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85화 (85/312)

〈 85화 〉 방학­14

* * *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일단 달았다.

꿀이니까 당연히 달아야 정상이지만 평소에 먹어봤던 단 맛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입에 들어갔을 때 나 달아! 하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은은히 존재감을 느껴내고 있었다.

그 맛이 너무 깔끔하고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빵을 움직여 꿀에 찍은 후 다시 한 번 입에 집어 넣었다.

"어때? 맛있어?"

"어! 엄청 맛있어."

그냥 빵에 찍어먹어도 이렇게 맛있는 꿀이라니...

정신을 차리고 식탁을 보니 꿀이 가미돼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하나하나 집어서 먹을 때마다 엄청난 행복감이 몰려왔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그러면, 다 모였으니까. 지금까지 제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해줄까?"

음식 계속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맛있어? 엄청 먹네."

"너희는 맛 없어? 이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거의 처음 먹어 보는 건데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어두는 게 좋잖아."

"미네타야 거의 매일 먹을 거고 나도 가끔 이렇게 먹어."

너흰 귀족이잖아.

'아무리 귀족이어도 이렇게 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흔한가?'

미네타야 워낙 고위 귀족이야 그렇다 쳐도 시에린은 아닐 것 같은데...

"됐고, 제도에서 있던 일이나 얘기해줘,"

"알겠습니다!"

시에린이 가볍게 경례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시에린의 사고회로는 알다가도 알 수 가 없었다.

"너희도 짐작했겠지만 헬링파벌이 루나라를 영입했어. 음지에서 몇 번 접촉하다가 루나라랑 같이 제도를 한 번 거닐면서 자기가 루나라를 영입했음을 제도에 있는 모든 파벌에게 알렸지."

"어떻게 영입했는지는 모르고?"

"어, 우리는 알 수가 없지. 헬링 파벌에 첩잘르 심어 놓은 것도 아니고 나 혼자서 제도를 돌다가 헬링을 만난 게 아니면 실제로 그 두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도 못하는 데 말이야."

"그래도 잘 해줬어. 너 덕분에 제도 정보도 듣는다."

"이거 말고도 알려줘야 할 거 많아. 아카데미에선 별일이 없는데 제도가 슬슬 난장판이 나기 시작했거든 중앙파 세력이 조금씩 분열되기도 하고 헬링가의 장녀를 필두로 해서 중앙쪽에서 몸집을 키우는 세력들이 많이 보여, 그들간의 견제가 얼마나 심하면 이젠 제도 경비도 제대로 안 돌아간다? 마법으로 인한 경계는 대충 돌아가는 데 성벽 지킬 경비병이 부족한 수준이야."'

"진짜 난장판이네."

"요즘엔 싸움 보는 맛으로 산다니까. 진짜 겁나 웃겨. 왜 서커스가 망했는지 알 것 같아."

"오랜 만에 모였는데 꼭 이런 이야기를 해야해?"

미네타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하긴, 친구끼리 모이자마자 하는 얘기치곤 너무 무거웠나? 그러면 이따가 플레아 한테만 보고 하고 나중에 개학했을 때 다시 자세히 알려줄게."

"좋아, 그러면 되겠다."

"그런데 플레아, 엄청 먹을 것 처럼 말하더니 더 안 먹을 거야?"

더 안 먹어, 더 먹었다가는 기분 나쁜 배부름이 몸을 지배할 것 같다고,

"이제 배부른데?"

"플레아 진짜 조금 먹는 구나..."

시에린 저년, 일부러 저렇게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는거다.

그래야 내가 기분 나쁠 걸 아니까.

애초에 시에린 성격상 내가 조금 먹는 것 가지고 걱정을 할리가 없다.

'못 된 것만 배워 먹었어.'

나는 밥을 다 먹고 멍하니 앉아있었지만 여자애들의 식사는 끝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빠르게 먹은 나와는 다르게 시에린과 미네타는 천천히 먹고 있었기에 아직 배가 다 차지 않은 듯 했고, 라이넬은 나보다 더 빨리 먹기 시작했음에도 아직도 그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라이넬은 기사니까.'

그렇게 각자 방학동안 어떤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식사가 모두 끝났다.

"배부르다. 진짜 잘 먹었어."

"디저트 가져오라고 할까?"

"찬성!"

미네타가 사용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새하얀 자태를 들어내는 하얀 크림 위에 꿀이 좔좔흐르고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디저트는 먹을 수 있지?"

당연하지, 원래 남자들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단 말씀!

바로 스푼을 들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상상했던 그맛 그대로 달달하고 시원한 감각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다 먹으면 아까 말했던 거 한 번 해보자. 진짜 사람인걸 못 느낄 정도로 가벼운 건지 궁금하단 말이야."

"그냥 나한테 밟히고 싶은 건 아니고?"

장난스럽게 응답해줬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하고 싶어졌는데? 빨리 하자."

역시 시에린이야, 어지간해선 딜이 들어가지 않는군.

"알았어, 일단 업드려봐.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한다."

"아플일은 없을 것 같은데."

어느새 아이스크림까지 전부 먹어치운 라이넬이 말했다.

라이넬, 너는 다 좋은 데 눈치가 없는 게 문제야.

라이넬을 잠깐 봤다가 다시 시에린을 바라보니 그 짧은 사이에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이럴 때만 빠릿해요."

"올라간다?"

"오냐."

천천히 발을 들어 시에린의 등 위에 발을 올렸다.

한발을 올려도 크게 반응이 없었기에 양발을 모두 시에린의 등 위로 올렸는데 그제서야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오, 진짜 가볍다. 나는 라이넬 만큼 강하지 못해서 무게감은 강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밟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시에린 이자식, 이 말을 하기 위해 나보고 올라타라고 한 게 분명하다.

실제로는 무거우면서 나를 놀리기 위해 일부러 참고 있는 걸거야.

"미네타도 한번 해볼래? 이거 되게 시원한데."

"어어... 플레아가 괜찮다면?"

"나는 괜찮아!"

좋아, 미네타는 착하니까 내가 사람취급을 못 받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겠지.

미네타가 눕자마자 바로 등 위에 올라갔다.

"진짜네? 내 생각보다 훨씬 안 무거워."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

"그치? 진짜 가볍지? 완전 깃털이라니까?"

바로 미네타의 등에서 내려오고 침대로 돌진해서 엎어졌다.

침대에는 미네타의 체취가 은은하게 배어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다.

"플레아? 갑자기 왜 그래?"

나 삐졌어! 라는 티를 팍팍 내며 엎어져 있으니 애들이 내 근처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조금 유치하긴 한데, 저쪽도 유치하게 덤벼왔으니까 나도 유치해 질거다.

"몰라!"

"설마 너 삐진 거야?"

시에린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푸하하하하! 아니, 가벼운걸 가볍다고 말한 건데 이거 가지고 삐지면 어떡해?"

"몰라!"

내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건데 충분히 삐질만도 하지.

화 내는 게 더 유치할 것 같아서 삐지는 선에서 끝내준 거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내가 화나면 진짜 무서워 지니까 말이야.

'그래도 너희가 친구니까 이렇게 장난도 칠 수 있는 거긴 해.'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대부분 사무적으로 대하거나 군주와 신하의 관계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일 텐데 이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계속 친구일테니까.

... 친구겠지? 나는 너희가 날 배신 않으리라고 믿어.

"야, 화 풀어라. 남자애들한테 가볍다는 건 칭찬 아니야? 왜 그렇게 삐지는데?"

시에린이 나를 들어다가 침대 위에 앉혔다.

"가벼운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3명이 전부 다 '와, 너는 사람도 아니야.' 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냐?"

"우리가 언제 그랬어! 그냥 너무 가벼워서 사람처럼 안 느껴진다고 했지."

"맞아! 그리고 플레아가 가벼운 건 팩트잖아."

제길 3대1로 덤비다니 비겁한 녀석들.

"몰라! 아무튼 나는 화났어!"

여자라면 난처해 질 수 밖에 없는 기술을 시전한 뒤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착각할 까봐 말하는 데 진짜로 화가난 건 아니다.

단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지.

'가끔은 이렇게 노는 것 도 재밌잖아?'

16살 정도면 충분히 유치할 수 있는 나이고, 이러고 놀아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은 나이기도 하지.

"어떻게 하면 화를 풀 건데?"

"첫째! 나를 인간 취급 해줄 것!"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완전 쓰레기가 된 것 같잖아. 우리가 언제는 인간 취급 안 해줬어?"

"맞아, 인간취급이라는 단어는 너무 센 거 아니야? 정상 체중으로 합의 보자."

피해자는 난데 왜 너희가 합의를 보냐?

"둘째! 내 자존심을 무너뜨린 걸 사과할 것."

애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크큭 하고 웃기 시작했다.

"뭐야 우리 플레아 고작 그런 걸로 자존심 상한거야? 남자애가 가벼운 게 그렇게 이상한 것 도 아닌데 일일이 자존심 상해 하면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래?"

"사과 안 하면 타협은 없어. 평생 삐진 나를 보면 서 살던가."

"그레, 우리가 미안하다."

먼저 사과한 라이넬을 빤히 보고 있으니 시에린과 미네타도 마지 못해 사과를 해왔다.

"사실 엄청 가볍진 않긴 했어. 너 놀리려고 일부러 과장한 것도 있으니까 사과할게."

"네 기분 생각못하고 가볍다고 해서 미안..."

좋아, 이렇게 형식적인 사과라도 받아내니 기분이 좀 낫군.

"마지막!"

"뭐야, 또 있어?"

"먹던 아이스크림 좀 가져다 줘."

아직 많이 남았단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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