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마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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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서 헬링파벌을 마중해 줬다. 나는 프레스티아가 당연히 내가 나올 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게 눈에 선하다.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 후 내 방으로 가서 다시 잠을 잤다.
한숨 푹 잔 뒤 일어나서 친구들이랑 아침을 먹을 때 미네타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우리 도시 구경 시켜 줄까? 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잖아."
'그야, 헬링 파벌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니까.'
그쪽에 집중하느라 다른 걸 할 여유가 없었지.
"좋아, 안 그래도 궁금했거든, 하이네스 가문은 마법이라는 분야에서는 한 손안에 드는 명가잖아? 그런 가문이 다스리는 성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거든."
"기대해도 좋아, 모든 면을 전부 종합해서 따져 보면 제도에 비해서는 밀리지만, 마법이라는 특징적인 요소는 우리 도시가 훨씬 잘 사용하니까."
"도시 시설에 마법을 써?"
"그럼."
미네타가 엣헴 하면서 가슴을 폈다.
"역시 하이네스가네, 제도에서도 길거리에서 마법물품을 보기는 힘든데."
칭찬을 살짝 섞어주니 미네타가 아주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면 밥 먹고 바로 나가자. 우리 도시는 넓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전부 구경 못하거든."
"구경 못하면 내일 마저 하면 되지."
일주일을 여기서 지낼 건데.
"좋아, 그러면 느긋느긋하게 감상하듯 움직이자."
"아무리 도시가 멋져도 감상이라는 단어를 쓸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시에린, 이럴 때는 그냥 집주인 말을 듣는 거야."
"나는 그러기 싫은데! 감상이 아니라 관광인데!"
시에린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시에린이 저러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 말자.
"다 먹은 것 같으니까 슬슬 출발할까?"
"좋아, 가자!"
벗어놨던 가면을 쓴 뒤 미네타를 따라 이동했다.
"일단 우리 도시의 명물들을 먼저 구경시켜줄게."
아무리 소심한 미네타여도, 자기 구역 안에서는 날아다니는 걸까?
요즘들어 부쩍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
"도시의 명물들이라면, 뭘 얘기하는 거야?"
"무슨 얘기겠어. 당연히 마탑들이지."
높게 새워진 마탑들은 도시의 어디를 가든 보일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한 도시에 마탑이 세 개라니... 마탑들끼리는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였어?"
"그 하이네스 잖냐. 여기에 마탑을 안 세우면 자기들이 손해를 보는데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와야지."
나와 시에린의 대화를 들은 미네타의 어깨가 천천히 올라갔다.
어지간히 기분 좋은 모양이네.
'마탑이라...'
그렇게 유용한 곳은 아니었다.
난세의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이용을 못하고, 돈이 충분히 모였을 때는 난세 속에서 정말 폐쇄적으로 변해 버리는 집단이니까.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 수많은 인재들을 알고 있고, 내가 모르는 인재들도 많겠지만, 마탑에서는 그 누구도 인재를 빼갈 수 없었다.
제도에서 커다란 전쟁이 일어난 이후 모든 마탑이 일제히 독립 세력을 선포해 버리거든, 가뜩이나 폐쇄적인 인간들인데 제대로 난세가 시작이 되면 각자의 중심 마탑에 모여서 아무것도 안하고 방어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와중에 인재를 빼돌리는 걸 불가능하다.
마탑은 사제시스템에 목숨을 거는 곳이니까.
그래서 수많은 플레이 중 단 한 번도 마탑을 공략해본적은 없다. 어차피 마탑을 제외한 모든 곳을 다 점령해 버리면 알아서 굽히고 들어오기 했고.
"그런데 플레아, 훈장은 안 달고 왔네?"
"아, 깜빡했다."
밥먹자마자 바로 움직일 지는 몰라서 안 달고 왔지.
"없어도 괜찮을 거야. 달고 다니면 이래저래 좋은 일이 많아서 달고 다니는 거지 훈장을 달고 다니는 게 필수인 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은 훈장보다도 더 귀한 하이네스가의 아가씨가 내 옆에서 걷고 계시는 중이다. 아마 어딜 가든 최상급 대우를 받을 텐데 굳이 훈장을 달러 귀찮게 방에 들어갔다 올 필요가 없다.
"엄청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이네?"
"멀었으면 마차를 타고 왔겠지. 걸어왔겠어?"
"왜? 나는 걸어오면서 본 도시 풍경도 좋았는데."
하이네스 성이 있는 중심 구역그런지, 길이 엄청 깔끔하고 건물도 큼직하게 지어져 있더라.
"엄청 높네."
시에린의 말처럼 마탑은 엄청나게 높았다. 어림 잡아 계산해 봐도 60층은 가볍게 넘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높은 건물은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왠지 반가웠다.
멍하니 마탑을 구경하고 있으니 안에서 헐래 벌떡하며 사람이 나왔다.
대충 우리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미네타와 비교해 보니 왠지 분위기가 살짝 딸리는 것 같았다.
상태창을 열어서 마력만 확인해 보니 48 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이 정도면 마탑주의 수제자 급 아니야?'
아닌가? 여기는 다른 곳도 아니고 하이네스였으니까. 4서클 후반의 인재가 최고가 아닐 수도 있었다.
"미네타 아가씨,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왜? 연락 없이 오면 안돼?"
미네타의 분위기가 훅 하고 변했다.
10초 전 까지만 해도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까칠한 아가씨처럼 변해 버렸다.
"아닙니다 아가씨, 오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셔도 되시죠."
소녀가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는 게 꽤 안쓰러웠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아하니, 하이네스 가문이 마탑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뒤쪽에 계신 분들은..."
"내 친구들이야."
미네타가 으쓱 하면서 라이넬과 시에린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 모습이 나도 친구있어! 하고 말하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뒤쪽에 계신 남성? 분은 아가씨의 노예인가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당황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미네타를 포함한 내 친구들도 우뚝하고 굳었다.
정말 다행인건 소녀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어서 바로 머리를 박고 사과를 했다는거다.
'이걸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해 없다고 해야해?'
소녀는 아주 아주 화끈하게 맨 바닥에 머리를 박아 버렸으니까.
미네타가 지금까지 많이 괴롭히기라도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화끈한 행동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야! 일어나, 밖에서 뭐하는 거야."
미네타가 당황한 얼굴로 소녀를 일으켜 세울 때 마탑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나왔다.
'이거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거 같다?'
"탑주님, 얘 좀 일으켜 봐요."
"야, 너 뭐하냐?"
탑주라고 불린 사람은 탑주치고는 정말 인상이 약한 사람이었다.
몰골도 꾀재재하고 옷 매무새도 정돈 되지 못했다.
'마치 공대생을 보는 느낌이네.'
"제가 아가씨의 친구분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무슨 잘 못을 저질렀는데?"
"혹시 아가씨 노예 아니냐고 여쭸습니다."
"그러면 그냥 머리 박고 있어."
꽁트하는 건가?
"... 왜 노예라고 생각한거야?"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지만, 아가씨는 남성 공포증이 있으시잖아요? 근데 저분은 아무리 봐도 남성분 처럼 보여서 말이에요. 치료의 목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노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야, 남장으로 오해받는 걸 선녀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올 줄이야...
"고작 그걸로 설명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미네타의 말에는 노기가 잔뜩 물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멍청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제자가 너무 멍청했습니다."
탑주까지 나서서 머리를 숙이자 미네타도 마냥 화를 내고 있을 수는 없던 듯 나에게 선택을 미뤄왔다.
"모욕을 당한 건 플레아니까, 플레아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할게."
"잠시만요... 플레아님이라면 혹시 꼬마영웅으로 유명하신 그 분이십니까?"
"네, 일단 그렇게 불리고 있는 데요."
"죄송합니다!!!!"
소녀가 그 상태 그대로 다리를 들어서 그랜절을 박았다.
'내 눈으로 그랜절을 하는 걸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
"플레아를 알아?"
"네! 제도에셔 굉장히 유명하신 분 아니십니까."
"그러면 이상한데? 플레아의 파티에 나도 끼어있다는 하이네스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실인데, 왜 내가 남자 사람 친구를 사귀지 못할 거라고 생각 한거야?"
"백작님이 너무 많이 말하고 다니셔서 하이네스가의 평민들은 백작님이 자기 딸을 자랑하기 위해서 플레아님과 별로 친하지도 않고, 우연히 파티에 같이 낀 것 뿐인데 고평가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요."
"뭐?"
"솔직히 미네타 아가씨 소심하신건 하이네스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데 플레아님 처럼 대단한 분이랑 친구를 먹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이 두사람 생각보다 굉장히 친한 게 아닐까? 자기 영지 아가씨한테 너무 프리하게 딜을 날리는 데?
"저, 일단 일어나서 얘기해요."
내가 부드럽게 말하자 소녀가 재빠르게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플레아님. 제가 영웅을 못 알아 봤습니다."
"훈장을 안 가지고 온 제 잘못이죠."
미묘한 나의 화법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각오해, 아주 정신을 쏙 빼놔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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