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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96화 (96/312)

〈 96화 〉 위대한 기사 나마흐­1

* * *

집으로 출발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일주일간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는 것이다 보니, 너무 후련하게 놀아서 헤어진다는 사실이 덜 아쉬웠다.

"잘가!"

마차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애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뒤 마차에 제대로 앉았다.

"일주일간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네, 재밌게 잘 보냈어요. 카밀레 경은 잘 지냈셨어요?"

"저도 저 나름대로 잘 보냈답니다. 저한테는 과분한 고급여관도 길게 이용해보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인생을 즐겼네요."

마차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어차피 마지막날이기도 하고 마차에서 자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제 밤새 놀았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저 잘테니까 밤을 보내기로 했던 마을에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알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눈을 꼭 감자마자 수마가 나를 덮쳤다.

내가 일어난 건 아직 해가 지기 전 노을이 내릴 때인데 아직 여름이다 보니 시간으로 따지면 마냥 이른 시간은 아니었다.

"도착했습니다."

"네, 저 잠깐 어디 다녀올테니까, 여관 잡고 계세요."

"어느 여관을 잡을 줄 알고 가십니까?"

"아, 맞다."

방금 막 일어나서 비몽사몽해서 그런가, 기본적인 생각도 잘 안 이뤄지네,

마차를 타고 여관까지 간 후, 하루 숙식을 부탁하고 방까지 받은 이후에야 나왔다.

'어딨으려나.'

이번 여행동안 내가 밑작업을 쳐 놓기로 한 사람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티아나, 그러니까 저번에 봤던 수학자고 다른 한 명은 이 마을에 있는 거지였다.

'찾기 그렇게 어렵지는 않네.'

난세에선 이 마을의 빈민촌에서 나타난다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큰 도시도 아니고, 크기가 상당히 작은 마을이다 보니 빈민촌의 크기라고 해봤자 그리 크지 않았다.

여기서 머리가 회색이고, 나이는 잭스펠 애들이랑 비슷한 아이를 찾으면 됐다.

'저깄네.'

아이한테 천천히 걸어갔다.

얘도 티아나랑 마찬가지로 나름 자주 영입하던 인재라서 난세 속 영입 대사를 그대로 읇을 수 있었다.

"꼬마야, 너 배고프지 않아?"

내 말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올려서 나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빛은 공허했고,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은 듯 했다.

"배 안 고프냐구."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앞에 앉아서 물었다.

주변에 빈민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빈민촌의 사람들이 멍청해도 설마 훈장이 있는 사람한테 공격을 가해오진 않을 테니까.

"배... 고파요."

아이가 작은 말로 대답했다.

"그러면 형 따라올래? 앞으로 잘 멕여줄게."

"...형... 이요?"

아이가 가볍게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야, 내가 아무리 발육이 덜 되고 키가 작다고는 해도 너보다 나이 많거든?'

"저 여잔데..."

응? 여자라고?

뭐지? 내가 알고 있는 섀도스탭은 분명히 남자였는데?

'이것도 남녀역전의 잔재인가?'

겉으로 보이는 특징은 거의 유사하고, 상태창으로 살펴본 재능도 차이가 없었으니, 그냥 남녀역전이 이뤄짐에 따라서 다른 인물로 대체된 모양이었다.

'재능이 똑같다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지.;

"그래, 그러면 오빠 따라올래? 앞으로 밥 잘 멕여줄 수 있는데."

섀도스탭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섀도스탭이라는 이름은 이 아이가 미래의 자신에게 스스로 지어줄 이름이다.

내가 지어줘도 되긴하는 데, 보통은 이름을 공란으로 남겨두다가 스스로 이름을 짓게 한다.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싶이 이 친구는 암살자겸 정보원으로 크게 활약하는 친구다.

지금부터 열심히 키우면 본격적인 난세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람 구실을 할테고, 시간이 지나서 실력이 무르익으면 밑에 사람을 붙여줘서 정보집단으로 만들어야지.

아이를 데리고 잡아놓은 여관으로 가자 카밀레 경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귀찮거나 한심하다는 눈빛은 아니었고, 약간의 경계가 섞인 눈동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지만.

"아이야, 너 혼자 씻을 수 있지?"

"네,"

아이가 씻을 동안, 미리 챙겨왔던 옷을 꺼냈다.

내가 예전에 입던 옷인데, 아마 그렇게 작진 않을 거다.

"문 앞에 옷 가져다 놨으니까 입고 나오렴."

"네."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쯤 아이가 다 씻고 나왔다.

"왜 저를 데려오신 거에요?"

"다 이용해 먹을 게 있어서 데려왔지."

쟤한테는 처음 부터 자기를 데려온 목적을 명확히 설명시켜주는 게 좋다.

괜히 불쌍해서 데려왔다, 같은 거짓말을 치다간, 파국이 도래하는 수가 있다.

'그것 때문에 몇 번 게임 오버 당했지.'

취급에 주의를 요하는 아이다.

"나는 너를 암살자로 키울거야."

"암살자요?"

"그래 암살자. 때로는 적 세력에 들어가서 정보를 캐오는 정보원의 역할도 할 거고."

나도 다 이유가 있어서 너를 데려왔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아이도 안심한 듯 경계하는 표정을 풀었다.

"알겠습니다."

그 이후로 서로 말이 없었다.

여분의 이불을 꺼내서 아이한테 덮어주고 나는 침대 위에서 잤다.

아무런 일도 없이 다음날이 찾아왔고 나는 카밀레 경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랑 같이 마차에 올랐다.

"궁금한 거 없어?"

"딱히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밥 줄테니까, 따라와, 라고 해서 따라온 건데, 아이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처음 봤던 무채색의 눈동자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네가 뭘하게 될지도 안 궁금해?"

"오빠의 명령에 따라서 훈련을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도착하면 모든 걸 알게 될텐데 굳이 지금부터 궁금해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

참 차가운 아이였다.

그 뒤로 아무런 말 없이 걸어가다가 가볍게 점심을 해결한 뒤 계속 갔다.

저녁이 되기 전에 우리 마을에 도착했는데, 평소와는 다른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응? 무슨일 있나?'

카밀레 경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마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평소라면 10분이 걸릴 거리를 7분만에 주파한 우리는 부산스러움의 이유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 여자가 우리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의자가 아니라 맨 바닥에...

"오빠!"

"플린!"

일단 여자는 무시하고 동생과의 재회를 먼저 진행했다.

한 번 꼬옥 안아줬다.

"저 사람 누구야?"

여자한테 안 들리게 작게 말했는데 플린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그냥 오빠를 찾아왔다고만 말하던데?"

"나를 찾아왔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여자에게 향했다.

"저기, 누구신데 저를 찾아오셨나요?"

"네가 제도에서 꼬마영웅으로 유명한 플레아 아이이데스냐?"

"과분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죠."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쿨리온 남작가의 식객으로 있는 푸리에 나마흐라고 한다."

푸리에 나마흐...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소한 이름은 아니었다.

라이넬의 스승인 데안느와 함께 위대한 기사 중 한 명이었으니까.

"위대한 기사님을 봽습니다."

손을 어깨에 대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쓸데 없는 예의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게 아니야."

그러면 뭣하러 오셨습니까?

'이 사람이 여기서 나타날줄은 몰랐는데...'

방랑기사인 푸리에 나마흐는, 지금 시기엔 랜덤시드에 따라 움직여서 언제 어디에 있을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남자치곤 기세도 대단하고, 눈에 신념도 확고해, 꼬마영웅이라는 칭호를 아주 꽁으로 받지는 않았나 보지? 굳이 이 몸이 찾아올 가치가 있었어."

"쿨리온 성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저에게 기별을 넣어주셨으면 제가 찾아갔을 텐데 말이죠."

"그럴 순 없지, 급한 건 나니까. 괜히 네가 오는 시간을 추가로 낭비하긴 싫었어."

"얼마나 기다리셨나요?"

"오늘로 5일 째지."

무료광고 고맙다.

나마흐쯤 되는 기사가 나를 기다렸다는 소문은 아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장으로 근처 도시에 퍼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정체됐던 계획이 물 흐르듯 진행되겠지.

"내가 왜 너를 찾아왔는지 궁금해?"

"네, 궁금합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신념도 있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도 있는 애처럼 보이더라고, 너라면 내 제자로 적합할까 해서 왔는데..."

나마흐가 내 몸을 쓱 훑었다.

"근골이 아주 엉망이야."

"저도 압니다."

"어떤 노력을 해도 기사로는 성공할 수 없는 몸이지."

왜 나를 안타깝다는 듯 쳐다 볼까? 어차피 무력 잠재력이 100을 넘어도 기사로 살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래도 개인적으로 아쉽긴 하다.

나마흐가 나를 제자로 삼았다면, 아마 나름 든든한 뒷배를 가지게 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헛발질 한 꼴이 됐네."

"죄송합니다."

"아냐,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그리고 죄송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라서 말이야. 5일 정도 날린건 나한텐 큰 타격이 안돼."

"제자를 구하시러 방랑하고 계신 거에요?"

"그렇지, 망해가는 제국을 바로 세우는, 위대한 기사를 육성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중이야."

"남부로 향하세요."

나마흐가 방랑기사라서 랜덤시드에 많이 의존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녀의 제자가 되는 여성이있다.

'그 년도 군주 기질이 있어서 아마 내 경쟁자가 될 확률이 높지만.'

자신을 스승님께 추천해 준게 나라는 소리를 들으면 초반단계에서는 수월하게 동맹을 맺을 수 있겠지.

"제국 남부의 끝, 제아네스 항구 도시로 가면, 아마 운명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나마흐가 푸하, 하고 크게 웃었다.

"네가 무슨 예언자라도 돼? 그래, 좋다. 네가 말한 곳으로 향하지. 어차피 따로 갈만한데도 없었거든."

나마흐가 자기 몸만한 검을 멨다.

"바로 가시게요?"

"운명이라면서? 어떻게 운명을 기다리게 할 수 있겠어? 사람이 먼저 이동해야지."

"바로 가지 말고, 밥이라도 드시고 가는 건 어떠세요?"

­꼬르르르륵

타이밍 맞춰서 나마흐의 배에서 배고픔의 소리가 울렸다.

"뭐, 밥 정도는 먹고가도 되겠지."

잘 된 일이다. 나도 그녀에게 어필할 게 꽤 많았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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