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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89화 (89/312)

〈 89화 〉 방학­18

* * *

시간이 되자 마지막으로 옷을 정리하고 정원으로 나갔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는데 프레스티아는 벌써 부터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할 까요?

"좋아요."

프레스티아를 따라서 정원의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사용인들조차 안 보이는 곳 까지 이동한 다음에야 프레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잘 지냈어요. 별다른 일도 없었고 딱히 특별한 일도 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어요. 헬링님은 방학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리 바쁘지는 않습니다. 학기 중과 비교하면 오히려 널널한 편이었죠."

가벼운 탐색의 대화가 오갔다.

어차피 지금하는 대화는 큰 의미가 없다.

진짜 의미가 있는건 프레스티아가 가식 없이 이야기할 때의 대화지 이런 평화로운 안부인사는 크게 신경쓸 가치도 없는 대화였다.

'물론 프레스티아랑 대화를 한 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긴 하지만.'

"혹시 가면을 벗어주실 수 있나요? 오랜만에 플레아씨의 얼굴을 보고 싶네요."

프레스티아 네가 봐도 내가 예쁘기는 한가 보지?

우리 프레스티아가 벗어 달라는 데 당연히 벗어줘야지.

가면을 벗고 프레스티아를 바라보니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길게 끌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오늘은 빠르네.

나야 좋지, 나는 결국 본심 상태의 프레스티아와 대화하고 싶었던 거니까.

'그런데 할 얘기가 있나?'

방학되고 한게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야.

"아마 내가 하이네스 성에 온 것에 대해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하이네스 성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날짜를 맞춰서 왔거든."

그럴줄 알았어.

'그러면 루나라도 선전용인가? 자기네 파벌이 루나라를 영입했다고 우리한테 자랑하려고 했던거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귀여운데? 선물 받은 거 자랑하고 다니는 어린애 같잖아.

"너에게 할 얘기도 있고 너희 파벌에 할 얘기도 있다."

"편하게 하세요."

방긋 웃으면서 프레스티아를 올려다 보자 프레스티아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말이야. 나대지 말라고, 내 경고가 우스웠나?"

프레스티아가 엄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이세계에 도착한지 얼마 안됐을 때라면 이 눈빛만으로 덜덜떨면서 울기까지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괜찮다.

몸의 통제를 내가 완벽하게 쥐고 있거든.

"무스소리세요. 헬링님의 경고가 우습다뇨. 저는 최대한 헬링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뿐이에요."

"나를 위한다면서 몰래 상단을 운영하나?"

몰래 운영하다니, 내 이름값 팔아서 장사하는 건데 절대 몰래가 아니지. 내가 상단을 운영하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상황인데 말야.

"무얼 걱정하십니까."

목소리톤을 바꿨다.

지금까지는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프레스티아를 대하듯 말해 왔다면 이제는 나름 부하들이나 쓸 법한 말투를 쓰며 프레스티아를 올려다 봤다.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은 결국 헬링님의 것입니다."

아무리 프레스티아라도 갑작스럽게 종속맹세 비스무리한 걸 하자 당황했는지 눈에 띄게 표정이 흔들렸다.

"지금은 제가 따로 성장하는 게 더 효율이 좋을 것 같아서 따로 성장할 뿐, 때가 되면 헬링님의 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하, 말은 참 잘하는 군, 내가 너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지?"

"헬링님이 보시기에 적절한 상황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긋이 헬링을 올려다 봤다.

고민하듯 찡그린 얼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쪽도 조언을 못 받고 온건 매한가지나 보네.'

지금 하고 있는 대화가 온전히 우리 둘의 대화라는 느낌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네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네, 저를 포함한 제 모든 것이 헬링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속뜻을 해석해자면, '응, 아직은 아니야.' 정도 되시겠다.

"내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너의 모든 것을 취할 수도 있다."

"어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하십니까."

"괜히 위험인자를 남겨두는 것 보다는 빠르게 나에게 복속시키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지."

쉽게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세력을 키우는 모든 행동들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되겠나?"

"네, 제가 세력을 모으고 키우는 이유는 결국 헬링님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서 입니다."

프레스티아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겠다. 대신 수상한낌새가 보이는 즉시 너의 모든 것을 앗아 갈테니 그리 알도록 해라."

"제가 어찌 헬링님께 반항하겠습니까?"

"근데 이를 왜 지금 말하는 거지? 미리 말했다면 네가 나댄다는 오해또한 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야."

"그 때는 제가 세력이 너무 작았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를 키운 뒤에 말쓸드리려 했습니다."

프레스티아가 납득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되시면 저랑 산책이나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오랜만에 같이 걷고 싶네요."

"괜찮습니다."

프레스티아가 다시 가식의 가면을 쓰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잡자 프레스티아가 나를 부드럽게 리드해줬다.

***

"너의 모든 것을 바친다고 했단 말이지?"

시에린이 미간을 좁히고 나를 바라봤다.

"진짜로 바칠 생각은 없어. 최대한 질질 끌다가 다른 지방에 자리를 잡는 게 일단의 목표야."

"굳이 네 모든 걸 바친다고 말했어야 했어? 괜히 명분만 주게 되는 걸 수 도 있어."

"이렇게 말해두면 당분간은 어떤 견제도 들어오지 않을 거거든."

프레스티아는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내 진짜 목표는 모르는 상태로 나의 능력과, 프레스티아에 대한 큰 사랑 정도만 알고 있으니까.

내 모든 걸 바친다는 꿈같은 말을 40%이상 믿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헬링이 과연 그 말을 믿을까?"

"믿을 거야. 헬링님은 내가 헬링님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걸로 아시거든. 그리고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남자라는 사실에서 방심을 할 수 밖에 없고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 수 밖에 없지만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야. 헬링이 네 말을 믿는 척하고 움직인다는 걸 가정하고 앞으로의 행동계획을 짜는 게 좋아. 늘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지."

역시 우리 참모야 아주 든든하다니까.

"하이네스 성에는 얼마나 머무를 생각이야."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긴 하지만..."

간절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미네타를 바라보며 말을 흐렸다.

"우리 지역에서 할 일이 남아있어서 말이야. 일주일 이상 머무르지는 못할 것 같네."

"그러면 일주일 같이 지내다가 헤어지는 걸로 할까?"

"아쉽네, 더 놀고 싶었는데."

"개학하면 계속 같이 지낼 거잖아. 너무 아쉬워 하지 마."

"그런데 저 쪽은 얼마나 있으려나?"

"그렇게 오래 있진 않을 것 같아."

우리는 미네타의 집에 놀러온 거지만 저쪽은 하이네스의 충성을 받아내고 겸사겸사 우리에게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거니까.

'그래도 오늘 바로 가진 않겠지. 아무리 빨라도 내일, 늦으면 모래에 출발할 거야.'

"그 동안 양쪽에서 머릿 싸움 치열하겠네. 저쪽도 아까 식사시간 때 자기들 작전대로 안 흘러가 서 열이 받쳐 있을 테니까 말이야."

"굳이 머릿싸움 해야 해? 너희는 우리집에 놀러온 거잖아. 왜 여기서 까지 정치를 하는 건데."

미네타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안하면 손해를 너무 크게 보는 걸."

미네타에겐 미안하지만, 이해 좀 해달라고 빌 수 밖에 없다.

"으흠, 아냐, 그렇게 큰 손해는 안 볼 수도 있어."

시에린이 고민을 이어가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식사시간을 대비해서 머리를 굴렸던 건 저쪽한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거든? 그런데 우리 대장님이 저쪽 대장한테 예비 충성맹세를 해버렸잖아? 우리는 플레아가 프레스티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연기를 해야 하긴 하겠지만 이젠 얕보이든 말든 뭔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저쪽 대장님도 이제 마음이 편해지셨을 테니 공격적인 전략을 허용 안 해줄 가능성도 높고."

"진짜?"

미네타, 많이 기쁜가 보네, 얼굴에 행복, 이라고 써 넣은 것 처럼 기뻐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놀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 이제 쟤네들 경계 안해도 되는 거지? 기사반 애들 만난 건 오랜만이라서 오랜만에 대련이라도 한 판 하고 싶었거든."

"대련이라..."

시에린이 갑자기 사악하게 웃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도대체 무슨 생각이 났길래 그 따구로 웃냐?"

"내가 공교롭게도 가든이랑 같은 반이거든? 그래서 친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안면은 있는데, 그렇게 친하진 않단 말이지."

"빙빙 돌리지 말고 결론 부터 말해."

"언젠가는 위장으로라도 들어갈지 모르는 곳인데 그쪽 애들이랑 미리 친해지는 것도 좋지 않겠어? 혹시 헬링 파벌에 들어간다고 치면 우리는 상당히 아랫쪽에 위치하게 될텐데 최측근들이랑 미리 친해지면 좋잖아."

"나는 이미 기사반애들이랑 친한데?"

"우리가 안 친하잖아."

"나도 헬링님이랑 친한데."

애들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니 뭐, 내가 뭐 잘 못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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