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80화 (80/312)

〈 80화 〉 방학­9

* * *

'소문 겁나 안 퍼지네.'

아니 솔직히, 제도에서 꼬마 영웅이라 불렸고, 나처럼 미남인 아카데미 생이 방학이라서 자기 고향에 내려 와 있다면 소문이 엄청나게 빨리 퍼져야 정상 아니야? 왜 방학 시작 2주차가 넘어가는 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데?

'어머니 말로는 사람들 입에 가끔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모자라지.'

난세에서는 지금 시점에서 이정도 명성을 얻은 적이 없다 보니 계산이 전혀 안됐다.

'괜찮아. 아직 방학은 한 달이 넘게 남아있어.'

아카데미의 방학이 한국의 고등학교를 따라갔다면 절망이었겠지만 다행히 대학교와 비슷하게 방학이 진행됐기에 아직까지 쉴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어머니 출근할 때 같이 따라가서 쿨리온의 인재나 섭외해 둘까?'

문제는 쿨리온도 아이데스 못지 않게 인재가 없었다.

기억나는 인재들이 조금씩 있긴 했지만 하이네스는 커녕 전기녀에도 못 미칠 정도니까.

'게다가 걔네들 전부 쿨리온이 데려가야 하는 인재들이라서 내가 건들기는 좀 그렇지.'

쿨리온 남작가와는 어지간하면 우군으로 시작할 것 같은데 괜히 인재를 빼돌렸다가는 쿨리온 남작가가 너무 약해지는 수가 있다.

'차라리 아카데미에 있을 때가 나았어.'

뭘 해아할지도 명확했고 프레스티아도 볼 수 있었으니까.

'갑자기 프레스티아 보고 싶어지네.'

사나운 기색이 조금씩 사그라 들고 나름 관계가 발전되나? 싶은 순간에 두 파벌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방학이 찾아와서 너무 아쉬웠다.

"아들, 너한테 편지 왔는데?"

"편지요?"

"아카데미 친구가 보낸 편지인가봐 발신자가 미네타 하이네스라고 적혀있어."

미네타가 편지를 보냈다고?

하긴 성격은 소심해도 요즘엔 할말도 다 하고 사는 아이니까 편지를 보낸 게 이상하진 않지.

"주세요."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아 바로 읽어봤다.

여자애라 그런지 굉장히 요약된 내용의 편지였는데 내가 한 번 더 요약하자면 대충 잘지내냐는 파트, 대충 보고싶다는 파트, 대충 놀러오라는 파트 세 구성으로 편지가 쓰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충 놀러오라는 파트는 내 시선을 확 끌었는데 하이네스가의 양봉장에서 꿀이 나기 시작했기에 다같이 모여서 같이 먹는 게 어떻겠냐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당근 화따죠 쉬바.'

안 그래도 소문이 퍼지길 기다리면서 시간을 때울 필요가 있었는데 친구들이랑 만나면서 맛있는 꿀로 만든 음식도 먹는다? 아주 완벽하지.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적혀 있는데 나는 언제나 나태하게 있어서 상관없다. 대충 나도 보고싶다는 파트와 가겠다는 파트로 나눠서 편지를 쓴 후 바로 우편을 붙였다.

'하이네스가가 어디였더라.'

저번에 구매한 제국 전도를 꺼내 펼쳤다.

위치로 따지면 제국 남부지역이었지만 제도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최소한 나처럼 마차로 20시간이 넘게 움직여야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멀진 않았다.

'제도 가는 거랑 비슷하게 걸리려나?'

미리 마차도 구해 놓고 동선도 짜야 했었기에 바로 어머니에게 쪼르르 걸어갔다.

"친구네 집에 놀러간다고?"

"네, 친구네 양봉장에서 꿀을 모았다고 해서요. 친구들이랑 만날 겸 꿀도 얻어먹을 겸해서 가려고요."

"어디로 가는데?"

"하이네스요."

난세는 지명이 참 편한게 어떤 가문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의 중심구역을 그냥 가문이름으로 박아버린다.

이름만 들어도 누가 지배하고 있는 곳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하이네스... 여기서 꽤 멀지 않니?"

정작 어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긴, 하이네스 가의 영애랑 친구를 먹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냥 하이네스 성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실 거다.

"가는 데 이틀이 꼬박 걸리긴 하죠?"

"마차는 구해줄 수 있지만... 역시 혼자 보내기엔 걱정이 많이 되네, 운이 나쁘면 산적들을 만날 수도 있고, 몬스터한테 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 남작님께 말씀드려서 기사 한명 붙여 줄테니까 같이 가렴."

여기사랑 함께하는 여행! 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정말 당연하게도 남기사를 붙여준다는 소리니까.

'아들 혼자 여행보내는 게 걱정돼서 여기사를 붙여줘? 그게 더 이상하지.'

한번 성욕에 눈이멀면 그대로 끝인데.

카밀레 경 같은 분이 아니라면 나한테 붙일 만한 기사는 남기사 말고 없다.

"일단 남작님께 말씀드려서 마차랑 마부, 기사를 구해 볼게."

"아, 혹시 마차의 동선을 짜는 건 제가 해도 될까요? 중간에 들려야 하는 곳이 있어서요."

"남작님께 말씀드려 볼게."

아이데스와 하이네스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도시와 마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엔 정말 뛰어난 인재가 있는 마을도 있지.

가는 길에 하루, 오는 길에 하루를 마을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두 명 정도는 밑 작업 칠 시간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둘 다 한 번에 영입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일단 둘 다 평민이니까.

***

"출발하겠습니다."

해가 하늘 정중앙에 뜬 다음에야 출발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내일 점심쯤에 도착할 수 있음에도 굳이 지금 출발하길 선택한 이유는 들러야 하는 마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부겸 호위를 맡아주신 카밀레 경에게는 밝힐 수 없는 이유였기에 약속은 내일 모래인데 괜히 내일 점심에 도착해서 반나절의시간이 붕뜨는 것 보다는 도착하자마자 짐풀고 자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카밀레경을 설득했다.

"이번에도 가시는 길 내내 주무실 겁니까?"

"글쌔요. 아카데미에서 집에 올 때는 피곤함 때문에 계속 잤는데 요즘엔 너무 많이 자서 잠이 잘 안 오거든요."

여러번 얼굴을 마주치다보니 카밀레 경과도 어느정도 친분이 쌓였다.

막 편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는 정도?

"친구분들을 만나러 간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이가 많이 좋으신가 봅니다."

"1학기 내내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니까요. 당연히 사이가 좋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내적 친밀감이 아니라 진짜로 친한 거잖아.

"흑마법사와 싸웠을 때도 친구분들이랑 같이 계셨다고들었습니다."

"친구들이랑 선배 한명이 더 있었죠. 그리고 청기사단에서 지원오신 기사님도 계셨고요."

"우정이 대단하군요. 부럽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가 끊겼다.

나무 창도 막아 놨고 적당히 어둡기도 하고 적당한 간격으로 몸도 흔들리니 잠자기 딱 좋았다.

'뭔 기면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졸리다.

현실에선 핸드폰 하느라 새벽에 자는 일이 많다보니 낮에 골아떨어지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일찍자고 늦게 일어나는데도 왜 자꾸 졸린 걸까?

이번엔 수마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버럭 뜨고 팔짱을 꼈다.

다행이 이번엔 자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결국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건 똑같은데 굳이 수마에 거부할 필요가 있던 걸까?

"도착했습니다."

목표로 한 도시에 도착한 건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에 마차를 끌기엔 몬스터의 위협도 있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았기에 어지간하면 저녁 때 마차를 멈춘다.

"저는 도시 좀 돌아보고 있을 게요."

카밀레 경이 마차를 주차하자 마자 바로 뛰어나왔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빨리 움직여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어디있는지 알아서 다행이지.'

유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고 나도 각이 나오면 영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10판하면 3~4번 정도는 영입하는 인물이여서 그녀가 어딨는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하면 미친년이란 말이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멍 때리고 있는 셈이니까.'

그녀의 사연을 아는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됐지만, 처음 그녀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는 뭐 저런 미친 캐릭터가 있었나 싶었다.

'저깄네.'

광장의 분수대 앞에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이걸 보고 누가 수학자라는 생각을 하겠냐고요.'

그냥 동네 바보 처럼 보이겠지.

이 인간, 오늘 하루만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매일 이곳에 나와서 이러고 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대꾸도 안하는데다가 표정도 멍해서 진짜 바보같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어떻게 이 사람을 영입하냐고?

'어떻게 영입하긴 선택지 잘 따라가면 영입되는 게 게임이었는데.'

이여자, 그러니까 제논을 영입하는 첫 시작은 너무나 유명해서 난세를 하지 않는 사람조차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섯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마지막 문장이 정답이었으니까.

나는 물론 그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다름 없이 그 문장을 읆었다.

"빗 변이 아닌 두 변의 길이가 5,12 인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는?"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초면에 피타고라스 법칙을 내뿜는 미친놈이 어딨냐고?

'그럼 어떡하냐 개발자들이 이렇게 설정해 놨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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