말이야."

포크에 꽃혀 있는 작은 조각을 조금씩 물어 먹고 있는 그를 보다 보면 진짜로 나랑 떨어지기 싫어하는 티가 느껴졌다.

'우리 둘 빼고 거의 다 여자라서 그런가?'

아무리 라이트 형이 당차도 여자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 있으니 그나마 친한 나하고 붙어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근데 이 파티, 언제까지 열리는 거야?"

"6시 까지, 아직 2시간은 더 버텨야 해."

라이트가 케이크를 아주 작게 잘라서 배어 먹었다.

"다 끝나면 나랑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가자."

"나 일행있는데..."

"같이 가서 먹으면 되지, 설마 저녁도 같이 안 먹고 헤어지려는 생각은 아니지?"

"알았어, 같이 먹으면 되잖아."

쿨리온만 계탔군.

동부에서 제일 가는 세력인 리쿠르트가문의 자식들과 식사를 했다는 소식을 쿨리온 남작이 들으면 아마 입이 찢어지게 좋아할 거다.

"근데 원래 파티에서 이렇게 얘기만 해?"

"오늘이 비 정상적인거야. 평소에는 자기 파벌들끼리만 뭉쳐서 이야기 하고, 다른 파벌에 한 명씩 사람을 보내서 정보 교환전을 펼치거든, 그 모습을 보기 싫은 불리언이 사교 댄스회를 진행하면서 분위기를 풀지."

"나 때문에 파티가 활발하게 돌아가니까 춤 같은 건 안 추는 거야?"

"그래, 솔직히 파티 끝날 때까지 춤출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네가 황실에 들어간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해서 말이야. 너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 파티가 루즈 해지면 출 수도 있어."

정말 다행스럽게도 라이트의 추측은 빗나갔다.

라이트가 떠나가자마자 새로운 사람들이 몰렸고, 이제는 내가 어디에 들어갈지가 아니라 내 무용담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아까 그 선배가 소문을 퍼뜨렸나?'

아까는 흑마법사 관련 질문은 하나도 안 들어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냈냐며 대단하다고 엄청난 칭찬들이 나를 감쌌다.

"수고 많았다."

"죽는 줄 알았어..."

2시부터 6시 까지 진행된 파티인데 거의 풀타임으로 고통받다보니 정신이 없었다.

다리 아픈거야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나아졌지만,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계속 말만 하다보니 목도 아팠다.

"가서 동행인 데려와, 내가 맛있는 식당을 안다."

맛있는 식당을 안다라... 아까 쿨리온이 했던 말인 것 같은데.

"쿨리온님."

"네 플레아씨!"

쿨리온이 자기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 말고 내 쪽을 바라봤다.

"저녁 먹으러 갈건데 같이 가실래요?"

생각해 보니까 쿨리온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걸텐데 같이 먹고 싶지 않을까?

"네! 같이 먹을게요! 얘들아 안녕!"

방금 몇 초 걸렸지? 내가 말하자 마자 바로 손절친것 같은데.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싶지 않으셨어요?"

"괜찮아요. 심심하면 놀러가고 놀러오는 애들인 걸요. 쟤네보다는 플레아씨랑 같이 밥을 먹는 게 훨씬 귀한 일이죠."

나보다는 라이트와 밥을 먹는 게 더 귀한 일이겠지.

아마 쿨리온 남작이 언급은 했을거다. 혹시 라이트와 내가 친분을 쌓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라고 했겠지, 제국 동부의 유력가와 친분을 맺는 다는 건, 진짜 엄청 중요한 일이니까.

"그 아이가 네가 말한 동행인인가?"

"네."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라이트 형이 쿨리온보다 키가 작다.

많이 작은 건 아니고 한 3센치 정도? 19살 먹은 남자가 올해 15살이 된 여자애 보다 작다니, 현실에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여고생보다 키 큰 중학생들은 많이 있잖아? 그런거다.

"눈빛이 또렷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군, 뛰어난 인재가 되겠어."

"가... 감사합니다!"

쿨리온이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방금 라이트 형이 쿨리온에게 한 칭찬은 사실상 첫 인사에 불과하다.

귀족특유의 띄워주기가 가미된 인사법이라고 볼 수 있지.

"리하트, 식당으로 안내하도록."

"네, 오라버니."

리하트를 따라서 이동하니 엄청 거대한 건물에 도착했다.

높은 건물을 지을 기술력은 없었는지 좌우로 넓게 뻗어 있었는데, 밑넓이가 넓다는 것도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고급지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거겠지.

보존만 잘 되면 미래에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면 감이 오려나?

앞에 경비를 위한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우리를 슥 보더니 그냥 통과 시켜줬다.

"내가 여기 단골이거든,"

"단골? 여기 불리언 성이잖아. 어떻게 형이 단골일 수가 있어?"

"상단에서 만든 건물이라 그래, 내가 그 상단에 쓰는 돈이 얼마인데 당연히 내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

이게 고위 귀족인가?

이런 라이트 조차 미네타에 비하면 작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갑자기 미네타가 색 다르게 보였다.

"뭐 먹을 거야?"

"당연히 고기를 썰어야지."

라이트가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마석으로 작동하듯 부드럽게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우리를 최상층에 데려다 줬다.

높이가 났다고 해도 8층 정도의 높이는 되었기에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청 비쌀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너한테 돈을 내라고 하겠어? 당연히 내가 내지."

쿨리온이 살짝 몸을 떨었다.

"당연히 꼬마 숙녀 분의 음식도 내가 살거다."

꼬마(자기보다 키큼)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우스워서 작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왜 웃어?"

"아냐, 자기보다 큰 애한테 꼬마라고 하는 게 웃겨서 그런거야."

"어쩔 수 없지, 남자로 태어난 이상 여자보다 작은 건 당연한 거니까."

키가지고 놀리지 말라고 노발대발할 걸 생각하고 말한 건데, 너무 쉽게 넘겨 버리니까 오히려 내가 뻘쭘해 졌다.

'그래, 그런 세계긴 하지,'

정작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쿨리온보다 작았으니까.

그런데 아무런 감흥이 안든다.

"내가 기사를 목표로 했으면 모르겠는데, 어차피 내가 힘을 쓸일은 없으니 내 키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동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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