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리쿠르트 변경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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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봤을 때 리쿠르트 변경백 정도의 세력은 그렇게 나쁜 세력은 아니다.
피터지게 싸우는 제도의 부근에서 나름 거리가 있어서 나름 안정적이기도 하고, 이전에 쌓아놨던 역량도 충분한 곳이니까.
내가 제국이 가져가기에는 과분한 존재라고?
그거 맞아, 내 능력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확신이 가진 않지만, 고작 제국 따위에 나를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내 가치가 낮진 않지.
그런데 말이야.
'그게 곧 리쿠르트 변경백 세력에 속해야 한다는 걸로 연결 되진 않거든?'
여기엔 내가 프레스티아랑 나름 친하다는 소문까지는 안 퍼졌나봐?
만약 라이트가 나와 프레스티아와의 관계를 알았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영입신청을 할리는 없었을 거다.
'마음 같아서는 너 따위 세력 밑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변경백이 내 상사로는 부적합해도 친구나 동맹 정도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픽이거든.
'그리고 일단 지금은 제국에 충성하기 때문에 너희 세력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스탠스를 취하는 게 훨씬 더 낫고.'
망해가는 제국이라고 해도, 아직 제국에 충성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꾸준히 제국에 대한 충심을 보여줘야지.
"생각 없다고 했습니다."
"쯧, 아쉽네."
라이트가 혀를 가볍게 찼다.
"언제든 네 자리를 남겨 놓을 테니, 제국에 회의감이 생기면 찾아오라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라이트가 의미 심장하게 웃었다.
"당장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으니까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러니까, 존댓말 말고 반말해. 편하게 부르라니까? 우리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도, 친구는 될 수 있잖아."
친구라...
당신이랑 내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군주와 군주사이에 어떻게 친구라는 게 존재할 수 있지?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가 목을 배어야할 존재인데.
물론 라이트는 내가 군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저런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알았어, 형님."
"그리고 내 여동생이라도 인사 좀 해, 이름은 리하트 리쿠르트, 우리 도시에서 제일 가는 유망주지."
리쿠르트의 눈빛은 묵직했다.
오라비를 지키는 여동생이라기 보다는 군주를 지키는 기사 같은 모양세로 서 있었는데, 기세가 상당히 날카로운 게 프레스티아를 옆에 데려나놔도 크게 꿀릴 것 같지 않았다.
'그야 리쿠르트는 18살이고, 프레스티아는 16살이라 그런거지.'
아마 같은 나이라는 걸 전재로 두고 비교하면 프레스티아보다 잘 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을 거다.
"반가워."
"나도 반가워 언니."
"언니?"
리쿠르트가 굳힌 얼굴 그대로 반문했다.
"누나라는 단어가 입에 잘 안 맞아서. 혹시 불편해?"
"아니, 불편하지는 않아."
"그러면 계속 언니라고 부를게?"
"그렇게 해."
겉으로 보기엔 차가워도 실제 성격이 엄청 차가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일어나자, 설마 리쿠르트 변경백령에 와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갈 생각을 한 건 아니지? 구경해 줄 게 많으니까 따라오라고."
바로 일어나서 라이트를 따라갔다.
첫 인상을 잘못 잡아 놨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친밀감을 쌓아갈 필요가 있었으니까.
"우리 도시엔 화려한 건축물 같은 건 없어."
그의 말 대로 였다. 어디를 가도 볼게 있던 하이네스와는 다르게, 리쿠르트는 마치 요새 마냥 짜임새 있게 지어져 있었다.
높은 건물이 보인다 싶으면 성벽에 달려있는 감시탑이었고, 거대한 건축물이 보인다 싶으면 군사시설이었다.
"리쿠르트는 제도나 다른 도시 같이 연약한 도시가 아니야. 수백년 동안 동부 왕국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철저하게 막아낸, 난공불략의 요새지."
라이트가 자랑 스럽다는 듯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의 미소에는 그가 리쿠르트에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그대로 들 어나는 듯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이어 리쿠르트 변경백이 될거야. 하나 뿐인 혈육인 리하트는 나의 호위기사가 되기로 스스로 맹세했으니, 다음 변경백은 무조건 내가 되겠지."
"잘 됐네."
"그래, 잘 된 일이지. 제국의 상황이 혼란스럽지 않고 건재했다면, 나는 평생 동부의 침략에서 제국을 수호하며 한 평생을 살면 됐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리쿠르트가 옅게 미소 지었다.
"제국은 무너져 내리고 있어. 중앙파 귀족들에 의해 황실은 유명무실하게 변해 버렸고, 이젠 지방파 귀족들도 서로의 세를 키우겠다고 난리야, 제국이 안에서 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내가 도대체 왜 외부의 위협을 막아내야만 하지?"
그리 말하는 라이트의 눈은 매우 올곧았다.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이 그의 눈에 새겨져 있었다.
'단순히 야망때문에 제국을 등지지는 않았다는 거구만?'
그도 나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제국을 위해 수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고 결론을 내린 게, 자기 세력을 꾸리는 것이었겠지.
그게 잘 못 됐다는 건 아니다.
당장 나도 진심으로 제국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제국에 충성하는 척을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역시 이런 이야기는 듣기 싫은 가 보군. 하긴, 방금 전에 영입에 실패한 인재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지, 미안해."
"괜찮아."
어색한 상황에서 리쿠르트 내부를 구경했다.
대부분의 시설이 군사관련 시설이었기 때문에 깊히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각 시설을 소개 해 줄 때마다 라이트는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나에게 설명해 줬다.
"언젠간 마법 병단이 유용하게 사용될 거야.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미래에 다른 세력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마법병단을 육성할 필요가 있어."
진짜 내가 군주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나도 못하고 있던 걸까?
그는 이 시점에서는 보기 드문 팁까지 나에게 건내주며 열변을 토했다.
'확실히 좋은 사람이긴 해.'
그는 뛰어난 군주였고, 좋은 지도자였으며, 사람 자체도 좋았다.
그의 말에는 상대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반응해서 친밀감이 생겨버릴 정도로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고서클 마법사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지만, 굳이 고서클이 아니더라도 저 서클의 각성자로 이루어진 마법 병단은 전장에서 큰 변수를 만들어 줄 테니까."
"나 좋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지?"
"천만에. 평소에 하고 있는 생각이었어."
그렇기에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내 적이 될 이라는 것 하나로 이 친밀감을 포기해야 하나?
그와 나 사이의 벽을 칠 필요가 있는가?
내가 이 점을 고민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전에도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나는 동성의 친구가 없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고 동성 친구는 이성 친구가 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메꿔 줄 수 있다.
당장 고민 거리도 더 공감이 갈 테고, 서로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지. 특히 지금 내 친구들은, 나에 대한 친밀감 속에 애정이라는 감정이 섞여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불안해 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라이트는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난 나와 동류의 남성이었다.
다른 남자애들이랑 다르게 성격도 약하지 않고, 자신감이 넘치며, 늘 신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만약 난세가 다가오지 않았을 거라면, 누군가가 승자가 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레이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마음 놓고 그를 친구라고 받아들였을 거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만나면 술이나 까고, 서로 힘든 점이나 털어 놓는 진짜 친구가 됐을 지도 모르지.
'그래, 어차피 동부 왕국과의 전쟁을 치루기 전까지는 한 팀으로 싸울 거잖아?'
괜히 벽 치지 말자.
그러다가 좋은 친구 하나를 그냥 날려 버릴 지도 모르니까.
마음 속에 있는 하나의 벽을 제거 하니까. 그와의 대화가 좀 더 편해졌다.
그도 나에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나에게 편한 말투로 대해줬는데, 나도 비슷한 느낌으로 그를 대하자 우리는 빠른 속도로 친해 질 수 있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친해졌는지, 리쿠르트가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마치 우리 오라버니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랑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아닌 데...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니 그건 말도 안되지. 어떻게 사람이 하늘을 날아?"
"투석기로 날리면 사람도 날 수 있지 어떻게 못 날아?"
"아니 미친놈아 사람을 투석기로 날릴 생각을 하는 미친 새끼가 이 세상에 어딨어?!"
욕 하는 거 보면 친해진 거 맞겠지?
"지금 나보고 미친놈이라는 거야?"
"그래, 너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다!"
"저, 오라버니, 플레아씨는 손님인데, 그렇게 욕을 하시는 건..."
"아, 괜찮아. 이거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대화하는 거야."
"맞아, 우리 둘이 얼마나 친한데."
라이트가 내 어깨에 팔을 걸어왔다.
음, 아무리 친구라도 이건 좀...
슬쩍 떨어지니 라이트가 배신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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