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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99화 (99/312)

〈 99화 〉 리쿠르트 변경백­2

* * *

리쿠르트 변경백의 입가에 미소가 짙게 지어졌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지."

변경백이 저벅저벅 걸어가서 집무실 옆쪽에 배치된 소파의 상석에 앉았다.

나도 따라 움직여서, 변경백의 바로 앞 소파에 앉았다.

"플레아 자네의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제도에서 꼬마영웅이라고 불리고, 은급 훈장을 받을 정도로 큰 공을 세웠다지?"

"제게는 과분한 칭호죠."

"사람들을 무시 하지 말게, 꼬마영웅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어서 꼬마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일 테니."

변경백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조금 더 커졌다.

"안 그래도 한 번은 불러서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이번에 나마흐님 때문에 자네에 대한 소문이 확 퍼지지 않았나. 조금만 더 늦으면 다른 년들한테 선수를 빼앗길 까봐, 재빨리 자네를 초대했지. 그나저나 나마흐님이 기다릴 정도의 인재라니, 얼마나 뛰어날 지 감도 잘 잡히지 않아."

"저는 그렇게 뛰어난 인재가 아닙니다."

"나는 나마흐님의 눈을 믿네."

변경백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상당시간 변경백령에서 변경백을 지냈기 때문일까? 근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임에도 불과하고 상당한 위압감이 있었다.

'여기서 부터 지고 들어가면 안되는데.'

내가 이곳에서 상대할 메인 빌런은 리쿠르트 변경백의 자식들이지 리쿠르트 변경백 본인이 아니다.

어차피 리쿠르트 변경백은 동부왕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니까.

"직접 만나보니 나마흐님이 왜 자네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아. 자신감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눈빛도 좋고, 그 나이에 비하면 기세도 대단한 편이야. 여기에 올곧은 신념까지 있다면 확실히 나마흐님이 직접 찾아가서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겠지."

"과찬이십니다."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가 보군,"

그래, 나 자신감 없다.

잠깐 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변경백이 아무말도 안 하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길래 가져왔던 선물을 꺼냈다.

꿀이 왜 와인병 비슷한데 담겨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미엄으로 판매하는 거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자.

"리쿠르트 변경백님께 드릴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흠? 하이네스 백작가에서 생산된 꿀인가? 포장 상태를 보아하니 상당히 상품의 물건인 듯 한데, 비싸지 않았나? 이런 과분한 선물은 받기 좀 부담스러워 말이야."

"친구가 하이네스 백작가의 인물이라 하나 받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일단 반갑게 받겠네."

변경백이 내가 탁자위에 올려둔 꿀을 가져갔다.

"변경백령엔 얼마나 머무를 생각이지?"

"3일 정도 머무르며 변경백을 구경할 생각입니다."

"구경 좋지. 내 아이들을 붙여줄 태니 재밌게 놀아보게. 자네 또래의 아이들이니 아마 얘기가 잘 통할 거야."

'이제부터 본 게임인가?'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아직 내가 약자의 위치에 있어서 그런걸까? 다른 예비 군주를 만날 때 마다 괜히 심장이 쿵쿵댄다.

"애들 노는 데 어른이 끼어서는 재미가 없겠지. 집무실 밖으로 나가보게. 아마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벌써 기다리고 있어?'

애초에 나와 남매를 만나게 하려고 작정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집무실에 들어오면, 사용인을 시켜서 남매를 집무실 문앞에 데려와서 나와 만나게 하려는 속셈이었겠지.

"그러면 안녕히 계십쇼,"

"그래, 이따 밥먹을 때 보도록 하지."

집무실의 문을 향해 또박똽ㄱ 걸어갔다.

'이 문을 열면 리쿠르트 남매가 있단 말이지?'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새하얀 백발을 지닌 두명의 남녀가 문 밖에 서있었다.

남자쪽이 상대적으로 앞쪽에 서있었고, 여자쪽은 남자의 한 발작 뒤, 두발짝 오른쪽에 서 있었다.

"반갑다."

남자 쪽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라이트 리쿠르트님."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어차피 나이 차이도 3살 정도 밖에 안 나는 걸로 아는 데 그냥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

리쿠르트 남매의 이미지는 내가 난세에서 접한 것과 조금 달랐다.

난세에서도 라이트 쪽이 조금 더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동생 쪽이 지 오라비의 호위 역할을 했던 것 맞지만 라이트 또한 나름 강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세에 들어서면서 기사로서의 재능이 줄어든 라이트는, 아예 무력을 올리는 걸 포기했는지, 무력수치가 그리 높게 찍혀 있지 않았다.

반대로 동생쪽은 무력이 난세보다 높았고.

"너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많아.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너를 아는 이들은 손에 꼽혔으니까."

라이트가 변경백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일단, 빈 방으로 이동하자. 굳이 서서 이야기 할 필요 없잖아?"

라이트 천천히 걸으면서 내 옆으로 붙어왔다.

"참 아쉬워, 나마흐님의 제자로 들어갈 정도로 기사로서의 재능이 있었다면, 내 동생과 대련을 한 번 부탁했을 텐데 말이야."

"안타깝게도 제가 엄청 약골입니다."

"편하게 이야기 하라 했잖아? 형이라고 불러."

이쪽 사람들은 다들 빠꾸가 없단 말야.

'너희가 먼저 말 놓으라고 한거다?'

"알았어 형."

"그래. 그래야지."

라이트의 입가에 짓은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체스 둘 줄 아나?"

"응 둘 줄 알아."

그것도 진짜 잘 두지.

내 체스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난세를 진행하다보면 NPC들이 지금 처럼 체스내기를 신청해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기기 위해서 유튜브도 많이 보고 연습도 많이 했더니, 아마추어 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일단 체스 한판 하자. 체스 하나로 너의 능력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순 있겠지."

라이트가 빈 방문을 열어 재끼고 안에 들어가서 체스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가 체스를 세팅하면서 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물어 올 때도 그의 동생인 레이트는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바로 시작해 봅시다. 먼저 둬."

나이트 앞의 폰 하나를 들어 두 칸 앞으로 옮겼다.

"나마흐님을 만난 소감은 어떠한가?"

게임이 무르 익을 때쯤 라이트가 넌지시 물어왔다.

무의식 중에 나온것인지, 아니면 고의인지, 방금 전 까지의 친근한 어투가 아니라 상당히 진지한 어투였다.

"그리 길게 만남을 가지지 않아서, 크게 말할 건 없지만,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한 분이셨어."

"그래, 위대한 기사님들은 모두 제국에 충성을 다하고 계시지."

라이트가 내 폰을 잡아왔다.

"그런 나마흐님의 관심을 끈 너 또한 제국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제국에 대한 충성이라면, 제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당연히 가져야 하는 기본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트를 옮겨서 라이트의 비숍을 위협했다.

"그것도 제국이 멀쩡할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지금처럼 제국이 망해가고 있을 땐, 그 충성을 누가 알아주지? 망해가는 배 위에 올라타는 건 멍청한 짓일 뿐이야."

'이제야 본색을 들어내는 구나.'

아마 처음 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지.

조금만 조사해도 내가 지속적으로 제국에 충성한다는 스탠스를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라이트는 상당한 야망가였다.

동부 왕국과의 전쟁으로 크게 세력을 키운 라이트는, 본격적으로 제도가 분열되기 전에 먼저 제국에게 반기를 든다.

라이트는 애초에 군주로 태어난 사람이며, 그에게 제국이란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다.

'사상과 사상의 싸움인가?'

나는 무조건 제국에 충성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라이트가 나를 팔사적으로 설득하려 하겠지만, 제국에 대한 충성은 나의 근본이다. 아직은 힘 약하니, 제국에 충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나마흐가 갑자기 나를 차장온 것 처럼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제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일부로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

라이트에게 내가 화를 참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했으니까.

일부러 말도 거칠게 옮겼다.

"제가 그리 만들겁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라이트가 나를 바라보더니 씩, 미소 지었다.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떤가. 곧 망해서 사라질 제국보다는, 우리 배 위에 타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야."

그의 말이 맞았다.

제국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분열되어 버릴 테지만, 리쿠르트 변경백은 크게 세력을 키울 태니까.

그런데 말이야.

'네 밑으로 들어갈 거면 진작에 프레스티아 밑으로 들어갔지.'

난세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날 프레스티아의 밑으로도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 치열하게 머리 싸움을 굴리고 있는 데 뭐? 고작 변경백 따위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생각 없습니다."

내 나이트가 라이트의 킹을 위협했다.

"너 같은 인재가 왜 제국에 집착하는 지 이해가 안돼."

라이트가 자신의 왕을 쓰러뜨렸다.

아마 지금 부터는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이 진다는 걸 알아차린 거겠지.

"나는 너에 대해서 잘 몰라.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네 능력에 대해서 뭘 알겠어.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지."

라이트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뛰어난 인재든, 아니면 생각보다 실력이 낮은 인재든, 제국이 가져가기엔 과한 존재라는 거야. 그러니까, 내 밑으로 들어와라."

이 도련님 참, 당돌하시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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