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86화 (86/312)

〈 86화 〉 방학­15

* * *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동안 느꼈던 무료함도 사라지고 텐션도 업 돼서 왠지 몸도 건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오늘 저녁은 엄마가 다 같이 먹자고 했는데 다들 올 수 있어?"

"당연히 가야지. 우리가 다른데 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백작님이 같이 밥을 먹자는 데 우리가 어떻게 빼겠니?"

"좋아, 그러면 다 같이 먹는 걸로 알고 있을게."

미네타와 시에린의 대화를 들으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있으니 라이넬이 침대에 앉아오는 게 느껴졌다.

"플레아, 일어나 저녁이야."

"응?"

뭐지? 방금 전까지 미네타랑 시에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것 같은데.

허리를 들어 일어나니 눈이 슬슬 감기고 몸이 노곤노곤했다.

'뭐야? 그 사이에 잠든 거야?'

병원을 찾아가 봐야 하나 요즘 왜 이렇게 자주 잠들지?

"으으, 나 잠깐만 옷이랑 머리 좀 정리할게."

아침엔 분명 깔끔했는데 지금은 여기 저기 구겨 버린 정장을 바로 입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까지 정리하니 애들이 멍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 있어?"

"아니, 너 옷에 엄청 힘주고 왔구나 싶어서."

"백작가에 초대 받은 거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거지. 내일부터는 나도 편한 옷 입을거야."

라이넬이야 철근 하나 들고오다가 바로 미네타의 방에 와서 쓰러졌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시에린의 복장은 평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높으신 분 집에 갈 때 격식있는 옷을 입고 가야 한다는 건 내 고정관념이었나?'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나는 그냥 친구 집 놀러온 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왔는데 다음부터는 옷 좀 차려 입고 와야 겠다."

"나도 차려입어야 하나?"

"너는 기사반이잖아? 안 차려입는 게 더 어울려."

머리정리에 시간이 많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애초에 머릿결이 좋아서 그런지 부드럽게 슥슥 정리 됐다.

"그러면 가볼까?"

"아마 언니도 같이 밥 먹으러 올 것 같은데 괜찮지?"

"당연히 괜찮지."

매주 교양마법을 들으면서 꽤 친해졌으니까.

오히려 식사자리에 없으면 그게 더 불편할거다.

미네타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손님이 왔을 때 가볍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리인듯 그렇게 크지 않은 사이즈의 식탁이 방 가운데에 펼쳐져 있었고 하이네스 백작이 상석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니? 편한대로 앉으렴."

미네타가 백작의 왼쪽에 앉길래 그 옆으로 주르륵 따라 앉았다.

"진짜로 편하게 앉아도 괜찮아. 굳이 예식 지키면서 앉을 필요는 없단다."

백작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지만 다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기소개를 하라는 하이네스의 말도 못 들었던 찐따들이다.

"미네타 옆이 편해서요."

"아까는 내가 못 알아봐서 미안해, 꼬마 영웅님?"

이 별명은 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는 구나...

"내가 한동안 제도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미네타의 친구 중에 꼬마 영웅님이 있다길래 아무생각 없이 여자라고 생각했지 뭐니, 뭔가 이상하긴 했어. 보통 여자를 지칭할 때 굳이 빼어난 외모를 언급하지는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하이네스 빼고 모든 인원이 모이자 음식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 너무 고급진 음식만 먹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평범한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게 아닐까 두렵다.

"미래바는 조금 이따가 올 것 같아. 졸업 과제를 한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건 내일 전에 끝낸다고 애를 쓰고 있거든."

"언니치고는 부지런하네요. 당연히 개학 직전에 몰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학 내내 전력을 다해도 될까말까한 과제니까 그렇지."

하이네스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와서 미네타의 앞자리에 앉았다.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렴."

"됐어요. 어머니가 도와주시면 너무 손쉽게 끝날 게 분명해요. 저도 제 실력을 늘리려고 과제를 하는 건데 재미없게 끝내 버릴 순 없죠."

"그래서 하던건 마무리 됐니? 내일 친구들 온다면서."

"얼추 다 됐어요. 남은 건 그년들 다 돌아가고 나서 하면 되죠."

나와 시에린이 동시에 굳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우리들에게 하이네스 백작이 쐐기를 꽂았다.

"프레스티아는 잘 지내?"

"그렇다는 것 같더라고요. 하던 일도 잘 되는 것 같고, 어차피 내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되니까. 크게 신경 안 써요."

내 왼쪽에 앉은 시에린을 슬쩍 훑어보니 시에린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이네스 성에 도착하기 전엔, 하이네스가 이곳에 있을지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하이네스의 초대로 프레스티아와 그 파벌이 이곳에 찾아오는 것 또한 당연히 생각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못했다.

'편하게 자려고 했는데 밤새 회의를 해야 겠네.'

하이네스 성에 오는 건 프레스티아 한 명이 아니다.

아마 헬링 파벌이 전부 오진 않겠지만 헬링 파벌의 최측근들 중 일부는 이곳으로 오겠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들을 맞이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나른한 정신이 깨어났다. 시에린도 마찬가지인지 억지로 웃음을 유지한 채 머리를 굴리는 게 뻔히 보였다.

"왜들 그러니?"

백작이 뻑뻑하게 굳어있는 우리를 보고 물었다.

"미래바 선배가 과제를 언급하시니 못했던 과제가 떠올라서요. 제도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굳어있었어요."

"그래? 요즘엔 1학년들한테도 과제를 주나 보지?"

없진 않다.

너무 간단해서 하루면 전부 끝낼 수 있다는 게 문제지.

'왜 하필 우리가 오는 타이밍에 프레스티아를 부른 거지?'

고의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헬링파벌이 우리를 엿먹이기 위해 같은 시기에 하이네스성을 방문하려 했을 수도 있고. 그냥 벌꿀을 채밀 하는 시기에 맞춰 하이네스 성에 방문하다 보니 우리랑 겹친 걸 수도 있었으니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음식을 먹다보니 맛에 대한 걸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대충 맛있다는 감각이 혀를 타고 전해지긴 하는 데 정확히 어떤맛인지는 해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밥을 먹었다.

백작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대부분 라이넬과 미네타가 대답하고 나는 나를 대상으로한 질문에만 겨우겨우 대답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식사시간이 끝나고 일단 미네타의 방으로 이동했다.

아직 밤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으니까.

"미네타, 헬링이 이곳에 온다는 걸 알고 있었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시에린이 미네타에게 물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언니가 어머니한테 따로 말했나봐."

"미래바 선배가 우리가 언제 오는지 알고 있었어?"

"어, 너희랑 우리 언니도 꽤 친한 거 같아서, 오늘 온다고 미리 말해줬지."

시에린이 미간을 살짝 쥐어잡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야?"

"그건 알 수가 없지. 저쪽도 그냥 미래바 언니를 보려고 놀러온 걸 수도 있으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

그 프레스티아가 단순히 놀기 위해서 수하의 성에 찾아와?

차라리 여름을 기념해서 바캉스로 놀러갔다고 하지 그래?

'차라리 백작을 공략하러 온 거면 참 편할 텐데.'

이번에 찾아올 때 하이네스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걸 백작한테 알리려 왔다고 생각하면, 프레스티아가 굳이 이곳까지 행차할 이유로서 충분했다.

반년만 지나면 하이네스는 졸업 할태고 그 이후로도 헬링 파벌과 하이네스가 연결되려면 공식적인 충성맹세보다 확실한 건 없을 테니까.

'어쩌면 두 가지일을 전부 처리하러 온 걸 수도 있지.'

하이네스의 충성맹세와 우리파벌을 누르는 것, 두 가지를 다 하러 왔을 확률이 크다.

설령 우리가 온 걸 몰랐다고 해도 우리가 하이네스 성에 있는 걸 확인한 순간 무언가 작업을 걸어오겠지.

"대비를 해야 해. 헬링님 한 명만 온 거면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헬링파벌의 무리 중 일부도 올거 아니야."

"플레아, 가서 옷 갈아 입고와, 아무래도 길게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시에린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밤새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는 사안이니까. 굳이 불편한 옷을 입고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

'나나 시에린이나, 둘 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필요하고.'

"밖에 하인이 서있을 텐데 플레아 방에 안내해 달라고 하면 돼. 짐도 거기에 다 있을 거야."

"갔다올게."

방에 가서 이번에 새로 산 잠옷을 입고 다시 미네타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여자애들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원래라면 이 상태로 밤새 놀다가 잠들었을 텐데 말이지.'

갑자기 프레스티아가 방문해서 비상사태가 걸려버렸다.

'보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지 마시라고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말이야.

"일단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플레아가 결정해줘야 하는 게 하나 있어."

시에린이 핑크색 토끼 잠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헬링파벌과 척을 질거야? 아니면 굽히고 들어갈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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