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사교파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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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백에서의 2박3일은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라이트와 이야기 하는 건 상당히 재밌었고, 흥미로웠으니까.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결국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다가왔다.
"벌써 가는 거야?"
"지금 출발 안 하면 중간에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 잠을 자야 해서 말이야."
"그래도 너무 일찍 떠나는 거 아니야?"
이른 새벽이었지만 라이트가 나를 배웅해 주기 위해 성의 입구까지 나와주었다.
"어쩔 수 없잖아. 계속 리쿠르트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속 우리 영지에 머물러도 되는데?"
"안돼, 아직 방학이긴 하지만 개학하면 아카데미에 가야 하니까."
"쯧, 그래 알았어. 잘 가라."
라이트가 나를 안고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 너를 위한 자리 정도는 언제든지 남겨 둘테니까."
"글쎄, 제도에서 여기까지 오는데만 3일이 걸릴텐데?"
"시간 안 나면 겨울 방학 때 찾아오던가."
"알았어, 겨울 방학 때 찾아 올테니까. 이거 놔."
라이트가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겨우 팔을 풀었다.
"그러면 겨울 방학 때 보자."
"그래, 형 그 때봐."
라이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마차밖에서 한참동안 나를 보고 있는 라이트에게 계속 손을 흔들어 주다가 그가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손을 집어넣고 자세를 바로했다.
'어제 이별 파티라고 늦게 자서 그런가. 엄청 피곤하네.'
"저 좀 잘게요."
"플레아님은 항상 마차에서 주무시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잖아요. 졸린대 어떡해요."
눈을 슬 감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풍경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한밤 중이네.'
밤이 늦었것만 어머니는 주무시지도 않고 문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들 왔어?"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아들 마중 나오러 왔지. 그리고 짐 옮길 사람도 필요하잖니."
어머니가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카밀레 경도 오늘은 저희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는 거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어제 푹 자둬서, 별로 졸리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밤 늦게 이동하는 것 보다는 한 숨 푹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이동하는 게 나으시지 않아요?"
"굳이 부담을 얹어 드리고 싶지도 않고, 저도 제 집이 편합니다."
카밀레 경이 멋쩍게 웃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오늘은 조심히 들어가시고 다음에 봐요."
"네, 안녕히 계십쇼."
카밀레 경이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아들 늦은 밤에 미안하긴 한데, 새로운 스케줄이 생겼단다."
"네? 스케줄이요?"
"불리언 자작가 알지? 거기서 3일 뒤에 열리는 사교 파티의 초대장이 왔어."
왤캐 바쁘냐...
***
새삼 나마흐의 위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제도에서 좀 유명한 애, 정도였는데, 그녀가 우리 집에 왔다간 이후엔 급속도로 인기가 올라갔다.
아마 근처 영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내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들어봤겠지.
'그래서 귀족님들이나 가는 사교 파티에도 초대받고 말이야.'
불리언 자작가가 뭐하는 곳인지는 모른다.
어차피 난세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 세력이었지만 그래도 자작가라고 하는 걸 보면, 지금 시점에선 마냥 약한 세력은 아니겠지.
'어차피 평민인 나한테 거부권이 있을리가 없지만.'
윗분들이 까라면 까야지.
"아들, 옷 이쁘네."
"그러게요. 정말 이쁘네요."
평소 다른 귀족들을 만날 때는 청기사단의 제복을 주로 입었지만, '사교'파티에 제복을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고로 제국 사교파티의 평범한 드레스코드는 남성은 정장, 여성은 드레스 혹은 정장 중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한다.
남자가 드레스를 입지 않는 다는 건 내 안구 건강에 정말 다행인 일이었지만, 이쪽 세상의 남성 정장은 귀여움이 부각되거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서 있어서, 여성용 정장처럼 수수하면서 멋진 디자인의 정장을 발품을 팔아 경우 구매했다.
"샤티렌 쿨리온님이랑 같이 이동한다고 했지?"
"네, 애초에 저는 어디 이동할 때마다 쿨리온 남작가에 마차를 빌려서 이동했으니까요. 둘이서 같은 목적지로 가는 데 굳이 마차를 두 개나 쓸 필욘 없죠."
"잘 다녀와."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셨다.
원래는 어머니가 출근하실 때 어머니가 타고가시는 말에 같이 타고 쿨리온 남작령에 가려고 했는데, 카밀레 경이 일찍 나와서 나를 데려다 주신다고 해서 문 앞에서 마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밀레 경이 나타나셨고, 바로 마차를 타고 쿨리온으로 이동했다.
쿨리온 성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마차 문이 열렸다.
'이 아가씨도 참 마음이 급한가 보네.'
얌전히 저택에서 기다리면 되는 걸 성문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랜만입니다 쿨리온님."
"네, 오랜만이에요."
처음 인사 한 마디를 나누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평소처럼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앞에 앉아 계시는 아가씨 눈치가 보여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플레아씨는 사교 파티가 처음이시죠?"
"네, 이번이 처음입니다."
평민이 이런 파티에 가볼 기회가 어디 있었겠어?
"제가 리드해 드릴게요!"
쿨리온이 힘차게 말했는데, 솔직히 좀 우스웠다. 너도 초보면서 리드하긴 뭘 리드하니.
"괜찮습니다. 저 혼자 잘 할 수 있어요."
"아, 네, 제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죠? 죄송해요."
쿨리온이 축 쳐졌지만 위로 해줄 생각은 없다.
얘는 딱히 쓸만한 패도 아니니까.
"거의다 도착했습니다."
쿨리온 남작가와 불리언 자작가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차타고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거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본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가깝다고 볼 수 있지.
"파티 시작 시간이 2시였죠?"
"네, 적당히 점심 먹고 저택으로 들어가면 될거에요. 불리언 자작가에는 몇 번 와봤는데, 맛있는 식당을 알아요, 거기서 같이 점심을 해결하는 건 어떠신가요?"
"좋아요."
같은 일행인데 당연히 점심은 같이 먹어야지.
애초에 카밀레 경이 나와 쿨리온을 동시에 호위하는 입장이라 둘이 떨어질 수가 없다.
도시 안에 들어온 이후에도 마차를 타고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이네스에 있을 때 너무 고급음식들을 많이 먹다보니, 감흥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충분히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러면 바로 이동할까요?"
"저는 상관 없습니다. 쿨리온님 편하신 대로 하세요."
시간엔 여유가 남아있었지만 빠르게 저택으로 이동했다.
입구에서 적당히 검문을 받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은 차분한 분위기로 앉아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나랑 쿨리온이 초대된 시점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파티는 젊은세대를 위한 파티였다.
먼저 와있는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누님의 나이가 20대 중반 정도로 밖에 안 보였을 정도니까.
'동부에서 난세를 이겨나갈 주역들이지.'
큰 신경 안써도 된다. 어차피 내가 동부에서 세력을 키울 게 아니라서 서로 견제할 필요도 없는 데다가, 뛰어난 인재는 내가 영입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
'큰 세력들이랑만 친분을 다져 놓으면 되겠지.'
아직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며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상영관처럼 고요한 분위기가 파티장 안을 맴돌고 있었다.
"너무 일찍 온 걸까요?"
쿨리온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청 일찍 온 것 같진 않아요. 이제 1시 반이 넘어갔으니까, 아마 사람들 계속 들어올 걸요?"
"하긴, 보통 30분 쯤 전부터 입장하더라고요."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세가 강할 수록 늦게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파티의 주최자인 불리언 자작가의 영애는 아마 2시에 딱 맞춰서 들어올 태고 다른 자작들이나, 세가 강한 상단의 후계자들은 아마 파티 시작 10분 전은 돼야 들어올 거다.
'아직 애들이니까.'
복잡한 심리전 보다는, 그냥 늦게 들어오는 걸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거겠지.
1시 40분을 넘어가자 그 동안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던 문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이었고, 내가 아는 얼굴은 1시 50분을 넘어서야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본격적으로 난세가 시작된 이후에도 나름의 세력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애들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강성한 세력이라는 뜻이겠지.
그 중에서는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는 얼굴도 있었는데, 라이트와 리하트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아니 이럴거면 왜 그렇게 아쉬워한거야?'
반년은 지나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3일만에 재회하다니...
라이트도 반가운지 나를 보고 한 쪽눈을 찡긋했지만, 내 주변에 앉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반대편에 가서 턱을 괴고 내쪽을 보는게, 마치 오늘 네가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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