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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82화 (82/312)

〈 82화 〉 방학­11

* * *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옷을 갖춰 입었다.

아무리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것이라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편한 복장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키가 작다보니 뭘 입어도 귀여워 보이긴 하지만 최대한 멋진 옷을 입고 가슴부분에 훈장까지 달아 놓으니 나름 멋진 룩이 완성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중에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던걸 생각하면, 남이 봐도 그렇게 나쁜 복장은 아니겠지.

심지어 카밀레 경까지 나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굉장히 멋지게 입으셨군요."

"네, 이렇게 입어본 건 처음인데, 잘 어울리나요?"

"네,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미네타가 아니라 시에린 집에 놀러 간거였으면 훨씬 더 편하게 입었을 텐데,

겉으로 보기에 잘 어울리는 것과는 다르게 움직이기에는 꽤 불편했다.

"진짜로 혼자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

"네,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카밀레 경이 명목상 내 호위지만, 솔직히 쿨리온 남작가 소속의 퇴역기사보다는 친구쪽이 훨씬 믿음이 가기 마련이다.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모르는데 쓸데 없이 정보를 남작가에게 흘릴 순 없지.

"그래도 제가 같이 가는 게..."

"하이네스가에서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분이랑 같이 가면 되죠."

"... 그럼 저는 어디에 있나요?"

어? 그 생각은 못해봤는데

'그냥 여기계시면 되지.'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되지 않을까요?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계실거면 여관주인님께 미리 말씀 드리고요."

"하루 숙박비가 상당한 곳입니다."

아, 여기 고급 여관이었지?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어제 봤던 마법사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숙박비는 저희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카밀레경이 거절하기 전에 내가 낼름 받아 먹었다.

'카밀레 경은 여기서 손가락이나 빨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카밀레 경에게 떨어지고 마법사의 옆에 붙었다.

왠지 충격과 배신감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카밀레 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쪽 마법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미네타의 가문에 소속된 이고 저쪽 퇴역기사는 쿨리온 가문에서 보낸 사람이니까.

아무리 카밀레 경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고 해도 어느쪽을 선택해야할진 명확하지?

"미네타는 지금 뭐하고 있어요?"

"..네?"

마법사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당황이 얼굴을 통해 느껴졌다.

"아, 미네타랑 제가 엄청 친한 사이여서요. 혹시 미네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불편 하신가요?"

"아닙니다. 아가씨가 괜찮으시다면 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낮은 확률로 일어날 오해를 넘겨 버리고 마법사를 따라 영주성으로 걸어갔다.

'크으, 으리으리하구만.'

하이네스는 지방 남장령인 쿨리온과는 차원이 달랐다.

건물도 더 크고 높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도로에 있었다.

좁은 길도 많고 큰 길이라고 해도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쿨리온과는 다르게 하이네스는 길도 넓찍해서 마차도 많이 지나다니고 관리도 잘 되어있는지 딱히 망가진 부분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백작가랑 남작가랑 비교하면 안되겠지.'

심지어 하이네스 백작가라고 하면 제국 전체에서 알아 주는 마법 명가니까.

한 도시에 하나 들어서면 많이 들어온 거라는 마탑만 3개가 박혀 있는 걸 보면, 하이네스 가문이 마법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영주성도 대단했다.

누가봐도 성처럼 보이던 쿨리온 성과는 다르게 하이네스의 영주성은 겉으로 보기엔 성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저택 같아 보였지만 하이네스 가문의 저택이다 보니 온갗 마법으로 떡칠이 돼서 엄청난 보안을 자랑하고 있겠지.

쿨리온 성이 아니라 제국의 그 어떤 성을 가져와도 크게 꿀리지 않을 거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 미네타, 엄청 대단한 가문의 자식이었네.'

아마 라이넬이랑 시에린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랑 같이 다닐 땐 미네타는 소심한 여학생이었으니까.

방학 직전에 시에린이랑 학교를 돌면서 영업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성격이 활발해 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걸 체감하기도 전에 방학이 다가왔다.

옆에서 무전으로 어쩌구저쩌구 말하고 있는 마법사를 흘끔 바라보고는 하이네스 성을 쓱 훑어봤다.

거짓말 안 보태고 우리 마을 보다 규모가 더 큰 것 같은데...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혹시 방호 마법이 작동돼서 내가 통구이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나는 통구이가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개구리로 변하지도 않았다.

멀쩡히 입구를 통과한 후 마법사를 따라서 이동했다.

복잡해 보이는 내부를 구경하면서 도착한 방은 누가봐도 여자애 스러운 방 앞이었다.

여기서 여자애의 방이라는 건 아무런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똑똑

"아가씨, 친구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오, 자기 집 안방이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화가 났던 걸까? 그도 아니면 시에린의 말처럼 성격의 변화가 찾아 온 걸까?

평소보다 훨씬 씩씩하면서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미네타, 오랜만이지?"

"흥!"

들어오자마자 볼을 빵빵히 부풀리고 고개를 홱 돌리는 미네타의 모습은 굉장히 귀엽긴 했지만 솔직히 무섭진 않았다.

나 화났어! 라고 전달하기 위해 볼을 부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표정에는 화가 보이지 않았다.

"많이 화났어?"

"어제 도착했으면 어제부터 성에 들어왔어도 됐잖아.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서 엄청 기대됐는데."

저기 시에린? 도대체 어디가 씩씩해 졌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평소의 미네타랑 똑같은 거 같은데.

"늦은 밤이라서 괜히 번거로워 지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네가 자고 있을지 깨어 있을 지 어떻게 알고? 혹시 내가 찾아가서 네가 잠에서 깬다면 미안해질 것 같아서 오늘 아침 일찍 찾아오려고 했지."

"그래도 너무해."

"미안, 앞으로는 너부터 먼저 볼테니까 화 좀 풀어라. 응?"

매력 97짜리 소년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부탁하는 걸 거절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상 어딘가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미네타에겐 허용되지 않는 사안인 것같다.

볼을 옅게 붉히면서 시선을 피하는 미네타에게 한 발 더 가까이 갔다.

"용서 안해줄거야?"

"아, 아냐, 용서 해줄게."

시선을 피하는 미네타를 향해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그런데 라이넬이랑 시에린은 아직 안 왔어?"

"어, 걔네들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대."

"그러면 그 때까지는 우리끼리 있어야 겠네. 너희 어머니, 성에 계셔?"

"어, 아마 계실 거야."

"그러면 어머니 뵈러 가자."

"어?"

미네타의 얼굴이 붉게 불들었다.

'왜? 설마 내가 상견래라도 하자고 한 걸로 착각한 건 아니지?'

여기는 하이네스 성이지만, 친구의 집이기도 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친구네 놀러갔을 때 친구의 부모님이 집에 계신다면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다.

'그렇지 않더라도 손님된 입장에서 집 주인에게 인사를 안 할 수는 없지.'

미네타가 상상의 나래를 뻗어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었다.

"무... 무슨 의미야?"

"친구네 집에 놀러 왔으니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그리고 일단은 손님 입장으로 온 거니까. 성의 주인에게 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한 예의 아니야?"

"아."

미네타가 아쉽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알았어. 따라와. 어머니한테 안내해 줄게."

축 쳐져 있는 미네타를 따라서 성을 이동했다.

자꾸 성성, 거려서 착각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하는 데 딱히 돌로된 바닥을 지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아주 세련된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조금 걸어가니 누가봐도 영주의 집무실 처럼 보이는 문이 보였다.

'이 성은 따로 팻말 안 붙여 놔도 되겠네. 어디를 가든 문의 모양만 봐도 역할을 바로 알 수 있잖아.'

­똑똑

"어머니, 저번에 말했던 친구가 놀러와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들어오렴."

영주의 말투만 보고 바로 감이왔다.

이사람, 우리 어머니과다.

우리 어머니과가 도대체 무슨 과냐고?

"우리딸, 지금까지 엄마한테 한 번도 안 찾아오다가 친구가 왔다고 이제야 찾아와 주는 거야? 엄마 너무 슬픈데..."

무슨과긴 무슨 과야 자기 자식 끔찍히 아끼는 팔불출 과지.

"한번도 안 찾아 왔다뇨!"

"마법을 수학할 때 빼고는 방에 박혀서 만화책만 읽고 있었잖아! 하루 종일 만화만 읽어서 걱정돼서 찾아가면 엄마는 알 필요 없다면서 쫓아내기도 하고!"

"제가 언제 그랬어요?"

아, 친구한테 들키기엔 부끄러운 사생활이구나?

'미네타가 만화를 많이 읽었다는 건 초면에 알게 된거 같은데.'

하이네스한테 끌려서 제도의 별장에 갔을 때 만화를 읽으며 뒹굴거리던 미네타를 본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지.

"큼큼, 아무튼, 지금은 친구가 인사하러 온 거니까. 저한테 집중하지 마세요."

"맞아. 친구 데려온 거였지? 우리 작은 딸은 큰 딸이랑 다르게 수줍음이 많아서 평생 친구를 못 사귈 줄 알았는데 집까지 초대하다니... 흑, 엄마는 기쁘단다."

"안녕하세요."

일단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어, 그래 미네타 친구라...고?"

나를 바라보는 성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내 몸을 훑어보고 가면으로 가려지지 않은 하관도 훑어보고 신발까지 모두 훑어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 개인 취향은 이해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장은 좀 아니지 않니?"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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