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91화 (91/312)

〈 91화 〉 방학­20

* * *

헬링의 질투는 평소에 받기 힘든 굉장히 희귀한 감정인 만큼 내심 좋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이 있기도 했다.

생각해봐, 너보다 머리 두개는 큰 헬창 누님이 질투심에 담긴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면, 당연히 쫄리지 않겠냐?

그래서 나는 대답을 회피하고 하이네스 자매의 대결로 눈을 돌렸다.

'잘 싸우네.'

두 사람의 대련은 아까 두 기사의 대련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디 하나가 더 잘 났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다른 차원에 있다는 의미다.

일단 수많은 마법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겉보기로도 굉장히 화려해 보였고, 미리 짜 놓기라도 한 듯 간도 보지 않고 미친듯이 마법을 교환하고 있었다.

'확실히 하이네스 쪽이 강하네.'

단순히 마력이 더 강력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투 센스쪽에서 하이네스가 월등이 뛰어난 것이 눈에 보였다.

선공을 잡고 있는 건 미네타였지만 하이네스는 내 눈으로 보기에도 미네타 보다 작은 마법으로 수월하게 미네타의 마법을 방어해 갔다.

'경험의 차이인가?'

미네타는 실전 경험은 거의 없으니까, 이미 아카데미에서 2년을 더 지낸 하이네스에게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미네타도 마냥 밀리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하이네스의 마력이 더 강해서인지, 무난하게 밀리다가 패배하는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미네타는 아직 개화 하지 않은 꽃이니까.'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이 정도 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아 마땅할 일이지.

요즘 들어서 애들한테 칭찬을 해줄 일이 늘어나서 기쁘다.

이변은 없었다.

미네타의 마지막 수가 하이네스에게 작은 위기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하이네스는 능숙하게 대처해서 미네타의 공격을 막아냈다.

완패였다.

쓰러져 있는 미네타에게 다가간 하이네스가 손을 뻗어서 미네타를 일으켜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보니, 하이네스의 눈에도 미네타의 성장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저쪽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건가?'

슬쩍 시선을 돌려 가든을 바라보니, 뚱한 표정으로 두 자매를 보고 있었다.

왤까? 이렇게 훈훈한 엔딩은 가든이 원하던 엔딩이 아니었던 걸까?

'어쩌면, 하이네스가 가든 보고 바람을 잡아달라고 한 걸 수도 있겠네.'

하나 뿐인 여동생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이야.

"대련은 전부 진행된 것 같네요."

"그러게요."

나와 헬링 사이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제는 진짜로 끝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참모와 참모간의 두뇌대결은 불가능 하니까.

대련장의 정리는 사용인들에게 맡기고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

"저녁은 같이 드실 건가요?"

"따로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헬링님도 하이네스 선배를 보러 온 거잖아요?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네, 그러면 다음에 뵀겠습니다."

"다음이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거든요."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데?

'제도에서 무슨 일이라도 꾸미려고 하는 건가?'

사모아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나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헬링의 밑에 완전히 굴복했다는 소문을 제도 전역에 낼지도 모르지.

'어차피 견제도 못하는 거, 일단 내버려 두자.'

헬링이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린다고 한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시에린을 보내면 어느정도 견제가 가능하긴 하겠지만, 큰 의미는 없겠지.

내가 직접 가서 소문을 막는 게 아니면, 시에린이 뭔짓을 하건 제도 전체에 소문이 쫙 퍼질 텐데, 그렇다고 확실하지 않은 사안 가지고 제도로 이동 할 순 없었다.

'마땅히 명분도 없는 데다가 오히려 헬링 파벌에게 이용될 확률이 높아.'

이게 다 인력이 딸려서 그런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람이 딱 5명만 더 있었으면 진짜 할만 했을텐데...

'일단 내버려 두자. 아무리 내가 찐따여도 헬링 파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아니야. 제도에서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겠지.'

"정확히 언제 출발하실 건가요? 마중 나가드릴게요."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신사분의 아침잠을 방해드릴 수는 없죠."

"알려주시면 안돼요?"

약간의 애교까지 담아서 올려다 봤음에도 넘어오지 않았다.

'쳇, 자기보다 더 일찍 나와서 대기 타고 있으라는 건가?'

아무리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하지만,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러면, 저녁 맛있게 드시고, 개학한 다음에 봬요."

프레스티아가 작게 눈읏음을 한 뒤 사라졌다.

가벼운 눈웃음이 가져온 커다란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고 미네타의 방으로 이동했다.

"내일 아침 일찍 제도로 향한다고?"

"어, 헬링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내일이면 들킬 거짓말을 할리는 없으니까, 아마 틀림 없는 정보이긴 할 텐데..."

시에린도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어? 당장 헬링 세력에 그렇게 바쁜일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야..."

"잠시만, 기억 좀 뒤지고 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봐."

시에린이 양손의 검지를 들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마구 눌러댔다.

"왜지, 왜 일찍 갔을까? 제도에 바쁜일이 있나?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당장 내일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면 조금 여유를 부릴 법도 한데?"

이제는 익숙한 시에린의 혼잣말이 시작됐다.

어차피 결론이 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 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시에린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너희들 프리스티스라고 들어본 적있어?"

당연하지, 프레스티아의 언니잖아. 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왜?

"알기는 하는데, 그 분이 지금 상황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아주 확실한 기억은 아닌데, 프리스티스가 적기사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거든,"

적기사단이라면, 프레스티아도 눈독 들이고 있는 제도의 기사단이었지?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몰라.

"플레아, 저번에 학장님한테 상을 받을 때, 헬링이 적기사단과의 수련을 요구했다고 했지?"

"어, 그랬어."

"이거, 두 자매가 적기사단을 두고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나본데?"

"헬링님은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아무리 미래가 창창한 프레스티아라고 해도, 아직은 아카데미조차 졸업하지 못한 애송이일 뿐이다.

이미 제대로 세력 기반을 잡고 제도에서 덩치를 불려나가는 프리스티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세력일 뿐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거지, 지금은 세력이 작아서 적기사단을 먹을 수는 없겠지만, 자기가 성장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의 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할 거 아니야."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프레스티스인데."

시에린이 씩 하고 웃었다.

"플레아,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알기는 하는데, 갑자기 왜?"

"프레스티스를 견제하는 세력이, 헬링 파벌 딱 하나 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럴리가 있나, 제도에 세력이 얼마나 많은데, 아마 프레스티스와 우호적이지 않은 모든 세력이 프레스티스의 적기사단 장악을 방해하겠지.

"제도엔 적기사단이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먹고 싶은데 나한테는 그럴 힘과 명분이 없으니, 그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 많은 거지."

"그런 사람들이, 헬링님을 지원해 주면서 균형을 맞춘다는 거야?"

"그렇지, 누구하나쪽으로 균형이 쏠리지 않게 아마 치열한 수싸움이 돌아갈 거야. 헬링 자매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수 많은 세력들의 머릿싸움 속에서 어떻게든 적기사단을 먹기 위해 노력할테고, 결국 누군가는 적기사단을 먹겠지."

그게 몇 년뒤의 이야기라는 거구나.

"얼추 큰 싸움이 날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는데 자기 수하의 집에 놀러와서 하루도 안 있고 돌아갈 정도로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어."

"그러게 말이야."

시에린이 내 눈을 마주 봤다.

"남 얘기 아니야. 우리 미래야."

장난스러운 어투였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일반 병력정도는 적당한 지역하나 차지하고 시간을 들이면 육성할 수 있지만, 기사단 같은 고급 인력들은 금세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가 무너져가는 제국에서 제대로된 세력을 이룩하려면, 명문이라 불리는 기사단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결국 우리도 지금 헬링 자매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수 싸움을 하게 되겠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야."

"나도 알아."

그런데 그거 아니 시에린?

난세의 특징은 말이야. 영웅이 겁나 많이 나온 다는 거야.

무력 90을 찍은 소드 마스터가 지휘하는 기사단이라면, 명문에 도달하지 못하는 약한 기사단이라고 해도 능히 명문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난세에서 명문 기사단은 육성해 나가는 게 정석이야.'

머지 않은 미래에 내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가 있을 거다.

그 때 기사들을 모아서 기사단을 창설하고 키워나가는 게, 적기사단이나 청기사단 같이 이미 존재하는 명문 기사단을 영입하는 것 보다 훨씬 쉬울것이다.

'물론 시에린한테는 못 말하는 계획이지만.'

몇 년 뒤에 일어날 전쟁을 지금 언급할 수는 없잖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