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94화 (94/312)

〈 94화 〉 유사미아

* * *

"이 갑옷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저희 스승님이 직접 제작하신 물품입니다."

탑주가 집접 제작한 물건이라고?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요? 더 높이 있어도 문제 없지 않아요?"

"술 마시고 홧김에 만드신 거라서 스승님이 만드신 물품치고는 성능이 떨어지거든요. 그래도 30층에 있는 가장 좋은 세 가지 물건 중 하나입니다."

"성능을 설명해 주실래요?"

"네... 일단 소량의 미스릴과 하이네스 산 강철로 만든 갑옷입니다. 무게 대비 성능으로는 알아주는 미스릴이 섞여 들어가긴 했지만, 워낙 소량이라서 무게는 사실상 강철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제작비만 꽤 들었겠는데?

하이네스산 강철이라고 하면 꽤 알아주는 광물이다.

하이네스근처의 광맥엔 많은 마나가 깃들어 있어서 일반적인 철보다 마나 전도율이 훨씬 높거든.

"여기서 끝나면 30층은 커녕 5층 내외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겠지만, 저희 스승님이 직접 마법을 새기셨죠. 아까 망토처럼 온습도 조절 기능은 당연히 달려있고 사용자의 마나를 흘려넣으면 강도도 강해집니다. 배리어 같은 개념이 아니라서 마법감지에 걸리지도 않고요. 어느정도 찌그러진 정도는 자가 복구되고 아예 박살이 나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시 복구 됩니다."

"순수한 방호력은 어느정도 되나요?"

"따로 마나를 넣지 않아도 익스퍼드급 기사의 공격 한 두 번 정도는 막아 줄 수 있을 겁니다. 갑옷에 적응해서 마나분배를 완벽히 할 줄 아는 기사라면, 아마 동급의 기사 정도는 손쉽게 물리칠 수있게 되겠죠."

그거 참 탐나네.

"이거 말고 다른 비싼 물건 두 개는 뭐에요?"

"하나는 아까보셨던 망토고, 하나는 지팡이입니다."

"그러면 이걸로 주세요."

클레티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비싼 물건이 좋다고 해도... 다른 사람한테 팔 용도로 이 갑옷을 선택하시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닙니까?"

"아뇨, 팔 생각 없어요. 다른 사람 선물로 주려고 고른 건데요?"

"선물이요? 어떤 분한테요?"

망설임 없이 엄지로 라이넬을 가르켰다.

라이넬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당황해서 말을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어? 나? 나 맞아?"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단다 라이넬아.

"그러면 널 주지 누굴 주겠어. 우리 세력에서 기사는 너 하나뿐인데."

"아니. 내가 받기엔 너무 과분한 거 같아서..."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

첫 번째 벽을 넘은 시점이면 모를까 아직은 소드익스퍼드의 초입이니까. 과분한 선물인건 맞지.

'근데 갑옷 같은 건 싸게 맞출 수 있을 때 맞추는 게 좋단 말이야.'

망토? 망토는 무슨 망토야, 내가 전장터에 나갈일이 얼마나 있다고... 만약 전장에 나서도 저 망토 보다는 갑옷을 입은 라이넬이 훨씬 도움이 될 건 당연한 거다.

최측근들한테 입혀줄 갑옷은 하나같이 비싸니까. 이렇게 받아 둘 수 있을 때 받아 둬야만 한다.

"내가 저런 망토 하나 둘러 쓰고 다니는 것 보다, 네가 갑옷 하나 제대로 갖춰 입는 게 훨씬 더 좋아. "

"플레아..."

그렇게 울먹이면서 보지 마, 너는 여자잖아? 함부로 울면 안된다고.

"고마워!"

라이넬이 나를 꽉!하고 끌어안았다.

체격차이에 의해서 얼굴이 가슴에 박힌 꼴이 되긴했는데... 뭐, 숨은 막히긴 해도 기분은 좋았다.

"으으웁"

"플레아가 무슨 할 말 있나본데?"

"푸하!"

막혀 있던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첫 번 째 벽을 넘기 전까진, 갑옷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애초에 우리 스승님은 이런 갑옷을 입고 훈련하는 걸 허용해 주실 분이 아니거든."

"큼큼, 그러면 포장해 드릴까요?"

"네, 부탁드려요."

도시 구경하러 외출 나와서 꽁으로 갑옷을 얻다니, 기분이 엄청 좋은데?

'정석적으로 얻으려고 했으면 얻는 데 꽤 걸렸겠지.'

"잘 포장해서 저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까부터 자꾸 표정이 찡그려 질락 말락 하는 것 같은데 빨리 꺼지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건가?

'좋은 물건 꽁으로 줘서 그냥 간다.'

"그러면, 이제 다른 데 구경가자. 마탑 하나 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좋아. 나가자!"

미네타를 따라서 쫄래쫄래 나가니, 왠지 뒤통수가 따가웠다.

아니 그러니까 누가 아무런 죄도 없는 평민을 노예 취급 하랬냐고요. 다 업보지 업보야.

"다른 마탑 구경하러 갈래? 아니면 도시 구경할래?"

"다른 마탑도 여기랑 비슷하지 않아?"

"아냐, 이쪽 마탑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에 집중된 마탑이고, 다른 마탑들은 연구랑 전투쪽에 집중되어 있거든, 궁금하면 한 번 보러가고."

"나는 싫어! 이젠 놀고 싶다고!"

"그래, 다른데 구경하러 가자."

하이네스는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였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볼만한 데가 있었다.

"와... 도시 안에 이렇게 큰 강이 흘러?"

"하이네스 성의 명물이라고."

제도 근처에서 시작되는 메인 강은 하이네스 성을 완벽하게 관통해서 지나갔는데, 눈으로만 봐도 엄청 넓었다.

너비만 한강의 두 배쯤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강 위에는 수많은 배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온 김에 마음 껏 구경하고 가. 구경하는 데에는 돈 안 받으니까."

도시 구경을 하면 할 수록 미네타가 악역 영애 스타일의 아가씨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홈그라운드가 이렇게 중요한 건가?'

"미네타, 나 저거 사줘."

시에린이 가르킨 곳에는 닭꼬치를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네 돈으로 사 먹지 왜 나한테 사달래?"

"하이네스가 할인 같은 거 없어?"

"그런 게 어딨어! 다 정가 내고 사 먹는 거지!"

시에린이 히잉, 하는 표정을 지으며 터덜터덜 노점상으로 이동하더니 닭꼬치를 무려 네개나 사왔다.

"이건 플레아 꺼, 이건 라이넬 거, 그리고 이거 두 개는 내거!"

"야! 안 사준다고 했다고 나만 차별하냐?"

"차별이라니, 플레아랑 라이넬은 평민이잖아. 귀족으로서 사준 거지. 절대로 너를 따돌림 하려는 게 아니었어."

재밌게들 노는 구만.

친밀하게 놀고 있는 애들을 내버려 두고 강 근처로 이동했다.

닭꼬치를 쓱 배어 무니 닭꼬치 특유의 쫄깃함과 매콤한 소스가 내 입을 행복하게 해줬다.

입안에 닭꼬치를 가득 채우고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 졌다.

'이제 돌아가볼까?'

닭꼬치를 꼭꼭 씹어 먹고 뒤돌아 보니 보인것은 내 친구들이 아니라 수많은 인파의 항연이었다.

'이게 뭐시여?'

애들 어디갔어?

아무리 둘러봐도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한테 둘러쌓여서 안 보이는 건 아닐까 싶어서 까치발까지 떠가며 주변을 뒤져 봤는데도 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 플레아 진정하자. 애들이 없어졌다.'

왜 없어졌을까? 설마 하이네스 성의 한복판에서 하이네스백작과의 차녀와 그 친구들을 누가 납치라도 한걸까? 설마, 그건 말도 안되지. 설령 납치 됐다고 해도 이 근방이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다.

그러면 애들이 나를 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걸까?

그건 더 말이 안됐다. 걔네 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데 내가 사라진 것도 눈치 못 채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애들이 아니다.

설령 나를 눈치 못채고 움직이다가도, 금방 내가 없는 걸 알아차리고 나를 찾으러 오겠지.

그러면 애들이 왜 없냐?

'왜 없긴 왜 없어. 단체로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모양인가 보지.'

미아가 된 플레아의 관찰기라도 찍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데, 아마 어딘가 숨어서 나를 지켜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이대로 하이네스의 저택으로 이동해 버리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이 사태가 끝나버릴 테니까. 조금 싸돌아 다녀 볼까? 어차피 애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위험한 일도 없을 테고.

일단 다 먹은 꼬치를 들고 닭꼬치 노점상으로 향했다.

쓰레기도 버려야 했고, 하나 더 먹고 싶기도 했으니까.

"어우, 귀여운 꼬마가 혼자서 무슨 일이니?"

"닭꼬치 사러 왔어요!"

점주가 나 귀엽다고 닭꼬치를 무려 두 개나 줬다.

개이득이군. 양손에 하나씩 닭꼬치를 들고 일단 발 가는 데로 움직였다.

너희는 내가 너희를 찾아서 움직이거나, 아니면 가만히 서서 너희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너희가 단체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너희 생각대로 움직여 줄 필요가 없잖아? 꼬우면 당장 내 앞에 나타나서 어디 가지 말라고 붙잡아 보던가.

"플레아님?"

어? 진짜 나타났네?

물론 나타난 건 내 친구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지만.

"카밀레경?"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왜 혼자서 이러고 계신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는 카밀레 경을 보니,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변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읍조렸다.

"카밀레경, 잠깐만 이리 와보세요."

"알겠습니다."

카밀레 경이 긴가민가 하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제 손목잡으세요."

카밀레 경이 내 손목을 잡았다.

역시 여자라 그런지 내 손목을 잡고도 공간이 많이 남았다.

"이대로 저를 끌고 뒷골목으로 들어가 주세요."

"네? 제가 왜 그런짓을...."

"해주세요!"

간절히 쳐다보자 카밀레 경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닭꼬치는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깝긴 하지만 이 편이 더 리얼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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