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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04화 (104/312)

〈 104화 〉 사교파티­2

* * *

2시가 되자, 파티장 한 가운데에서 파티의 주최자, 그러니까 불리언 자작가의 여식이 튀어나왔다.

아주 일찍들어와서 숨어있었거나, 주최자가 쓰는 용도의 다른 입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파티를 주최한 아리나 불리언이라고 합니다."

어쩜 저렇게 이름과 성이 안 어울릴 수가 있을까.

"제 초대에 응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이 파티를 주최하게 된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글쎄? 왜 열었을까? 설마 나 때문일까?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가 있으니까 한 번쯤 만나보기 위해서 연 게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는걸?'

이야 진짜 모겠르겠다.

"어지러워지는 제국의 정세 속에서 동부 지역의 영주들간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이 파티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말씀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지역회 같은 건가?

일단 화합의 장을 표방하고 개최한 파티겠지만, 아마 평화롭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거다. 가까이 있는 만큼 적이 되기도 쉬운 게 이웃영지라는 존재니까.

게다가 이미 여러 번 개최한 적이 있는 파티라면, 이미 친분을 쌓은 사람들과 몰려 다니며 상대쪽 파벌의 동태를 살피고, 은밀한 거래를 하기 위한 장으로 이용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신입이 왔네?'

일단 다들 한 번 건드려 봐야지? 내가 가지지 못하면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할 거 아니야?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되는 분위기가 되자 내 쪽으로 사람이 한 두명씩 몰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는데, 귀족씩이나 되어서 평민 하나랑 이야기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뚫고 오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몰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플레아님이시죠?"

"네, 플레아라고 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어중이 떠중이 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대충 상대할 순 없었다.

이 인간들은 별로 무섭지 않은데 어디가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내고 다니면 귀찮아 지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자기가 리드할 것 처럼 당당하던 애가 완전 쫄았구만.'

내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쿨리온이 눈치를 잔뜩 보며 굳어있었다.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보니 내가 아니라 쿨리온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집단 하나가 보였다.

'쿨리온 친구들인가 보네.'

나이대는 쿨리온이랑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더 순수해 보이기도 했고,

"플레아님은, 장래에 어떤 세력에 들어가실 생각이신가요?"

'드디어 원하던 질문이 들어오네.'

어차피 이거 질문하려고 다가 온거면서 귀여우시다느니, 밥은 잘 드셨나느니, 왜 그렇게 말을 빙빙 돌렸던 걸까?

귀족들의 세계는 참 알 수가 없어.

"프레스티아 헬링님과 친하시다 던데, 역시 그쪽으로 들어가시려나요?"

뭐야, 그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어?

하고 질문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카데미 다니다가 한 번쯤 마주친 적 있는 선배였다.

'와, 이건 겁나 애매한 질문인데?'

나는 끽해야 쿨리온 남작가로 들어갈 거냐, 아니면 리쿠르트 변경백 밑으로 들어갈 거냐 정도의 질문만 나올 줄 알았는데...

쿨리온 남작가나, 리쿠르트 변경백의 경우는 안 들어간다고 딱 못 박아 둬도 되지만 헬링파벌에 들어갈 일 없다고 못 박아두는 건 문제가 있다.

당장 2학기 중에 위장으로라도 헬링 파벌의 밑에 들어갈 것 같은데 지금 안들어간다고 말해 버리면 이상해 지잖아.

'그렇다고,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일관적으로 황실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데 갑자기 헬링 파벌 밑으로 들어가? 이상하잖아.

"아카데미에 다닐 때는 헬링님의 파벌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고민한 나는 결국 반 정도만 선을 긋기로 했다.

아카데미 때 들어갔던 파벌과 평생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카데미에 졸업한 후에는 헬링님과 떨어지실 건가요?"

"아마 떨어질 것 같습니다. 제 뜻은 황실에 있거든요."

내 한마디에 파티장 전체가 굳었다.

'다들 자기말 하는 척 하면서도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나보지?'

"황실... 이요?"

"네, 제 충성은 오롯이 제국에 있습니다.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국의 쇠퇴를 막을 겁니다. 그를 위해선 황실 기관에 들어가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없겠죠."

나에게 질문을 했던 선배가 마른 침을 삼켰다.

황실에 들어간다는 건, 뱀들의 소굴에 들어간 다는 것과 다름 없는 말이었으니까.

실제로 내가 황실에 들어가서 전력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일을 잘 해나갈 거란 확신이 없었다.

황실 산하 기관은 대부분 중앙파 귀족들에게 장악돼서, 인맥과 뇌물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로 변해 버렸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진자로 황실로 들어갈 생각도 없고, 황실에 들어가겠다는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황실의 진실을 깨닫고 외부에서 힘을 길러 썩어빠진 중앙파 귀족들을 몰아내고 싶다는 스탠스를 취하면 되겠지.'

물론 그 와중에도 프레스티아에게는 내가 제국에게 충성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에게 충성한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했다.

'그냥, 제국에 충성하는 척 해도 되고.'

이에 관한건 나중에 시에린과 상의해 보자.

"질문은 다 끝났나?"

얼어붙은 파티장의 분위기 속에서 어느새 내 근처로 다가온 여성이 있었다.

'유명하신 분이시네.'

"반갑다. 나는 슈렌 아이라 라고 한다."

나름 유명한 자작가다. 플레아의 고향이 동부다 보니 난세를 진행하면서 가끔 이름을 듣기도 했었고, 난세의 중반까지는 무난하게 살아남는 그럭저럭 의미가 있는 세력이었다.

'문제는 그게 기존에 쌓아놨던 가문의 부를 천천히 깎으면서 겨우 버틴거라는 게 문제지.'

난세에서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예 사라져 버리는 세력들도 많은데, 버티기라도 한게 어디냐! 라고 하기엔, 지금시점에서 아이라 자작가는 너무 대단했다.

변경백인 리쿠르트 백작가 만큼은 못해도, 동부에서는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니까, 그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겨우 버티는 걸로 끝났다?

'가주의 능력이 바닥이라는 뜻이지.'

그 능력없는 가주가 누구냐하면 바로 내 앞에 계시는 슈렌 아이라 되시겠다.

그래도 지금은 아주 강력한 가문이니까, 친분을 좀 쌓아둘까?

'이탈하는 병력들이나 기사들을 꿀꺽하려면 지금부터 친분을 쌓아둘 필요도 있으니.'

근데 이년, 난세에서도 인성이 상당히 나쁜데 여기선 더 나쁜거 아니야? 원래 이 년 제어용으로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는 오빠가 제어도 잘 못할 거 아녀.

"따라와라."

인성쓰레기 아니랄까봐 다짜고짜 명령질이다.

이 년은 내 가슴팍에 담긴 은급 훈장이 안 보이는 걸까?

이론적으로는 고작 자작령의 후계자인 아이라 보다 내 지위가 높은 데 말이야.

"안 따라와?"

잠깐 멈춰섰다고 인상을 팍쓰면서 위혐하는 게 사모아 보다도 인성이 빻은 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멍청한 걸 수도 있고.'

자기가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반만 맞는 말이지.'

실질적인 힘이 나보다 강하다고 해서 나를 막 대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중앙파 귀족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사모아의 후계자 조차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인데 한낯 자작따위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한테 이런 대우를 한다고?

이건 선 넘었지.

"아이라,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보다 못한 라이트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넌..."

아이라가 이를 꽉 깨물었다.

아이라가 힘을 꽤나 쓰는 인물이긴 하지만, 지금시점이든 미래 시점이든 리쿠르트한테는 상대가 안된다.

"네가 뭔데 끼어들지?"

"내가 아니라 자네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만? 플레아는 그래도 은급훈장을 받을 정도로 제국에 공헌을 세운 이인데, 그런 이한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자네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면 크게 노하실 것이 분명하니, 지금 사과하고 끝내게."

아이라가 나를 바라봤다.

사과하기 싫고, 왜 사과하는 지도 잘 모르겠지? 그래서 네가 안된다는 거야. 독이든 성배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저는 괜찮습니다."

결국 내가 선빵을 쳤다.

"그렇다고 하는 군, 이제 자리로 돌아가게."

"이 꼬맹이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이라가 우리들 다들리게 중얼 거리자 리하트가 나서서 아이라를 바라봤다.

리하트는 상당히 키가 크고 기사답게 몸도 탄탄했기에 아이라는 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자는 남자한테만 강하게 군단 말이야. 리하트, 고맙다. 너 없으면 큰 일 날뻔했어."

"별말씀을요 오라버니."

라이트가 나를 바라봤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습니다, 리쿠르트님."

내 존댓말이 어색했던 걸까? 라이트가 당황하면서 말을 이었다.

"플레아, 장난 치지마, 우리 사이에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 없어."

"장난 아닙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라이트를 바라봤다.

'미안, 그런데 형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로 반말을 한다는 건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는 행위다.

아이라 처럼 인성이 쓰레기가 아니라면, 서로 비슷한 규모의 세력을 가지고 있거나, 서로 친할 때, 특히 같은 세력에 속해 있을 때 반말을 쓰는데 야망가인 라이트와 황실에 충성한다던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로 친한 듯 반말을 한다? 누가봐도 이상하지.

사적인 자리에서 둘이 반말을 하더라, 하는 소문은 퍼져도 상관없다. 원수 가문의 자식들끼리 사랑도 하는 세상인데 적 세력이랑 친구 좀 먹는 게 어때서?

그런데 공적인 자리에선 절대로 반말을 쓸 수 없다.

"...그래, 네 마음 잘 알았다."

라이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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