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방학10
* * *
난세에는 개발자들이 정신이 나간상태로 설계한 것 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당장 지금만해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이 정답이었잖아?
물론 이곳은 현실인 만큼 내가 방금 말한 대사 외에도 그녀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말이 있었겠지만 방금내가 했던 말과 크게 다를 것 같진않다.
"13"
여자의 시선이 분수대에서 나에게로 옮겨졌다.
"무슨 일이지?"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가만히 앉아서 분수대만 쳐다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목소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실 없는 소리군, 나는 내 일 하는데도 바쁘니 그냥 꺼져 주길 바란다."
그녀의 시선이 분수대 쪽으로 가기 전에 내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당신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풀이법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 줄 알고?"
"당신 예전엔 신동으로 칭송 받던 수학자였잖아요? 짐작이 가는 문제가 있죠."
"쯧, 내 뒷조를 했나."
아뇨! 뒷 조사가 아니라 그냥 많이 만나 본 것 뿐인데요.
"그래서 어떻게 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지? 내로라 하는 수학자들조차 풀지 뭇한 문제야."
그녀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는 미적분과 관련있는 문제였다.
참고로 현실에서 미적분학의 발견은 17세기에야 진행됐다.
미적분학의 이전개념들 정도는 난세의 수학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제대로 된 기초가 세워지진 않았다.
"저는 풀 수 있어요."
현대에서 미적분은 고등학생만 되도 배우기 시작하는 과목이니까.
그리고 난세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아주 고등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내진 않는다. 선택지를 잘 골라서 개념만 대충 설명해 주면, 그녀가 알아서 문제를 푸니 아무런 걱정할 거 없었다.
"허, 내가 뭘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인가?"
"말이라도 한 번 해보실래요?"
그녀가 말한 문제는 역시나 미적분 문제였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기에 정답을 말해주자 그녀의 눈이 크게 띄였다.
"네가 말한 정답이 100% 정답일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증명을 하라는 거죠?"
"그래."
어렵지 않았다.
기초 수준을 살짝 넘어선 문제였지만 그녀의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었으니 미적분의 기초를 적당히 설명해 주는 것 만으로도 금세 이해했다.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이야... 도대체 누가 이걸 고안했지?"
"그게 중요한 가요? 제가 당신이 막혀 있던 문제를 풀어 드렸다는 게 중요하죠."
"대가를 받을 생각인가? 그래, 충분히 줄 수 있지. 몇 년간 막혀 있던 문제에 해결법을 제시해 줬으니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 밑으로 들어오세요."
그녀는 굉장히 뛰어난 인재다. 일단 회계쪽에서 그녀를 뛰어넘을 인재는 난세 전체를 뒤져도 열명이 되지 않으며, 기본적인 행정도 잘한다.
게다가 급할 때는 공성병기를 지휘하게 할 수도 있으니 팔방미인까지는 안되도 삼방 미인 정도까지는 되는 여자였다.
"내가 네 밑으로? 고작 문제 하나 풀어준 것 가지고 너무 과한 걸 요구 하는 거 아니야?"
"문제를 풀어드린 것 과는 별개로 제안하는 겁니다. 저는 인재가 필요할 뿐이거든요. 그리고 알고 있는 수학적 지식도 많습니다. 당신이 만족할 만큼 많은 지식을 당신에게 알려드릴 수 있어요."
"고민을 좀 해봐야 할 문제군, 보아하니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찾아갈 장소만 말해주면, 충분히 고민한 뒤 너의 영입제안에 답하러 가겠다. 어디로 가면 되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 제국 아카데미로 오시면 될거에요,"
'좋아 일단 밑작업은 성공적이네.'
일단 여기까지 이끌어 냈으면 그녀의 영입은 사실상 확정된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찾아오는 시기가 너무 편차가 커서 랜덤 가챠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지.
당장 내 밑으로 들어오려고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찾아온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름이 뭐지?"
"플레아 아이데스에요."
"나는 티아나 라고 한다.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를 기약하며 헤어지도록 하지."
그리 말하자마자 바로 쌩 하고 사라져 버렸다.
'게임이랑 똑같이 사라지네.'
일단 할 일 다했으니 여관 가서 잠이나자자. 이동 하면서 하나도 안자서 그런지 너무 졸렸다.
그래도 인재 한명 영잉했으면 굉장히 뿌듯한 상황이지.
여관에서 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출발했다.
밤이 될 때까지 계속 가야 하이네스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제의 두배가 넘는 무료하고 재미없고 심심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혹 밖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카밀레경의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안전을 이유로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나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몬스터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네.'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걸까? 원래라면 이동하면서 한 번 만나면 많이 만나는 몬스터들을 아직 점심도 안 됐는데 두 번 만났다.
'용병단만 즐겁겠군.'
몬스터가 많으면 자연스래 의뢰도 많아지기 마련이니까.
카밀레 경이 몬스터를 모두 쓰러 뜨린 후 다시 마차가 움직였다.
몬스터가 야생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위험한 길이긴 했지만 많은 마차들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 있었기 때문에 속도가 크게 느려지거나 하진 않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마차를 멈춰세우고 카밀레 경이 가벼운 요리를 해줬다.
수프와 빵정도의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내 배를 채우는 데는 충분한 양이었다.
점심만 다 먹고 바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먹구름이 끼어서 많이 불안했지만 다행이 비가 내리진 않아서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마차안에 있는 내가 비를 맞는 건 아닌데, 땅도 질척해지는 데다가 바람이 불면 카밀레 경은 비를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좀 불안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십쇼."
안잤거든요!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라고 하기엔 이전에 쌓아둔 업보가 너무 많았다.
"안 잤어요."
졸림 하나 없는 깔끔한 말투로 대답한 후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이전에 큰 도시를 지나올 땐 괜한 소문이 퍼지기 싫어서 훈장을 때고 들어갔지만 지금은 친구네 성에 놀러가는 거니까 훈장을 차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는 게 좋겠지.
하이네스가 워낙 큰 도시이고 마법물품같은 것도 많이 팔아서인지 밤이 깊었는데도 우리 앞에 있는 마차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시대에 18시간 영업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자정까지는 들어갈 수 있겠지?
앞의 마차들이 들어가는 속도를 계산해 보니 넉넉하고도 남았다.
대략 30분이 지나서야 성문앞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내 훈장을 보여주니 병사들이 엄청나게 놀라면서 난리가 났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받은 뒤 성 안에서 조금 기다리자 꽤 고위 직책으로 보이는 마법사 한 명이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쇼. 꼬마영웅님,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훈장의 힘인가?
나같이 평범한 평민조차 상당히 고위 마법사로 보이는 이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아니면 그냥 미네타의 친구라서 그런걸지도 모르지.'
아마 훈장을 안 가져 왔어도 비슷하게 흘러 갔을 거다.
나 정도 되는 미모의 남성이 흔한 것은 아니니 병사들이 내 이름정도는 물어 볼 것이고 내가 자기 아가씨의 친구라는 게 확인 되면 결국 영주성으로 안내를 받았겠지.
"밤이 늦었는데 오늘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영주성으로 찾아가도 될까요?"
"영웅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미네타 아가씨가 영웅님을 많이 보고 싶어하시긴 하지만, 편한 영주성의 잠자리를 버리고 굳이 여관에서 주무시고 싶으시다면 그리 하셔도 됩니다."
이거 은근히 압박주네?
하지만 나는 이런 압박에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지금 시간에 미네타를 만나면 서로 안부 묻고 대화하느라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에 잠들 텐데 그런걸 원하지는 않았다.
그냥 여관에서 일찍자고 아침 일찍 미네타를 찾아가서 투정 한 번 듣는게 훨씬 편했다.
"적당한 여관으로 안내해 주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알고 있다.
하이네스가의 차녀인 미네타의 친구이자 제도에서 꼬마영웅으로 불리는 나를 평범한 여관으로 데려갈 순 없을 테니 아마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여관으로 이동하겠지.
그리고 숙박비용은 하이네스가가 부담할 테지.
이건 아가씨의 친구이고 말고를 떠나서 훈장 보유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라서 당연히 하이네스가가 부담하는 게 맞다.
'나는 적당한데로 대려가 달라고 했다? 굳이 비싼 곳으로 온 건 이 사람이라고.'
굳이 비싼 곳으로 찾아와 주니 거절은 하지않지만, 나는 죄가 없다.
"그러면 편히 쉬십쇼.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네, 내일봐요."
저번에 들렀던 여관보다도 훨씬 좋은 시설에 기뻐하면서 침대위로 뛰었다.
푹신한 침대가 내 등을 감쌓다.
'이게 극락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