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방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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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방학식이 다가왔다.
들뜬 분위기가 아카데미 전체를 덮었고 나도 학생인 만큼 들떠서 방학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얘기 들었어? 어제 루나라가 사모아 파벌 회의에 안 나가고 혼자서 하교했다는데?"
"사모아 파벌 회의? 그런게 있었어?"
"루나라를 제외하면 사모아 파벌에 있는 애들 전부가 안 보였으니까. 루나라가 사모아 파벌이랑 사이가 나빠졌다고 애들이 엄청 떠들던데?"
"에이 설마, 그냥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본 거겠지."
프레스티아도 참 영악하네 방학식 하루 전날에 작업을 치다니.
하긴 진작 작업을 쳤으면 루나라가 사모아 파벌에 엄청 시달렸을 테니 지금 시점에서 작업을 거는 게 맞지.
"야! 플레아! 방학식 끝나고 우리끼리 모이는 거다."
"그러면 안 모이겠냐? 당연히 모여서 회포도 풀고 얘기 좀 하다가 헤어져야지."
"좋아!"
그러고서 쌩 하고 사라져버렸다.
"얘들아, 다들 강당으로 이동해."
교수님께 끌려갔던 반장이 돌아와서 말했다.
애들을 따라 거대한 강당에 도착했다.
'보면 볼 수록 크단 말이지.'
방학식이니 만큼 1,2,3학년이 전부 모여있었는데 모두에게 의자하나씩을 줘도 공간이 한참 남았다.
"학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다들 방학이라고 너무 놀지만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이상!"
뭘 좀 아는 분이네.
짧은 훈화는 학생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지
이후의 일도 빠르게 진행됐다.
필요한 얘기만 속속 들이 말하고 최대한 빨리 끝내고자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게 학장 차이인가.'
제국 아카데미 급 큰 학교가 방학식을 진행하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방학식 진짜 빨리 끝났다."
"학장님이 방학식을 빨리 끝내고 싶으셨나봐, 조금만 늘어지는 것 같아서 학장님이 눈치 엄청 주시던데?"
"교수님들은 싫어하실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선 아주 땡큐지 덕분에 남는 시간도 많아졌으니까."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우리끼리 모여서 이별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뿔뿔히 흩어지는 거지?"
"그렇지. 나는 방학동안 스승님께 빡세게 훈련 받으러 갈 예정이고 플레아도 자기 마을로 돌아갈 거고, 미네타도 자기 영지로 돌아갈 거잖아."
"제도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네."
"너는 집이 제도에 있잖아."
마디안 가는 일단 중앙쪽 귀족이니까.
"너희들 방학이라고 나 잊고 지내면 안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편지 보내."
"너나 잘하세요."
"그러고 보니 시에린, 이번에 고생 많이 했는데 혹시 가지고 싶은 거 없어?"
"왜? 상이라도 주려고? 됐어. 지금은 세력도 약하고 있는 것도 없는데 굳이 뭔가를 받고 싶지 않아.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줘."
시에린의 눈빛이 너무 강경해서 다시 한 번 더 권유할 엄두 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면 슬슬 헤어질까?"
시에린의 말에 분위기가 묵직해졌다.
지금 헤어지면 최소 한 달은 못 볼텐데 아쉬울 만도 하지.
'그래도 아무도 안 우네.'
난세에서는 이 시점에 라이넬이 엄청 울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한 달만 있으면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는데 너무 슬퍼하지 마."
"누가 슬퍼해? 그냥 아쉬워서 그런거야."
그 누구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내가 군주로서 먼저 움직이는 게 좋겠지?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우리 집에서 마차를 보낸 게 아니라 나를 아카데미에 보내주신 귀족분이 마차를 보내신 거라서, 더 늦는 건 좀 눈치 보이네."
"어... 잘가."
"그래 나중에 보자!"
손을 한 번 크게 흔들어 주고 마차가 대기된 곳으로 이동했다.
짐은 어제 다 싸서 짐칸에 실었으니 나는 마음 편하게 마차만 타면 된다.
"오셨습니까?"
"늦어서 죄송해요."
남작가에서 보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밀레 경이라는 분이신데, 상당히 뛰어난 기사였지만 어린 나이에 부상을 당해서 은퇴할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은 이렇게 호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많이 불려다니신다고 한다.
"올 때랑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일 겁니다."
"가면서 하룻밤 묵어 가겠네요."
"네."
"가면서 좀 자도 되죠?"
"당연하죠. 편하게 모실 테니 푹 쉬셔도 됩니다."
어차피 마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담요 하나 피고 자리에 누웠다.
'할 거 다했지?'
애들과 인사도 했고, 잭스펠 애들한테 어디간다고 미리 말도 했고 이후의 사업 계획도 설명해 줬다.
난세에선 그런일이 없었지만 세상이 달라졌으니 혹시 몰라 돈 들고 튀지 말라고 압박도 강하게 넣어놨다.
'알찬 1학기였다.'
이제 방학이니까 푹 쉬어야지.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기대자 잠이 솔솔 찾아왔다.
***
우리 목적지는 제국 동부의 아이데스 마을이다.
익숙하지? 어머니가 근방에서 꽤 유명한 기사여서 주군에게 마을 하나를 하사 받았는데 그 마을의 이름을 우리의 성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우으..."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폈다.
"남작님이 아이데스 군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자신이 추천한 인재가 훈장까지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시자 정말로 기뻐하시더군요."
"영광이네요."
난세를 진행하다보면 한 번쯤은 꼭 만나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평화의 시기에는 1인분을 충분히 할 수있는 사람이지만 지금 같은 난세에서 살아남을 만한 그릇은 안된다고나 할까? 시드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줄을 잘타면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전형적인 NPC였다.
'지금은 또 모르지 영주도 바뀌었을 테고 후계자도 동생쪽이 아니라 누나쪽이 됐을 테니까.'
그래도 엄청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마차가 많이 밀리네요."
"시간이 시간이니까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차가 굉장히 많을 겁니다."
"여기가 검수가 좀 까다로웠죠?"
"네, 아무래도 동부와 제도를 연결해 주는 거대한 성이니까요."
우리 앞으로 서 있는 마차의 줄이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관은 예약 했어요?"
"아까 예약했습니다. 저희 영지에서 제도로 갈 때는 예악을 못했지만 지금은 중간에 들러서 예약을 하고 아이데스님을 모시러 가면 됐으니까요."
"고마워요."
"이게 제 일인 걸요."
마차의 줄은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다가왔는데 병사들이 다가와서 마차를 수색했다.
엄청 빡센 수색은 아니고 마나 감지기로 짐칸을 한 번 쓸어보고 사람칸에 누가 있는 지 확인 하는 정도? 짐칸에 내 짐밖에 없고 사람칸엔 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검사는 아니었다.
"창문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나무로 된 창문을 삐걱! 하고 여니 병사가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확인되셨습니..."
병사가 내 가슴 부분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지?'
병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니 은색의 훈장이 보였다.
"잠시만 대기해 주십..."
"그냥 지나가면 안되나요? 괜히 쓸 데 없는 소문이 나는 건 싫어서요."
병사의 눈빛이 팽글팽글 돌아갔다.
이대로 보냈다가 이 성의 주인이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꽤 큰 벌을 받을 걸 생각한 모양이지.
'은급 정도 되는 훈장 소유자면 성 안에 모셔놓고 대접하기만 해도 평판에 도움이 되니까.'
나는 정작 하룻밤만 깔끔하게 자고 아침에 출발하고 싶은 데 괜히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네? 부탁드려요."
남자의 필살기인 애교부리기를 사용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지나가십쇼."
"고마워요."
바로 창문을 닫고 여관으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
포장된 도로를 지나가는 스무스한 승차감에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여관가서 자자.'
지금 잠 많이 자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 어차피 진짜 피로가 풀리는 건 여관 침대에 누워서 잘 때라니까?
스스로를 아무리 세뇌해봐도 몰려오는 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잠시 정신이 끊어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여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관에 있는 마차 보관소지만.
'큰 도시라 그런지 마차 보관소도 있네.'
"도착했습니다."
내가 내리려 하자 카밀레 경이 능숙한 손길로 내 손을 잡고 나를 보조해 줬다.
괜한 시선은 끌고 싶지 않았기에 훈장을 때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우리 마을 가서 실컷 착용하도록 하자.
"되게 고급 여관이네요."
"남작님이 아이데스님을 데려오는 데 필요한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셔서요. 도시에서 제일 좋은 여관으로 찾았습니다."
마차 보관소가 있는 시점부터 알아차려야 했었지만 정말정말 고급 여관이었다.
크기도 컸고 겉으로 보기에도 엄청 깔끔했다.
문 사이로 보이는 1층의 식당엔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시설 하나하나도 꽤 퀄리티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오전에 예약했었는데요."
"네, 플레아 아이데스 이름으로 예약하신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종업원이 다른 색의 열쇠 두개를 나와 카밀레 경에게 각각 내밀었다.
"1등급 호실에 묶으시는 분 께는 저녁은 무료로 제공해 드려요."
"올라가기 전에 밥부터 먹을 까요?"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빈자리를 찾아 앉으려는 찰나에 식당 중앙부분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씹새끼가, 할 말 다 했냐?"
"아직 한 참 남았거든 썅년아!"
오, 투기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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