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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101화 (101/312)

〈 101화 〉 리쿠르트 변경백­4

* * *

배신감에 가득차서 나를 바라보는 라이트가 불쌍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기분나쁜건 기분 나쁜 거니까.

아무리 세계가 달라져서 남자들끼리 스킨십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다고 해도 말이다.

"나 상처 받았어."

라이트가 삐진 듯 고개를 왼쪽 아래로 내렸다.

"미안, 내가 남이랑 몸 마주 대는 게 익숙치가 않아서 말이야."

"그런 거 라면 어쩔 수 없지."

라이트가 힘을 내서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 영지는 어느 정도 구경을 했으니까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좋아!"

라이트를 따라서 이동하니 병사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 같은 곳이 보였다.

"병사들이 훈련 중에 식사를 해결하는 곳인데 나도 종종 저기서 먹곤 해. 간다고 미리 말하지 않고 찾아가면 다들 엄청 놀라는 데, 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하지."

"식사가 잘 나오나봐? 아무리 병사들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병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 보니 말이야."

"누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당연히 잘 나오지, 사람은 원래 밥심으로 싸우는 거야. 훈련도 힘들고 전투도 자주 벌어지는 편인데 밥까지 맛 없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냐?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차려줘야지."

그런데 이곳에서 전투가 자주 벌어졌었나? 아직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도 안했는데...

'하긴 이 근처에 몬스터가 많긴 하지.'

라이트를 따라서 병사 식당으로 들어가니 입구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우리를 바라봤다.

라이트의 말대로 이곳에 찾아온 것이 한 두번은 아닌지 금방 익숙해져서 자기들끼리 떠들었지만 우리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긴 했다.

'훈련이 잘 돼 있는데?'

제도의 경비병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았다.

경비병들이 중앙파 귀족에게 휘둘려서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지원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걸 생각하면 이쪽 병사들이 경비병들 보다 더 강한 병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

라이트를 따라서 밥을 받은 뒤 한 무리의 병사 바로 근처에 앉았다.

다른 무리에 비해서 군기가 빠져 있어 보이는 것이 신입들인 것 처럼 보였다.

"밥은 맛있나?"

"맛있습니다!"

"너무 굳지 마, 나는 너희 잡아먹으러 온 게 아니니까, 훈련은 할만 해?"

"네! 할만 합니다!"

"진짜로 할만 해? 그러면 안 되는데, 애들한테 말해서 훈련강도를 높히라고 해야 겠는걸?"

라이트가 씨익 하고 웃으며 말하자 병사들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게 보였다.

'이거 완전 진상아니야?'

"장난이야 장난, 우리 영지에서 두번째로 높으신 분이 훈련은 할 만한지 물어보는 데 너희 입장에선 당연히 할만 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 실제로는 많이 힘들지?"

그 이후로는 라이트가 편안한 말투로 병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훈련 생활에 대한이야기도 듣고 즐거운 듯 떠들다가, 다음 훈련이 다가온 신병들이 떠나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겨 버렸다.

"너무 나만 이야기 했나?"

"아냐, 라이트 형이 어떤 사람인 줄 알게 된 기회가 됐는걸."

사람을 다루는 것 만큼은 굉장히 잘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다짜고짜 제국을 버리고 자기 밑으로 들어라고 했지...'

첫 대면부터 상대방의 신념을 부수고 시작하려 하는 데 그런 말을 듣고 누가 좋아하겠어?

'내가 남자라서 그런가?'

아예 처음부터 강하게 나와서 내 의지를 꺾는데 목적이 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훈련하는 건 기밀이라서 못 보여줘,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했으면 바로 구경 갔을 텐데, 아쉽지?"

"별로 안 아쉬운데?"

남의 병사들 훈련하는 거 보면 배만 아프지.

데리고 있는 병사 한 명 없는데 남들 훈련하는 거 구경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끽해야 눈만 호강할 뿐이겠지.

"그러면 영주성으로 이동할까? 구경할만한 곳은 전부 구경했으니까 말이야."

"나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좋아. 들어가자고!"

라이트를 따라서 영주 성으로 이동했다.

"네 방 안내 받았어?"

"아니, 오자마자 바로 변경백님을 만나고 그 다음엔 형한테 끌려가서 안내 못 받았지. 짐을 풀어준다고 가져간 건 봤는데 내 방이 어딘지는 모르겠어."

"따라와 짐작 가는 데가 있으니까."

라이트 형을 따라서 이동하니 손님방 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다.

"여길걸?"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우리 메이드 성격을 생각해 보면 100% 여기야."

라이트가 방문을 열어 재끼자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방의 구성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내 머리에 충격을 가져다 준건 미쳐버린 색 배치였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핑크색이 가득했다.

아래로 눈을 내려도 핑크가 보였고, 천장을 바라봐도 핑크가 보였고, 정면을 바라봐도 핑크가 보였다.

그냥 핑크 그 자체였다.

"봐봐 저기 네 짐있잖아. 여기 맞다니까."

그의 말대로 방의 구석에는 내가 가져온 짐들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쾅

일단 문을 닫았다, 더 이상 핑크 룸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밤까지는 형이랑 놀 거니까. 방은 굳이 지금 들어갈 필요 없지?"

"어지간히 들어가기 싫었나 보구나? 그런데 이거 어쩌냐? 형 이제 업무 봐야 하는데."

"뭐?"

아니 그러면 진짜 저 방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라고?

여기가 하이네스였으면 밖에 돌아가면서 도시 구경이라도 하든 놀러가든 했을 텐데, 여기는 놀만한 데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는 데 다 전투 관련 되거나 성에 관련이 된 거라서 내가 놀 만한 곳이 없었다.

'진짜 저딴 방안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어야 해?'

"형이 시간안되면 언니는 어때? 형 호위를 해야 한다고 하긴 해도 형이 집무를 보는 방에서 언니랑 조용히 놀면 되잖아."

"안돼, 집중력 흐뜨러져."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리하트가 바로 대꾸했다.

나랑 이야기 하는 게 싫나? 아니면 진짜로 자기 오라비를 지키기 위해서 최고의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은 걸까?

"오늘은 다른 기사한테 호위를 부탁할 테니까, 플레아랑 놀고 있어."

"하지만 오라버니..."

"이거 명령이다? 손님을 심심한 상태로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네가 같이 시간을 보내 달라는 거지."

"... 알겠습니다."

리하트가 긴말 없이 내 옆에 섰다.

'크으, 부럽네."

우리 동생은 내가 말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데, 여기는 바로 듣는 구나.

"그러면 나는 업무 보러 갈테니까, 둘이서 적당히 빈 방 찾아서 놀아."

내 방에 들어가서 논 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남자의 방에 여자를 들인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분홍색 방 안에 있다가는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았기 때문에 바로 리하트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제발 핑크가 아닌 방으로 안내해줘..."

"알았다."

리하트를 따라서 이동하니 응접실 비스무리한 공간에 도착했다.

"여기가 소파도 있고 창도 커서 개방감이 있어서 좀 편할거야."

"땡큐,"

바로 소파로 달려가서 엎어졌다.

아주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푹신한 소파가 내 몸을 받쳐줬다.

"언니는 얼마나 강해?"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지. 얼마나 강하냐고."

"그렇게 강하진 않아. 다른 기사분들에 비해서는 기술도, 힘도 많이 밀리는 편이니까."

"언니는 아직 어리잖아.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고 객관적인 힘을 알려줘!"

리쿠르트가 고민하듯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16살 가을쯤에 익스퍼드에 도달했지. 지금은 첫번째 벽에 도전하고 있는 상태고."

무력으로 따지면 58이나 59인 상태인가?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과연 59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확실히 뛰어난 인재긴 해, 고작 18의 나이에 첫번째 벽을 마주 보고 있다니.'

18살이면 아카데미 기준으로는 3학년이다.

아무리 벽을 넘어서는 것이 난이도가 높고, 대부분의 기사들이 좌절하는 포인트라고 해도, 이 정도 재능이면 올해가 지나기 전에 첫번째 벽을 넘을 확률이 높다.

18살이라는 나이에 첫 번째 벽을 넘은 기사? 그랗게 많지 않다.

'정확히는 많지 않았다지.'

본격적으로 난세가 찾아오면, 영웅들이 많이 등장할테니까. 리쿠르트 보다 더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간들도 많다.

당장 프레스티아만 해도 남녀역전 보너스까지 받아 챙기면 졸업전에 두 번째 벽은 가볍게 넘어버릴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쿠르트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대단한 기사였으며 무엇 보다 리쿠르트에는 기사단이 있었으니까.

기사단, 얼마나 멋진 울림인가. 단순히 이름만 멋있는 게 아니다.

마나따윈 없던 현실에서도 기사단이라 하면 강력한 위력을 가진 전쟁 병기나 마찬가지인데, 이곳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익스퍼드의 경지에는 도달한 인간들이니 어느 전장에 투입돼도 전장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집단이다.

'익스퍼드가 지휘하는 기사단과 마스터가 지휘하는 기사단은 그 위력 부터가 천지 차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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