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98화 (98/312)

〈 98화 〉 리쿠르트 변경백­1

* * *

위대한 기사인 나마흐가 나에게 가져다 준 홍보효과는 어마어마했다.

현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 중 한 명이 나를 보기 위해서 5일이나 밖에서 기다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충분했고, 그 소식은 곧 주변도시들로 번져나갔다.

'아마 이 소문이 제도까지 다다르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

아마 나마흐가 쿨리온 남작가에 머무르면서 내가 제도에서 내려오길 기다렸다면 이렇게 까지 폭발적인 반응은 없었을 거다.

사람들은 그 나마흐가 나 하나만을 위해서 밖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에 열광하는 거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한 쇼맨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 말이지.'

덕분에 나에 대한 소문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니 일단 고맙게 생각해야 겠지.

"아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지?"

"네, 내일 출발이에요."

갑작스럽게 올라간 나의 인기는, 하이네스가에 놀러 가기 전 부터 바래왔던 만남을 성사 시켰다.

"변경백님을 만나러 가는건데 긴장 되지는 않아?"

"별로 긴장은 안돼요."

변경백? 대단한 직책인 건 맞지만, 우리 미네타의 어머님이 그보다 높으신 분이다.

일단 같은 작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위세로 따지면 비교도 되지 않지.

'하지만 변경백이란 직책이 가지는 특징 때문에 절대 무시 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해.'

국경을 수호하는 영지다 보니 다른 지방에 비해서 병사들을 많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며, 제도에 세금도 가장 적게 낸다.

지방파 귀족이 약세를 보이고 중앙파 귀족이 가장 강력했을 때에도 변경백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으니, 변경백이라는 직책의 위력을 손쉽게 알 수 있겠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만나 봤던 세력 중에서 가장 실전성이 강한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언제나 방심해선 안된다.

"우리 아들이 변경백님의 초대를 받게 되다니... 엄마는 믿을 수가 없어."

"그만큼 아들이 잘 나간다는 뜻이죠."

방긋 하고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자리니까. 변경백님이 저한테 해꼬지 할 수는 없을 거에요."

"... 아들은 가끔 너무 어른스러운 말을 한 다니까?"

'그야 어른 이니까 그렇지.'

플레아의 몸에 빙의하기 이전의 이야기만은 안다.

난세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선 16살이면 충분히 어른이며, 특히 군주로서 살고 싶은 나로서는 자기 살길은 자기가 알아서 찾아야만 했으니까.

"제가 한 의젓하잖아요?"

"그래, 우리 아들 의젓 해서 엄마는 좋다. 오늘은 푹 자고, 조심히 다녀와."

"네, 어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제도에서 아이데스 마을까지는 이틀 정도 걸렸지만, 이곳에서 변경백령으로 가는 데에는 하루 정도면 충분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루가,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밤이 돼야 도착하는 꽉 찬 하루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쿨리온 남작가의 가장 빠른 마차를 이용하면 하루만에 변경백령 까지 갈 수 있었다.

"변경백님께 드릴 선물은 챙겨 놨지?"

"당연히 챙겨 놨죠."

쿨리온 남작가에 갈때는 어머니의 주군을 뵈러 가는 거라 따로 챙긴 게 없고, 하이네스 백작가에 갈 때는 나랑 격이 너무 차이 나기도 하고, 친구의 집에 놀러가는 거라 큰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영주를 찾아 갈 때는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이네스 백작가에서 받은게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가 방학 중에 변경백을 보러 갈거라고 하니까. 선물로 들이라면서 굉장히 고급져 보이는 꿀 한 병을 건네 주더라.

미네타가 준거면 거절 했을 것 같은데, 하이네스 백작이 직접 건내 준거라서 거절할 생각도 안하고 냉큼 받아서 챙겼다.

"자꾸 말 시켜서 미안, 이제 진짜 잘자렴 아들!"

"네, 어머니."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아직 동이 완전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짐들을 다 챙기고 옷을 입었다.

부려 변경백에게 찾아 가는 것이니 만큼 격식을 갖춘 옷이 필요했는데, 역시 청기사단의 제복만한 옷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카밀레 경."

"잠을 잘 주무셨습니까?"

"네, 푹 잤어요."

이제는 내 전용 마부처럼 느껴지는 카밀레 경이 우리 집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계셨다.

"짐은 제가 실을 태니, 들어가시죠."

"부탁 드릴게요."

카밀레 경에서 짐을 맡기고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쿨리온 남작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마차라던데, 확실히 이전에 탔던 마차랑은 질이 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확실히 속도도 빠르네.'

이전에 타던 마차에 비해 최소 20%는 더 빠르게 느껴졌다.

덜컹 거리는 진동을 느끼며, 생각에 빠져 들었다.

'변경백이라...'

변경백의 초대로 변경백령으로 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변경백이 아니다.

내가 가장 주시해야 할 건 변경백의 자녀들이다.

'아무래도 같은 세대를 살아갈 인물들이니까.'

리쿠르트 라는 성을 쓰는 변경백은 난세에서 나름 괜찮은 세력을 이룩하는 곳이다.

나중에 벌어질 동부 왕국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세력을 천천히 키워나가는 곳이니까.

제국이 완전히 분열된 다음에도,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뽑힐 정도로 큰 세력을 차지하게 된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지금은 무조건 눈도장을 찍어 놔야 해.'

동부 왕국과의 전쟁은 나도 참여하는 전쟁이니까,

제도의 중앙파 귀족들에게도 뒷돈을 쑤시겠지만, 직속 상관의 역할을 할 변경백 쪽에도 많은 뒷돈을 투자해야 할텐데, 지금 안면을 트고, 친분을 쌓으면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긴장이 많이 되십니까?"

"당연히 많이 되죠."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당연히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지.

"리쿠르트 변경백님은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평판이 굉장히 좋으신 분이니. 너무 걱정하실 거 없으십니다."

평판이 뭐가 중요해, 나는 아카데미의 학생 플레아 아이데스로서 변경백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미래의 세력가로서 변경백을 만나러 가는 건데.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더라도, 그들을 만족시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아예 만족시킬 수 없다면 철저히 나 자신을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카밀레 경도 슬슬 감을 잡았을 텐데 왜 그러시나?'

카밀레 경 뿐이랴. 아마 그녀를 통해 정보를 듣고 있는 쿨리온 자작도 내가 군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걸 감을 잡고 있을 테지.

"도착할 때까지 잘게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점심은 안 드실 겁니까?"

"중간에 배고프면 일어나서 먹을게요."

지금까지는 이동 중에 멈춰서 밥을 해 먹었지만, 오늘은 이동시간이 중요한 만큼 점심 도시락을 싸왔다.

저녁은 늦은 밤에라도 먹으면 되니까 큰 상관 없고.

역시 잠을 자니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중간에 한 번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다시 잠을 자니까 어느새 리쿠르트 변경백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플레아님."

"네, 오늘은 주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들어가는 거였죠?"

"네, 밤이라 검문도 있고, 밤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침에 들어가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참고로 변경백에겐 어제 서신을 보내놨다.

오늘 기준으로 내일 아침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지금 들어가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변경백 외곽의 여관을 잡아서 잠을 잤는데 딱히 큰 이벤트는 없었다.

"후우."

좋아, 다 챙겼지?

선물도 챙겼고, 옷도 제대로 입었고, 훈장도 제대로 박아놨어.

몇 번을 다시 확인해도 오차 없이 완벽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검문을 통과한 뒤 병사의 안내를 받아 영주성으로 이동했다.

"백작님이 많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들어가면 되나요?"

"네,"

손님방 처럼 보이는 곳으로 나를 안내한 병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하던일을 다 끝내고 손님을 맞이하는 데 마침 할 일이 없던 걸까? 아니면 하던 일도 제쳐둘 정도로 나라는 사람이 중요했나?

"후우..."

­똑똑

한숨을 크게 내쉬고 방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허락의 표시가 들려오면 그 때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펼쳐졌다.

"어서오게나."

변경백 이 미친작자가 자기가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아니 진짜 미친 건가?'

난세에서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예의라는 것이 있다.

상대의 홈그라운드로 들어갈때에는 아무리 신분의 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들어가는 쪽이 허락을 구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다.

막말로 프레스티아가 나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프레스티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예의다.

아예 시에린이나 미네타 같이 친한 친구들이 찾아 온거면 내가 먼저 나갈 수 도 있는데, 이런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하, 미안, 자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말이야. 발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움직여 버렸군, 이해해 줄 수 있겠나?"

"네, 괜찮습니다."

변경백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절대로 당황한 티를 내선 안된다. 첫 만남 부터 지고 들어갈 순 없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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