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72화 (72/312)

〈 72화 〉 방학­1

* * *

헬링파벌과 사모아 파벌의 싸움은 지진 부진 하게 진행됐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헬링 파벌이 첫 결투에서 패배한 여파로 헬링 파벌이 꼬리를 말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사모아 파벌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대부분의 학생들의 생각대로 헬링 파벌이 사모아 파벌에게 꼬리를 말고 있다면 지방파 위주로 결집된 헬링파벌은 방학기간동안 내분을 거쳐 서서히 망해갈 것 이라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 그럴일은 없지.'

벨리아가 루나라에게 패배했을 당시에 벨리아가 일부러 졌으리란 추측은 내가 가진 기반 정보가 없었다면 아예 생각조차 불가능 했을 정도의 억측이었지만 벌써 기말고사가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선 다른 파벌들 또한 '설마 벨리아가 일부러 패배한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헬링파벌은 대단한 파벌이었으니까.

첫 결투에서 졌더라도 사모아 파벌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큰 파벌이었으니까.

아무리 첫 패배의 충격이 컸더라도, 고작 그 이유로 파벌을 단장하지 못할 정도로 프레스티아가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방학이 찾아오면 헬링파벌이 산산조각 날 게 분명한 상황에서 헬링파벌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도 충분히 벨리아의 패배가 고의적이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헬링 파벌이 너무 무능력해서 사모아 파벌에게 대응도 못하고 밀린다. 보다는 헬링 파벌에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었으니까.

'아마 몇몇 파벌은 벨리아가 일부러 패배했을 경우를 상정해 놓은 전략을 짜 놓았겠지.'

물론 우리는 진작에 계획같은 다 짜 놓고 이미 실행으로 옮긴지도 오래 됐지만 말이야.

"드디어 끝났어..."

시에린이 나에게 안겨왔다.

키 차이때문에 안겼다기 보다는 기댄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그동안 시에린이 해왔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꼬옥 안아줬다.

"고생 많았어. 혹시 원하는 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들어줄게."

"몰라, 일단 좀 쉬고 싶어."

중간고사때와 마찬가지로 기말고사도 자습시간이 길었다.

시에린은 그동안의 피로를 다 풀어낼 듯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체 푹 쉬었다.

'방학이라.'

아카데미의 전투와 실제 사회의 전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전투의 주체가 학생이라는 것이다.

마냥 싸움에만 집중할 수 없고, 수업시간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야 한다.

나와 완전히 반대성향을 가진사람과도 주기적으로 얼굴을 마주쳐야 하며, 정해진 일정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과 다른게 긴 시간동안 쉴 수 있는 방학의 존재가 있겠지.

'파벌 싸움 중이라서 이번 방학때는 마음 놓고 쉴 순 없을 테지만 말이야.'

보통상황이었다면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마음 놓고 방학을 즐겼을 테지만 지금은 거대한 파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투의 당사자인 사모아파벌과 헬링 파벌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모든 파벌들이 방학 기간동안 물밑 작업을 벌이겠지.

아마 헬링 파벌의 본격적인 영입시도는 방학기간에 나타날 것이다.

매일 같이 수련하는 헬링 파벌과는 다르게 사모아 파벌은 아카데미 밖에서 까지 친분을 쌓지 않으니까.

물론 지금은 전투상황이니 만큼 어느정도의 거리는 유지 할 수 있겠지만 학기 중 만큼의 끈끈함을 유지할 순 없겠지.

'나랑은 관련 없는 이야기에요.'

나는 방학 동안 푹 쉴거다.

친구들이랑 가끔 편지나 하면서 마음 놓고 편하게 쉴 거다.

그래도 한 세력의 수장인데 너무 책임감 없는 거 아니냐고?

어차피 다른 애들한테도 편하게 쉬라고 할 거라서 상관 없다.

'내가 제도에 남아있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돈도 없지.'

방학이 시작되면 기숙사 짐도 빼야 할 텐데 달리 제도에서 지낼 데도 없다.

제도에선 헬링이랑 사모아 둘이서 실컷 싸우라고 하고 나는 우리 마을로 피신가서 모처럼의 휴식을 즐겨야지.

실제로 난세에서 플레아를 플레이할 때 1학년 여름 방학은 대부분 놀고 쉬는 시간으로 이루어 졌다.

해야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학기 중에 해야 하는 일과 비교해 보면 사실상 휴가나 다름 없지.

"시에린, 일어나 다음 시간 시험이야."

"우으, 벌써 시험이야?"

시에린이 일어나서 기지개를 쭈욱 폈다.

"지금 보는 게 마지막 시험이지?"

"어, 이번 시험만 끝나면 우린 자유야."

"그러면 끝나고 보자."

시에린이 자신의 반으로 사라졌다.

'나도 시험 준비 해야지.'

1학기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가고 있었다.

***

"시험 잘 봤냐?"

"이번엔 잘 본 거 같아. 끝나고 검토해 보니까 일단 객관식에서 틀린 건 하나도 없더라, 서술형도 다 맞은 것 같고."

"크으, 역시 플레아야, 나는 이번 시험 완전 망쳤는데 너라도 잘봐서 다행이다."

이거 내가 시킨 일 때문에 자기는 공부 하나도 못했다고 꼽주는 거겠지?

나중에 확실하게 상을 주도록 하자.

"다른 애들은 언제 오려나?"

"슬슬 올것 같은데?"

교문 앞에서 기다리길 10분, 건물에서 미네타가 나왔다.

"미안, 늦었지?"

"아냐, 늦고 싶어서 늦은 것도 아닐텐데 뭘."

"라이넬은 어딨어?"

"걔는 아카데미 마지막 실기 시험 때문에 조금 늦는 다고 하더라. 그래도 10분 안돼서 올거야."

라이넬도 양반은 못 되는 듯 말을 하자마자 멀리서 모습을 들어냈다.

어깨 쭉 펴고 당당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시험을 꽤 잘 본 모양이다.

"시험 잘 봤나 보다? 걸음걸이가 아주 위풍 당당한데?"

몇시간 잔 걸로 피로가 풀렸는지 시에린이 라이넬에게 장난을 걸었다.

"잘 봤지. 만점이니까."

라이넬이 코를 들었다. 조금 재수 없긴 했지만, 기말 고사 만점 정도면 충분히 재수 없을 권리가 있었다.

'중간고사랑 다르게 기말고사는 실기 위주로 진행 되니까.'

"그러면 오늘도 놀러 갈거야?"

시에린의 말투엔, 나는 피곤해서 가기 싫다는 기색이 강하게 묻어나와 있었다.

"기숙사 짐뺄 준비를 해야해서 오늘 노는 건 좀 힘들 것 같아."

"나도."

"나는 언니가 오늘 일찍 들어오라고 해서..."

다행이도 모두 일이 있었기에 시에린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럼 오늘은 해어지고 내일 다시 보자."

"그래. 다들 바이!"

미네타와 시에린이 교문 밖으로 나서고 나와 라이넬은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플레아,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해도 될까?"

라이넬이 굉장히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라이넬의 뒤를 따라 이동하니 기사반 애들이 연습하는 연무장이 보였다.

시험이 끝난 날에도 수련을 하고 싶은 애들은 없었는지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이쯤이면 됐겠다 싶었는데 라이넬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여기, 익숙하지?"

"알지, 내가 너한테 처음으로 영입제안을 했던 곳이잖아."

라이넬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때는 진짜 어이 없었어.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남자애가 군주가 되겠다면서 나보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걸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거짓말 마. 너 기세에 눌려서 도망갔잖아."

"아니거든! 그냥 갑자기 할 일이 생겨서 뛰쳐나간 것 뿐이야."

라이넬의 얼굴이 새빨게 졌다.

"그래서, 하고 싶다던 말이 뭔데."

은연하게 기세를 들어냈다.

이제 부턴 조금 진지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네가 그 때 그랬지. 아카데미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네가 충분한 자질이 있는 것 같다면 그 때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이제 내가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라이넬이 고개를 돌렸다.

"네가 충분히 대단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흑마법사 사건 때 부터 알고 있었어. 부족한 건 나였지."

라이넬이 흥분한 듯 눈을 사납게 떴다.

"나는 오만했어. 사모아 파벌에게 억압 당하고 있기에 재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사모아 파벌의 견제만 약해지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건 힘들더라도, 누구나 원하는 인재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충분히 대단한 인재야. 내가 채가지 않았으면 프레스티아가 먼저 입맛을 다시고 다가왔을 테니까.

"그런데 너를 보니까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더라. 너는 강하지 않음에도 흑마법사와 맞섰고, 정의감 하나만으로 사람을 구했지. 나는 너보다 강했지만 흑마법사의 앞에서 아무것도 못했고."

여기서 괜히 위로해 줬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겠지?

"내가 부족한 걸 뼈저리게 느끼고, 내가 네 기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게 지금까지 열심히 수련했어."

라이넬의 안광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블루 아이, 익스퍼드에 오른 기사가 마나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라이넬이 검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자기가 익스퍼드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말로 하면 간지가 안 살잖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한 번 말이라도 꺼내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라이넬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제 충성을 받아주십쇼."

정말 멋 없는 말이었다.

일말의 꾸밈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라이넬 스러웠다.

"그래요. 내 그대의 충성을 받아들이죠."

라이넬의 머리의 손을 올림으로서, 기사와 군주의 의식을 마무리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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