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방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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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전 까지 헬링 파벌은 꿈쩍도 안 하고 있어다.
방학식 직전에 사모아 파벌의 정기회의에 루나라가 참여 하지 않았다는 정보만을 가지고 헬링파벌이 무슨 수를 쓰긴 했겠구나 추정하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루나라와 사모아를 이간질 했고, 도대체 어떤 보상을 약속했길래 루나라가 파벌을 배신한 1검이라는 불명예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시에린이 말해준다는 게 그 내용인 것 같은데.'
사실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루나라가 헬링 파벌에 들어갔다.
그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그 과정 중 에서 두 파벌이 어떤 갈등을 빚었는지.
우리한테 올 피해는 얼마인지.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어차피 방학은 길고 시간은 많으니까.
"근데 시에린, 너 태닝했어?"
"태닝은 무슨, 그냥 낮에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탄거지. 혹시 부러워서 그러는거야 미네타?"
"부럽긴 뭐가 부러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지. 방학 시작한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는 데 피부를 다 태워서 왔는데 너라면 안 궁금하겠어?"
"아무튼, 태운 건 아니야. 부모님일도 도와드리고 사모아 파벌이랑 헬링 파벌의 물밑 전투를 조사하고 다니다 보니까 금방 타더라고."
"태운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해."
확실히 건강해 보이는 느낌은 있었다.
평소의 시에린은 약간의 광기와 쾌활함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는데 지금을 약간의 센 누나 느낌도 났다.
"그래? 플레아가 그렇게 느꼈으면 앞으로도 계속 태우고 다닐까?"
"시에린 마음이지."
"일단 고민 좀 해보지뭐."
똑똑
"아가씨, 친구분이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이제야 다 모인건가?
오랜만에 우리 파벌의 완전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텐션이 올라갔다.
"오랜만이다."
"... 너 안색이 왜 그래?"
오랜만에 본 라이넬의 얼굴은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다.
일단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반갑다는 생각이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 정도였으니까.
"스승님이 친구네 놀러가는 동안 못할 수련을 조금이라도 매꾸라면서 140kg 짜리 철근을 어깨에 달아주셨거든, 오면서 뒤지는 줄 알았다."
데안느... 당신은 대체...
"일단 들어와서 좀 쉬어봐. 에어컨 틀어줄까?"
"어... 부탁할게..."
중세시대에 에어컨이 왠 말이냐! 고 물을 수도 있지만 얼음 마법 하나면 모든 게 해결 된다.
'가격이 그리 싼 건 아니지만... 여긴 하이네스가의 아가씨의 방이니까.'
창문과 문을 닫은 뒤 에어컨을 키자 빠른 속도로 냉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고생 많았어."
걱정 어린 어투로 물어보는 미네타와는 다르게 시에린은 마치 라이넬이 살았나 죽었나를 알아보는 것 처럼 팔을 콕콕 하고 찔러댔다.
"그러고 얼마나 온 거야?"
"몰라... 생각하기 싫어."
일단 라이넬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도록 하자.
꼬르르르륽
라이넬 쪽에서 배가 요동 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미안... 어제 저녁 부터 굶으면서 왔거든."
"일단 밥 부터 먹을까? 식당이 있긴한데, 라이넬이 힘든 것 같으니까 내 방으로 대령하라고 할게."
"고마워..."
라이넬 성격상 어지간하면 한 번정도는 거절할텐데 바로 대답을 하는 걸 보면 진짜 힘든 모양이었다.
미네타가 하인들에게 말하러 잠시 밖으로 나가자 미묘한 정적이 우리 사이를 감쌌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들끼리 어색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고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멍하니 있는 것 뿐이었다.
"괜찮냐?"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안 괜찮아 보이지만 예의상 물어보는 거잖아. 그러면 풉! 너 개 힘들어 보인다. 하고 웃어줄까?"
"너 내가 기운 차리는면 죽었어."
저 콤비는 만나자 마자 쿵짝이 아주 잘 맞는 군.
"안마라도 해줄까?"
일어나서 라이넬에게 다가갔다.
"그래주면 고맙긴 한데... 네가 힘들지 않을까?"
"괜찮아.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러면 부탁 좀 할게."
일단 내 힘으로는 라이넬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손을 라이넬의 등 위에 올린 후 전력을 다해서 꾸욱 눌렀다.
"으으, 플레아, 혹시 더 세게 해줄 수 있어?"
어쩌냐, 이게 전력인데.
'내 힘은 매우 약하지만 중력의 힘은 강려크 하지!'
빠르게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라이넬의등에 발을 올렸다.
조금이라도 아파보이면 바로 무게를 뺄려고 했는데 아무리 무게를 실어도 라이넬은 비명은 커녕 좋다는 듯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결국 양발을 라이넬 위에 올린 후 등 이곳저곳을 꾸욱꾹 밟아줬다.
"풉... 푸흡."
"넌 왜 갑자기 쪼개냐?"
"아냐, 푸흐, 진짜 아무것도 아냐."
누가 봐도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에린이 못 마땅했는지 라이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플레아, 좀 이따가 해줘 일단 저년을..."
"꺅!!"
양발이 다 라이넬의 위에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려 했으니 나는 어떻게 됐겠는가.
땅이 들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대로 라이넬의 위로 넘어졌다.
"플레아? 괜찮아?"
그제서야 라이넬이 상황을 알아챘는지 걱정이 가득 담긴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밥 가져왔어."
역시 타이밍, 아주 예술이야.
굳이 이 순간에 들어왔어야 했니?
미네타와 그 뒤에 있던 사용인들, 그리고 나와 내 밑에 깔려있는 라이넬 사이에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
"아, 그런거였구나?"
미네타의 오해가 풀린건 모든 음식이 전부 세팅된 후의 일이었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미네타는 우리를 애써 무시한 채 사용인들에게 음식을 놓으라 일렀고 우리도 후다닥 해체했으니까.
제대로 된 해명을 하고 싶어도 미네타가 우리의 시선을 피해내서, 다같이 식탁에 앉음 다음에야 상황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있었다.
"라이넬이 멋대로 일어나서 그렇게 된거지."
"아냐, 내가 말도 없이 라이넬 위에 올라가서 그런거지."
"플레아는 잘 못 없어! 나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라이넬 너, 진짜로 플레아가 위에 올라 탄거라고 생각 못했어?"
"어..."
라이넬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우물 거렸다.
"맘 편히 말해도 돼."
"나는 그냥 전력으로 누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플레아가 위에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하하, 라이넬 아직 기사로서 수련이 많이 부족하구나? 어떻게 사람 발이랑 손모양도 구분 못 할 수가 있어.
응? 구분 못 할 수도 있지 않냐고? 주군 기분 파악하는 것도 기사의 능력 중에 하나란다.
위에 내가 올라타고 있는데도 눈치 못 챌 정도로 가볍다니, 뭔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산산히 찢기는 기분이었다.
'플레아 이놈이 원래 키가 큰 놈도 아니란 말이지?'
난세에서 키가 컸으면 여기서도 남자치고는 큰 키를 노려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난세에서도 플레아는 단신에 속하는 몸이었다.
얼마나 작았냐면 프레스티아를 옆에 데려나놔도 비슷하거나 프레스티아가 살짝 더 큰 정도? 게임으로 플레이 할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내가 직접 이 몸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키가 작은 정말 한스럽다.
"밥 먹고 내 위에도 한 번 올라와봐. 라이넬이 기사라서 무게를 잘 버틴 걸 수도 있잖아? 아무리 플레아가 가벼워도 그렇지 사람이 올라탔는데 그걸 못 느낀다는 게 말이돼?"
역시 시에린,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내 몸무게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려는 것 보다는 자신의 궁금증과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 같이 보이긴 하는데 아무튼 나한테도 이득이다.
"근데 엄청 많이 차려놨네."
"라이넬이 있으니까, 이정도도 부족하지 않을 까 싶어."
솔직히 무슨 공사 하는 줄 알았다.
커다란 식탁 하나를 통째로 들고와서 방 중앙에 놓고 수많은 사람이 음식을 놓고 움직이는데 작은 문 하나로 수명의 사람이 지나가는 데도 부딪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래서 고급 인력을 쓰는 구나 싶었다.
"일단 너희를 부른 명분이 우리 도시에서 꿀이 났다는 이유로 부른 거니까. 꿀부터 먹어볼래?"
"크으... 내가 친구를 잘 뒀어. 내가 그 유명한 하이네스 산 꿀을 먹어보다니..."
하이네스가의 꿀이 그렇게 유명했던가? 장사는 초반에 잠깐 집중하고 늘 전쟁과 내정만 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네.
"아, 플레아는 잘 모르겠구나. 하긴 지방 출신이니까."
지금까지 못 놀렸던 걸 한번에 놀려라고 작정을 했나보지?
장난스럽게 올라가는 그녀의 입꼬리만 봐도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이네스가 꿀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시에린! 부끄러우니까 그만해. 너한테 꿀 안 주는 수가 있다."
"넹."
아무리 시에린이라도 금전적 협박에는 어쩔 수 없나보군.
'꿀이 아무리 맛있어봐야 꿀이지, 뭐 그렇게 난리야.'
내 앞에 놓여진 빵을 집어서 꿀에 푹 찍었다.
적당한 점성을 가진 꿀이 빵을 감쌌고 꿀에서 빵을 빼면서 빵이 윤기가 흐르는 꿀에 코팅됐다.
빵에 코팅되면서 표면적이 넓어진 꿀은 조금 더 짙은 향을 풍기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빵을 입으로 옮겨 앙하고 깨물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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