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리쿠르트 변경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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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급 인재가 가지는 파급력은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전장을 뒤엎어 버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다.
물론 마스터급 인재 혼자서 여러 명의 익스퍼들급 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고, 혼자로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 잠입을 시키기도 편하다.
마스터에 대한 방어가 미숙한 성을 상대로는 마스터 혼자서 성 안으로 잠입해서 성주 목을 가볍게 따서 성을 먹어 버릴 수도 있었다.
이렇게 유용한 게 마스터지만, 대규모 전쟁에서는 그 가치가 낮아지는 법이다.
마스터가 아무리 강한 개인이라고 해도, 머릿수로 밀고 들어가면 죽일 순 없어도 발은 묶어둘 수 있으니까.
실제로 달랑 마스터 하나만 있는 세력 정도은 전장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수의 병력을 묶어둘 수 있고, 잘하면 기사단도 묶어 둘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긴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개인은 아무리 강해봐야 개인이고, 작은 세력간의 전쟁이면 모를까 진짜 거대한 세력간의 전쟁에선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사단이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기사단과 마스터의 조합은 거대한 전장에서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일반적인 기사단은 제대로된 기사 200 여명과, 그 기사들의 종자, 혹은 견습기사 800명 정도로 구성되는 데, 이 기사단이 전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아주 막대하다.
훈련이 덜 된 기사단이라고 할 지라도 일반 보명으로는 기사단을 막아 낼 수 없으며, 많은 수의 병력을 투자하여 움직임 저지 시키는 전략이 가능하긴 하지만, 막대한 병력을 소모해야 하는 위험한 전략이다.
심지어 그렇게 많은 병력을 소모하고도 정작 기사단 본체에게는 피해를 입힐 수가 없기에, 기사단은 오롯이 기사단으로 대응하거나, 지금은 없는 마법 병단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기사단에 마스터가 더해지게 된다면?
상대 보병을 뚫고 나가는 전열이 압도적으로 강력해 짐과 함께, 기사단이 마스터를 보좌하면서, 시너지가 미쳐 날뛰게 된다.
마스터는 한가로이 보병을 썰다가 언제든 다시 기사단으로 복귀할 수있으며, 천명이나 되는 병력의 도움을 받아서 전장 어디를 가든 활약하는 미친 병기가 돼버린다.
난세에서 일반 기사단의 전투력이 200이고 소드 마스터가 100정도 된다면, 소드마스터가 지휘하는 기사단의 전투력은 천에 가까웠다.
때문에 소드 마스터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익스퍼드 200명의 기사가 필요하며 무력 40이 넘는 이들 800명도 필요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나중엔 라이넬에게도 기사단을 붙여줄 생각이다.
'그런데 리쿠르트엔 이미 기사단이 있지.'
그것도 전장에서 단련된 기사단이.
본격적으로 난세가 도래했을 때 리쿠르트의 섬광기사단의 익스퍼드 기사의 수는 800명이 넘었다.
이 정도면 준 명문기사단급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사단을 리하트가 지휘한다?
난세 유일의 그랜드마스터인 아이작이 와도 단신으로는 쉽게 들이박을 수 없는 강력한 병기가 되는 거다.
말이 너무 늘어진 것 같은데 세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마스터 단신은 생각보다 좆밥이다.
근데 기사단이랑 함께 하면 짱짱세진다.
그래서 마스터급 인재는 중요하다.
한 마디 덧 붙이자면, 기사단도 중요하다.
'언니는 엄청 복 받은 거야.'
타고난 재능도 뛰어나고, 집안에 기사단도 있으니까.
"뭘 그렇게 봐?"
"아니, 그냥 부러워서."
"뭐가? 내 재능이 뛰어난 게?"
자기 재능이 뛰어난 줄은 아는 구나?
"어, 언니 나이에 벌써 첫번째 벽을 마주 보고 있는 정도면 진짜 유망주잖아. 아마 마스터까지는 올라가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잖아."
그건 평상시에나 그런거고.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왜 있겠어? 당장 적이 코앞에 있고, 목숨을 건 전투를 펼칠 때도 많으니 재능만 있다면 실력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시기가 지금 시기다.
당장 리하트만 해도 아마 자기 오빠가 군주를 꿈꾸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마스터 바로 밑 경지까지는 올라가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거기까지는 노력으로 해결이 되는 영역이니까."
"그런데 언니, 무조건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라가야 할걸?"
"나도 알아."
리하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라버니의 호위기사니까, 그리고 리쿠르트 가문에서 가장잘난 유망주니까. 오라버니도 나한테 기대를 되게 많이 하셔, 아니, 아예 내가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를 거라고 확신을 하고 계시지."
당연히 확신하지. 지금 세대가 워낙 미친놈들이 많아서 그렇지 리하트가 딱 두세대 전에만 태어났어도 제국 최고의 유망주니 뭐니 하면서 엄청 띄워줬을 거다.
"나도 언니가 무조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거라고 생각해."
"위로 고맙다."
'위로 아닌데...'
게임이라 그런지 아니면 난세라는 특성 때문에 난세가 정리 될 시점이 되면,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잠재력을 가득채울 정도로 성장을 마친다. 리하트의 무력 잠재력이 난세 기준으로 94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으니, 아마 이세계에선 무력 99까지 채우겠지.
'딱 1이 부족해서 그랜드 마스터를 못 찍네.'
"꿈을 크게 가져, 아예 그랜드 마스터를 목표로 달리면, 마스터 정도는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랜드 마스터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건 전설상에나 있는 경지라고."
"그냥 목표를 높게 잡으라는 의미지."
그래, 전설상의 경지가 맞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던 경지에 도달한 남자가 있었기에, 온 제국이 놀랐으니까.
'그런데 이세계에선 그랜드 마스터가 여러명이 나올텐데...'
먼 미래에 지금 세대는 미친놈들의 세대라고 기억되지 않을까?
한 세대에 그랜드 마스터가 5명이 넘게 나올 예정이니까.
"뭐, 이런 얘기는 그만하자. 나 슬슬 어지럽다."
"네가 먼저 말을 꺼내놓곤..."
"언니는 평소에 뭐해? 그냥 하루 종일 라이트 형 뒤만 따라다녀?"
"오라버니가 집무보실 때는 스승님께 훈련받고 그 외의 시간엔 오라버니를 따라다니지. 그렇다고 해봤자. 너처럼 갑자기 손님이 오는 경우가 아니면, 밥먹을 때 정도를 제외하면 늘 집무실에 계시지만 말이야."
"기사단이랑 합동훈련은 안해?"
리하트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굳었다.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무 실례되는 질문이었나?"
"기사단이랑 훈련하진 않아. 내가 나름 유망주긴 한데, 지금 기사단에는 나보다 뛰어나신 분들이 많거든. 괜히 같이 훈련했다가는 방해만돼. 애초에 나는 호위기사를 맡을 거기도 하고."
내가 리쿠르트가의 정보를 캔다고 생각한 걸까?
"아쉽네, 나는 언니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서, 기사단을 이끄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내가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다면, 아마 내가 기사단을 이끌긴 하겠지. 그게 가장 강력할 테니까."
"그러면 이 동생은 언니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길 간절히 기대하겠사옵니다."
"뭐야..."
"언니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리하트가 골똘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위대한 기사이신 나마흐님이랑 만난적 있다고 했지?"
"응, 얼마 안됐어. 3일은 됐나?"
"그 때 무슨 이야기 했어?"
"나를 제자로 삼고 싶어서 오셨는데, 내 근골이 너무 약해서 그냥 포기하고 가셨어."
"그것까진 소문으로 들었어. 그런데 딱 그얘기만 했을 건 아닐 거 아니야. 밥도 같이 먹었다는 소문도 있던데."
소문은 말보다 빠르다더니 언제 여기까지 퍼졌대?
"별 얘기 안 했어. 그냥 현재 제국이 망해간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거냐. 딱 그정도?"
"제국 망해가는 거야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고... 넌 어떻게 움직일 건데? 우리 오빠 밑으로 안 들어온 다고 단언을 하는 거 보니까. 따로 생각해 놓은게 있는 모양인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 제국에 충성한다고."
"그런 개념적인 이야기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거냐고?"
"당연히 황실로 들어가는 거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국에 충성한다는 뜻이 그거잖아. 현 상황에서 제국에 확실하게 충성하는 세력은 청기사단 정도밖에 없는데 나는 기사가 아니니까 거기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고 당연히 황실휘하의 기관에 들어가야지."
혼신을 다해서 거짓말을 했다.
기분이 나쁜 것 처럼 억양도 올렸고 짜증난 듯 눈가를 찌푸리기도 했다.
"황실? 거긴 중앙파 귀족의 소굴이잖아."
"방법이 그것 밖에 없는 데 어떡해? 황실 안에서 부터 뜯어고쳐야지. 밖에서 아무리 바꾸려 해봐도 의미 없어. 난 무조건 황실의 기관에 들어갈 거야."
"... 하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리하트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무 걱정하지마 진짜 황실에 들어갈 생각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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