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위대한 기사 나마흐2
* * *
나마흐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저녁을 준비했다.
요리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 정도는 할 줄 알기에, 다양한 음식들을 빠르게 만들어갔다.
몇몇 음식들에는 미네타에게 받아온 꿀을 넣었으니, 아마 입맛에 안 맞지는 않을거다.
'설마 방랑 기사가 편식을 하겠어?'
순수하게 못 만든 음식이면 몰라도, 음식의 종류를 가지고 투정을 하진 않겠지.
멋들어지게 한 상을 차린 후 나마흐와 플린을 불렀다.
"오, 내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었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나마흐가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진짜 맛있는데? 당장 장가가도 되겠다."
음식이 꽤 잘 맞았는지 나마흐는 빠른 속도로 음식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나마흐한테 나를 어필하고 싶긴 한데, 대 놓고 자랑으로 시작하는 것도 이상해서 눈치만 살살 보면서 밥을 먹었다.
"흑마법사랑 싸울 땐 어땠어? 남자애가 감당하기엔 상당히 무서운 상황이었을 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나마흐가 먼저 흑마법사 이야기를 꺼냈다.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되겠지?'
나마흐가 방랑기사긴 하지만, 일단 그녀의 충성은 제국에 고정되어 있다.
마땅히 섬기는 자가 없어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 뿐이지, 자신과 같이 제국에 충성하는 이들을 싫어할리가 없었다.
"무서워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제가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을 지켜야 했고, 달리 다른 수가 없었으니까요."
"평범한 사람은 그런 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 해서 하는 말이야. 내가 널 제자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니까?"
"나마흐님의 제자라니, 저한텐 너무 과분한 자리인데요?"
"육체적인 재능만 빼면 충분하고도 남아,"
나마흐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사람, 내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고 평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말을 돌리자. 나는 나에 대한 칭찬이나 받으려고 나마흐를 멈춰 세운 것이 아니니까.
"나마흐님은 지금 제국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마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소드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이의 기세에 나도 모르게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아, 미안. 갑자기 화가 치솟아 올라서."
한 순간 치솟았던 기세가 다시 잠잠해졌다.
"제국이라... 쯧, 부정하고 싶지만 다 기울어 가는 상황이지. 제도에서는 허구한 날 귀족들이 싸우고 지방에선 지방파 귀족들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어. 황실의 권력은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고, 제국의 전력은 약해지기만 하고 있지."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제국은 지금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
내가 아카데미의 학생 신분이라서 체감하지 못할 뿐이지 잔뜩 썩어있던 제국의 내면이, 이제는 겉에서 봐도 썩어 있는 부분이 보일 정도로 심각해 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국을 지킬 거에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나마흐를 바라봤다.
"이미 산산조각 나 버린 제국이고, 서서히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붙여 놓고 말 겁니다."
조금 급발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마 괜찮을 거다. 내 나이 또래 애가 자기 생각을 말하다가 급발진 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게 자신의 신념에 관한 일이라면, 더더욱 발생할 확률이 높은 일이고.
나마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국을 다시 붙여 놓는다고? 어려운 일이야.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네가 붙여 놓은 제국은 이전의 제국과는 그 모습이 다르겠지. 황실이 다스리지 않는 제국은 제국이 아니야."
"저는 야망이 없습니다. 제가 제국을 지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저는 이전처럼 황실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제국을 통치하길 바랍니다. 저는 황실의 손과 발이면, 족합니다."
내 거짓말이 전해진 걸까? 나마흐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같이 이야기 할 수록 아쉬워지네, 네가 육체적인 재능만 좀 있었어도 너를 제자로 삼는 건데."
"남부로 가시면 저보다 더 알 맞은 이를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남부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보지? 네 말이니까, 믿고 찾아가 보겠어."
어느새 식탁 위에 있던 음식들이 모두 바닥을 들어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이야기 하고 싶지만, 슬슬 이동해야지. 잠까지 여기서 자고 싶진 않거든."
"자고 가셔도 되긴 하는 데 말이죠."
"아냐, 됐어. 더 이상 너에게 부담 주기도 싫고, 그 운명이라는 사람도 한 번 만나보고 싶거든, 네가 추천한 녀석이니까. 기대해도 되겠지?"
"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야망이 넘치는 년이긴 하지만, 황실에 대한 충성만큼은 진심인 여자니까.
"그러면,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만날 때는 아마 전장에서나 만나려나?"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냥 감이 그래, 아무튼, 나는 진짜 간다."
그녀가 땅을 박차니 한번이 몇 미터 씩 빠르게 움직였다.
저게 소드 마스터라는 걸까?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저 플레아님."
주변에 있던 마차에서 카밀레 경의 소리가 들렸다.
'아! 나마흐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이쪽을 까먹고 있었네.'
고개를 삐걱삐걱 하며 돌려서 카밀레 경을 바라보니, 왠지 처량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이제 돌아가 봐야 하는데, 아이를 데려가시죠."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마차 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꺼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꾸벅하고 인사해 준 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마차가 간 걸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플린이 아이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더니, 아이를 향해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걔는 또 누구야? 설마 새 여동생이야? 여동생은 나 하나면 됐잖아. 혹시 내가 뭐 잘못 한거 있어?"
어려서 그런가? 상상력이 풍부하네.
"여동생 삼으려고 대려온거 아니야."
"그러면?"
"부하로 쓰려고 대려왔지. 이렇게 보여도 나름 재능이 넘치는 아이거든, 잘 키우면 뛰어난 부하가 될 거야."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벌써부터 얘를 어떻게 키울지를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부하?"
"어, 부하."
찔리는 거 하나 없이 당당하게 말해주자 플린에 눈에 있던 경계심이 천천히 사그라 지는 게 보였다.
"오빠 부하면, 내 부하기도 한거지?"
"그건 아니지, 수련 대충 하면, 네가 얘의 부하가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엄마말 잘 듣고 수련 열심히 해야 한다?"
"아니 왜 갑지기 이쪽으로 연결되는 건데? 그리고 난 이미 수련 열심히 하고 있거든! 내가 엄마한테 얼마나 칭찬을 많이 받는데!"
플린이 억울한 듯 소리치는 타이밍에 현관 문이 열렸다.
"엄마 오셨나보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이 아이는 키우면서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엄마한테 허락을 받는 건 필수니까.
엄마가 들어오시자 마자 쪼르르 달려가서 아이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아이를 무슨 생각으로 데려왔는지. 얘는 어떻게 키워서 부하로 써먹을 것인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자, 엄마가 내 생각보다도 더 흔쾌히 아이를 키우는 걸 허락하셨다.
"좋아. 어차피 시간 날 때마다 애들을 가르키니까. 한 명 정도 더 늘어난 다고 해서 크게 부담은 없어, 그리고 이 아이는 다른 아이랑 다르게 비범함이 보이기도 하고."
당연하죠. 무력 잠재력이 90이 넘는 아인데.
"그런데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정보 요원은 단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적당히 무력만 길러주면, 얘가 알아서 터득할 거에요."
이 아이는 그만한 재능이 있는 아이니까. 가만 내버려 둬도 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암살자로 성장하는 데, 우리 엄마같은 기사가 붙어서 지도까지 해주면 훨씬 더 뛰어난 인재로 성장할 거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빈 방에 가서 눕히고 오렴."
아이를 손님방에 대려가서 눕힌 후 다시 거실로 나왔다.
"나마흐님이랑 대화 해봤니 아들?"
"네, 되게 좋으신 분이시던데요?"
위대한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으스대지도 않고, 나를 엄청 좋게 봐주셨으니까.
"위대한 기사님이 내 아들을 찾아오시다니... 솔직히 엄청 놀랐어. 그리고 너를 제자로 삼고 싶다는 말을 하셨을 땐 진짜 놀라서 자빠질 뻔했지 뭐니."
"안타깝게도 제 재능이 미천해서 나마흐님의 제자가 되진 못했지만 말이에요."
"안타깝니?"
어머니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뇨, 사실 하나도 안아까워요."
나는 기사가 꿈이 아니니까.
나마흐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지 못한 건 좀 아쉬웠지만, 애초에 내가 그녀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하고 있어서, 별로 아쉽지도, 아깝지도 않았다.
"나마흐님이 네가 올 때까지 5일이나 기다리셨다는 소문이 쿨리온에 쫙 퍼졌단다. 아마 다음에 쿨리온에 가게 되면, 저번에 갔을 때랑 느낌이 꽤 다를 거야."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 우리 아들은 똑똑하니까."
어머니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면, 저는 이만 자러 가볼게요. 어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자렴 우리 아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